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누가복음 제1장 후반부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6. 13. 16:31

누가복음 제1장 후반부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1:39-8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7 7 13()

 

1.    마리아의 집과 엘리사벳의 집은 얼마나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가?(1:39-40)

(1)  갈릴리 산골마을에 숨어서 살게 된 다윗왕조의 후손과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들;

1)    본래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벧엘을 포함하지 아니한 그 이남지역임.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헤브론 등이 그 중심도시임. 그리고 남쪽 벧엘에서부터 북쪽 단까지 이르는 지역은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고토가 되는 것임. 그 중심지는 세겜과 사마리아라고 하겠음.

2)    그런데 주전 586년에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왕족과 귀족들이 모두 적국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됨. 그들이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 제국이 바사 왕국과 메대 왕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자 천하를 재통일한 페르시아 고레스 황제의 호의로 고향 땅으로 되돌아 오게 됨(1:1-4).

3)    2성전을 건축한 다윗왕가의 후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 예수아는 그 옛날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재건하지를 못하고 말았음. 그 이유는 주전 4세기 후반부터 그들의 땅이 외세에 의하여 계속 지배를 당하고 또한 평범한 제사장 가문에서 나타난 하스모니안 왕가가 득세를 하였기 때문임.

4)    따라서 다윗왕가의 후손과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은 외세와 하스모니안 왕가의 탄압을 피하여 오랜 세월 은둔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임. 그 가운데 가장 멀리 북쪽 갈릴리 산골마을에 피신을 하고 있는 집안이 다윗의 직계인 목수 요셉의 집안과 아론의 직계로서 아비야 반열에 속한 집안임(1:5, 26-27, 39-40).

(2)  아비야 반열의 마을과 나사렛과의 관계;

1)    아론의 자손들이 유대교에서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데 그 수가 세월이 갈수록 자꾸만 많아지고 있음. 따라서 아론의 살아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후손들이 나중에 24반차(班次,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서열이나 차례를 말함)를 이루게 됨(대상24:3-5). 엘르아살의 후손이 16개의 반차를, 이다말의 후손이 8개의 반차를 차지하고 있는 것임(대상24:4).

2)    1년이 52주이므로 24개의 반차가 서로 돌아가면서 상반기에 한 주(, week)씩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후반기에도 또 한 주씩 봉사를 하게 됨. 그러면 4주가 남게 되는데 그때에는 3절기에 해당이 되므로 전국에서 아론의 집안 사람들이 총동원이 되는 것임.

3)    본래 레위인들은 전국에 흩어져서 48개 성읍을 배정받아 살고 있음(21:41). 따라서 이웃한 2개의 성읍이 하나의 반차를 이루고 있음.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가 소속이 되어 있는 아비야 반열의 경우에는 갈릴리의 산골마을인 야비아와 가드헤벨이 같은 반차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아래에 첨부한 지도를 참조하시기 바람).

4)    나사렛과 가드헤벨은 가까운 인근마을임(아래에 첨부한 지도 참조 요망). 그 사이에 야비아가 위치하고 있으므로 나사렛에 살고 있는 처녀 마리아가(1:26-27)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아니한 것으로 보임(1:39-40). 지근거리에 살고 있는 아론의 후손들이며 특히 마리아는 연상인 엘리사벳과 굉장히 친한 것으로 보임. 따라서 무려 3개월이나 그 집에서 묵게 되는 것임(1:56).

 

2.    세례 요한과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이제는 그 사이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있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알 수가 있는가?(1:15, 35, 41)

(1)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재하시는 성령님;

1)    소위 in의 성령님곧 성도들의 속사람속에 그리고 심령속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엿볼 수가 있음.

2)    이는 그(세례 요한)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1:15); 세례 요한이 모태에 잉태가 될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는 예언임.

3)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령이 네(처녀 마리아)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 성령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 임재하여 내주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가 잉태가 된다는 설명임.

4)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1:41-42);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예언을 하고 있음.

(2)  성도들 사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1)    이른바 among의 성령님을 말하고 있음. 이는 성도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존재를 말함.

2)    마리아가 친족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자 엘리사벳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여 기쁨과 예언이 터져나오고 있음(1:39-42). 그 이유는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이미 성령님이 임재하여 계시며 처녀 마리아에게도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임.

3)    그러므로 세례 요한, 마리아, 그리고 엘리사벳 사이에서 성령님께서 일시에 역사하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예배가 발생하고 있는 것임(1:43-45).

 

3.    마리아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엘리사벳이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1:42-45)

(1)  마리아가 벌써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음(1:42);

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처녀 마리아)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예수 그리스도)도 복이 있도다”(1:41b-42);

2)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에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여 벌써 메시아가 잉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를 찬양하고 있는 것임.

3)    사람의 오장육부를 투시하고 있는 X-ray’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 사람들의 속사람과 심령까지 투시하고 있는 성령 하나님의 감찰이심을 여기서 알 수가 있다고 하겠음(4:12-13).

(2)  자신의 복중에서 자라고 있는 6개월이 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있음(1:44);

1)    보라 네(마리아의) 문안하는 소리가 내(엘리사벳의) 귀에 들릴 때에 아이(세례 요한)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1:44);

2)    모태에서 6개월이 된 세례 요한이 벌써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크게 기뻐하여 뛰놀고 있음.

3)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가 되고 있기 때문임;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인에게 복이 있도다”(1:45);

4)    위의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처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시점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그녀의 믿음을 고백한 그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음;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1:38).

 

4.    마리아의 찬가의 내용은 무엇인가?(1:46-55)

(1)  첫째,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신 구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1:46-49);

1)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1:46-49);

2)    첫째, 마리아는 하나님을 자신의 구주라고 부르고 있음. 그 이유는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는 것임. 마리아는 아론의 후손이지만 아들이 아니라 딸이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가 없는 신분임. 그리고 상속권도 없음. 그것이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천한 것임.

3)    둘째, 그와 같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힘이 없는 마리아의 처지를 돌보시듯이 구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비천한 자를 돌아보신다는 것임. 그 증거가 구주 하나님이 권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과 같은 비천한 자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가 되고 있다는 것임.

4)    셋째, 약혼한 처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율법사회에서 맞아 죽게 되어 있음(20:10). 그러므로 그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처녀 마리아가 이같이 구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강력하신 보호하심과 돌보심이라고 하겠음.

(2)  둘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체제 변혁의 동인이 되고 있음을 말함(1:50-52);

1)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1:50-52);

2)    첫째, 구주 하나님의 역사가 비천한 자를 돌아보시고 높이시는 긍휼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

3)    둘째, 특히 기득권에 취하여 비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있는 교만한 사회의 체제를 변혁시키는 것이 구주 하나님의 뜻이라고 천명하고 있음.

4)    셋째, 그와 같은 구주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도와 제자들에 의하여 대대로 계속이 된다고 하는 예언인 것임.

(3)  셋째, 생존의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음(1:53);

1)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1:53);

2)    구주 하나님의 역사 곧 복음의 역사는 가장 먼저 생존의 위기에서 헤매고 있는 사회의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있게 된다는 것임. 그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구해주고 대접해주는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임.

