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90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19. 03:36

이사야 강해 제190(42:10-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217()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하나님의 말씀과 새로운 역사의 창조(42:10-13), 그 일에 동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동참하지 아니하는 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처벌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42:14-17).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유다 왕국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시대 가나안 땅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면서 이방세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북쪽과 서쪽은 바다이며 동쪽과 남쪽은 대부분이 광야와 사막입니다. 그가 이방세계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장차 선민사회에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세계로 퍼져나가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전파의 끝은 어디일까요? 이사야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땅끝이란 지중해 바닷길의 끝과 광야와 사막 길의 끝을 말하고 있다고 개념정리를 하고 있습니다(42:10-11).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방세계에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민구원의 대원칙을 전하는 것입니다(42:13).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구원해주신다고 하는 공의의 정신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기본취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복된 구원의 소식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똑같이 다루고 계십니다. 모두의 생명을 똑같이 살리고 돌보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그 원칙을 저버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이기적으로 하나님말씀을 풀이하고 자신들에게만 선민구원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유대인 사회에 엄청난 재앙이 발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42:15, 17). 반면에,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메시아와 같은 마음으로 구원의 소식을 이방세계에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한 마디로, 암흑의 세계가 광명하게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42:16). 그리고 땅끝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42:11).

이사야는 그와 같은 시대를 창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지막 산고(産苦)를 치르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2:14). 이사야 자신도 동족들이 모두 회개하고서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역에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지극한 소망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이사야 역시 산모처럼 헐떡이면서 새 시대를 잉태하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예언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본문의 각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 섬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 (b) 여호와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42:10); 이사야가 서쪽과 북쪽을 향하여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곳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만민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새 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의 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1)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 섬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42:10a); 가나안 땅 서쪽은 지중해입니다. 그 연안에 수 많은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니키아의 사람들은 지중해를 오가면서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북방에는 흑해와 카스피 해가 있습니다. 그곳 연안에도 많은 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가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항해자들, 연안의 많은 나라들과 백성들에게만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한 가지 더 구원의 대상이 있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다 가운데의 만물”(42:10a)로 표현이 되고 있는 그대로, 온 땅의 생물들과 자연도 모두 구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3:16절의 취지와 동일한 온 세상 구원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2)  여호와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42:10b); 온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서 땅끝에서부터 모든 나라와 백성들 그리고 만물들이 여호와께 새 노래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11) (a)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b)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세일)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전할지어다”(42:11-12); 이사야의 시선이 이번에는 동쪽과 남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광야와 사막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또 그 너머에, 수 많은 이방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메시지가 전해질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는 찬양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42:11a);  여기서 광야와 거기에 사는 성읍들은 가나안 남부에 있는 이방인들의 성읍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더 남쪽에는 아라비아 반도가 나타납니다;

1)    그곳에는 유목민들과 약탈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사야는 아주 호전적인 족속으로서 게달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 게달은 검은 천막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25:13).

2)    게달 족속은 조상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운명에 아주 어울리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16:12). 그런데 그들의 삶이 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2)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세일)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42:11b); 에돔의 수도 셀라의 주민들도 메시아의 복음을 듣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자주 멸망의 대상으로 언급이 되고 있던 그들이(34:5-9, 63:1) 구원으로 나아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3)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전할지어다”(42:12); 바다의 많은 족속과 광야의 많은 족속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만민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힘을 합쳐서 세상 끝까지 가서 모든 남아 있는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찬양을 땅끝까지 퍼지게 만드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셋째로, “(a)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b)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42:13); 이방선교의 길에 누가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일까요? 선지자일까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42:13a); 창조주 하나님 앞에 모두 나아와서 회개하고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전하는 일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수천 년 동안 창조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만든 편리한 우상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현세구복적인 신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 무척 편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창조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 그 동안의 잘못을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항과 반발이 거세고 조직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이 너무 겁을 먹지 아니해도 좋습니다. 그 이유는 그 적대세력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먼저 쳐부수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42:13a).

(2)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42:13b); 창조주께서 직접 적들을 토벌하시는데 어느 피조물이 감히 그 앞에서 끝까지 저항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크게 덤비면 더 크게 깨어질 따름입니다(42:13b).

넷째로, “(a)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b)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42:14);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는 새 시대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선민들의 한심한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을 참고 보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을 보고서 또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새 시대를 열기 위한 마지막 산고(産苦)를 다음과 같이 치르고 있습니다;

(1)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42:14a);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모습의 신앙생활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이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사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민구원을 부르짖으며 이방인들을 모두 혼내달라고 성전에서 히스기야 왕처럼 부르짖고 있습니다(37:14-20). 원수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 멸망을 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5:43). 그 원수가 영적으로 사탄과 마귀인데(6:12) 선민들의 개념은 다릅니다;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방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른 민족을 위하여 제사장나라가 되어야 할 선민들이(19:6) 이방인들을 멸망시켜달라고 여호와께 기도를 할 수가 있을까요? 그 기도를 오랜 세월 들어오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참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선민의 나라를 혼을 내주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는 참아야만 합니다.

