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23강(사47:12-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 00:13

이사야 강해 제223(47:12-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19()

 

바벨론 제국이 자랑하고 있는 것들 곧 그들의 주술, 계략, 천문, 우방 등이 자신의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47:12-15)

 

세상에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영역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확실한 미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알 수 없는 세계, 오묘한 역사의 전개과정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여러 민족의 지혜와 학문을 결집하고 있는 제국의 경우에는 더욱 도전적입니다.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불확실한 영역을 제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그 신비를 벗기고 그 초월적인 능력을 이용할 수가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 비단에 꽃으로 수까지 놓여 있는 것, 그만큼 더욱 좋은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첫째,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가 집대성이 되어 있는 광범위한 철학과 학문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론을 세워서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신의 능력을 빌려서 그 문제를 풀어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주문과 주술 등이 신의 능력을 빌리는 도구들입니다(47:12).

(3)  셋째, 아예 인위적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그 우상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것은 헛수고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47:14).

(4)  넷째, 천체를 관측하고 그 움직임의 법칙을 알아내어 지상의 변화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삶의 주기와 역사적인 변화를 천체의 움직임이 주도하고 있다는 가설에 따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점성술과 천문학에 대해서도 이사야가 본문 제13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5)  끝으로, 제국내부의 결속과 우방과의 연합을 공고히 하여 불확실한 미래와 초자연적인 위협을 물리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이제부터 본문의 각 구절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다음과 같이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보라. (b)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47:12); 이사야가 주문과 주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呪文, 신의 힘을 빌리는 글이나 말)많은 주술(呪術,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다양한 술법)을 가지고 맞서보라”(47:12a);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 초자연적인 세계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하여 인류가 오랜 세월 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주문과 주술입니다. 주문을 외우게 되면 신의 힘을 일시적으로 빌릴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술과 요술 등으로 마치 환상과 같은 일시적인 기적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특히 상대방의 영혼을 지배하기 위하여 주술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다양한 도전들이 과연 효력이 있을까요?

(2)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47:12b); 사람들이 주문과 주술을 사용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이익을 얻고자 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문과 주술을 행하고 있는 자신을 무조건 따르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을까요?

둘째로, “(a)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b)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c)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47:13); 사람들의 계략, 천문학, 점성술 등이 과연 미지의 영역을 풀이하고 소원을 성취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1)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47:13a); 여기서 이사야가 많은 계략으로 표현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 두 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첫째, 이미 언급하고 있는 주문과 여러 주술들입니다. 둘째, 제국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자 사용하고 있는 많은 전략들입니다. 이사야는 그 결과가 신통하지 않다고 명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러한 방법들을 사용해보아야 신통한 결과는 없고 피곤할 따름이라는 결론입니다(47:13a).

(2)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47:13b); 그렇다면 바벨론이 특히 자랑하고 있는 천문학과 점성술의 발달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을까요?

1)    선지자 다니엘의 기록에 따르게 되면, 신바벨론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이상한 꿈을 해석하도록 황궁으로 부르고 있는 지혜자들의 종류가 다음과 같습니다; “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주도록 박수(magician, 마술사)술객(enchanter, 요술사)점쟁이(sorcerer, 마법사)갈대아 술사(astrologer, 점성가, NIV)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에 선지라”(2:2).

2)    그들은 일반적인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보통 박사들이 아닙니다. 특별히 신비롭고도 기이한 현상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있는 박사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꼭 맞는 용어가 동양에 없어서 번역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갈대아 술사는 점성가 또는 점성술사를 말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3)    갈대아 인들은 천체의 움직임 및 별의 밝기를 관측하여 지상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전통은 비록 메소포타미아에서 제국이 바뀌더라도 계속 흘러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동방박사들이 메시아로 태어나시는 아기 예수를 만나고자 예루살렘까지 다윗의 별을 보고 찾아오기도 합니다(2:1-2).

4)    여기서는 바벨론의 천문학자와 점성학자들이 예언을 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월 초하룻날에 천체의 변화에 대하여 왕과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참조하여 제국을 운영하고 농업과 목축업에 만전을 기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왕도(王都, 왕국의 수도) 서라벌에 별과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첨성대를 건설하고 천문학과 점성술을 발전시켜 왕국의 운영과 백성들의 농업에 도움을 얻고자 한 것과 같습니다.

