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24강(사28:18-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0월 12일(월)
하나님께서는 무엇에 진노하시며 무엇을 심판하시는가?(사28:18-22)
이사야는 제28장에 들어와서 훗날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교의 교권을 장악하게 되는 종교적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잘못 인도하여 메시아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28:16-18). 그리고 특히 본문의 예언을 시작하고 있는 제18절에서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관념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제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타락한 종교를 신봉하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22절에서 이사야는 그와 같은 잘못을 훗날 유다의 백성들은 부디 범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당부 그대로 장래의 일을 정확히 알고 사전에 대비를 잘 하라는 것이 예언을 주고 있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한 구절씩 본문의 깊은 내용을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를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사28:18); 유대교를 믿고 있는 선민들이 도대체 ‘사망’ 및 ‘스올’(음부의 세계를 말함)과 맺고 있는 계약이 무엇일까요? 그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장로인 야고보의 다음과 같은 깨달음의 기록을 참고해야만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흔히 ‘낙타무릎’이라고 불리고 있는 야고보입니다. 그는 무릎에 군살이 박혀서 낙타무릎처럼 될 때까지 기도생활에 전념하게 된 인물입니다. 그 결과 히브리정경을 관통하고 있는 깨달음 하나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이 위의 기록에서 엿볼 수 있듯이 죄와 사망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세력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의 욕심이라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되고 있는 하와가 욕심에 이끌리어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된 것과 같습니다(창3:6, 15, 19, 22, 롬3:9-10, 8:2).
장로 야고보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본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바로 아래 동생입니다(마13:55, 약1:1). 그런데 형과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릅니다. 야고보는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적장자입니다. 형 예수는 아버지 요셉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혈통적으로 형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 아닙니다. 따라서 만약 다윗의 자손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다고 하면 그 메시아는 요셉의 의붓아들이며 자신의 반쪽 형인 예수가 아니라 당연히 혈통적인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야고보 자신이 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야고보이기에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면서 공생애를 살고 있는 형을 살아 생전에 전혀 믿지 아니하고 있습니다(요7:5).
그런데 엄청난 충격이 야고보에게 다가옵니다. 무덤 속에서 형 예수가 부활한 것입니다(고전15:7). 히브리정경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스스로 무덤에서 되살아난 선지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형 예수는 부활하여 승천까지 하고 있습니다(눅24:50-53).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혈통적인 사고방식을 버렸습니다. 사도 요한이 훗날 적고 있는 그대로 혈통과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능력을 드디어 믿게 된 것입니다(요1:12-13).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고 그 분의 말씀과 삶의 모범을 따라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을 얻는 방법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남은 평생을 기도생활에 힘쓰고 깨달은 복음의 말씀으로 초대교회를 이끌어간 것입니다(행15:13-22).
그와 같은 장로 야고보의 귀중한 깨달음이기에 그 말씀에 비추어서 본문 제18절 말씀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1)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사28:18a);
1)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욕심껏 인생을 살게 되면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약자를 짓밟게 됩니다. 그것이 죄악이라는 사실을 양심은 스스로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민 유대인들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2) 더구나 그 죄악이 커지게 되면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신(神)을 두고서 하나의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청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 얼마나 욕심껏 살았든지 간에 모든 것을 당사자인 자신의 죽음으로 끝내도록 해주는 그러한 신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는 마치 영지주의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3) 이 세상에서의 쾌락과 탐욕의 인생은 육신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전부 면제가 되고 만다는 지극히 편리한 종교적인 관념이 거기에서 파생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시적인 영지주의의 한 갈래인 니골라 당이 그러합니다(계2:6). 그런데 여기서는 불행하게도 영생의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는 선민 유대인들이 그와 같은 현세주의적인 관념을 지니고서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사야의 지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심으로 그 잘못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심판주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요5:22, 27-29).
(2)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사28:18b); 스올은 음부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자와 어떠한 계약을 맺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누구나 죽은 다음에도 벌을 받지 아니하고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살아 생전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방법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올을 지배하고 있는 신(神)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 제물과 여러 가지 재물을 받고서 무당들이 사후(死後, after death)의 복까지 빌어주고 있습니다. 일종의 공덕을 쌓는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흔히 말하고 있는 ‘황제복역’을 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와 같은 우상숭배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3)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사28:18c); 하나님께서 잘못된 우상숭배와 종교적인 관념에 빠져있는 자들을 어떻게 징치하실까요? 그들의 종교적인 본산지를 부수어버리시고 당사자들을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말 그대로 ‘발본색원’(拔本塞源)입니다. 그 일이 훗날 예루살렘에서 크게 발생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4)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사28:18d); 선민들이 내세우고 있는 편리한 종교적인 관념이 어떻게 종말을 고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믿고 있는 사망과 음부의 권력자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철저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1) 훗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따르게 되면 그 상세한 처벌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계20:11-15).
2) 요컨대, 사망과 음부의 실력자에게 잘 보인 것이 아무 소용이 되지를 못합니다. 죽은 자를 깨워서 다시 심판을 하고 음부 자체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말씀대로 신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로,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사28:19);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욕심대로 살며 현세적인 기복신앙에 입각하여 우상을 섬기고 적당하게 죽음 및 음부의 권세와 타협하여 사는 종교생활을 결코 좌시하지 않습니다. 이사야를 비롯하여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끊임없이 전하게 하십니다(마11:27, 행7:52-53). 그때마다 선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아예 선지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행7:52-53).
