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20강(사47: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30. 16:32

이사야 강해 제220(47: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116()

 

()의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사탄 루시퍼가 된 것처럼 처녀 딸 바벨론과 딸 갈대아가 그러하다는 이사야의 지적(47:1-4)

 

이사야는 바벨론에 대하여 처녀 딸이라고 하는 순결한 이미지와 곱고 아리땁다는 ’()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47:1ac). 그리고 신바벨론의 갈대아 왕조에 대해서는 보좌를 가진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7:1b). 그것은 다분히 갈대아 왕조의 신바벨론 제국을 미()의 천사장 루시엘과 비교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이사야가 이미 제7장에서 메시아의 처녀탄생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7:14). 그리고 제14장에서는 루시엘이 타락하여 루시퍼 곧 사탄이 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14:11-15). 이어서 루시퍼의 세력이 역사 가운데 바벨론이라고 하는 제국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암시해주고 있습니다(14:4, 16-20). 참고로, 이사야의 예언이 사실이라고 훗날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 제17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의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b) 딸 갈대아, 보좌없어졌으니 에 앉으라. (c)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이라”(47:1); 바벨론 제국과 그 왕조가 역사적으로 멸망을 당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옛날 천사장 루시엘의 타락 및 추락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47:1a); 여호와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하여 바벨론을 처녀 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처녀라고 하는 것은 순결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는 그 의미를 사용하여 이미 메시아를 잉태하게 되는 여인을 순결한 처녀’(7:14)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    둘째, ‘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천상에서 미()의 천사장 루시엘에게 어울리는 칭호입니다(47:1c).

3)    그토록 순결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던 루시엘이 그만 교만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자신의 보좌를 하나님만큼 높이고자 합니다(14:13-14). 그 때문에 천상에서 땅으로 내어 쫓기게 됩니다(14:15).

4)    그와 같은 전철을 세상나라 바벨론 제국이 밟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14:4, 12, 16-19, 47:1a).

(2)  딸 갈대아, 보좌없어졌으니 에 앉으라”(47:1b); 본문 제1절에서 바벨론으로 지칭하고 있는 나라가 사실은 갈대아왕조의 신바벨론 제국임을 여기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갈대아 앞에 이라고 하는 사랑스러운 자녀의 신분을 붙여주고 있습니다;

1)    흔히들 훗날 지상에 남은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갈대아 왕조의 신바벨론 제국을 사탄의 나라라고 보고 있습니다(17:5-6). 하지만 이사야는 그 처음 신분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7:1b).

2)    따라서 바벨론이 회개하고서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19:22, 11:24). 그와 같은 복음적인 관념이 이미 들어 있습니다.

3)    하지만 여기서는 갈대아 왕조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를 못하고 교만하게도 창조주를 무시하고 루시엘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땅에서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선민의 나라를 멸망시키는데 동원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이라”(47:1c); 하나님 보시기에 곱고 아리따운 존재는 누구일까요?

1)    외모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삼상16:7). 그러므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입니다. 예를 들면, 메시아의 어머니로 택함을 받고 있는 마리아가 그러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1:37-38).

2)    그런데 갈대아 왕조의 신바벨론 제국은 그 반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의 나라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함부로 정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a)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b)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c) 다리를 드러내고 을 건너라”(47:2);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이 땅에서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겪게 되는 육체적인 어려움과 영적인 타락상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47:2a); 곡식을 맷돌에 갈아서 가루를 내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1)    첫째, 쌀가루나 밀가루를 만들어서 별미로 떡이나 국수를 만들고자 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밥을 지어서는 온 식구가 먹을 양식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가루로 만들어 죽을 쑤어서 많은 식구들이 기아를 면하고자 하는 경우입니다.

2)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가 아니고 후자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비유처럼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가 생존을 위하여 돼지먹이 쥐엄 열매를 먹고서라도 배를 채우고자 하는 비참한 형편과 같습니다(15-16).

3)    하나님을 무시하고 땅으로 내어 쫓김을 당한 악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을 외면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땅이 결코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나게 되는 아담부부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3:17).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47:2b); 중동지역에서 너울은 시집을 가는 신부가 쓰는 것입니다. 신랑이 그 너울을 벗겨주면 함께 평생을 살게 됩니다. 서로가 정조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적인 타락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무시하고 함부로 떠나서 그 아내가 다른 남자 앞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다리를 드러내고 을 건너라”(47:2c); 돌아오지를 못하는 강을 그만 건너가버리고 있습니다.

