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10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11. 17:28

로마서 강해 제107(16:6-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17()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마리아와 자신의 친척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16:6-7)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하라고 자신의 동역자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는 로마서 제16장에 대하여 학자들은 한가지 공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과 가장 친밀한 성도들의 이름부터 먼저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자신의 서신을 로마시의 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여집사 뵈뵈의 이름을 말합니다(16:1-2). 그 다음에는 로마시로 되돌아가서 가정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를 말하고 이어서 그들의 동역자가 되고 있는 에배네도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습니다(16:3-5).

그 다음에는 누구의 이름을 들고 있을까요? 수 많은 익명의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이름을 실명으로 거명하고 있습니다; ①그 하나가 마리아입니다(16:6). ②또 하나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입니다(16:7). 그 의미를 먼저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1)  첫째, 사도 바울은 마리아라고 하는 이름을 거론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초대교회를 개척하기 위하여 전도와 선교에 열심이었던 헌신적인 여러 명의 마리아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    둘째, 그 여러 마리아에게 감사하고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3)    셋째, 바울은 장차 그들 여성도들의 희생과 봉사로 초대교회는 더욱 확장이 되어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4)    넷째, 그 신분이 불분명한 마리아의 이름이 그와 같은 중요성 때문에 로마서 제16장에서 뵈뵈, 브리스가, 아굴라, 에배네도에 이어서 명예스럽게도 5번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일찍이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의 희생과 헌신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 부부에게 문안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6:3). 바울의 의도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아굴라 부부가 전하고 있는 선교이야기를 많이 듣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는 사도 바울 자신의 친척인 한 부부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습니다(16:7).

(3)  셋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가 도대체 누구일까요? 자세한 정보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에 따르게 되면 자신보다 먼저 초대교회에 참여하였으며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하여 감옥에도 같이 갔다고 합니다(16:7). 그 점에 대하여서는 본문의 구절을 풀이하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16:6);

(1)  성경의 기록에서 유명한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여러 명입니다; ①예수의 어머니 마리아(1:18, 1:14), ②글로바의 아내 마리아(19:25), ③막달라 마리아(27:56, 19:25), ④베다니 마리아(11:1-2), ⑤마가의 어머니 마리아(12:12) 등입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인지를 사도 바울이 특정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16:6). 그저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라고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여인이 누구일까요?

(2)  마리아라고 하는 이름이 당시에 흔한 것이기에 일반적으로 그 이름자 앞에 출신 고향이나 가족의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관행을 사도 바울이 모르는 척 그냥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의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어느 특정한 마리아로 한정하고 싶지가 않다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고 있는 그 모든 마리아들이 이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돌보기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항상 그들에게 문안하며 감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3)  그렇다면 이제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마리아 가운데 초대교회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1:18, 1:14). 마리아는 장남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할 때에 그 아래에서 쳐다보면서 가슴을 쳤던 여인입니다(19:25). 그런데 선지자 예수가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이 승천하기 전까지 40일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천국의 말씀을 들었습니다(1:3). 그리고 승천한 다음에는 열흘동안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과 보혜사 성령님의 강림을 소망하면서 기도했습니다(1:14). 그 결과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고서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건설에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2:1-4, 43-47).