3)    훗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좋은 이웃 사마리아 인의 비유와 소자의 비유로 거듭 확인이 되고 있음(10:33-37, 25:40).

(4)  넷째, 선민 이스라엘을 도우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찬양하고 있음(1:54-55);

1)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1:54-55);

2)    여기서 이스라엘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을 말하고 있음.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선민을 포함하는 이방인들을 말하고 있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두가지임;

3)    첫째, 아브라함의 아들은 약속의 아들인 적장자 이삭 외에도 7명이 더 있음.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며 서장자인 이스마엘이 있으며(16:16)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아들이 6명이나 더 있음(25:1-4). 이스마엘은 가나안을 떠나 시나이 반도의 바란광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음. 그리고 그두라의 6아들은 가나안의 동쪽으로 분가하여 떠나가고 있음. 그들이 모두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님. 왜냐하면 욥기에서 볼 수 있듯이 셈족의 하나님신앙이 일부 살아 남아 있기 때문임.

4)    둘째, 그러므로 이삭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에서를 배제하고 오로지 야곱의 자손들만이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선민중심주의 사고방식이라고 하겠음. 그와 같은 편파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만민구원의 복음적인 견해가 마리아의 구주 하나님 찬양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며 더구나 그것이 구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영원한 방향성이라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 더욱 놀라운 것임.

 

5.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서 3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는 대목에서 짐작이 되는 내용 두가지는 무엇인가?(1:56)

(1)  첫째,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알 수가 있음;

1)    현대사회도 그러하지만 그 옛날 먹을 것이 부족한 고대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오래 친척을 그냥 먹여주고 재워줄 수가 있을까요?

2)    그 실마리가 야곱의 일대기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이 되고 있음;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29:14-15). 아무런 계약없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의 최대치가 한달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임.

3)    그런데 처녀 마리아의 경우에는 친족 엘리사벳의 집에서 무려 3달을 신세를 지고 있음(1:56). 그것은 그 두사람이 얼마나 서로 아끼며 마치 모녀지간과 같이 가까운 사이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음.

(2)  둘째, 마리아의 거취문제가 3달만에 해결이 된 것으로 보임;

1)    처녀인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을 했을 때에 이미 잉태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음(1:41-42). 그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것임. 처녀가 그것도 약혼한 여자가 약혼자와의 정상적인 합방이 없이 아기를 가지게 되면 간음한 여인으로 간주가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임(20:10).

2)    그러므로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주를 잉태하게 된 친족 마리아를 살리기 위하여 남편 사가랴와 함께 백방으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임. 마리아의 약혼자인 목수 요셉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그녀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라고 종용한 것으로 보임.

3)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말을 듣고서 그 해답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기까지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보임(1:18-25). 따라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을 나서자 은밀하게 친정집에서 옷가지를 챙긴 후에 곧바로 남편이 되는 목수 요셉의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음(1:56).

 

6.    세례 요한이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그 작명(作名, 이름을 지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1:57-64)

(1)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이웃과 친족들에게 알림(1:57-58);

1)    늙은 여인 엘리사벳은 불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예언대로 아들을 임신하게 되자 그 일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숨어서 지내고 있음(1:24-25).

2)    그러나 막상 아들을 순산하게 되자 너무나 기뻐서 이웃과 친족들에게 득남의 소식을 전한 것으로 보임(1:57). 그 소식을 듣고서 친지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음(1:58).

(2)  할례일에 작명을 하고자 함(1:59-62);

1)    율법에 따라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함(17:12, 1:59a). 그 자리에서 친지들은 아기의 이름을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정하고자 의견을 모음(1:59b).

2)    그러나 엘리사벳이 반대를 하고 있음. ‘요한이라고 이름을 짓겠다는 것임(1:60). 사전에 남편 사가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생한 일을 서판에 글자로 써서 아내인 엘리사벳에게 알려준 것으로 보임. 따라서 엘리사벳은 천사의 예언 곧 요한이라고 아기의 이름을 정하라고 한 것을 명심하고 있는 것임(1:13, 63).

3)    그러나 친지들은 아론의 제사장 가문에 요한이라고 작명을 한 경우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가장(家長)인 제사장 사가랴의 의견을 듣자고 중론을 모으고 있음(1:61-62).

(3)  사가랴가 요한이라고 작명을 하자 발생한 일(1:63-64);

1)    제사장 사가랴는 서판에 아기의 이름자를 요한이라고 적고 있음(1:63). 그것은 천사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작명을 따르고 있는 것임(1:13).

2)    그러자 그 자리에서 벙어리 사가랴가 다시 혀가 풀리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임(1:64a). 그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음(1:64b).

3)    제사장 사가랴는 천사가 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상식에 근거하여 의심했기 때문에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까지 한시적으로 벙어리 신세가 된 것임(1:20). 그러나 이제 그 일이 이루어지고 또한 사가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작명하여 주신 요한으로 결정하게 되자 즉시 벙어리 신세를 면하고 있는 것임.  

 

7.    늙은 제사장 사가랴가 아들을 얻고 또한 벙어리 신세를 면하는 것을 보고서 유다 산골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1:64-66)

(1)  먼저 두려워하게 됨(1:65);

1)    예루살렘 성전에서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제사장 사가랴를 보고서 고향사람들이 놀라고 있음. 그 이유는 성전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1:22).

2)    당시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고 돌아온 아비야 반차의 동료들이 여럿이었기에 그 소문은 인근에 퍼진 것임(1:5).

3)    그런데 이제 늘그막에 사가랴가 아들을 얻고서 8일만에 할례식을 행하는 자리에서 벙어리 신세를 면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임(1:64). 그 모습을 지켜본 친지들이나 그 소문을 듣게 된 이웃들이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됨(1:65).

(2)  아이의 장래를 지켜보고자 함(1:66);

1)    제사장 사가랴가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은 그 아이가 장차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에 친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음(1:66a).

2)    그 이유는 자라날수록 눈에 띄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충만해지고 있기 때문임(1:66b). 그것은 그냥 제사장의 뒤를 잇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오래간만에 그 옛날 말로만 듣던 선지자의 탄생을 보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임.

3)    공식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의 구약의 역사에 있어서 마지막 선지자는 주전 400년경의 말라기임(1:1). 이제 주후 1세기에 접어들어 있으므로 무려 400여년 만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례 요한이 변방 갈릴리 산골마을에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임.

 

8.    제사장 사가랴가 성령이 충만하여 무엇을 예언하고 있는가?(1:67-79)

(1)  첫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1:67-71);

1)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돌보시고 속량하신다는 것임(1:67-68).

2)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메시아가 오시면 외세를 물리치시고 다윗왕조를 다시 일으키시며 선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것임(1:69-71).

3)    그와 같은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은 한 마디로,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임.

(2)  둘째,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1:72-75);

1)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맹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임(1:72b-74).

2)    그와 같은 구원의 은혜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이유는 ①첫째,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처럼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이며(2:23-25, 1:72a) ②둘째, 백성들이 거룩하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길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때문인 것임(1:75).