(3)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47:13c); 그런데 백성들이 마술과 요술, 그리고 마법과 점성술에 너무 빠져들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세상경영과 역사섭리의 비밀을 모두 알게 된 것처럼 착각하여 영적으로 교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두 가지의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창조주를 인정하는데 실패를 하게 됩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만이 필요하지 그것을 얻고 나면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2)    둘째, 다른 편리한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편리하고 실제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술법이나 우상이 더 좋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한 함정에 빠지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의 눈밖에 나게 됩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종말과 심판에서부터 결코 구원함을 얻지 못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셋째로, “(a) 보라 그들은 초개(草芥, 풀과 티끌, 지푸라기와 같은 하찮은 마른 풀) 같아서 에 타리니, (b)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c) 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도 아니니라”(47:14);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 모든 방법이 마치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이사야의 지적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보라 그들은 초개(草芥, 풀과 티끌, 지푸라기와 같은 하찮은 마른 풀) 같아서 에 타리니”(47:14a); 술법으로 신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자들이나 점성술로 미래의 재앙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자들에게 이사야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바짝 마른 풀과 같다. 불 재앙이 임하게 되면 꼼짝없이 타버리는 지푸라기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47:14a). 한 마디로, 티끌과 같은 피조물임을 알고서 처신을 똑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2)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47:14b); 인위적인 재앙이라면 대비하거나 대처를 할 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판의 불기운을 일으키시고 있는데 어떻게 그 불꽃을 피하고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애초부터 피조물에 의한 자력구원’(自力救援, self-salvation)은 어불성설(語不成說,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근본적으로 피조물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는 창조주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1:6-7).

(3)  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도 아니니라”(47:14c); 창조주가 일으키시는 심판의 불은 피조물을 처벌하는 일종의 형벌입니다. 따라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뜨거움과 타는 고통만을 무한반복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16:23-24). 그것은 음식을 조리할 때에 사용하는 고마운 숯불이 아닙니다. 더구나 겨울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피우는 모닥불이 아닙니다. 두려운 불 심판일 따름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구원의 방도를 찾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우상이나 술법 등과 함께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꽃 속으로 들어가고 말게 될 것입니다(20:10).

  넷째로, “(a)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b)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c)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47:15); 제국 내에서의 다양한 노력 그리고 우방과 연합하여 이룩하고자 한 그 모든 노력들이 다음과 같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는 이사야의 지적입니다;

(1)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47:15a); 일찍이 니므롯의 후예들이 바벨제국을 건설하고 그들의 제국을 영원히 유지하고자 바벨탑을 세우기를 원했습니다(11:4). 그때부터 자신들의 제국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영원한 제국으로 만드는 것이 세상통치자들의 한결같은 꿈입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안보의 위협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상을 만들고 신의 능력을 빌려서라도 그 일을 성사시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바벨탑이 무너진 것과 같이 언제나 제국의 붕괴입니다(47:15a).

(2)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47:15b); 인류의 역사는 자연부락에서부터 계약사회로 이행이 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국가간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혈통적인 연합에서부터 상호이익을 함께 얻을 수 있는 협력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잇속에 따라 연합을 하고 있는 장사꾼의 셈법과 같습니다. 여기서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관행이 오래되었다고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단 거대한 제국이 와해가 되면 그 주변에 영원한 동맹도 우방도 없을 것입니다. 마치 경박한 장사치처럼 모두가 제 살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47:15b, 14:27).

(3)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47:15c); 두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무리 단단한 결속을 자랑하고 있는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발생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국의 영광과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니엘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2:43).

2)    제국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그리고 각종 술법과 우상문화로 건설해놓은 그 모든 문명도 영원히 지속이 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뜨인 돌을 보내셔서 그 모든 것을 부수어 흩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학문과 술법으로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시 다니엘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2:34-35).

결론적으로, 거대한 제국의 힘으로써도 그리고 세상의 학문과 철학 나아가서 신을 부리는 사람들의 온갖 재주로써도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것들로 영원한 제국도 건설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피조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때가 되면 모두 붕괴가 되고 종말을 맞이할 따름입니다(벧후3:12-13).

창조주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뜨인 돌을 이 세상에 보내어서 그와 같은 인위적인 구원의 논리와 영원성을 주장하는 것들을 모두 박살을 내버리실 것이라고 훗날 선지자 다니엘에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2:34-35). 요컨대, 그와 같은 예언의 초기 모습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이미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영원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이 세상에서 그것도 100년 안팎의 유한한 인생을 살게 되는 인류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역사섭리와 구원의 방책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세상 속에서 얻을 수 없는 귀한 영생의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뜨인 돌과 같은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영원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겸손하게 그 앞에 내려놓고서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해야만 합니다. 그 가운데 영원한 구원의 방법을 깨닫고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게 되는, 이른바, ‘제자 된 삶이 전개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은혜가 오늘도 여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