2)    둘째,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있습니다(19:25). 전승에 따르면 글로바는 예수님의 의붓 아버지인 목수 요셉의 동생이라고 합니다(24:18). 그러므로 글로바의 아내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숙모인 셈입니다. 그녀의 아들인 시므온이 훗날 예루살렘교회의 제3대 총회장이 됩니다(15:14). 자신의 아들을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유력한 장로로 키워낸 마리아는 교회생활에서도 헌신적이며 모범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27:56, 19:25).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7귀신을 예수님께서 쫓아내어 주신 이후 마리아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8:2). 물심양면으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지원하면서 가장 열성적인 여제자로서 복음사역에 참여하게 됩니다(8:3). 마리아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갔으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여인입니다(20:16-18).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부활의 사실을 증거한 여인입니다. 만약 여성도에게 사도의 직분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막달라 마리아야 말로 명실상부하게 첫번째로 손꼽히는 여사도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 베다니 마리아가 있습니다(11:1-2). 그녀는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예수님에 의하여 죽은지 4일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나오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11:39-44).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시는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신다고 하므로 그녀는 눈물로 자신의 옥합을 깨고 장례식을 대신하기도 합니다(12:1-8).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마리아 자신의 집이 있는 베다니의 동산에서 승천을 하시자(24:50-51) 그녀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의 건설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5)    다섯째,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습니다(12:12). 어떻게 보면 사도 바울이 거론하고 있는 마리아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여인입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바울의 동료인 바나바의 누님이기 때문입니다(4:36-37, 11:22-26, 13:2-3, 15:39, 4:10). ②둘째, 바울이 애증(愛憎, 애정과 증오)을 가지고 있는 마가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15:37-39, 딤후4:11). 훗날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로 불리고 있습니다(벧전5:13).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해서는 어떤 익명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훌륭한 글을 남기고 있기에 그것으로 자세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성경에 그 이름을 남긴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물론 명단 속에서 그의 온 집안까지 구원으로 인도한 신앙인들이 있다. 그들의 명단 속에서 우리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마리아에 대하여 오직 한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행12:12). 그러나 우리는 단 한 군데에 농축되어 있는 마리아의 신실한 삶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마리아는 그녀의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의 장을 제공하고 아들 마가를 주님의 종으로 키움으로써 초대 교회의 숨은 공로자 역할을 한 여인이다. 바울의 동역자인 바나바의 누님이기도 한 마리아는 남편과 사별하고 예루살렘에서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았다. 재산은 많았으나 과부로서 쓸쓸히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인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또한 마리아에게는 무엇보다도 주 안에서 신앙으로 양육하는 아들 마가가 있었기에 오히려 보람과 기대에 찬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경건한 마리아는 일찍이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활용하여 드리기를 자원하였다. 집을 개방하고 손님 접대하기에 인색하지 않은 마리아의 [실천하는 신앙]은 예수님의 방문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마리아의 집의 큰 다락방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시는 장소가 되었다. 마리아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께 장소를 제공하고 후하게 대접하던 그녀의 행위가 주님의 성만찬을 예비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그 다락방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 강림이 실현된 역사적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 마리아의 집은 모일 장소가 없던 성도들에게 예배처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믿음과 용기는 모든 이해타산과 생사를 초월할 수 있었다. 마리아의 집에는 성도들은 물론 사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아들 마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안 일을 돕는 하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접하게 함으로써 식구들 모두가 구원받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생활 가운데 실천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린 마리아의 헌신은 믿음의 결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름다운 믿음에 축복하시어 마리아 자신은 물론 그 자녀와 온 집을 영화롭게 하셨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 집의 주인이 되시어 함께 하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여 주신 모든 것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 드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내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16:7); ‘안드로니고유니아의 이름은 여기에서 한번만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그들의 출신성분과 활동상황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이 증언하기를 그들은 ①첫째, 바울 자신의 친척이라는 것입니다. ②둘째, 사도 바울과 함께 투옥이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③셋째, 사도들이 그들을 존경하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④넷째, 사도 바울보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인물들입니다. ⑤다섯째, 아무래도 그들은 부부관계로 보입니다. 이제 다음과 같이 하나 하나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많은 헌신적인 익명의 부부들을 대표하고 있는 실명의 부부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도와준 대표적인 부부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런데 그 밖에도 많은 가정과 부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들의 가정을 일일이 여기에 나열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그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많은 부부들을 대표하여 여기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를 예로 들어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둘째, 바울에게 있어서 친척인 동역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방인 사도로 헌신하고 있는 바울은 항상 친척과 골육인 선민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간절한 심정이 로마서 제9장과 제10장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9:1-3, 10:1-4). 그런데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하면서 하나 깨닫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친척과 골육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도 바울은 그 증거를 로마서 제16장에서 자랑스럽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실명이 거론이 되고 있는 그의 동역자 35명 가운데 무려 6명이 그의 친척들입니다”(16:7, 11, 21). 거의 17%나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언제 그들이 바울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을까요? 사도 바울과 감옥생활을 함께한 동역자 가운데 안드로니고와 이름이 비슷한 사람으로 아리스다고가 있습니다(4:10). 하지만 그는 두가지 점에서 안드로니고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①첫째, 그는 유럽인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출신입니다(27:2). 사도 바울의 집이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다소 성이기 때문에 너무 동떨어진 감이 있습니다. ②둘째, 아리스다고의 부인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드로니고와 아리스다고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가 사도 바울과 함께 투옥이 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단지 바울 자신이 여러 번 구속이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으므로(고후11:23) 사도행전이나 기타 서신서에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지 아니한 기타의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어째서 그들 부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공통적으로 전도와 선교에 열심입니다.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초대교회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방지역에서 유력한 교포 유대인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숙박시설이 없는 로마제국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숙식할 수 있는 가정이 현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한 필요성을 채워주는 자들이 초대교회에 있어서 식주인’(食主人)이며 후견인’(헬라어로 프로스타티스이며 영어로는 ‘benefactor’)들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후견인의 역할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가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5)  다섯째,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이 어째서 중요할까요?

1)    랍비 사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체포영장을 얻어서 시리아의 다메섹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9:1-2). 그때 환상 가운데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보게 됩니다(9:3). 사울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데 그 내용이 이상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9:4). 사울은 여호와의 뜻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누구이신지 묻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답변에 랍비 사울은 자신의 모든 유대교적인 신념의 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9:5-9).

2)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와 메시아 예언의 진실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얻기 위하여 그는 예루살렘을 잠시 방문하고 아라비아에 있는 하나님의 산을 찾아갔으며 고향 다소의 집에서 칩거하면서 히브리정경을 다시 연구합니다(11:25, 1:16-21). 그러한 랍비 사울에게 도움을 준 부부가 친척이면서 먼저 기독교인이 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16:7). 그들 부부의 복음에 대한 설명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있었기에 랍비 사울이 이방인 사도 바울로 거듭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헌신적인 부부와 그들의 가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다음 세가지 사역을 감당해주었기 때문입니다; ①첫째, 그들의 집을 가정교회의 장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②둘째, 전도와 선교여행을 하는 성도들의 숙식을 해결해주고 있습니다. ③셋째, 교회내의 가난한 자들을 가정에서 돌보아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헌신적인 부부의 예로써 사도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의 경우를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 외에도 수많은 부부와 가정들이 있으며 사도 바울 일행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그들의 도움을 너무나 많이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대표적으로 자신의 친척인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부부의 헌신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그들에게 성도들은 문안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교에 직접 나서지는 못할지라도 바울과 같은 선교사에게 도움을 주는 헌신적인 부부와 가정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