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8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20. 15:15

이사야 강해 제82(16: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91()

 

환난을 당하고 있는 모압과 같은 세상에 임하는 메시아의 나라와 성도들의 역할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16:1-5).

 

본문은 앞 절에 이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앞 절 곧 제15장 제9절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모압이 끝까지 우상을 섬긴 죄악은 참혹한 전쟁뿐만 아니라 자연재해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5:9a). 둘째, 그러나 그 땅에서 하나님께 도피한 자와 하나님신앙을 버리지 아니하고 남은 자들에게는 장차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게 될 것입니다(15:9b). 본문에서 그 앞 절의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한 구절씩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16:1); 셀라는 모압 남부에 있는 지명으로 보입니다(42:11, 왕하14:7). 그 말의 뜻은 바위로 된 절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돔에 가까운 곳이며(왕하14 :7) 그곳에 산 꼭대기가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어(42:11) 혹자는 페트라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들에게 어린 양들을 시온 산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16:1). 그러므로 셀라는 모압의 남부에 있는 이름 난 목축의 중심지라고 그 뜻을 새겨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을 드리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이 땅의 통치자가 이방인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린 양으로 드리는 희생제사를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떠나서 오랜 세월 우상을 섬기고 있는 모압의 백성들이 이제는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이 땅의 통치자가 누구일까요? 앞 절 제15장 제9절 말씀과 관련하여 묵상을 해보면 그 통치자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16:2); 아르논 시내는 모압에 있는 작은 강으로서 사해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르논 나루에는 물이 있으므로 물새들이 많이 서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특별히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새의 새끼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모의 집을 떠나서 불쌍하게 헤매고 있는 백성이 모압이라는 지적입니다. 그 부모는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탕자와 같이 우상의 문화 속에서 헤매고 있는 불쌍한 모압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침내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16:3); 여호와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이 땅의 통치자로 보내셔서 모압과 같은 이방인들에게 죄 사함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처신을 해야만 할까요? 그 점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1)  너는 방도를 베풀며”(16:3a); 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파해주어야만 합니다.

(2)  공의로 판결하며”(16:3b); 집단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는 정의를 가지고 판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마음으로 피조물들의 생명을 모두 살리고 돌볼 수 있는 공의의 정신으로 판단을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모두가 죄인이므로 차별하지 아니하고 성도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3:9).

(3)  대낮에 밤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16:3c); 성도들과 교회는 하나님을 찾아오는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쫓기고 있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회복하며 거듭난 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넷째로,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16:4); 이제는 이방인 모압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올지라도 그 복음을 현지화하는 것은 모압과 같은 이방인 자신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모압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구원의 피난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복음이 모압 땅에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땅에서 압제와 착취가 사라질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7:12, 25:40-46).

다섯째로,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16:5);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머리로 굳건히 설 것입니다(28:18, 1:21-23). 그리스도는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세상적인 정의가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으로 보완이 되고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나라이며 종말로 하나님 아버지께 바쳐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고전15:24).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전란과 재앙은 언제 끝나게 될까요? 이사야는 모압의 경우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통치자로 오시는 그때입니다. 그때가 되면 모압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자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나아가서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아니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공의로운 세상이 되면 자연히 압제와 착취가 사라질 것이라고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과 교회가 그 일에 앞장을 서야만 할 것입니다. 당장은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그들을 맞아들이고 보호하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당장 교회의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