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00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30. 20:31

이사야 강해 제100(22:15-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919()

 

셉나와 같이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종에 대한 처벌의 예언(22:15-19)

 

아모스의 아들인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으며(1:1, 6:1-8) 또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서 동족인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6:9-13). 그런데 그는 특히 환상의 골짜기에서 보고 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제22장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후반부인 제15절부터 제25절까지의 말씀은 참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셉나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라고 하는 두 사람의 실명(實名, 실제 이름)을 사용하여 교만한 종과 신실한 종의 차이에 관하여 설명을 하면서 그들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기본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1) 두 사람의 이름이 선지자 이사야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2) 그들은 성경상 유다 왕국 어느 시대의 인물일까요? (3) 그들의 당시의 신분과 환상골짜기에서 예언하고 있는 신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위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답을 얻기 위하여 먼저 묵상을 한 다음에 오늘의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셉나그리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라는 두 사람의 이름이 선지자 이사야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을 함께 거론하고 있는 것은 그 지위와 신분의 상속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좋은 가문 훌륭한 가문의 사람이라는 의미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셉나라고 하는 당사자의 이름만 제시가 되고 있는 경우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경우가 차이가 나고 있으며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비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  셉나는 유다 왕국의 백성 누구나 알고 있는 훌륭한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엘리아김은 백성들에게 유명한 힐기야의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2)  셉나는 입신양명한 신하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으로 끝까지 위로 치솟아 오르려고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는 신하입니다. 그러나 엘리아김은 다릅니다. 아버지 힐기야와 그가 물려받은 가문에 대하여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처신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신분과 지위에 어울리는 합당한 행위만을 충실하게 하고자 애쓰고 있는 자가 바로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라고 하겠습니다.

(3)  따라서 선지자 이사야를 비롯하여 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겸손하고 신실한 신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셉나는 권력욕이 강하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두려운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둘째로, 셉나와 힐기야의 아들인 엘리아김은 성경상 유다 왕국 어느 시대의 인물들일까요? 역사서인 열왕기하와 대선지서인 이사야에 그들의 이름이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왕하18:17-18).

히스기야 왕 시대 왕궁의 책임자가 힐기야의 아들인 엘리야김입니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고 있는 서기관이 셉나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열왕기하 제18장과 제19장에 세 번이나 더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왕하18:26, 37, 19:2). 그리고 똑 같은 문장이 대선지서 이사야에 또 네 차례나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36:3, 11, 22, 37:2). 그렇게 도합 8차례나 기재가 되고 있으므로 그것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성경의 기록상 변함이 없는 진리하고 하는 의미입니다. ,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 주장이며 셉나가 보좌역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입니다. 그 신분과 지위에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선지자 이사야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히스기야 왕의 심부름으로 자신을 찾아온 두 사람을 이미 만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왕하19:2, 37:2). 그렇게 익숙한 두 사람의 실제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의미를 담아서 이제부터 환상 가운데 이사야에게 예언의 말씀을 계시하시고 있습니다. 항목을 달리하여 그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셋째로, 셉나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의 당시의 신분과 환상골짜기에서 예언하고 있는 신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히스기야 왕 당시의 신분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이 왕궁의 책임자이며 셉나는 서기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환상골짜기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셉나가 왕궁의 책임을 맡고 있는 궁내대신일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국고의 출입까지 모두 관장하고 있는 재무대신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2:15).

셉나는 한 손에 왕의 신변 및 나라의 살림을 모두 쥐고 있는, 소위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신하입니다.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함부로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한 마디로, 셉나는 상관이었던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진작에 밟고 올라섰으며 이제는 왕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신(權臣, 권세가 대단한 신하)이 된 것입니다.

넷째로, 셉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말씀 곧 “(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22:15-16)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차근차근하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셉나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무대신과 궁내대신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 두 관직은 본래 서로 견제함으로써 왕의 권력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두 자리를 셉나가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국 내에서 셉나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훗날 그리스도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 공생애를 지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열둘 가운데 한 제자가 배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재정을 책임지고 관리하던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스승을 팔아버리고 자신의 출세를 도모하고 있습니다(26:14-16, 12:6). 똑 같은 일이 유다 왕국에서 발생할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3)  셉나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권한을 남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국가 재정을 엄청 사용하여 묘실을 파고 있습니다. 바위굴을 파서 화려하게 묘실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왕의 묘실이 아닙니다(22:16a). 자신을 위한 묘실입니다(22:16b). 더구나 그 묘실은 왕의 묘실만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22:16c).

