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유다서의 주요 교훈 3가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27. 14:13

제목; “유다서의 주요 교훈 3가지”(1:3-16)

설교일; 주후 20218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727일 화요일 작성)

 

유다서는 사도 요한이 저술한 요한1, 2, 3서와 묵시록인 요한계시록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량이 단지 25절로서 한 장(, chapter)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유다서의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은 성도의 삶에 있어서 요긴한 것입니다. 크게 보아 그 교훈이 서너 가지나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의 본문말씀에서 엿볼 수 있는 유다서의 주요 내용만 제시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3가지나 됩니다;

(1)  성적인 타락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1:4, 7-8).

(2)   천사숭배사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1:6, 9-10).

(3)  종말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1:13-16).

그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구절의 풀이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가 과연 누구인지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다서의 저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제1절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1:1). 요컨대 자신은 예수님의 바로 아래 남동생인 장로 야고보의 동생이라는 것입니다(6:3);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사도 베드로(벧후1:1), 후속사도인 바울(1:1, 1:1), 장로 야고보(1:1) 등이 아래와 같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베드로후서 제1장 제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2)  로마서 제1장 제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3)  빌립보서 제1장 제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

(4)  야고보서 제1장 제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야고보는… “.

특히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인 아들이며 동역자인 디모데를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1). 그로 미루어 보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사도나 장로 그리고 목회자에게 붙일 수 있는 호칭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다만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는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와 형제이며 두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표현은 수석사도인 베드로와 후속사도인 바울의 경우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벧후1:1, 1:1).

고대인들은 자신의 주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를 않습니다. 부득이 불러야 할 경우에는 관직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 이름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직이 고대사회에서 주인의 신분을 밝히는데 있어서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름이 아무리 좋아도 그 관직이 높지 못하면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야고보와 유다 형제는 그 순서를 바꾸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형제에게 있어서는 나사렛 예수가 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처럼 친근하기에 스스럼 없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1, 1:1);

그런데 야고보의 경우에는 특별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더욱 겸손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1:1). 어째서 그러한 특이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장로 야고보는 나사렛 예수의 바로 아래 남동생이며 그 별명이 기도를 많이 한 교계의 지도자 낙타 무릎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6:3, 1:14, 1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 야고보는 주종관계를 형제관계보다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장로 야고보는 친형인 나사렛 예수의 공생애에 전혀 참여한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주님으로 그들 형제에게 나타나기 전까지 한번도 어머니가 같은 형인 예수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했습니다(7:5, 1:14, 고전15:7). 엄밀하게 말하자면 친형인 예수는 다윗의 혈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인 야고보와 유다가 알기로는 모친 마리아가 남편인 목수 요셉과 합방하기 전에 벌써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때 태어난 아들이 나사렛 예수입니다(1:18-21). 그에 따라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혈통이 아닌 형 예수는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18:38). 반면에, 야고보가 목수 요셉의 혈통을 잇고 있는 장자이므로 그가 메시아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렇게 세상적인 인간의 혈통과 족보만 생각하고 있는 야고보와 유다 형제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고 무덤에 들어간 형 예수가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갈릴리를 방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4:46, 28:16-17).

부활한 예수가 나사렛 집으로 모친과 친동생들을 찾아왔을 때에 그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자가 야고보이며 그 다음이 유다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친을 모시고 40일 동안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며 예수님의 승천 광경도 목격합니다(24:51, 1:8-9). 그리고 오순절에는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다가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1:14, 2:1-4);

그때부터 바로 아래 동생인 야고보는 형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며 자신의 영적인 주인이신 주님이시라고 신앙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1:1). 같은 맥락에서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 역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형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1).

