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조선(작성자; 손진길)

소설 대조선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6. 16. 22:02

소설 대조선9(작성자; 손진길)

 

장후재에게 있어서 그가 35세가 되는 2035년은 잊을 수가 없는 해이다. 왜냐하면, 그가 6개월 이상 절친인 박상규의 여동생 박혜리와 데이트를 하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프로포즈에 성공하고 결혼한 해이기 때문이다.

외양적인 것보다는 내실을 추구하는 것이 장후재의 성격이다. 따라서 결혼전에 그가 박혜리에게 말한다; “결혼식을 거창하게 할 것이 아니라 간소하게 하고 함께 북쪽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혜리는 생각이 어때요?... “.

그 말을 듣자 박혜리가 적극 찬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좋아요, 아주 좋은 생각이예요. 친지들에게 큰 부담을 줄 필요가 없지요그 대신에 나는 우리 함께 북한 땅에 살고 있는 나의 친척들을 한번 방문하고 싶어요… “.

그 말을 듣자 장후재가 깜짝 놀라서 물어본다; “혜리 너의 친척이 북한땅에 살고 있다는 말이냐? 아직까지 내가 너의 오빠인 상규에게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 그 말을 들은 혜리가 생긋 웃기부터 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빠가 그런 가정사까지 당신에게 말하지는 아니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북한땅에 부친이 남겨두고 온 언니가 살고 있어요. 그 불행한 이별사건은 그 옛날 195012월에 원산항에게 발생했지요… “.

장후재는 역시 기자이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하여 상세하게 물어본다; “흔히 흥남부두에서 미군의 배로 많은 북한의 피난민들이 남한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원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이지요?... “.

그 말을 듣자 박혜리가 자신이 아는 대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원산항에서는1950129일에 피난민을 7천명이나 태운 미군의 큰 배가 남한으로 출발했고 흥남부두에서는 그해 1224일까지 190척이 넘는 배가 동원되어 10만명이나 되는 북한의 피난민을 남한으로 실어 날랐다고 했어요. 그런데… “.

박혜리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제 전개된다; “원산에 살고 계시던 외조부님은 가족을 데리고 원산항으로 달려가면서 3살짜리 큰 딸은 처제가 데리고 오도록 조치를 했대요. 그런데 그만 도착이 늦어지자 유엔군이 설치한 철조망이 가로막혀서 그 배를 타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불행하게도 큰 딸이 이모의 손을 잡고 원산에 남게 된 거예요… “.

그 말을 듣자 장후재가 급히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 박혜리가 침착하게 설명한다; “큰 딸은 이모의 손에서 자라났어요. 이모는 처녀이며 학교 선생이었는데 그만 언니의 딸을 키우게 되어 늦게 시집을 갔어요. 그러니 상당기간 이모와 질녀 사이가 아니라 마치 모녀사이처럼 함께 의지하면서 살아간 것이지요... “.

그 말을 하면서 박혜리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한 사연은 세월이 흘러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상세하게 알게 되었지요. 그렇게 장성한 큰 딸의 가족을 만나보고나서 저의 어머니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리고… “.

장후재가 귀를 기울여서 듣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박혜리가 계속 설명한다; “원산에서 배를 탔을 때에 큰 외삼촌이 1살이었고 나중에 부산에서 작은 외삼촌이 태어나고 그 다음에 서울에서 뒤늦게 저의 어머니가 태어났어요. 그러니 저의 어머니가 막내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장후재가 관심이 있어서 묻는다; “그러면 북한에 살고 있는 큰 이모에게는 자녀들이 있나요?”. 박혜리의 대답이 다음과 같다; “연세가 많으신 큰 이모님은 돌아가셨고 그 자녀들이 두분 살아 계시지요. 제게는 이종사촌 오빠와 언니가 되는데 금년에 연세가 67세와 64세이예요. 그들이 여전히 원산에 살고 있어요… “.