(3)  셋째, 선지자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을 예언하고 있음(1:76-79);

1)    첫째, 요한이 자라서 구주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임(1:76).

2)    둘째, 주의 백성에게 죄 사함의 구원의 시대가 메시아로 말미암아 오고 있음을 알릴 것임(1:77).

3)    셋째, 하나님의 긍휼이 이 세상에 널리 임하고 만민들이 죄와 사망의 어둠에서 벗어나 구원의 평강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임(1:78-79).

 

9.    세례 요한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1:80)

(1)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1:80a);

1)    자신의 사명에 대한 영적인 확신과 마음의 결심이 확고하게 되고 있다는 것임(1:80a).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그 인도하심에 의한 것임(1:15-16).  

2)    그와 같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깨달음은 아버지 사가랴가 전해주고 있는 자신의 탄생에 대한 천사의 예언의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임(1:14-17).

3)    특히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4:5-6, 1:17) 세례 요한은 히브리정경을 많이 공부하고 자신이 메시아의 길을 어떻게 인도하는 선지자가 되어야만 하는지 오래 묵상한 것으로 보임.

(2)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1:80b);

1)    첫째, 나실인의 삶을 말하고 있음(1:15).

2)    둘째, 금욕주의자의 고행의 삶을 말하고 있음(3:4, 1:80b).

3)    그러한 빈들에서의 삶은 에세네 파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임. 어쨌든 ascetic life’를 영위하기 위하여 사막이나 깊은 숲 또는 동굴이나 외딴 섬에서 홀로 명상을 하고 고행을 하는 것이 진리를 깨닫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임.

4)    그것은 불교나 도교 또는 힌두교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훗날 기독교에서도 white martyr고행과 수도승의 전통으로 나타나고 있음.

 

(야비아와 가드헤벨의 위치)

 

(참고자료1) 누가복음 강해 제9(1:31-35)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13()

 

마리아가 잉태하게 되는 아들 예수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두 가지의 해석에 대하여(1:31-35)

 

의사 누가가 본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1:31정체성과 사명은 두 가지로 해석이 될 수가 있습니다①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다윗 왕의 후계자입니다(1:32). ②또 하나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고 언약을 믿는 백성을 구원하여 영원토록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1:33-35).   

그와 같이 두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과 사명이므로 그의 생애와 복음의 내용에 대하여 견해가 분분할 수 있습니다그렇지만 의사 누가는 나사렛 예수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그를 유대인 사회에 소개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잉태와 탄생의 과정을 근원부터 추적하면서 하나의 결론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는 선민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는 바 전자의 메시아 곧 다윗의 후계자로서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의사 누가는 나사렛 예수야말로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잉태가 되어 태어났으며 아버지 창조주의 마음을 깨닫고 피조물 모두를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얻게 하고자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과연 그와 같은 내용을 의사 누가가 어떻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내용과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1:31-32);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문장입니다그리고 메시아사상을 지니고 있는 선민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1)  위의 구절을 상식적으로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여자가 아기를 잉태하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그리고 그 성별은 아들이 아니면 딸입니다여기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고 있지만 그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닙니다확률이 50%나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합니다그것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상당히 흔한 이름입니다따라서 별로 특별한 작명이 아닙니다.

3)    셋째고대사회는 왕정국가이므로 왕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흔히 자국의 왕을 지극히 높은 신의 아들이라고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4)    넷째언제나 자신들의 왕을 그 옛날 왕국을 강성하게 만들어 사해에 그 이름을 크게 떨친 위대한 대왕의 후계자라고 철석같이 믿도록 만들고 있습니다그것이 소위 정치적인 우상화 작업입니다.

(2)  그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을 선민들은 메시아신앙’으로 상당히 각색하여 받아들이고 있습니다그것은 한국사람들이 그 옛날 지니고 있던 미륵불신앙’과 비슷합니다;

1)    선민들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아를 보내어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해왔습니다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는 두 가지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합니다①첫째강력한 외세의 지배에서 선민들을 구원해야만 합니다②둘째그 옛날 다윗 제국의 영광을 다시 온 세상에 떨쳐야만 합니다그것이 선민사상에 입각한 시온의 영광입니다.

2)    그러므로 처녀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게 될 아들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고 있는 민족의 해방자이며 시오니즘을 크게 빛낼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만약 그와 같은 선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 자는 명백하게 메시아가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영원 야곱의 집 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나라 무궁하리라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1:33-34); 그런데 천사장 가브리엘이 전하고 있는 그 다음 대목의 말씀이 사람들의 상식적인 이해를 한참 벗어나고 있습니다그래서 그 예언의 의미를 확인하고자 마리아가 당차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  영원 야곱의 집 으로 다스리실 것이며(1:33a); 야곱은 이삭의 아들입니다부친 이삭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승계하고 있는 약속의 아들입니다(17:19, 22:17-18, 26:3-5);

1)    그런데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습니다(25:21-26). 에서와 야곱입니다두 아들 가운데 누가 약속의 아들이 되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을 계승하게 될까요야곱이 훗날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스라엘이 되고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승계하게 됩니다(35:9-15). 그 언약 위에 야곱의 집이 선민의 나라로 건설이 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선민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수 있는 왕과 왕조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①첫째왕도 사람인지라 수명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백 년 이상을 살면서 왕으로 통치한 자가 없는 것입니다②둘째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한 왕이 드물고 대부분 제멋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선민의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다윗 왕조도 망하고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도 지도상에서 벌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왕하25:1-12). 그것이 명확한 역사적인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들 예수가 태어나면 그가영원 야곱의 집 으로 다스리실 것이며(1:33a)라고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말이 사실일까요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믿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2)  “그 나라 무궁하리라(1:33b); 그런데 천사장 가브리엘이 더 확실하게 보충설명을 하고 있습니다아들 예수가 언약 위에 세워지는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그 나라가 무궁한 역사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렇게 영원토록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하나님의 나라일 것입니다그와 같은 하나님나라를 과연 사람인 자신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는 예수가 건설할 수 있을까요그 옛날 다윗 대왕도 성취하지 못한 그 대업을 자신의 아들이 구현할 수가 있을까요정확하게 확인을 해보아야만 하는 대목입니다.

(3)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1:34); 따라서 마리아가 당차게 천사장 가브리엘에게 돌 직구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   마리아 자신은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과 약혼만 했을 뿐(1:27아직 혼례를 올리거나 합방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1:34). 아직 100% 순수한 처녀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말입니까그 말씀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그러므로 해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2)   마리아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자와 부부관계를 가지지 아니한 처녀가 혼자서 아기를 잉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천사장 가브리엘 당신의 말씀은 이치에 맞지를 않습니다부디 마리아 자신을 이해시켜 달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천사장에게 무례를 범하는 줄 알면서도 마리아는 참으로 중요한 사안인지라 그 방법이 무엇인지를 밝혀달라고 감히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성령이 네게 임하시고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 천사장 가브리엘의 답변이 일단은 마리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습니다하지만 워낙 신기한 말씀인지라 자신의 눈으로 그 증거를 살피지 않으면 그 예언을 확신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따라서 그 증거를 얻고자 하는 마리아의 다음 행보가 흥미진진합니다우선 여기서는 마리아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는 가브리엘의 설명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성령이 네게 임하시고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1:35a); 먼저 창세기 제12장의 말씀부터 참조해봅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이방인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며 또한 복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12:2-3). 그와 같은 뜻의 말씀이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성령님이 처녀 마리아에게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의 근원으로서 그 생명창조의 능력을 마리아에게 행사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성령이 네게 임하시고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1:35a).