이제는 생전의 예수님과 친분이 없었던 사도 바울이 어째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아니라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로마서 첫머리에서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친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 대신에 자신의 믿음과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은 인간 예수가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는데 그와 같은 신분의 변화를 영적으로 자신도 얻을 수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3:10-16, 6:4, 8:11, 15-17);

특히 빌립보서 제3장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 압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3:10-12). 물론 그와 같은 놀라운 소망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유다에게서도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1:12, 2:5, 1:24-25).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 유다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요한 교훈 3가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가 성적인 타락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1:4, 7-8). 둘째가 천사숭배사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1:6, 9-10). 셋째가 종말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1:13-16).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풀이하면서 그 3가지의 교훈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1:3-4);

(1)  먼저 장로 유다가 초대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3a). 그것은 유다가 나이가 많으며 예루살렘교회의 개척자 중의 한사람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경륜과 장로의 권위에 의지하여 여러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단번에 구원을 얻은 자들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장로인 유다나 일반성도나 그 점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잘못된 선민우월사상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제는 선민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을 때에 더욱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유대주의자들의 아전인수격인 주장인데 그 소리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로 유다는 그것이 아니며 성도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다는 것입니다(1:3b).

(3)  초대교회에 들어와서 이상한 이론을 전개하는 자들이 유대주의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가지 부류가 더 있습니다(“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1:4a); 하나가, 영적인 열광주의자들입니다. 또 하나가, 원시적인 영지주의자들입니다;

(4)  헬라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는 영지주의 사고방식은 영과 육을 철저하게 구별하는 것입니다. 육을 가진 자가 인간이며 영을 가진 자가 신이라는 이분법입니다. 이상적인 신의 세계는 영적인 영역인데 오로지 그곳에 영생과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영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으며 구원 받은 성도는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는 그 영혼만이 중요하기에 육신적인 삶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전혀 자신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고 하는 참으로 편리한 쾌락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5)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두가지 폐단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는 영체로만 이루어진 존재이지 결코 부정한 육신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 육신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본문에서 장로 유다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1:4c). 요컨대, 그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둘째, 성도들이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의 쾌락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영적인 구원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하는 편리한 사고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제시하고 있는 니골라 당의 주장이 그러합니다(2:15). 그들의 주장에 현혹된 성도들이 무분별하게 방탕과 음행에 빠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잘못이라고 장로 유다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4b);

(6)  영적으로 열광하고 있는 자들이 두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보다 성령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성경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서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가, 영적인 가치가 육신적인 가치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방탕과 무절제를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원시적인 헬라 철학의 영지주의가 그들의 입장을 변호해주고 있으니 교회내에서 그들의 행동이 더욱 기고만장입니다. 그것을 바로잡고자 장로 유다가 이 글을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4a).

둘째로,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1:5-7);

(1)  장로 유다가 이 글을 적고 있는 시기가 대략 주후 50년대로 보입니다. 그 시기에는 사도 바울의 서신 중 일부가 초대교회에 회람이 되고 있는 시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를 생각하면서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메시아에 관한 글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장로 유다 역시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들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적인 교훈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1:5a,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2)  먼저 제5절에서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기록을 참조하여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1:5b).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하고 있습니다(12:37-40). 그날 밤 어린양의 피가 뿌려져 있지 아니한 애굽인들의 집에서는 장자의 죽음이 임하고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해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광야생활 40년을 통하여 여호와를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불신임했던 그들 기성세대들이 전부 죽고 맙니다(14:28-32). 그러므로 선민이라고 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철칙이 여기서 성립되고 있습니다.

(3)  장로 유다는 제6절에서 히브리전승을 한 토막 원용하고 있습니다;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1:6). 그 대목은 이사야 제14장의 내용 일부를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14:12-15). 사탄과 마귀의 정체가 본래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장 루시엘이라는 히브리전승을 담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영계를 그들의 수하인 천사들이 타락하여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어두운 세상의 지배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종말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와 무당을 내세워서 악한 천사들을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는 잘못된 풍조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장로 유다가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 내에 천사를 숭배하는 이상한 영적 열광주의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4)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 가운데 창세기와 신명기에는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아드마와 스보임이라는 사해 주변의 4도시에 하나님의 불심판이 임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9:24-25, 29:23). 그들 성읍에 혼음과 남색 등 음란문화가 만연되어 있기에 하나님의 불심판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 유다는 한가지 사실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를 숭배한 결과 천사와 합방하는 것이 이 세상의 영웅을 생산하는 방법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6:4).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1:7)라는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9. 천사장 미가엘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1:8-10);