박혜리의 긴 설명이 끝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장후재가 깊은 생각에 빠진다. 4년전에 기적과 같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서 이제는 박혜리의 가족이 원산에 살고 있는 친척을 방문할 수가 있다. 특히 박혜리의 모친인 강옥경 여사는 친 언니의 아들과 딸을 만날 수가 있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전세계에서 동족 간에 전쟁을 경험한 마지막 분단국가라고 알려진 한국과 북한이 민족통일을 이룬 것이 참으로 이산가족들에게는 하늘이 준 축복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장후재가 이번에 신혼여행을 북한의 원산으로 가보고자 생각한다. 그러면 박혜리도 친척 방문을 하기가 용이하지 않겠는가!...

203545일 식목일에 장후재박혜리가 서울에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그렇지만 현직 국회의장의 차남이 결혼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또한 연방의원의 아우의 결혼식이라고 해서 그런지  하객들의 수가 적지 않다.

결혼식장에서 장선재가 동생인 장후재에게 말한다; “나도 5년 전 35살에 결혼했는데 후재 너도 35살이 되니까 결혼하는구나. 우리 형제는 어떻게 35살에 결혼들을 하고 있지? 그것 참 신기한 일이다… “.

그 말을 듣더니 그 옆에 서 있던 형수 하선영이 말한다; “여보, 당신은 35살에 운 좋게도 7살이나 어린 신부인 28살의 나하고 결혼한 거예요. 도련님을 보세요. 35살에 30살 처녀와 결혼하고 있다고요. 그러니 당신이 2살이나 더 어린 나하고 결혼한 거예요. 그러니 고맙게 생각하셔야 해요!... “.

그거 듣고 보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장선재는 물론 장후재까지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던 박상규가 얼른 다가와서 인사한다; “아이구, 형수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선재 형님도 안녕하세요? 이제는 제수씨와 동서가 되는 제 여동생 혜리를 귀엽게 보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듣자 장선재가 말한다; “상규야, 너는 후재와 늘 어울려서 다니더니 이제는 처남 매부 사이가 되는구나. 그것 참 보기가 좋다. 그래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 박상규가 즉시 대답한다; “형님, 저는 해군에서 전역하고 요즘은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년 가을에 저도 결혼합니다… “.

그 말을 듣자 장선재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것 참 축하할 일이구나. 그래, 피앙세가 되시는 분은 누구신가?... “. 박상규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 제가 사귀고 있는 아가씨는 강남에 살고 있어요. 저는 요즘 그녀의 부친이 사장으로 있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

그 말을 들은 장선재가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그녀가 해군 소령인 상규 너를 배에서 내리게 한 모양이구나. 자기 집안의 무역회사에 붙들어 두고서 꼼짝 못하게 하겠구나. 상규, 너 이제 큰일났구나하하하… “.

그 말을 듣자 박상규가 익살스럽게 말한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제가 그녀에게 잡혀서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해군의 자랑인 사나이 박상규가 이제는 별볼일 없이 육지에서 마누라 등살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장선재와 장후재는 물론 형수 하선영도 깔깔웃는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그날의 결혼식이 잘 끝나고 새신랑 장후재와 새 신부 박혜리는 신혼여행을 떠난다. 북한의 원산에서 며칠 머물면서 이종사촌들을 만난 후에 장후재가 특파원을 지낸 몽골의 극동공영권에 들린다.

몽골의 공영권에는 북한 출신의 한민족이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북한사람들이 한반도공동체보다 극동공영권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더 편한 모양이다. 몽골의 공영권에서 맞이하는 석양이 참으로 근사하다. 그들 신혼부부는 고비사막까지 찾아가서 자연의 신비에 흠뻑 빠져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장후재는 방송사에서 그리고 아내 박혜리는 무역회사에서 일하느라고 바쁘다. 한민족이 통일되고 극동공영권을 여러 개 개척하고 있기에 경제적으로 지평이 넓어져서 무역이 활발하고 또한 기사거리도 많은 것이다.

