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12강(사25:4-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9월 30일(수)
강한 민족과 포학한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사25:4-5).
하나님의 능력은 두 가지 종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는 수세적인 능력입니다. 그것은 강한 민족과 포학한 나라의 공세를 피할 수 있는 요새와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능력입니다(사25:4). 둘째는 공세적인 능력입니다. 그것은 상대가 아무리 강하고 포학하다고 하더라도 적의 공격을 단숨에 꺾어버리시는 능력입니다(사25:5). 본문의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사25:4);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정복하고자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 군대의 위력을 폭풍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폭풍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집어삼키고자 달려오는 사탄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성도들은 비록 약자이지만 그 공세로부터 이김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힘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능력이 막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을 이사야는 요새, 피난처, 그늘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사25:4). 구체적으로, 강하고도 포학한 나라가 성을 공격할 때에 그 성을 강력하게 지켜주십니다(사25:4a). 그래서 약자와 가난한 자들이 이 땅에서 삶을 이어갈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도가 환난을 당할 때에도 지켜주십니다(사25:4b). 그와 같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보호하심으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성도들과 믿음의 나라가 적의 공세 가운데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사25:4cd).
둘째로,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사25:5); 하나님의 능력이 위와 같은 수세적인 능력으로만 발휘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격이 가장 좋은 수비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강한 민족과 포학한 나라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아니하고 계속 약한 자와 성도를 공격할 때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십니다. 그것이 엄청난 공격입니다. 그리스도가 광풍과 노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던 바로 그 능력이 발휘가 되시는 것입니다(막4:39). 본문 제5절이 그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강한 민족과 포학한 나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이유(사25:3, 7-8).
본문 제3절에서 이사야는 강한 민족과 포학한 나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7절과 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25:7-8).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온 세상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리개가 있습니다. 둘째, 모든 국가를 뒤덮고 있는 덮개가 있습니다. 전자는 자기 민족이 최고라고 하는 자기도취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민족우월주의입니다. 후자는 자신들의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은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를 해야만 한다는 사상입니다.
(2) 좀더 설명을 해봅니다; 전자는 민족우월주의라는 가리개입니다. 일단 자신의 민족이 최고라고 하는 사상을 지니게 되면 타 민족을 깔보고 차별하게 됩니다. 선민이라고 하여 예외가 아닙니다. 선민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들만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출3:13, 15). 그래서 선민을 괴롭히고 있는 애굽과 같은 제국을 하나님의 섭리로 모두 멸망시켜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원을 성취해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는 다윗의 후계자가 바로 ‘메시아’라고 그들이 믿고 있습니다.
(3) 후자는 국가주의라고 하는 덮개입니다. 국가라고 하는 가치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국가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정치도 종교도 모두 하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국론의 분열을 일으키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도 단죄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이 유대교의 교리와 충돌을 일으키자 국론분열을 막기 위하여 그를 제거해야만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나사렛 예수가)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도다 하였으니”(요11:47-50).
(4) 메시아로 유대인사회에 오신 나사렛 예수가 유대교의 선민우월사상을 반대하고 로마 제국과 같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마5:43-48, 22:17-22).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선민들의 가리개이며 국론통일이라는 덮개입니다. 그들의 가리개와 덮개가 벗겨지는 대 사건이 역사 가운데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기 때문입니다(사25:8, 마27:53-55, 행2:32).
(5)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민족우월주의와 국가제일주의사상에 대하여 일대 철퇴를 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선민우월주의를 버리고 만민구원사상을 받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하나님처럼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주의와 집단이기주의라는 이념으로 바벨탑을 쌓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붕괴시켜버리신다고 하는 역사적인 섭리가(창11:4-9) 현실적으로 창조주의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터져 나온 것입니다.
(6) 그러므로 모든 민족은 민족우월주의사상을 버리고 이웃민족을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만 합니다(막12:31). 모든 나라는 국가지상주의를 버리고 창조주의 뜻을 받드는 집단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막12:30). 집단을 위하여 개인을 희생시키지 말고 백성들이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주어야만 합니다(사25:8). 창조주의 살아계심과 부활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분명하게 알게 되자 모든 민족과 나라가 자신들의 강함과 포학함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창조주의 영광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사25:3).
시온 산에서 천국의 잔치가 벌어지는 이유(사25:6-8)
시온 산에서 천국의 잔치가 벌어지는 이유는 그곳에 예루살렘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터를 다시 보수하시고 있습니다(사58:12).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심을 재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미 선민우월사상을 주장하던 유대교가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으로 말미암아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고 이 땅 위에 하늘에서부터 새로운 예루살렘이 시온 산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사65:17-25, 계21:1-8). 그 사실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5:6).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천국잔치에 사용이 되고 있는 포도주는 만민을 위한 포도주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만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흘리시는 예수님의 보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요6:53, 고전11:25-26). 둘째, 예수님이라는 포도나무에 가지로 붙어있는 제자들이 만들어내는 그 포도열매로 제조한 포도주를 말하고 있습니다(요15:1-5). 그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가 맡기신 복음사역을 열심히 하여 예수님의 제자를 많이 길러내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마28:18-20).
(2) 그 포도주를 사용하여 천국잔치를 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막14:24-25).
(3) 본문에서 ‘만민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사25:6)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지자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해골골짜기’로 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내게 이르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37:11-14).
(4) 마른 뼈들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서 천국의 잔치에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을 준비하시고 있습니다(사25:6). 이제 마른 뼈와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골수를 먹고 튼튼한 하나님의 용사들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 골수가 바로 의미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겠습니다(요6:47-59).
(5) 주전 21세기의 사람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부부, 그의 아들 이삭의 부부, 그리고 야곱과 레아가 헤브론 막벨라 굴에서 주님이 오시기를 2천년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창49:29-33). 구약상의 많은 선지자들과 믿음의 용사들도 그러합니다(히11:13-16, 26). 부활의 주님이 오셔야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천국잔치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요5:24-29). 그들의 믿음에 화답하듯이 훗날 예수님이 스스로 그 능력의 소유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요11:25-26). 구체적으로, 그 능력을 일부나마 선보여주신 장소가 바로 베다니 나사로의 집입니다. 그곳에서 죽은 지 4일이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요11:43-44).
(6) 그와 같은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상의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더 나은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줄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그들이 무덤 속에서 오랜 세월 기다리고 있습니다”(히11:13-16).
(7) 그들을 부활시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와 같은 부활의 믿음과 천국잔치의 기쁨이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있게 될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25:8). 이 땅에서 당하는 수치와 환난의 눈물이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망을 물리치고 부활의 영광을 성도들에게 선물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결론을 도출해보자면 한 마디로, 이사야의 예언이 진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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