2)    그러므로 처녀 마리아의 아들로 잉태가 되고 태어나게 되는 아기 예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옛적에 들은 적이 전혀 없는 것)의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입니다그는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습니다생물학적으로는 순수하게 어머니 마리아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아들입니다그 말은 나사렛 예수야 말로 명실상부한 여자의 후손’이며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 그 사탄을 쳐부수어버리시는 구원자 메시아라는 것입니다(3:15).

(2)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b); 아기 예수에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지만 영적인 아버지가 계십니다왜냐하면성령님이 처녀 마리아에게 임하여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창조의 능력을 그 몸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줌으로써 비로서 독생자가 사람으로 잉태가 되고 출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35a). 따라서 구태여 말하자면 나사렛 예수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그러한 의미에서 천사장 가브리엘이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b)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예수님 당시에 선민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라고 믿지 아니한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입니다①첫째외세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할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②둘째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간주하면 그만입니다그렇지만 두 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그냥 두고 볼 수가 도저히 없습니다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모독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실 히브리 정경 어디를 살펴보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한갓 피조물인 여자와 더불어 부부관계를 맺고 신의 아들을 만들어내었다고 하는 구절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판단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의사 누가는 나사렛 예수의 생애를 추적하다가 보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일찍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던 천사장 가브리엘이 다시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성령님이 처녀 마리아에게 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이 그 자궁에서 아기 예수를 잉태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순수한 여자의 후손입니다그는 창세기 제3장에 기록된 그대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모든 사람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오신 구원자 메시아입니다한갓 선민임을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해방을 위하여 로마제국을 힘으로 물리치고자 시도하는 세상임금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의 다음 구절을 한번 음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하시더라(26:52-54).

아무쪼록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처럼 자신의 영혼의 아버지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처럼 살아가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참고자료2)  누가복음 강해 제10(1:35-41)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14()

 

사상유례가 없는 진짜 하나님의 아들의 잉태가 가능할 것인가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우선적으로 믿고 유사한 증거를 찾아 나서고 있는 당찬 처녀 마리아(1:35-41)

 

의사 누가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  성령님이 임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처녀 마리아를 감싸게 되면 그 속에서 사상유례가 없는 기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구체적으로남자 없이 처녀가 혼자서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게 되는 기적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1:35).

(2)  천사장 가브리엘은 반신반의하고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유사한 최신 사례를 하나 제시해주고 있습니다그녀가 잘 알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아들을 잉태하여 6개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1:36ac).

(3)  엘리사벳이 불임여성임을 갈릴리의 친척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1:36b).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능력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그녀의 불임을 치유하고 그 몸을 젊게 만들어 아들을 잉태하고 태중에서 잘 키울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1:37).

(4)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믿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하지만 더 확실하게 믿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증거로 제시한 엘리사벳의 집에 가서 천사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부터 해보아야 합니다그런데 처녀 마리아가 보여주고 있는 그 다음의 행동은 그 정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대단한 신앙입니다.

(5)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믿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창조의 능력을 베푸시는데 대하여 더 이상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당장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a)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6)  하나님말씀의 전달업무를 무사히 마친 천사장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의 확답을 듣고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1:38b). 이제 혼자 남게 된 처녀 마리아는 그리 멀지 아니한 마을에 살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보고자 합니다(1:39). 천사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도 할 겸 실제로는 친족 웃어른인 엘리사벳과 상의할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그것이 무엇일까요?

(7)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그 율법에 따르면정혼한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타인으로 말미암아 임신을 하게 되면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22:22-24). 그 율법조항이 장차 마리아에게 적용이 될 것입니다마리아가 혼자서 임신을 하게 되면 그녀가 아무리 사람들에게 자신이 간음한 사실이 없고 무죄임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할 것입니다이 세상에 그 누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도록 그렇게 섭리하신 것이라고 믿어 주겠습니까?

(8)  유일하게 믿어 줄 부부가 있습니다바로 아론의 후손이며 같은 친족인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인 엘리사벳입니다(1:5, 36). 따라서 마리아가 급히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찾아가고 있습니다(1:40). 마리아가 어른인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할 때에 갑자기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세례 요한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1:41a). 그리고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놀라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41b). 그 자세한 예언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번 강해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스토리를 이해하시면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상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더 깊은 내용과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a)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b)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c)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d)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사람에게 어떻게 임하는가에 대하여 의사 누가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사람의 영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먼저 임하시게 됩니다(1:35b). 그 말은 사람의 영을 먼저 하나님께서 장악을 하신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무조건 강제로 장악을 하시는 것일까요그것이 아닙니다왜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에게 임하여 지배를 해야만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있게 됩니다(1:35a). 처녀 마리아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천사장 가브리엘을 사전에 보내어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해주고 계약의 상대방인 마리아 그녀의 동의와 찬성을 구해오라고 하십니다(1:30-38).

(2)  둘째성령께서 사람의 영을 지배하고 있으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역사하시게 됩니다(1:35cd). 사람의 영이 지배하고 있는 육신과 정신적 영역에 걸쳐서 두루 창조의 능력이 스며들게 됩니다(1:35c).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처녀 마리아의 경우에는 태를 열어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1:35d). 흔히 말하고 있는 치유와 회복의 능력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임하게 됩니다.

(3)  셋째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성령님의 임재부터 허용해야만 합니다천사가 전하여 주는 말을 듣듯이(1:35, 7:53, 3:19그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말씀을 경청해야만 합니다그것이 모세와 선지자의 글과 시편과 기타 성경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입니다(16:31, 24:44-45). 오늘날 신 구약의 성경말씀에는 거듭난 인생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실천에 대한 내용이 가득 차 있습니다그 말씀을 믿고 성령님의 임재를 허용하게 되면 자신의 영을 하나님의 영이 사로잡고 새로운 인생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4)  넷째처녀 마리아의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을 잉태하여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35d, 1:14). 마찬가지입니다성도의 경우에도 창조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말씀이 깨달아지고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인생으로 변화가 되어나갑니다그렇게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화의 과정과 만민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인생길을 걷게 됩니다그것이 거듭난 성도의 인생이며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만들어나가시는 새로운 성도의 인생입니다.

둘째로,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6이 되었나니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1:36-37); 천사장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에 대하여 확신을 주기 위하여 최근의 사례 하나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하게 된 경우입니다(1:24, 36). 사가랴 부부와 마리아는 모두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이기 때문에 친족간입니다(1:5, 36). 그러므로 미심쩍으면 훗날 마리아가 친족인 사가랴의 집으로 가서 엘리사벳의 임신여부를 확인해보면 될 것입니다.

