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9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8. 12:19

로마서 강해 제99(15:1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4 9(주일)

 

사도 바울이 겸손하게 로마의 성도들에게 주님의 지상명령을 강조하다(15:14-16).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기록을 마무리하기를 본문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신을 직접 받아볼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그의 편지의 사본을 회람하게 될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바울은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에 대하여 겸손하게 설명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선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선함이 가득하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15:14a). 그렇지만 그 선함이라고 하는 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지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제12장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모든 인류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12:1). 그러므로 여기서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15:14a)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로마교회나 기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조짐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멘트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칭찬을 통하여 앞으로 더욱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일꾼이 되라고 권장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지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성도의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유대교리와 선민사상에 입각한 전통적인 율법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다가 실족하게 되었음을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10:1-3). 그런데 유대교인들과 비교할 때, 로마교회와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적인 지식을 상당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점을 칭찬하고 있습니다(15:14b). 그렇지만 여전히 모든 지식이 가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 제3장에서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3:17-19).

(3)  셋째, 형제사랑과 전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에서는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아니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권해야 합니다. 특히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그렇게 모범적으로 형제사랑과 전도에 임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칭찬하고 있습니다(15:14c).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들과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별도로 두가지 있습니다;

1)    그 중의 하나가 복음에 대한 체험적이고 체계적인 깊은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얻게 되는 그것까지 그들이 얻기를 사도 바울이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5:14)고 전제하면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겸손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2)    마지막 하나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삶을 이어 받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모두들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구원하는데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있어서는 앞으로 로마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사도 바울과 함께 큰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15:23-24).

3)    바울은 그것이 성도들의 성화를 이루는 방편이 됨은 물론 거룩한 백성 그리고 제사장으로서의 의무라고 보고 있습니다(15:16).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영적인 예배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현지인들이 역시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12:1). 그와 같은 뜻을 담아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5:14);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 형제들아”(15:14a);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내 형제들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로마서를 먼저 받아 보게 되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 사본을 회람하게 되는 모든 초대교회의 성도들일 것입니다. 그러한 호칭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들을 나의 형제와 자매라고 지칭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5).

(2)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15:14b); 사도 바울의 표현이 대단히 교묘합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중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선함이 가득하고라는 표현은 좋은 것이며 칭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을 사랑하고 살리시듯이(3:4) 성도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그러나 스스로 선함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올바른 지식과 절대적인 선함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참고로,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구절을 적어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8:19),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

(3)  모든 지식이 차서”(15:14c); 엄청난 칭찬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로부터 그러한 칭찬을 받은 성도들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칭찬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를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의미를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비추어 묵상하고 깨달으라고 하는 격려이며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권면이 에베소서 제3장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8-19).

(4)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15:14d);

1)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혼자서 할 수가 없습니다.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①첫째,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필요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면서 끝까지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신앙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시면서 그러한 복음사역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와 같은 목적으로 로마시에 초대교회가 자생하여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 전역에 초대교회가 우후죽순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서로 권하는 자에도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서로 권면하여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②또 하나는 함께 협력하여 전도에 나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지평을 넓혀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지역전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이방인 선교에 나서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로,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15:15); 사도 바울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 줌으로써 다음에 하고자 하는 말을 그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잘 알고 계시는 말씀이지만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려고’(to remind you) 지금까지 글을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는 비록 부족할지라도 여러분들의 유익을 위하여 한번 담대하게 적어본 것이니 그렇게 양해해 달라고 하는 참으로 겸손한 표현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엄청나게 낮추면서 사도 바울이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다음 구절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셋째로,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 사도 바울은 끝까지 공허한 가르침이 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복음의 정수(精粹, 순전한 알맹이)를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15:16a); 전통적인 유대교리와 율법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던 랍비 사울을 불러서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도로 사용하신 분이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창조주를 모르고 자신들이 이 세상과 인생의 주인인 줄 알고서 제멋대로 이기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되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도 바울처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매진해야만 합니다.

(2)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15:16b); 사도 바울이 자신의 역할이 복음의 제사장 직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개념은 사실 출애굽기 제19장에서 벌써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십니다(19:4-5). 그 이유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어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19:6). 출애굽기 제29장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평생에 단 일주일만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직분의 위임을 위한 제사입니다. 그 다음 남은 인생은 전부 다른 사람들의 속죄와 화해를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어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내주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사도 바울이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15:16b). 그러므로 바울은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자신처럼 살아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15:16c);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서 속죄의 희생의 제물로 바치십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이방인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그 발걸음이 바로 영적인 예배 인생입니다(12:1). 그렇게 이방인 선교에 전념하게 되면 현지인 성도들도 그 모범을 따라서 영적인 예배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15:16c)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4)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d);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듣기에 따라서는 끔찍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달리 표현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5:16d)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인인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칭의를 받고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다른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 갑니다. 그 결과 이방인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천국에 받아 들일만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더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예물로 올려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66:20).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바울 자신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세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첫째, 랍비 사울인 자신을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로 부르신 것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성도님들도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2)  둘째, 사도 바울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대제사장은 자신을 위한 속죄의 기간은 짧습니다. 그 대신에 생애의 대부분을 타인의 속죄와 화해를 위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타인의 속죄와 화해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셋째, 이방인을 제물로 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은 자신의 인생을 그리스도를 닮은 인생으로 철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유익을 내려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16:24).

그와 같은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에서 배워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1:1). 그리하면 이방 땅에서 현지인들이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와 같이 스스로 희생의 제물로 살아가는 대속의 삶이 확대재생산이 되기를 사도 바울이 바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행할 때에 성도들은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예물로 올려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66:20).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성도의 성화도 이루어지게 된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자신의 성화도 이루고 열매도 풍성한 성도의 삶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