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하 주석 47

열왕기하 제15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15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유다가 아사랴의 통치하에 국력 신장을 꾀하던 때에 이스라엘에서는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로 이어지는 왕위 쟁탈전이 되풀이되었다. 이는 곧 북왕국의 최후가 임박하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아사랴는 선지자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였지만 그가 죽고나자 교만해져 자신이 친히 제사장 직무까지 수행하려 했다. 이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그는 그만 문둥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의 뒤를 이은 요담은 웃시야의 좋은 점만을 본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도 백성들의 타락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1. 아사랴의 선한 통치. 5. 아사랴가 문둥병에 걸린 채 죽고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됨. 8. 예후 집의 마지막 왕인 스가랴가 악한 통치를 하다가 살..

열왕기하 제14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14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유다 왕 아마샤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에 대한 기록이다. 아마샤는 통치 초기에 하나님 앞에서 비교적 정직히 행한 탓에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말년에는 북 왕국을 치려는 교만을 보였으며 잘못된 정치를 거듭하였다. 결국, 그는 모반자들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임이 입증된 셈이다(잠 16:18). 한편,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는 역사상 북 왕국을 가장 부강하게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번영을 누리면 누릴수록 왕들과 백성들은 더욱 교만해져 죄악을 일삼았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경고하신 멸망의 길로 스스로 치닫게 되었다. 1. 아마샤의 선한 통치. 5. 아마샤가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처벌함. 7. 에돔에 대한 승리. 8...

열왕기하 제13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13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본장의 일련의 사건은 유다 왕 요아스 당시에 북왕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잠시 겸비한 태도를 보였을 때는 아람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통치 기간 내내 아람의 계속적인 침략을 당하였다. 다음으로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는 우상 숭배를 일삼는 가운데서도 선지자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그가 아람을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해도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게 해주셨다. 한편, 엘리야의 후계자였던 엘리사는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고 임종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신이 살아난 이적은 생전에 선포한 그의 모든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나타낸다. 1. 여호아하스의 악한 통치. 3. 하사엘의..

열왕기하 제12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12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요아스는 통치 초기에 선정을 펼쳤지만 말년에는 패역을 일삼았다. 그가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고 유다의 영적 부흥을 이룬 것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고나자 그는 방백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우상 숭배를 허용하였으며, 이를 경고한 스가랴 선지자를 처형했다. 이때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를 침공한 사건은 하나님의 징계였지만 요아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반란을 일으킨 신하들에게 살해당한 일은 하나님께 불순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한 준엄한 경계거리가 되고 있다. 1.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요아스가 선하게 통치함. 4.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하라고 명함. 17. 하사엘이 성물을 선물로 받고 예루살렘에서 물러남. 19. 요아..

열왕기하 제11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11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살해되자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하고 다윗의 후손들을 진멸하려 하였다. 이는 그녀가 유다를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여 바알 종교를 확산시킬 목적에서였지만 결과적으로 다윗의 자손을 끝까지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백성들의 지지하에 왕으로 옹립되고 아달랴는 결국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는 사단의 세력이 항상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하며 핍박하지만, 저들의 결국은 멸망뿐임을 말해주고 있다. 1. 아달랴가 왕족을 진멸할 때 고모 여호세바에 의해 구출된 요아스가 하나님의 집에 6년 동안 숨겨짐. 4. 여호야다가 제7년에 백부..

열왕기하 제10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10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예후는 요람과 이세벨을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합 왕가의 남은 자손들을 모두 처단하였다. 이처럼 아합 왕가가 완전히 진멸 당한 것은 예언의 성취이자 하나님 심판의 철저성을 보여 준다. 한편, 왕이 된 예후는 지금까지 성행하던 바알 종교를 근절하였다. 그러나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는 파괴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찾지 않도록 하였다. 따라서 예후의 종교 개혁은 신앙적 동기가 아닌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 예후가 편지를 보내 아합의 후손 70인의 머리를 취하게 함. 8. 예후가 엘리야의 예언을 빙자하여 사실을 정당화함. 12. 예후가 양털 깎는 집에서 아하시야의 형제 42인을 죽임. 15. 예후가..

열왕기하 제9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9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예후가 북 왕국의 왕으로 등극하기까지의 일단의 과정이다. 엘리사가 선지 생도를 시켜 예후에게 기름 부은 것은 예언의 성취이다(왕상 19:16). 하나님은 이미 20여 년 전에 그를 오므리 왕조의 심판 도구로 선택하셨다. 예후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상처를 입고 이스라엘 성에서 치료받고 있던 요람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요람과 병문안 왔던 유다 왕 아하시야,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을 차례로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이때 요람의 시체는 이전에 나봇의 포도원이었던 왕의 정원에 버려지고 이세벨의 시체는 개의 먹이가 됨으로써 엘리야의 저주가 성취되었다(왕상 21:19, 23). 1.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보내 길르앗 라못에서 예후에게 기름 붓도록 함. 4. ..

열왕기하 제8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제8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본문의 수넴 여인은 앞서 엘리사를 극진히 공궤하였던 여인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7년 동안 기근이 임하였을 때 블레셋으로 피신하였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기업을 되찾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결단코 상급을 잃지 않게 됨을 일깨워준다. 또한 엘리사가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서 하사엘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이미 엘리야도 예언한 바이다(왕상 19:15~17). 하나님이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세우신 목적은 이스라엘 징벌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의 행적은 그들도 북왕국의 왕들과 똑같이 패역하였음을 보여 준다. 1. 수넴 여인이 예고된 기근을 피하기 위해 7년 동안 자기 나라를 떠났다가 돌아온 후에, 엘리사의 기적 ..

열왕기하 7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열왕기하 7장 주석(요약자; 이임업) 함락 위기에 놓였던 사마리아 성이 극적으로 구원받은 데에 대한 기록이다. 하나님이 패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면서도 번번이 구원해 주신 이유는 저들을 회개케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왕의 장관 중 한 사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엘리사의 말을 믿지 않고 조롱하였다. 이는 당시 온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대변한 것이다. 한편, 문둥병자들이 목격하였듯이 하나님의 강권적 섭리 덕분에 아람 군이 황급히 퇴각하고 사마리아 성은 실제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왕의 장관이 죽은 것은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경고이다. 1. 엘리사가 사마리아에 엄청난 풍요가 있을 것을 예언함. 3. 네 문둥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아람 진영에 들어갔다가 아람인들의 도망 소식을 ..

열왕기하 제6장 주석(요약자; 인내로 결실하는 자)

열왕기하 제6장 주석(요약자; 인내로 결실하는 자) =====6:1 1-7절까지의 기사는 4장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 인 물이 익명의 선지자의 생도들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기사 를 4:38-44절과 연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K.W.Bahr).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관해서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카일(Keil)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장소 를 2:1에 나오는 길갈이라고 주장(Thenius)하는데 그것은 요단 강 근처의 길갈을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일은 요단 강과 가까운 여리고가 이 기사의 배 경이라고 주장한다(Keil & Delitzsch, Vo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