(4)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묘실은 비단 무덤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처소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용어입니다(22:16d).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세상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겠다고 셉나가 대저택을 짓는 것이 마치 자신의 무덤을 크게 짓는 것처럼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일을 셉나가 신분을 망각하고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셉나의 잘못이 왜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종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주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연장선상에 하나님에 대한 패역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자신의 보좌를 창조주의 자리까지 높이고자 하는 교만함입니다. 천사나 피조물의 그와 같은 패역함에 대해서는 용서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미 제14장에서 그것이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한 바가 있습니다.

다섯째로, 엄청난 잘못을 범한 셉나를 처벌하는 내용이 세 가지로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같이 세게 던지되”(22:17)라고 먼저 조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있는 세력이 셉나 뿐만이 아닙니다. 일찍이 천사장 루시엘이 그러했습니다. 그가 천상에서 쫓겨나서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탄의 효시가 되고 있습니다(14:12-15, 12:7-8).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하여 천하를 꾀고 있는 자 마귀가 되고 있습니다(12:9).

마귀에게 동조하고 있는 적 그리스도의 세력과 거짓선지자들도 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장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바벨론과 같은 세상의 제국과 세상임금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께 대항하고 있으므로 그 힘이 상당합니다(2:2, 6:12, 13:7). 따라서 그들을 다룰 때에는 꼼짝할 수 없도록 단단하게 결박을 해야만 합니다. 어설프게 다루었다가는 오히려 반격을 당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벧전5:8-9).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리고 영적인 전쟁을 할 때에도 단호하고 확실해야만 합니다. 단단하게 악한 세력을 결박해야만 할 것입니다(6:10-20).

여섯째로, 그 다음 조치 곧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22:18)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상이 공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22:18b). 원심력과 구심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으므로 우주도 지구도 모두 공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물질의 기본인 원자도 일정한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들로 인하여 공 모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핵 자체도 둥근 모양으로 중성자와 양성자가 단단히 결합이 되어 있습니다.

그 공 모양이 깨어져서 태초의 무질서 곧 혼돈의 세계로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창조주 하나님의 힘이 그 바깥에 마치 물의 막처럼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1:2). 그리고 하나님의 억지력을 전달하고 있는 그 물이 궁창을 감싸고 있습니다(1:6-7, 22:8a). 그 안에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는 악한 영들이 갇혀 있습니다(2:2, 6:12). 그들 악한 영들에 대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문과 같이 선고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22:18c). 그 가운데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셉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주인이신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일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일곱째로, 마지막 조치 곧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22:19)가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셉나와 같이 신하가 왕의 영광을 탐하게 되면 그 관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셉나의 지위를 낮추시겠다는 정도의 경미한 처벌을 동시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인 셉나와 악한 영인 사탄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에 대해서는 용서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탄과 같은 악한 영은 단단히 결박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억제하고 있는 영원한 불꽃 속으로 던져버릴 것입니다(19:20, 20:10, 14, 21:8). 그것은 영원한 처벌을 말하고 있는 영벌입니다. 그런데 셉나에 대해서는 약간 다르게 말하고 계십니다. 교만한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약 잘못을 크게 회개하고 다시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죄 사함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하도록 대속자이며 구원자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바라보고 있는 환상의 골짜기 역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사야와 유다의 백성들에게 익숙한 히스기야 왕의 두 신하의 이름을 사용하여 교훈을 주시며 미래에 대한 예언을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셉나와 힐기야의 아들인 엘리아김입니다. 국난의 시대 히스기야 왕 때 적장 랍사게를 상대하여 교섭을 벌인 신하들이 그들입니다. 엘리아김이 궁내대신이며 셉나는 그를 보좌하고 있는 서기관입니다.

그런데 환상골짜기에서는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셉나가 궁내대신과 재무대신의 직을 겸하여 그 권세가 왕에 못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영광을 왕의 영광만큼 높이고 있는 권신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셉나와 같이 자신의 종된 신분을 망각하고 주인의 영광과 권리를 침해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처벌을 받게 된다고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위로의 말씀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를 교만한 자리에서 내려오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훗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크게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아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구원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인류역사의 지평선과 전환점을 미리 내다보면서 이사야는 제66장에 이르도록 예언의 말씀을 소망가운데 계속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