(2)  친족들이 모두 늙은 엘리사벳은 젊은 시절부터 줄곧 불임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1:7). 그런데 그녀가 아들을 임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천사장 가브리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그와 같은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녀 마리아에게 힘주어 말해주고 있습니다(1:36-37). 그 말을 듣게 된 마리아의 반응이 무엇일까요?

셋째로, (a) 마리아가 이르되(b)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c) 천사가 떠나가니라(1:38); 처녀 마리아가 목숨을 걸고서 답변을 올리고 있습니다(1:38a);

(1)  자신은 한갓 여호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이 되는 종입니다주인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탄생시키시는데 사용하겠다는 계획에 대하여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그래서 전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1:38b). 그 답변을 들은 천사장 가브리엘은 자신의 임무가 끝났기에 그 자리를 떠나고 있습니다(1:38c).

(2)  하지만 처녀 마리아의 답변은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1:38b)그것은 마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밝히고 아하수에로 황제에게 나아가고 있는 왕후 에스더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4:16).

(3)  당시의 율법사회에서는 남편이 있는 여자이거나 정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동침하게 되면 당사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22:22-24). 만약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면 처녀가 정조를 잃어버린 가장 확실한 잉태의 증거를 온 세상에 드러내게 되는 것이니 죽임을 면할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a) 이때에 마리아가 일어나(b)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c)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1:39-40); 천사장 가브리엘이 떠나고 나자 처녀 마리아가 당장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1:39a). 같은 갈릴리 산골에 살고 있는 친족 사가랴 부부의 집으로 찾아가서(1:39b사실확인을 하고 또한 당면문제에 대하여 상의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갈릴리 산골마을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의 남단에서 서쪽으로 쭉 진행하면 산들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빈촌입니다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이어지고 있는 그 산악지대는 그 옛날 스불론 지파의 땅에 속하고 있습니다(9:1-2). 나사렛에서 산을 타고 동북쪽으로 좀 진행하면 제사장과 선지자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들이 나타납니다야비아와 가드헤벨입니다나사렛에서 시오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들입니다가드헤벨이 주전 8세기의 갈릴리 선지자 요나의 고향입니다(왕하14:25). 그러므로 사가랴의 집은 야비아에 위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1:39b).

(2)  산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마리아는 산길을 잘 타는 처녀입니다그래서 어렵지 아니하게 평소 왕래를 하고 있는 친족어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집으로 찾아가고 있습니다마침 제사장 어르신인 사가랴가 집을 비우고 있습니다그런데 친족 어른 엘리사벳은 나들이를 전혀 하지 아니하고 5달 동안 집에서만 지내고 있습니다(1:24). 그래서 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간 처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고 문안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1:30). 그런데 다음 순간 참으로 기이한 일이 그 방안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다섯째로, (a)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b) 아이(아기 세례 요한)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c)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1:41); 그 기이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같은 일가이므로 손 아래 사람인 처녀 마리아가 연장자이며 손위 어른인 엘리사벳에게 문안인사를 예의 바르게 올리는 것이 도리입니다(1:41a). 그런데 그 순간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아기가 발길질을 하며 크게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2)  그 의미는 두 가지로 보입니다①첫째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는 예수를 보게 되었으니 그 기쁨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나중에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실제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습니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1:27),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3:29). ②둘째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고 있는 처녀 마리아의 문안을 손위라고 하여 엘리사벳이 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3)  주군의 모친이 되셨으니 오히려 문안을 올리고 메시아의 오심을 찬양하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입니다실제로 엘리사벳이 성령의 감동으로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한 사실을 알아채고서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를 찬양하게 됩니다(1:41c-45).

(4)  끝으로처녀 마리아가 집안 어른인 엘리사벳에게 상의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펴봅니다의사 누가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그대로 처녀 마리아는 친족 엘리사벳과 함께 그 집에서 3달쯤 함께 지내다가 고향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1:56). 그 기간 동안에 발생한 일에 대하여 의사 누가가 일일이 적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하지만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꼭 만나야만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5)  첫째하나님의 능력으로 불임이 치료가 되고 늙은이가 젊음을 회복하여 임신을 하게 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그 일이 사실이라면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6)  둘째목수 요셉과 약혼한 몸으로 처녀인 마리아 자신이 아기를 임신하게 된다고 하면 그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만 할지 엘리사벳과 의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그 일은 엘리사벳을 제외하고서는 그 누구와도 상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도무지 세상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그들 두 여인에게만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  그러한 현안문제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깊이 있게 의논을 했다고 하는 구절이 없습니다하지만 그 고민을 알고나 있는 것처럼 의사 누가는 마리아의 찬가와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을 그의 복음서 제1장에 한꺼번에 싣고 있습니다(1:46-55, 67-79).

결론적으로42절의 내용을 보면 처녀 마리아가 이미 태중에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있습니다(1:42).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약혼한 처녀가 남편의 아기가 아니라 다른 이의 아들을 임신하고 있습니다곧 배가 불러올 것입니다이웃의 눈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습니다율법에 따르면아기의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고 함께 죽임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더구나 마리아의 가문은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입니다율법을 모범적으로 준수해야만 하는 집안입니다.

그와 같은 위기 가운데서 의사 누가는 엘리사벳에게 성령이 충만하여 태중에 메시아를 간직하고 있는 마리아를 축복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나아가서 마리아의 찬가와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그것은 한 마디로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므로 전적으로 믿고 맡기라는 것입니다피조물이며 종인 인간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걱정과 근심을 태산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경이며 하나님경외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는 과감하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목수 요셉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 일을 가장 조용하게 처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뒷부분에서 기록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미 마태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는(1:18-25)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줄 그는 벌써 믿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처녀 마리아처럼 의사 누가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을 정확하게 자신이 종으로서 수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주인의 명령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그 수행과정과 결과를 모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십니다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아무쪼록 그러한 깨달음과 은혜가 늘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참고자료3) 누가복음 강해 제12(1:46-50)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16()

 

처녀 마리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먼저 밝히다(1:46-50)

 

성령의 충만함이 엘리사벳에게 먼저 임하여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가 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을 찬양하고 있습니다(1:41-42, 44). 그리고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고 있는 처녀 마리아를 높이고 축복의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1:42-43, 45). 그러자 성령의 충만함이 처녀 마리아에게도 임하고 있습니다따라서 본문에서와 같이 마리아의 입을 통하여 놀랍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다음과 같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1)  첫째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구주가 되어 주시니 내 마음이 너무 기뻐서 내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1:46-47).

(2)  둘째피조물에 불과한 미천한 계집종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로 잉태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그 복이 만세에 미칠 것입니다(1:48). 그러한 큰 일을 행하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1:48-49a).

(3)  셋째거룩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하며 그 앞에 종으로 정직하게 서는 자에게 대대로 긍휼을 베풀어주시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것입니다(1:49b-50).

