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7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19. 09:28

이사야 강해 제79(14:24-27, 3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829()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한 멸망예언(14:3-23) 다음에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14:25)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는 것임. 그렇게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올라가서 궁극적으로 이사야가 찾아내고 있는 역사적 섭리의 대원칙, 그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가? (14:24-27, 32)

 

이사야 제14장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선민의 회복과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14:1-2). 둘째, 반면에 선민의 나라를 멸하게 되는 바벨론 제국이 패망을 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4:3-11). 셋째, 그 바벨론은 사탄의 조종을 받는 나라이며(14:12-20) 그 뒤를 잇는 제국들이 모두 패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14:21-23). 넷째, 그 다음에 북조 이스라엘을 멸하게 되는 앗수르 제국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14:25). 다섯째, 또 그 다음에 오랜 세월 선민을 괴롭혀오던 블레셋 족속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14:28-31). 여섯째, 바벨론 다음에 앗수르의 패망을 기술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 흐름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끝에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대원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14:24-27, 32).

그 가운데 본문은 넷째와 여섯째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의 질문을 먼저 제시하고 그 해답을 얻고자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두 가지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한 멸망예언(14:3-23) 다음에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14:25)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2) 그렇게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궁극적으로 이사야가 찾아내고 있는 역사적 섭리의 대원칙, 그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14:24-27, 32)

첫째로,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한 멸망예언(14:3-23) 다음에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14:25) 시간을 거슬러올라가고 있는 순서가 맞습니다. 역사적인 사실(fact)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1)  먼저 앗수르 제국이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아니하여 앗수르 제국은 신바벨론과 메대의 연합공격으로 주전 612년에 수도 니느웨 지역을 함락당하게 됩니다.

(2)  그 다음에 신바벨론 제국이 중동의 패권을 장악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전 586년에는 지상에 남은 마지막 제사장나라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멸망시킵니다.

(3)  그러나 주전 539년에 바사와 메대의 연합공격에 수도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바벨론 군대를 완전히 궤멸시킨 고레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4)  위와 같은 역사의 진행에 비추어보게 되면 이사야가 바벨론 패망 다음에 앗수르의 패망을 예언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역사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순서의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5)  그러한 사실을 이사야는 미리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신바벨론의 멸망을 다음과 같이 먼저 예언하고 있습니다;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14:4-5). 그 다음에 앗수르 제국의 멸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14:25).

(6)  그 의도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입니다(11:36). 환언하면, 왜 인간의 역사가 그러한 모습으로 경영이 되고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원칙으로 세상을 경영하시며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지 그것을 천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7)  참고로, 그와 같은 비슷한 경우를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족보에서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30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안나요, 그 위는 (또 다른) 요셉이요”(3:23-24),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3:38).

둘째로, 그렇게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궁극적으로 이사야가 찾아내고 있는 역사적 섭리의 대원칙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14:24-27),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14:32). 한 구절씩 분설을 해보고자 합니다;

(1)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14:24); 하나님께서 맹세를 하시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의사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을 역사적으로 실현하시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므로 그 어떠한 세력도 그것을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2)  그와 같은 경우를 출애굽기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아라비아의 약탈자 아말렉 족속이 기습했습니다. 그들의 물품을 취하고 장정을 노예로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전쟁에 적극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아말렉 족속을 역사 가운데 반드시 멸망시키고 말겠다고 맹세하십니다(17:16).

(3)  그 말씀 그대로 역사가 다음과 같이 진행이 됩니다;

1)    먼저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 족속을 정벌합니다(삼상15:1-9).

2)    다음에는 다윗 왕이 시글락을 약탈한 아말렉 잔당을 토벌합니다(삼상30:16-20).

3)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에 아말렉의 후손으로 추정이 되는 하만 재상의 일파를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일망타진을 하고 맙니다(3:1, 9:10-14).

(4)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14:25);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내용이 또 하나 사무엘의 기록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5)  앗수르 제국의 황제 산헤립이 여호와 하나님을 얼마나 멸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랍사게 장군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안에 갇혀있는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에게 최후통첩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앗수르의 군마에 짓밟히는 토착신의 하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왕하18:22-25, 19:12). 그 사실을 히스기야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고발하면서 구원을 호소하자 하나님의 맹세가 빛을 발하고 맙니다; “천사를 보내어 하룻밤에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병정 185천명을 죽여버리고 만 것입니다”(왕하19:35).

(6)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던 산헤립의 군대가 전멸을 당하게 되는 것을 이사야는 나의 땅(유다)에서 파하며 나의 산(시온인 예루살렘)에서 그것을(앗수르의 군대를) 짓밟으리니”(14:25a)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가 물러감으로써 산헤립에게 점령을 당해 있던 유다와 블레셋의 땅들과 백성들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앗수르의 지배가) 그들의(유다와 블레셋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14:25b).

(7)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14:26); 하나님의 맹세는 비단 아말렉 족속이나 앗수르 제국에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이나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인류와 국가들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예레미야 선지자가 더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9).

(8)  열방을 향하여 펴고 있는 구원의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민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신앙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이방인 블레셋)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14:32).

(9)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구원의 깃발로 세우시면 그 깃발 아래 선민 이방인 가리지 아니하고 모두가 피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까지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불러주시겠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이사야는 벌써 제11장에서부터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편 팔과 메시아의 깃발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1:10-16).

(10)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14:27);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섭리에 대하여 이를 거역할 수 있는 존재는 피조세계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명쾌하게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9:20-21).

결론적으로, 14장에 기록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의 순서는 묘합니다. 주전 612년에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14:25)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 제국이 패망한 것이(14:4) 역사적인 흐름인데 그것을 거꾸로 열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역사를 거슬러올라가서 세상을 경영하며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창조주의 뜻과 말씀을 멸시한 채 폭력과 군사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제국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고 반면에 하나님신앙을 끝까지 파수하고 있는 남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팔을 벌리시고 있는 것을 똑똑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역사와 족보를 거슬러올라가서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 지혜를 의사 누가 역시 보여주고 있습니다(3:38). 그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아무쪼록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발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