1)    마치 한국의 고전적인 민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내용을 다른 측면에서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마침내 그 강을 건너다 떨어져 죽고 마시네. 장래 내 님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본문에서는 약간 다릅니다. 죽음이 아니면 갈라놓을 수 없는 부부의 관계를 타락한 여자가 스스로 갈라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참고로, 한국의 고전적인 설화 가운데에는 과부가 된 모친이 남자를 만나고자 한밤중 자녀들이 잠든 사이에 다리를 드러내고 홀로 시내를 건너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자녀들이 몰래 돌로 징검다리를 놓아줍니다. 그 다리를 건너 다니던 모친이 드디어 그 징검다리를 놓아준 자녀들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결과 다시는 밤중에 홀로 시내를 건너지 아니하였다는 것이 그 설화의 내용입니다.

3)    그와 같은 고대사람들의 심성과 윤리에 비추어보게 되면 음녀 바벨론의 행위는 비난거리입니다. 그 성적인 타락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탐욕과 쾌락추구의 향락적인 부끄러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점을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 구절에서 설명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a)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b)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47:3); 바벨론의 영적인 정체성이 드러날 때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계속 세상제국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선택을 잘못한 경우에는 용서함이 없을 것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47:3a);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서 카인과 아벨이 탄생합니다;

1)    두 아들이 장성하여 각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형 카인의 제사는 퇴짜를 맞게 됩니다. 형이 동생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그 마음을 알고서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2)    자신의 악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카인이 그만 동생을 쳐죽이게 됩니다. 공식적으로 인류최초의 가정비극이 발생하고 카인은 살인자가 되고 맙니다(4:8). 자신의 속살과 치부가 그대로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그 속살과 치부를 보게 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결과에 대하여 심판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창세기에서는 카인이 떠돌이들이 살고 있는 놋 땅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4:12, 16).

3)    카인의 행위를 바벨론 제국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고 있는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시기하여 마침내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선민들을 노예로 부리고자 합니다(39:6-7).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벨론 제국을 어떻게 처벌하실 지에 관하여 이어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2)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47:3b); 하나님께서 갈대아 왕조의 신바벨론 제국에 대하여 강력하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시고 있는 대목입니다;

1)    하나님의 진노가 엄청나십니다. 그래서 신바벨론 제국의 멸망이 예상외로 빠르고도 처참합니다. 실제로 훗날의 역사 가운데 바사의 고레스 왕이 메대와 연합하여 기습적으로 신바벨론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맙니다(5:30). 내정을 책임지고 있던 벨사살 왕이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라비아에 원정을 나가 있던 나보니더스 황제가 군사를 이끌고 수도를 탈환하고자 되돌아오지만 엄청난 희생을 내고 참패를 당하고 맙니다.

2)    예언이 그대로 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국을 정복한 때가 주전 586년입니다(왕하25:1-7).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47년 후 주전 539년에 그 크고 강대한 제국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넷째로, “(a) 우리의 구원자, (b)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47:4); 누가 사람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을까요? 이사야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구원자”(47:4a); 바벨론의 영적인 정체성이 드러날 때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계속 세상제국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1)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원자는 세상적인 제국의 힘과 막강한 황제의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적인 삶이며 영적인 타락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2)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세적인 문제의 해결과 무병장수 그리고 세상적인 성공에만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육신적인 삶이 영원히 지속이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엉뚱하게도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를 떠나서 영생의 소망을 피조세계에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3)    때로는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한 신상이나 우상을 찾아가서 자신들의 현세적인 소원의 성취를 빌고 있습니다. 그것이 온전한 구원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훗날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2)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47:4b);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가 누구일까요? 이사야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47:4b). 그러므로 현세적인 이익과 육신적인 성공만을 위하여 사람들이 또 바벨론 제국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는 길이며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개척하신 그 길을 제자로서 뒤따라가는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게 되는 바벨론 제국의 정체에 대하여 공개를 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제국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회개를 하면 구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제국 바벨론처럼 타락하지를 말고 자신들의 영적인 수치가 드러나게 되면 빨리 창조주 하나님께 회개를 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구분하지 아니하고 만민의 생명을 사랑하여 영생을 누리도록 구원해줄 수 있는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기억하라는 부르짖음입니다.

오늘날 세상제국 바벨론의 전철을 밟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황제의 권력을 흠모하고 그것이 구원의 길인 것처럼 설파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다시 한번 창조주 하나님만이 온전한 구원주라는 사실을 그 옛날 이사야처럼 힘있게 증거를 해야만 합니다. 아무쪼록 한평생 그와 같이 외칠 수 있는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