과연 그와 같은 내용들이 본문말씀에서 어떻게 자세하게 묘사가 되고 있는지 이제부터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마리아가 이르되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 기뻐하였음은(1:46-47); 의사 누가는 마리아의 여호와 하나님 찬양을 통하여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그것은 영혼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으로는 구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수단이 사람의 영혼입니다사람의 육체는 결코 그 수단이 될 수가 없습니다왜냐하면영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사람의 육체는 맥을 쓸 수가 없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본래 육신이란 하나님이 흙에서 취한 것이며 유한한 삶을 살도록 되어 있는 한시적인 것입니다.

(2)  선지자들의 비유 그대로 토기장이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빗고 계십니다그리고 뜻에 합당한 그릇을 빗게 되면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그렇지만 만약에 합당한 그릇으로 빗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대로 부수어버리십니다.

(3)  그러므로 토기장이 앞에 서게 되는 그릇은 그 생존여부가 토기장이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벌벌 떨게 됩니다마찬가지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사람의 육신은 두려워서 떨기 마련입니다그 생사여탈권이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육신으로는 하나님과 교통하거나 진심으로 찬양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혹시 몸으로 찬양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그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4)  사람의 마음이란 인간이 영과 육의 합성체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탄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시게 되면 메시아 역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이에 따라 그리스도와 사람은 그 마음으로 서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요컨대사람은 그 마음으로 육신을 입은 하나님을 반기며 기뻐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맥락에서 마리아는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 기뻐하였음은(1:47)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구주로 태어나시는 메시아가 보여줄 것입니다그러므로 구주 메시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참으로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기쁨의 복을 만민이 누리도록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마음가짐이라고 하겠습니다그것이 선민사상을 극복하고 있는 성도들의 메시아 신앙입니다.

둘째로,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1:48); 마리아는 자신을 비천한 여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장차 만세에 이르도록 사람들이 자신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1:26-27).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며 창조주이신 주인의 뜻대로 일을 해야만 하는 일꾼에 불과합니다여기서 마리아가 자신을 비천한 여종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비천한 피조물이며 종입니다.

(2)  그런데 마리아의 복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녀는 존귀한 자이며 하나님의 복을 받은 여인이 되고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성도의 속사람 속에 성령님께서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전을 만드시고 그곳에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신다면(14:16-21), 성도들도 마리아의 축복을 그대로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1:48).

셋째로, 능하신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 거룩하시며(1:49);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에 구분이 있습니다그 구분을 알게 해주고 있는 용어가 이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능하신 이, 큰 일, 그 이름, 거룩 등입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능하신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17:1, 엘 샤다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사람의 상식과 사회적인 통념 그리고 자연적인 이치를 초월하고 있는 능력입니다그와 같은 차이와 구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자가 신앙생활을 잘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만약 그 차이를 무시하게 되면 그만 사탄처럼 교만한 존재가 되어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14:12-19).

(2)  큰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마리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인 그녀의 복중에서 잉태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그와 같이 전례가 없는 새로운 역사가 창출이 될 수가 있습니다오로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만들어내시는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1:35, 37).

(3)  그 이름”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그 이름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스스로 있는 자’로서 여호와’입니다(3:14).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피조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나아가서 피조물보다 먼저 계신 자이며 창조주라는 의미입니다그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에 대하여 훗날 세례 요한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15).

(4)  거룩”은 세상적인 가치를 뛰어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세상적인 잣대로 그 생각을 잴 수가 없으며 사람의 상식으로 그 행동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55:8-9). 예를 들면사람들은 이기적이며 현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기가 힘이 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이나 현세적인 구복사상에 사로잡히지를 아니하십니다.

(5)  구체적으로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 전체의 입장을 살피시고 모두를 살리고 돌보고자 하십니다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주고자 하십니다그와 같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인간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써는 도저히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그 일을 위해서 보혜사로 이 세상에 오시는 분이 메시아와 성령님이십니다(3:16, 14:16-17).

넷째로, 긍휼하심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1:50);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선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의 선한 형상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이른바 은혜’와 긍휼’입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1)  그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모세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가 이르되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8-19).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때문에 피조물들이 모두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그것이 생명을 살리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결국은그 일을 창조주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서 공의의 정신으로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세상에서 빛나며 찬송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여기서 은혜’라고 하는 것은 공평한 것입니다빛을 주시고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달리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5:45-48). 그런데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불공평하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왜냐하면사람들의 이기적인 소유욕과 지배욕 때문에 경쟁에서 낙오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방도가 사라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살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 긍휼이기 때문입니다.

(3)  긍휼’이란 마치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대로 행정행위를 하다가 보면 그 때문에 크게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자가 발생하게 될 때에 그것을 구제하는 개념과 흡사합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두 가지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은혜가 먼저 있습니다그 다음에는 개인별 구제의 절차로서 긍휼의 장치가 마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마리아가 서방이 없이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기에 목숨이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이제는 메시아를 통하여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장차 메시아를 보게 되면 마음이 기쁘게 되고 성도의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있게 되어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메시아의 구원사역으로 말미암아 장차 비천한 종이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큰 복 주심을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셋째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새 역사를 창조하셨으니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4)  넷째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를 긍휼로 구원하여 주십니다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며 그 말씀을 경외하는 자에게 긍휼의 구원의 역사가 먼저 임할 것입니다그와 같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위와 같이 역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들도 마리아의 찬양이 우리들의 찬양이 될 수 있도록 본문의 의미를 재삼 음미해야만 하겠습니다아무쪼록 하나님의 긍휼을 누리고 그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참고자료4) 누가복음 강해 제15(1:57-63)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19()

 

제사장 사가랴의 뒤를 이을 것인가아니면 선지자 엘리야의 뒤를 이을 것인가?(1:57-63)

 

의사 누가는 그가 발로 뛰면서 직접 수집한 자료를 가지고 역사적인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1:3). 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란 나사렛 예수의 탄생과 그 생애입니다그리고 그가 규명하고자 하는 사실은 나사렛 예수가 과연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가 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 그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저술과 공식적인 보고서들이 더러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2). 하지만 누가가 보기에는 미흡한 구석이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일까요그것은 현장검증과 고증의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누가는 자신이 사건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하고자 열심입니다.

의사 누가는 자신이 직접 수집한 증거와 자료들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단계에서부터 나름대로 독특한 해석을 얻게 됩니다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그러한 특이한 사실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아주 간략하게 복음서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1:3-4).

오늘의 본문은 그러한 의사 누가의 복음서의 특이성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대목에 해당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제사장 사가랴의 부부가 늘그막에 처음으로 그것도 기적적으로 얻고 있는 아들에 대하여 자신들의 혈통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를 결코 원하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1:59-63).