장후재는 특히 민족통일로 말미암아 한반도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는 남북한 통일 5년째의 기획물로 이산가족의 오늘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 떨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이 수십년 만에 자유왕래를 하면서 서로 만나게 되어 그 감격이 대단했다.

그러나 서로 자주 왕래를 하면서 살게 되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많이 느껴져서 서먹서먹해진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주민들은 남한이 돈을 벌기는 좋은데 오래 살기는 좋지 못한 곳이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아무래도 인간은 계약적인 사회보다는 인정이 있는 자연부락이 더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남한으로 건너와서 돈을 번 다음에는 노후를 북한에서 친지들과 어울려서 살고자 한다.  

지난 5년간 한반도공동체가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부어서 북한땅에 도로, 철도, 항만, 통신, 전력 등 인프라를 갖추고 기술교육에 힘을 썼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어느 세월에 북한주민들의 소득수준이 한국사람들의 소득 수준의 3분의 2가 될까? 그때까지 그들이 느끼게 되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여전히 심할 것이다.

그러니 민족통일이라고 해도 지난 1953년 휴전 이후 77년 동안이나 서로 떨어져서 살아왔기에 지금의 세대는 그 경험이 전혀 다른 백성들이다. 이질적인 두 집단이 말과 문화 그리고 혈통이 같다고 하여 무조건 통일을 했기에 그 후유증이 상당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극동공영권이 여럿 생겨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특히 시베리아 공영권이나 몽골 공영권은 북한 주민들이 이주하여 살기가 편한 곳이다. 역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상당히 동질감을 느끼고 있기에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그곳에서는 훨씬 덜한 것이다.

그러한 사실들을 취재하여 장후재가 특집방송을 끝내자 2035년 가을이 된다. 그러자 한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질시하는 주변국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시비를 걸고 나온 나라가 바로 이웃인 일본중국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공업화가 된 선진국이다. 1980년대에는 국방산업을 제외한 민생산업분야에서 일본의 기술력이 세계에서 최고였다. 그러한 전성기가 있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자꾸만 뒤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핵심기술만을 여전히 많이 보유하고서 2019년에는 한국에 대한 핵심기술 수출규제를 일방적으로 실시하여 애를 먹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어렵다. 한국의 산업기술이 자꾸만 발전하여 지난 15년 사이에 상당히 근접해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체 시장이 협소하던 한국이 북한과 통일을 이루고 여러 개의 극동공영권을 설치하면서 그만 넓은 시장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허탈감에 빠진 일본사람들이 다시 감정적으로 정한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군사력을 가지고서라도 한국 땅을 차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극우주의 국수주의자들이 생각하고 있다. 일본내에서 정한론자들이 소수였지만 이제는 다시 세력을 얻고 있다. 동조성향이 강한 일본사람들이 그러한 과격한 주장에 그만 매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현상을 장후재가 취재하여 방송으로 보도하고 있다. “일본이 다시 일을 벌이려고 한다. 일본을 돌아보라!... “고 하는 장후재의 보도내용이 한국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정치인인 장선재와 그 부친인 장재상 국회의장이 그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하던 차에 드디어 동경과 오사카에서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그것은 한국인, 고우 홈!을 외치면서 일본인들이 시위에 나선 것이다.

한국사람들과 좋은 이웃으로 살아보니 상대는 발전하는데 일본인들은 후퇴하고 있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 땅에서 한국인들을 내쫓고 서로 보지 않고 살자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 민족 간의 자격지심인 모양이다.

한국의 국회에서 그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런데 여당과 야당 사이에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재선이 된 정도훈 총리를 비롯한 여당은 그래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므로 친선관계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주장은 그것이 아니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우리 한반도공동체와 극동공영권이 서로 협력하여 잘 살고 있으니 일본과 결별하더라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방의원인 장선재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의 본섬 북쪽에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극동공영권이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일본과의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격론이 발생하고 한반도공동체의 여론이 둘로 갈라지고 있다. 과연 한반도공동체와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