(2)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42:14b); 마침내 메시아를 그들의 사회에 내보내게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마지막 산고를 치르고 계십니다.

다섯째로, “(a) 내가 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b) 그 모든 초목들마르게 하며, (c) 들이 이 되게 하며, 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42:15); 새 시대를 여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선민사상과 현세구원사상을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의 취지를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뜻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메시아를 배척하게 되는 미래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요?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1)  내가 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42:15a); 가나안 땅에는 산들과 언덕들이 많습니다. 서쪽 지중해 연안지역은 들판이며 비옥합니다. 하지만 곧 동쪽으로 언덕이 나타납니다. 북쪽에는 높은 산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비스듬히 산맥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들과 언덕에는 목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치시게 되면 목축을 경영할 목동을 구하기도 힘들게 됩니다. 주민이 격감하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산들과 언덕들이 황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42:15a).

(2)  그 모든 초목들마르게 하며”(42:15b); 전쟁의 발발로 사람들만 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되면 자연재해가 심하게 찾아옵니다. 산천초목이 모두 마르게 됩니다. 가뜩이나 비가 적은 지역에 아주 심한 가뭄이 들고 마는 것입니다.

(3)  들이 이 되게 하며, 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42:15c); 끝까지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만민구원사역에 나서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강제로 쫓아내어 온 세상의 유민으로 떠돌게 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가나안 땅에 살 수가 없도록 완벽한 가뭄으로 강들과 못의 물을 마르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강제로 떠나게 되기 전에 이기적인 신앙을 버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는 만민구원사역에 나서라고 하는 이사야의 외침입니다.

여섯째로, “(a)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b)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c)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d) 굽은 데곧게 할 것이라. (e) 이 일을 행하여 그들버리지 아니하리니”(42:16); 반면에, 만약 선민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메시아의 제자들이 된다면 그 장래가 어떻게 될까요?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 이상의 예언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42:16a); 맹인들은 자신의 몸이 느끼고 손과 발이 인지하고 있는 공간에서만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자들이 선민인 유대인들이며 그러한 교리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시면 그러한 종교생활을 개혁하고 개방할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들이 그 옛날 요나처럼 이방 땅의 도시로 보냄을 받게 될 것입니다(1:1-2, 3:1-2).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42:16a).

(2)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42:16b); 역사적으로 많이 늦었습니다. 진작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이방 땅에 전해졌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이방도시와 도시로 연결하는 지름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훗날의 역사 가운데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의 징검다리가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안디옥-à에베소-à빌립보-à고린도-à로마-à(스페인 다시스)”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42:16c); 어두움의 세상에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3). 그 역사가 이방 땅에 임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암흑의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광명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4)  굽은 데곧게 할 것이라”(42:16d);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삐딱하게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섬겨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굽은 신앙생활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진실로 바로 서게 되는 신앙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5)  이 일을 행하여 그들버리지 아니하리니”(42:16e); 우상문화를 버리고 하나님신앙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보호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언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곱째로, “(a) 조각한 우상의지하며, (b)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 (c)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42:17); 만약에 현세기복적인 신앙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방 땅에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미래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조각한 우상의지하며”(42:16a);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사람들이 신상을 조각하여 살아 있는 신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우상입니다. 자신이 만든 조각품을 신이라고 섬긴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난센스입니다. 더구나 그것을 의지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위태로운 일입니다.

(2)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42:16b);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크게 십계명을 어긴 적이 있습니다(20:3-5). 영적인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수십일 동안 하산을 하지 아니하자 백성들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여호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신상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32:1). 대제사장인 아론은 하나님의 십계명을 어기고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출애굽의 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32:4). 그 광경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모두 멸망을 시켜버리겠다고 모세에게 내심을 밝히신 바가 있습니다(32:10). 지금도 그 때와 같이 행동한다면 똑 같은 진노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3)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42:17c); 모세의 중보기도로 겨우 전멸만은 면했지만 동족 3천명이 학살을 당하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32:28). 그리고 그 송아지 우상을 부수어 그 가루를 물과 함께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누어 마셔야만 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32:20). 마찬가지로 그때나 지금이나 현세구복적인 우상문화를 청산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민족이 수치를 당하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가 왜 위와 같이 결론 아닌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대인들처럼 선민구원사상에 매달려서 현세구복적인 신앙생활을 계속 영위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이 창조하시는 새 시대 새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장차 앞장을 서셔서 만민구원의 시대 영생구원의 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온 세상 모든 족속들에게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전해야만 합니다(1:8).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우상문화를 철폐하라고 가르쳐야만 합니다(28:18-20). 그것이 암흑의 세상에 빛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는 방법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상명령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를 포함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여러분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안이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역사에 동참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천국 문으로 들어가는 가장 지름길이라고 이사야가 이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42:16). 아무쪼록 그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