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96강(사43: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2월 23일(수)
여호와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사43:11-13)
어떤 자의 엄청난 말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자가 능히 그 말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안다면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과거에 그러한 능력을 선보인 적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그와 같은 관점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창조주이시며 구원자가 되신다고 역설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사43:11).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먼저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증거를 또한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본문에 이르기 전에 이미 제37장과 제38장에서 그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를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1) 히스기야 왕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죽고 결코 살지 못할 것임을 이미 말해주고 있습니다(사38:1).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일어나 벽을 향하고 앉아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어 달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조치를 취하십니다. 15년 수명연장을 결정하고 그 일이 모든 자연의 흐름을 10도 뒤로 물리는 것과 같음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사38:5, 8).
(2) 죽을 운명을 살 운명으로 바꾸어주고 자연과 시간의 흐름이라고 하는 창조의 질서를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은 그 질서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저히 선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는 영광스러운 창조주의 능력의 소유자라고 하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지서 이사야 제38장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3) 그 사실은 이미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서 열왕기하 제20장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내용입니다(왕하20:1-11). 그런데 그 기록을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 옮겨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의 하나님 찬양을 통하여 그 일이 바로 창조주의 능력이며(사38:12-16) 구원의 능력임을(사38:17-20) 새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히스기야 개인의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만을(사38:5) 선보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을 앗수르 군대의 포위공격에서부터 구원해내십니다(사38:6). 그것도 어떻게 구원해내시는지를 선지자 이사야가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놀랍게도 여호와의 사자가 하룻밤에 앗수르 군사 18만5천명을 몰살시켜버린 것입니다”(사37:36).
(5) 그 기록 역시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하 제19장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왕하19:35). 그런데 그 내용을 이사야가 자신의 선지서에 다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경험한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구원주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동족들에게 더 확실하게 증거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큽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까요? 무작정 이스라엘 자손들이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만 해주면 되는 것일까요?” 그 답변은 뻔합니다;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구원의 능력은 좋은 참고자료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선민의 자랑거리밖에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까지 창조하시고 구원하신다고 하는 증거를 제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내용은 이사야가 그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러한 관점에서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나 곧 나는 여호와라. (b)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 여호와와 구원주에 대하여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나 곧 나는 여호와라”(사43:11a); 여호와의 등장과 그 의미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기 제2장에서부터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1장에서 일반론적인 세상의 창조 곧 6일 동안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에 그냥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덴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개인적으로 교제를 시작하시면서 창조주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후 믿음의 열조들과의 동행에 있어서도 항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한 인류의 심판과 노아 가족의 구원에 있어서도 역시 여호와이십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는 인생의 창조와 심판 그리고 구원역사의 주역입니다.
2) 출애굽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호렙 산 불꽃 가운데서 부르고 계십니다(출3:3-5).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그 뜻이 ‘스스로 있는 자’ 라고 계시해주고 있습니다(출3:14). 그 뜻은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이방인들의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사람에 의하여 기복신앙의 도구로 만들어진 우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피조물이 어찌할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로서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이름의 뜻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애굽의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2)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b); 이사야는 창조주가 아니면 구원자가 될 수가 없다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말은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운명의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경험한 바로는 죽을 운명의 히스기야 왕이 되살아난 것입니다(사38:5, 8). 그리고 죽임을 당할 예루살렘 성과 주민들이 모두 하나님의 기적에 의하여 구원함을 얻었습니다(사37:35-36, 38:6).
둘째로, “(a) 내가 알려 주었으며, (b) 구원하였으며, (c) 보였고, (d)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e)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f)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43:12);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되살아나고 예루살렘 성이 앗수르 군대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원주 되심에 대하여 증거를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르짖음은 히스기야 왕이나 선민들에게 별로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너무 빨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제멋대로 한 세상을 자기들 욕심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사39:8). 더구나 이사야의 설명은 이방인들에게는 더욱 효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선민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증거해줄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주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설명입니다. 그 내용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내가 알려 주었으며”(사43:12a); 이사야는 사람의 힘으로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이방 신이나 우상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구원병으로도 예루살렘 성이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사31:1). 그리고 랍사게의 주장과 같이 이방 신들이 앗수르의 군대 앞에 참으로 무기력했기 때문입니다(사37:12). 다만 여호와 하나님만이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서 히스기야 왕과 선민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줄 것이며(사37:33-35) 훗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어주겠다는 것입니다”(사9:6-7, 11:1-16). 그 가운데 역사적으로 이미 예루살렘 성의 구원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메시아의 오심과 그 구원사역이 이사야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예언이 되어나갈 것입니다. 이사야가 알려주고 있는(사43:12a)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성육신입니다; 메시아는 처녀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실 것입니다(사7:14)
2) 둘째, 공생애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시며 하나님말씀의 뜻을 성령의 능력으로 풀어주실 것입니다(사11:1-9).
3) 그렇게 미리 예언으로 알려주시는 뜻은 그 일이 이루어질 때에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이며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입니다(사48:6-7).
(2) “구원하였으며”(사43:12b); 메시아가 이 땅에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죽으심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자면 먼저 그들의 죄를 사해주는 제사가 필요합니다. 해마다 드리는 제물로써는 그들의 죄를 영원히 사해줄 수가 없습니다(히7:27). 그러므로 영생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셔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요1:29). 훗날 그 대속의 장소가 바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 어떻게 대속의 제물이 되는가를 이사야가 벌써 700년 전에 정확하게 예언해주고 있습니다(사52:13-53:12).
(3) “보였고”(사43:12c); 실제로 메시아는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여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마28:1-10).
(4)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사43:12d);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 곧 메시아의 성육신, 공생애, 대속의 죽으심, 무덤 속 부활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가 아니고서는 대속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을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행2:31-32). 따라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구원을 이룰 수 있는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사43:12e); 이제 성도들이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자 메시아의 오심과 그 성취를 온 세상에 증거하는 것입니다(눅24:44-48).
(6)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43:12f); 선지자 이사야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있을 뿐입니다(사6:8, 겔37:4, 10). 그 말씀을 계시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43:13); 만민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위엄으로 스스로 결정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그 어떤 힘있는 피조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바꿀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만민구원이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계획되고 추진이 되는 새로운 창조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구원자로 메시아를 보내시고 온 세상에 만민구원의 소식을 전하게 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피조물이 방해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방해를 했다가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은근히 동족들인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행태가 걱정입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신앙생활에 젖어서 선민들만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말씀을 전하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아의 사역을 방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장래 발생할 그 일을 걱정하면서 이사야는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자신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거절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 이기적인 자기구원에만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비천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사람들과 공생애를 살게 하시고 대속의 십자가까지 지게 하신 그 희생과 고난의 의미가 엄청 축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어떻게 만민구원의 새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계시는지를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시아를 먼저 보내시고 이제는 저와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구원사역을 계속 추진하고 계십니다. 아무쪼록 만민구원사역에 적극 참여하는 의미 있는 인생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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