(1)  장로 유다가 초대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성도들을 한마디로 꿈꾸는 이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8a). 그들의 특징이 다음 3가지입니다(1:8b); 첫째, 육체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 열광주의자이며 원시적인 영지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으므로 육신으로 행한 일은 영적인 구원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으로 성도들을 지도하고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레마로 얻는 영적인 말씀이 주님의 말씀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직통계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셋째, 참으로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섭리자이시고 종말로 역사의 심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권 및 영광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태는 천사장 미가엘의 행동과 비교할 때 금방 잘못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1:9). 미가엘이 그 옛날 모세의 시신을 하늘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그때 마귀의 방해를 받게 됩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것은 전부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천사장 미가엘이 그 심판과 처벌을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드리고 있습니다;

(3)  천사장 미가엘조차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을 의지하고 있는데 초대교회 내에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며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완전성을 부인하고 성도들의 경건한 삶을 불필요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는 무리들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는 소위 겁을 상실한 그들을 향하여 장로 유다가 다음과 같이 질책하고 있습니다;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1:10).

넷째로,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 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1:11-13);  

(1)  장로 유다가 알기 쉽게 모세오경의 기록을 원용하여 성도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1:11). 첫째가, 창세기 제4장에 기록되어 있는 가인의 유배 조치입니다(4:11-16). 둘째가, 재물에 탐닉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신앙에서 이탈하게 만들고자 획책한 거짓선지자 발람의 꾀입니다(25:1-5, 31:2, 8). 셋째가, 사촌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을 시기하여 패거리를 모아 반역을 도모한 고라의 사건입니다(16:1-2, 10-11). 그들 패역한 무리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유배를 가거나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2)  장로 유다는 그와 같은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판결을 무시하고 있는 자들이 초대교회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2-13). 그들 특징을 크게 6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면서 함부로 성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의 배만 불리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셋째, 뜬 구름 같은 허황한 이야기를 영적인 교훈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넷째, 복음에 뿌리 박지 못한 교훈을 자꾸만 퍼뜨리고 있습니다(이상은 유1:12절임). 다섯째, 성숙한 신앙인을 시기하고 자신의 수치를 숨기고자 폭력적인 과잉반응을 하는 자들입니다. 여섯째, 이 세상의 허무한 인기를 모아 스타로 군림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캄캄한 흑암으로 들어갈 자들입니다(이상은 유1:13절임).

다섯째로, “14. 아담의 7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1:14-16);

(1)  장로 유다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읽고 있는 예언서 가운데 에녹서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1:14). 창세기 제5장에 따르면 인류최초의 휴거자가 바로 에녹입니다(5:24). 의인 에녹에 관한 모세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의 6세손인)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365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5:21-24).

(2)  비록 정경으로 편입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교회에 있어서 에녹의 예언서는 유명한 것으로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로 올라간 에녹이 종말심판의 광경을 보고서 그것을 글로 적어 이 세상에 보낸 것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로 유다가 초대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무리들에 대하여 종말심판의 두려움을 알게 하고자 에녹서를 원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본문에서 장로 유다가 선지자 에녹이 하늘에서 본 땅의 심판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경건한 자는 구원을 받지만 경건하지 아니한 자는 성도라고 하더라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1:15). 그러므로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경외자로 일관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22:12). 둘째, ()경건한 자의 행태는 한마디로, 주님의 교훈과 모범을 거슬리는 행동을 자기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15).

(4)  장로 유다가 제16절에서 추가하고 있는 불경건한 자의 행태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습적으로 원망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자입니다. 둘째, 육체적인 정욕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본능 그대로 행동합니다. 셋째, 자기 자랑이 지나칩니다. 넷째, 세상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아첨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장로 유다가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3가지 교훈은 첫째가 성화에 힘써야 하며 육체적인 향락과 음란에 물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합리화하는 어설픈 영지주의 사상이나 영육 이원론적인 영성이론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가 천사숭배사상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상문화와 귀신문화에 물들어 주님으로부터 무당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셋째가 에녹서를 원용하여 장차 불경건한 자들에게 종말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유다서의 교훈을 생각하시면서 본문을 중심으로 장로 유다의 글을 자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영적인 성취와 믿음의 성숙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