그 뜻을 새겨보자면사가랴의 뒤를 잇는 단순한 혈통적인 의미의 제사장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신들의 아들 요한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어 예언하신 그 사명을 감당해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1:15-17). 사가랴 부부는 아들 요한이 장차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과 이 땅에 오시는 구속자 메시아에게로 돌이키는데 기여하는 마치 그 옛날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풀이를 해보자면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외면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방 신을 섬기고 현세적인 복을 얻기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이른바 영적으로 캄캄한 이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빛을 던져주기를 그들은 아들 요한의 생애를 바치면서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한 맥락에서사가랴 부부는 본문에서 혈통적인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넘어서고 있으며메시아를 보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온 세상구원의 뜻을 이미 따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본문에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이웃 친족이 주께서 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1:57-58); 마리아가 돌아가고 얼마가 지난 시점일까요그리고 이웃과 친족들이 어째서 더 크게 축하를 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1)  평생 불임여성이었던 늙은 여인 엘리사벳이 기적적으로 그 몸이 치유되고 회복이 되어서 남편인 제사장 사가랴의 씨를 잉태하게 됩니다그녀는 이웃 보기에 민망해서 5달 동안 집에서만 숨어서 지내고 있습니다(1:24). 그런데 임신한지 6달에 접어들자 갑자기 친족인 처녀 마리아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1:36, 40).

(2)  처녀 마리아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의 능력으로 혼자서 아기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1:30-38). 그 순간 엘리사벳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복중의 아기가 기뻐서 뛰놀고 있습니다(1:41).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언의 말씀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바야흐로 누구나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미 처녀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42).

(3)  3달쯤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친족인 처녀 마리아가 드디어 자기집으로 돌아갔습니다(1:56). 그리고 2달이 더 지나가 마침내 산달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엘리사벳은 더 이상 집안에서 숨어만 지낼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열 달을 엘리사벳의 복중에서 자라고 있던 아들이 태어나고자 몸부림을 치면서 엄청난 산통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급히 산파를 불러서 무사히 아들을 출산하게 됩니다(1:57). 그 소식을 듣게 된 이웃과 친족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늙은 사가랴와 불임인 부인 사이에서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이 늘그막에 기적적으로 탄생을 했으니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그들 부부에게 크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1:58).

둘째로,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그들이 이르되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1:59-61); 출생한 이스라엘의 사내아기는 모두 율법에 따라 8일이 되면 할례를 받아야만 합니다(17:12). 이웃과 친족들이 몰려와서 할례의식을 경건하게 행하고 있습니다그 자리에서 벙어리 신세가 되어 있는 제사장 사가랴를 대신하여 친족들이 아들 이름을 제사장 사가랴의 뒤를 잇도록 역시 사가랴(그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것임)로 정하자고 제안을 합니다(1:59). 그러나 산모인 엘리사벳이 극구 반대를 합니다아들의 이름을 요한(그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임)으로 한다는 것입니다(1:60). 친족들이 선뜻 동의를 하지 못합니다그 이유는 제사장의 이름자로는 요한’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1:61).

셋째로,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그가 서판을 달라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1:62-63); 그래서 친족들이 부득이 아기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의 의사를 타진하게 됩니다;

(1)  친족들이 제스처를 사용하여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 것인지 벙어리 신세가 되어 있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묻습니다(1:62). 그때 사가랴가 서판(書板글을 쓸 수 있는 나무판)에 아들의 이름자를 적게 됩니다놀랍게도 자신의 제사장의 혈통을 잇는 사가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있습니다.

(2)  그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그 사명을 다하라는 뜻으로 요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해주고 있습니다(1:63). 그것은 제사장 사가랴가 자신의 후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메시아의 나라 곧 새로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세상을 만드시는데 기꺼이 바치겠다고 하는 큰 결심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그 사실을 믿고 회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을 의미하는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그때부터 죄인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말씀의 뜻을 실천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떳떳하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됩니다(22:28-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태반입니다그러한 자들에게 의사 누가는 사가랴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부부는 늘그막에 하나님의 긍휼로 기적적으로 얻은 그 귀한 아들을 자신들의 육신적인 후사를 잇는데 결코 사용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목적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아들로 사용해달라고 그 인생을 바치고 있습니다의사 누가는 그 장면을 기록하면서 모든 성도들에게 부디 사가랴 부부와 같은 결단으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글을 읽으시면서 의사 누가의 말과 같이 결단하고(1:61-63), 사도 바울의 권면과 같이 자신의 거듭난 인생을 영적인 산 제물로 드리는 인생으로(12:1-2살아가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참고자료5) 누가복음 강해 제17(1:68-71)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21()

 

여호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시어 그 종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세 가지의 일에 대하여 제사장 사가랴가 예언을 하다(1:68-71).

 

늘그막에 얻은 천금(千金엄청난 양의 금과 같이 귀함)과 같은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바치겠다고 제사장 사가랴가 밝히자 그의 이웃들과 친족들이 모두 놀라게 됩니다(1:63). 그 뿐만이 아닙니다. 24반차를 쫓아 지난해에 운이 좋게도 제사장으로 뽑히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1주일간 봉사를 하고 돌아온 사가랴가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있습니다(1:5, 8, 20-23). 그런데 그가 돌연 입과 혀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말을 다시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1:64a).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사가랴는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 아들을 여호와께서 메시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찬양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1:13-20, 64b). 그 순간 성령의 충만함이 그에게 임하여 놀라운 예언을 하게 됩니다(1:67). 그 주 내용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종 이스라엘에게(1:54-55메시아를 보내셔서①첫째돌보시고 ②둘째속량하시며 ③셋째그 종 다윗의 집을 다시 구원하신다는 세 가지의 역사입니다(1:68-69).

그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1:70). 그런데 사가랴가 본문에서 그 종 다윗의 집의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누구로부터 구원을 해주시는 지에 대하여 매우 의미심장한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그것은 “①우리 원수에게서와 ②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1:71)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원수’가 누구일까요그리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는 누구일까요그 종 다윗의 집에게 원수가 되고 있는 자와 그 집을 미워하는 모든 자가 누구인지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번 찾아보고자 합니다그 일을 위하여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자세하게 다음과 같이 검토해봅니다.

첫째로, 찬송하리로다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그 백성을 돌보속량하시며(1:68); 제사장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놀라운 예언을 행하고 있습니다(1:67). 그 첫 마디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찬송입니다그리고 찬양의 이유는 그 백성’ 돌보고 속량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본문의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용어의 설명에 유의를 하고자 합니다;

(1)  첫째, 주 이스라엘’이 아니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잘못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이 주 이스라엘’의 의미입니다;

1)    목이 뻣뻣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인 자신들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경영하실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래서 감히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서 자신들이 주인인 것처럼 오만합니다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조상 때부터 자신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존재하는 수호신으로 생각합니다.

2)    따라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면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지 아니하게 되면 가차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삼으며 우상문화를 마음껏 받아들이고 있습니다그렇게 자신들이 주인이고 하나님이 자신들의 종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주 이스라엘’이라는 용어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3)    제사장 사갸랴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 주 이스라엘’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그것이 그의 예언에 나타나고 있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용어입니다(1:68). 그 용어와 의미를 같이하고 있는 용어가 이미 마리아의 찬가(1:46-55)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 종 이스라엘’입니다(1:54).

(2)  둘째, 그 백성’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선민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이 창조주 여호와라고 정확하게 신앙고백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소수이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예를 들면선지자 엘리야의 시대가 그러합니다.

2)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기기에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왕상16:30-33). 그래서 엘리야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 경외자가 없는 줄 알고 절망을 하고 있습니다혼자 살아남아서 희망도 없이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천국에 불려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해달라고 여호와에게 간구하고 있습니다(왕상19:4).

