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1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7. 9. 05:06

이사야 강해 제113(25:9-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01()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자와 모압의 밟힘에 참여하는 자(25:9-12)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모압을 벌하시리라고 하는 제목을 붙이고 있는 본문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의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인생을 살고 있는 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기쁘게 살아가라고 하는 격려의 말씀입니다(25:9). 둘째, 교만하게도 자기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자들은 모압처럼 역사적으로 밟힘을 당할 것이며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경고입니다(25:10-10-12). 그러므로 후자처럼 살지를 말고 전자처럼 살아가라고 하는 권면의 말씀을 그 예언 가운데 이사야가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안목을 가지고 이제부터 각 구절에 대하여 검토를 하면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25:9); 문장 가운데 세 가지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구원자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언제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지 그 시점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이제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인생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그의 구원을 기다릴 줄 아는 것입니다(25:9a). 사람이 인생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먼저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겸손한 깨달음 위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구원의 계획을 믿고서 그것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마디로, 인생 가운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2)  구원자의 이름을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5:9b). ‘여호와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3:14).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첫째,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입니다. 무엇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1:3). 당연히 피조물인 그 무엇보다도 먼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창조주의 선재성’(先在性, 1:30, pre-existence)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스스로 구원을 계획하고 또한 성취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피조물인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력구원’(自力救援, self-salvation)을 주장하는 것은 창조주의 구원계획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구원과 영생은 죽은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부활의 영광은 반드시 숨이 끊어진 다음에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사야의 예언이 강하게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25:9c). 쉽게 풀이를 해보자면, 창조주의 구원을 믿는 믿음이 강력해지면 그 확실한 소망이 이 세상에서 성도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부활은 죽은 다음에 찾아올지 몰라도 확실한 부활의 신앙은 성도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미 영적인 능력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4)  이사야의 예언과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부활신앙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부활신앙은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임을 힘있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현재적인 것이기에 육신을 이기는 영적인 삶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부활의 기쁨과 소망으로 성도들의 남은 인생 가운데 터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둘째로,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25:10); 모압은 동쪽에서 사해에 인접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깊은 사해골짜기로 평지의 시냇물이 많이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내 주변에는 물이 풍족하여 농사가 잘 되고 있습니다. 고대농업사회이므로 자연비료로서 퇴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퇴비를 만들어 밭에 뿌려주어야 식물이 잘 자라고 열매를 충실하게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촌에서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풀을 많이 베어 저장하면서 그 위에 인분 등의 거름을 부어서 썩도록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것이 푹 썩는 동안에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나 근대화 이전의 농촌사회에 있어서 거름 통이나 퇴비 만드는 저장소 또는 똥통에 사람이 빠졌다고 하면 그것이 큰 곤욕입니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며 사람이 온갖 병균에 전염이 되어서 마치 병원균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배경을 비유로 사용하여 이사야가 실감나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시온 산에 임하실 새로운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임재를 고대하고 있는 성도들과 달리 모압의 우상신앙을 좇는 자들은 크게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25:10a).

(2)  남은 인생을 모압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는 자들은 마치 거름 통에 빠진 퇴비와 같습니다(25:10b). 농부가 하는 일은 퇴비를 거름 통 속에서 푹푹 썩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3)  마찬가지로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15:1) 우상을 섬기며 제 힘으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을 밟아서 거름 통 속에 퇴비처럼 던져버리시는 것입니다(25:10c).

셋째로,그가 헤엄치는 자가 헤엄치려고 손을 폄같이 그 속에서 그의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실 것이라”(25:11); 본래 하나님의 섭리와 조치에 대하여 저항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불 신앙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구원을 바라보는 신앙인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지혜와 힘을 믿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한 자력구원을 이루고자 하는데 우상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망합니다. 그 이유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교만하고 세상살이에 능숙하다고 하더라도 제 뜻대로 구원을 쟁취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줄 수 있는 창조주께서 그들을 억누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5:11 의역).

넷째로,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15:12);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는 두 가지의 불이익을 당하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 생명의 부활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5:29).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보호하심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8:39). 그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비록 자신들의 힘으로 견고한 아성을 짓고 세상에 군림한다고 하더라도 그 권세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꺾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대목이 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땅에 내리시되”(15:12a)입니다.

(2)  흙으로 지어진 몸은 썩어서 다시 진토로 돌아가더라도 그 영혼만은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에게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그곳에서 생명의 부활을 누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권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25:12b).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인생 가운데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하고서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세상적인 지혜와 방법을 동원할 것인지 두 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고대 모압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풍요를 주는 신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는 신을 주로 섬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나라는 전쟁에서 패하여 망하고 오랜 세월 강대국의 속국으로 살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메시아를 고대하는 신앙을 전혀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사야는 본문에서 모압 사람들과 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고 동족들에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서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인생 가운데에서도 부활신앙으로 승리를 얻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내용처럼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