사실 히브리정경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게 되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그 내용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지도자들은 정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서 멀리하게 하고 자신들의 유대교 교리와 주의주장을 주석의 도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므낫세 시대에는 신앙양심에 벗어나는 극단적인 행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던 히스기야 왕 시대가 지나고 나면 그의 아들 므낫세 왕의 악한 통치가 오래 계속이 됩니다(왕하20:21, 21:1-6).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있는 율법서를 모두 없애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야 왕 때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는 역사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왕하22:8-11). 요시야 왕 때와 비슷한 역사가 먼 훗날 주후 16세기에 유럽에서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성경을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소위 ‘종교개혁운동’입니다.
셋째로,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사28:20);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와 짝하여 어두운 구석에서 제 욕심껏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사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대목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까지 다시 깨워서 심판대에 세우시는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음부가 죽은 자를 다시 토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마27:52-53, 계20:13).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음부의 권세를 깨부수고 무덤에서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는 어두움이라고 하는 것이 마치 짧은 침상이나 좁은 이불과 같아서 자신의 잘못을 완전범죄로 숨겨주거나 온전히 가려주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예언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창4:10-11, 사28:20).
넷째로,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사28:21); 일찍이 우상을 섬기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과 블레셋 족속을 하나님께서 징치하셨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가 이끌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전쟁 가운데 유명한 ‘기브온 골짜기 전투’가 있습니다(사28:21b). 그리고 전체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다윗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장소가 ‘브라심 산’입니다(사28:21a). 그와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이사야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사28:21cd).
역사적인 측면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1) 그 옛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서 요단 강을 건너 아이 성과 여리고를 정복합니다. 그러자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그 가운데 라마와 예루살렘 사이에 살고 있던 기브온 사람들이 책략을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화친을 하고 공존하게 됩니다(수9:3-16, 10:1-4). 그것을 보고서 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 등 5지역의 아모리 족속의 왕들이 기브온으로 쳐들어 옵니다(수10:5).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군대를 이끌고 와서 그들과 전쟁을 벌입니다(수10:7). 그 전쟁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크게 도와주십니다(수10:8). 큰 우박으로 적들을 죽이고 또한 기적을 베풀어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게 하여 대승을 거두게 한 것입니다(수10:11-13). 그것이 ‘기브온 골짜기의 전투’입니다(사28:21b).
(2) 다윗은 처음에 자신의 지파인 유다 지파의 왕이었습니다(삼하2:4).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왕이 됩니다(삼하5:3). 그리고 여부스 족속에게서 시온 산성을 빼앗고 예루살렘 도성을 건설하여 천도를 하게 됩니다(삼하5:5, 7, 9). 그러자 그 세력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전체 가나안 땅으로 뻗어나가게 됩니다(삼하5:10-12). 이에 불안을 느낀 거인 족속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를 타고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삼하5:17-18). 참고로, ‘르바임 골짜기’는 지중해 해안 길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수 있는 천혜의 골짜기 길입니다. 그 골짜기에 블레셋의 군대가 가득하므로 다윗이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합니다(삼하5:18-19). 그래서 두 차례의 대승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큰 승리가 ‘브라심 산’ 전투입니다(삼하5:20, 사28:21a). 두 번째는 그 위 ‘게바’에서부터 적의 후진을 몰아 부쳐서 해변 길과 만나고 있는 ‘게셀’까지 쫓아낸 것입니다(삼하5:25). 그 길은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에 이르게 되는 고속도로에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사28:22); 적을 소탕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철저하십니다. 일찍이 여호수아를 통하여 우상을 섬기고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모두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도와서 제 힘만 믿고서 함부로 쳐들어오고 있는 블레셋 족속을 바다 가까이까지 쫓아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그 역사가 다시 임할 것이라고 이미 제21절에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훗날의 역사 가운데 발생하게 되는 하나님의 징계는 어느 정도의 강도일까요? 이사야는 마치 그 옛날 노아의 홍수 때처럼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시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창6:5-8, 사28:22).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저버리고 있는 선민들만 처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현세주의 기복신앙에 물들어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오만한 유대인들은 물론 메시아의 복음을 외면하고 있는 모든 족속들을 모두 철저하게 사로잡아서 강력하게 처벌하실 것입니다(사28:22ab).
만약 그들이 욕심껏 제멋대로 인생을 살다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잘못을 청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죽음의 잠을 깨워서라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메시아를 통하여 선언하고 있습니다(요5:27-29). 그리고 평생 동안 음부의 세력 악한 영들과 결탁하여 죽은 다음에도 저승에서 영화를 누리겠다고 획책했다고 한다면 그 음부마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계20:14).
먼 훗날 사도 요한의 계시록에 담기게 되는 그 종말의 예언이 이미 본문 제28장 제22절과 이사야 제65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사28:22c),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하도록 세움을 받은 선지자입니다(사6:1-12). 하지만 그가 전하고 있는 예언은 그 길이와 폭과 깊이와 높이가 온 세상과 모든 역사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사28:18)는 예언과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사28:22)는 예언을 적고 있어 분명히 그러합니다.
따라서 이사야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그리고 종말심판이 임하는 그때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섬기면서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자들은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처벌의 내용은 죽은 다음에 다시 살려서 영원한 심판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메시아의 복음과 그 삶의 모습을 따라서 제자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사야가 예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관점에서 선지서 이사야의 내용을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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