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OBS교재(손진길 작성)

욥기 제12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6. 29. 03:35

욥기 제 12(7:1-21)(손진길 작성)

|OBS12-12|

 

Q1. 친구 엘리바스의 충고에(4장과 제5) 대하여 동의할 수 없었던 욥은 그 이유를 제6장에서 상세하게 밝힌 후 드디어 하나님께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6:24)는 심정으로 직접 호소하기에 이르고 있는데 이 내용을 담고 있는 제7장 가운데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직소(直訴)임을 알 수 있는 첫 귀절은 무엇이며 욥이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내용은 무엇이고 또한 그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Ø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상소 첫 마디가 내 생명이 한 호흡간임을 생각하옵소서(7:7)로 되어있는 사실이 흥미로운 것임. 왜냐 하면, 영생하시는 하나님(21:33, 1:8) 앞에 서면 피조물은 그 삶의 시간적 길이가 하루살이 보다도 짧으며(4:19, 2:22, 90:4) 그 삶의 가치인 무게 또한 하나님의 평가에 달려있어(1:31, 6:3-8, 벧후3:8, 22:12-16)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붙잡고 나아가야할 존재임을 알게해주고 있기 때문임.

Ø  욥이 궁극적으로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게 해달라는 차원에서(6:24) 진일보하여 왜 자신에게 하나님이 마음을 두시고 이와 같은 시험을 하고 계시는가?(7:17-18)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슴.

Ø  쉽게 풀이해보면, 왜 창조주 하나님이 하루살이 같은 인간에게 마음을 두고 계시는가? 그 궁극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것임. 욥이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진실은 복음서에서 웅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임(3:16).

Ø  또한 궁극적으로 욥이 얻고자 한 것은 그만 시험(test)을 끝내시고 빨리 죽게 해달라는 것이(7:19-20) 아니고 죽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용서해주고 죄사함의 은혜를 달라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슴(7:21). 결국 욥의 궁극적 관심사는 세속적 구원과 편한 죽음이 아니라 영적 구원과 시험에서의 승리인 것으로 볼 수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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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시험의 진정한 의미, 영적 구원과 죄사함의 은혜를 궁극적으로 희구하고 있는 욥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 친구 엘리바스는 오로지 욥의 세속적, 육체적 참상만 바라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임. 엘리바스는 보이는 참상을 초래하고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이유를 발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지도 아니했으며 하나님께 친구를 구원할 수 있는 진리를 얻어 오지도 아니했슴. 그는 다만 인간적 귀책 사유를 강조하면서 욥에게 무조건 잘못을 고하고 빌어서 하나님을 만족시키며 용서함을 얻으라고 충고했을 따름임. 이와 같은 엘리바스의 충고는 무엇과 같다고 볼 수 있는가?

 

Ø  욥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라는 두 가지 종류인데 친구인 엘리바스는 오직 육체적 고통에 중점을 두고서 모든 일을 진단하고 또한 제 멋대로 처방을 내리고 있어 욥이 보기에는 성실하지 아니한 태도이며(6:15) 욥이 바라던 대답이 전혀없어 낙심스러우며(6:9-10) 엘리바스 역시 허망한 사람일 뿐이라고(6:21) 욥이 증언하고 있슴.

Ø  여기서 욥의 정신적 고통의 핵심은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 17:1, 6:14)을 계속 경외하고 싶어도 이 고난과 고통의 의미를 알지 못하여 경외하는 일을 그만 두기에 이른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있는 것임(6:4, 10, 14).

Ø  이와 같은 욥의 정신적 고통의 핵심 조차 깨닫지 못하고 이를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있는 친구 엘리바스의 신관은 성실하지 아니하며 허망한 것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성실하지 아니하다는 말(6:15)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나타나고 있슴.

Ø  성실 또는 신실은 하나님의 특성을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 헤세드인데 이것이 없는 인간은 도도하게 흐르는 하나님 지식의 강물을 만나지 못하여(11:9, 66:12) 마치 흐르다가 마르고 말랐다가 다시 흐르는 개울(19:5-8, 41:17)과 같다는 것임(6:15,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성실하지 못하다는 것은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 이른 바 세상적 교훈과 인간적 지혜만을 내세우고 있다라는 뜻으로 풀이가 될 수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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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욥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인생의 종말은 어떠한 것인가?

 

Ø  아무런 소망도 없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을(7:6) 가장 두려워하고 있슴.

Ø  소망이 끊어진 자의 넋두리(6:26), 그 피곤한 인생의 현주소를(8:22)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는 것임. 땅위에서 산다는 것은 고된 종살이이다(7:1) 일과가 끝나고 안식 얻기를 원하는 종이나 품꾼과도 같다(7:2) 빨리 종말이 다가와 나의 병고가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잠이 들고 또 새 날을 맞는다(7:3-5) 그렇지만 내 마음, 내 진실된 소원을 들어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는 사실이 날자가 빨리 지나갈수록 자꾸만 두렵고 초초해지는구나(7:6-11) 등으로 표현되어지고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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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그래서 하나님께 직접 상소하는 욥의 상소 내용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Ø  허망(6:21, 허무한 종말, 7:6)을 두려워하여(7:8-10) 하나님을 원망하다가(7:11-16) 갑자기 시험 가운데 숨어 있는 하나님의 관심사와 기이한 목적을 발견하면서(7:17-20) 마침내 화해의 경지를 모색하기에 이르고 있는 것임(7:21).

Ø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제3단계인데 거기에는 갑자기 인식의 전환 또는 대약진(a jump in the way of thinking)이 존재함.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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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1단계(두려움), 2단계(원망), 3단계(인식의 전환), 4단계(화해모색)를 각각 엿볼 수 있는 빛나는 표현들은 어떠한가?

 

Ø  아무런 소망도 없이 종말을 맞는구나(7:6), 나의 눈이 다시는 복된 것(하나님)을 보지 못하는구나(7:7)가 제1단계임.

Ø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같이 음부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니(7:9), 내 마음의 아픔,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하나님께 원망합니다(7:11), 대적자 사단도 아닌데 왜 나를 가두시고 고문하시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외치게 만드십니까?(7:12-16) 이상이 제2단계인 원망임.

Ø  3단계 인식의 전환은 사람을 살피시고(7:20) 시험하시는 주님(7:18), 사람에게 마음을 두시고 이기는 자(성숙한 신앙인)를 찾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7:17, 4:23, 21:7) 등임.

Ø  4단계는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내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내 죄악을 용서해주지 않으십니까? 이제 내가 숨져 흙속에 누우면, 주님께서 아무리 저를 찾으신다 해도, 나는 이미 없는 몸이 아닙니까?(7:21, 표준새번역)라고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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