3)    그러나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서 그는 회개를 합니다바알에게 고개를 숙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종을 7,000명이나 남겨두실 것이라는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왕상19:18). 그 말씀 그대로 선지자 엘리야는 동네잔치까지 벌이면서 자신의 제자로 따라 나서는 엘리사를 만나게 됩니다(왕상19:21).

4)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놀라운 역사가 세 가지나 임하게 된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①신위적인 돌보심과메시아의 구속하심이 있게 됩니다그리고 원수인 사탄과 악한 영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시는 여호와의 구원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1:68-71).

(3)  셋째, 돌보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예를 들면, 89세의 사라를 하나님께서 돌보십니다(21:1-3). 그 결과 약속의 아들 이삭을 잉태하고 그 다음해에 무사히 출산을 하게 만듭니다그러므로 돌보신다고 하는 것은 보통의 도우심이 아닙니다창조주의 능력으로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여호와의 종을 적극적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며 그 열매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2)    여기서는 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세례 요한을 태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1:13, 24, 57). 그리고 처녀 마리아에게 메시아를 잉태시키고 출생시키는 그 모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35-37).

(4)  넷째, 속량하신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지배와 죄와 사망으로부터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구해 내신다는 것입니다;

1)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마리아의 아들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어떻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까요그 방법이 바로 속량하신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세례 요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의 역할입니다.

2)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십니다그 결과 그 대속의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메시아가 자신의 죽음으로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인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속죄하였으므로 그 사실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종들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속량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기뻐합니다왜냐하면 그 사건을 통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이방인들까지 구원을 받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진실한 종입니다그들이 좁은 선민사상의 울타리를 뛰어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둘째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1:69); 흔히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왜냐하면선지자 이사야가 이새의 줄기나 뿌리(11:1, 10)에서 싹이 난다고 했지 곧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예언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의사 누가의 주장과 같이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에게서 메시아가 탄생하고 있습니다(1:5, 27, 36). 단지 아기 예수를 마리아의 정혼자인 다윗의 후손 목수 요셉이 양자로 삼고 있을 뿐입니다(1:18-25). 그러므로 다윗의 왕가와 메시아는 혈통적인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2)  그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본문의 구절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구원의 뿔을 찾던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다윗의 집안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입니다(1:69). 그러므로 제사장다운 제사장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집안이 그리스도를 먼저 맞이하고 온 세상에 구원을 전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이것은 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1:70); 선지자의 말씀 가운데 어느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1)  선지자의 외침은 세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①첫째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고 있는 선민들의 영적인 타락을 먼저 지적하고 있습니다②둘째회개하지 아니하면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종이 될 것입니다③셋째회개를 하고 다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다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제사장 사가랴의 시대는 오래 전에 선민들의 나라가 모두 망하고 이방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때입니다그것은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화 되어 버린 결과입니다그러므로 이제는 세 번째의 내용 곧 선민들이 회개를 하고 다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그리하면 선지자들의 외침 그대로 다시 제사장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들이 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그것이 여기서 제사장 사가랴가 예언으로 전하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인 것입니다(1:70).

넷째로,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1:71); 참으로 의미심장한 용어 두 가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그것은 우리 원수’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라는 표현입니다그 의미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1)  우리 원수’는 악의 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6:5, 8:21);

1)    그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원수이며 영적인 것들입니다(2:2, 6:12). 세상의 것들을 동원하여 하나님과 대적하며 창조주의 뜻을 저지하고자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사탄과 그 부하들인 악한 영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어떻게 하면 영적인 악한 세력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가 되어 있는 인간과 분리시킬 수가 있을까요그 방법이 메시아가 인간으로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가 악한 영들의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시고 만민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실 때에 그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19:30). 이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서 악한 원수를 도려낼 수 있는 방법이 마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6:4, 8:1-2).

4)    그러므로 제사장 사가랴가 우리 원수’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메시아의 구원의 역사가 선민사회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이방인에게로 확장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악한 영들은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붙들어 두고 있는 진짜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는 오만한 선민을 미워하고 있는 주변의 이방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한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민들이 얼마나 주위에 자랑을 하며 위세를 부리고 있는지 모릅니다자신들은 구원의 대상이고 이웃 이방인들은 모두 멸망의 대상이라고 편을 가르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인위적인 이분법과 이웃차별을 좋아할 나라와 민족이 없습니다그 결과 선민들은 모든 이웃나라와 백성들의 공통적인 적입니다미움의 대상인 것입니다그렇게 자신들이 오만하고 교만하여 화를 자초하고 있으면서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오히려 간구하고 있습니다이웃의 강대국들을 부디 물리쳐달라는 것입니다그 기도가 받아들여질까요역사적으로 별로 긍정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그와 달리 성도들이 메시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자 합니다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성과 그 명령을 싫어하는 나라와 백성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그들이 선호하고 있는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현세구복적인 신앙생활도 청산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전하고 있으니 그러합니다그래서 선교에 나선 성도들이 핍박과 환난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그러한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구원의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대단합니다왜냐하면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도인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성도를구원하시는 능력자이시기 때문입니다(1:71).

결론적으로메시아의 사명이 그 종 다윗의 집에 있어서는 마치 성전의 구원의 뿔과 같다고 사가랴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69).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는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구원의 뿔에 희생을 드리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먼저 임하게 됩니다(16:15-19).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헌신하고 있는 다윗의 집과 같은 성도의 가문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1:69).

의사 누가는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을 통하여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인 처녀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마리아를 조용히 아내로 데리고 오는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에게 먼저 구원의 은혜가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세 가지입니다①첫째강력하게 성도들 지키시고 신위적인 능력으로 보호하십니다그것이 돌보심입니다②둘째성도들의 죄의 삯을 메시아가 이미 십자가에서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믿도록 만들어줍니다그 결과 거룩한 백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③셋째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죄와 사망으로 끌고 가려는 악한 영 그 원수를 없애 버리시고 또한 성도들의 말씀전파와 그리스도의 제자양성을 방해하는 모든 적들을 분쇄해 주십니다.

과연 그러한 세 가지의 은혜가 임하는지 한번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아무쪼록 사가랴가 예언하고 있는 그와 같은 메시아와 여호와의 은혜를 풍성하게 맛보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참고자료6) 누가복음 강해 제18(1:72-75)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22(주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선민들을 어떻게 주의 앞에서 성결과 공의로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인가?(1:72-75)

 

의사 누가는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을 통하여 메시아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1:72-73). 그 맹세는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고 한평생 사는 동안 주의 앞에서 성결하게 공의를 행함으로써 두려움이 없이 영생토록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1:74-75).

실제로 그러한 맹세가 모세오경의 어디에 적혀 있는지 찾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다만 창세기 제17장 제1절과 제50장 제20-21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20-21).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모든 일을 여호와 앞에서 여쭈어보고 그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는 것입니다그것은 한 마디로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은 종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그것이 영 쉽지가 않습니다그 이유는 자기의 뜻대로 한 평생을 살아보고자 하는 자의식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그 반면에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는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의 종이 언제나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의 이기심과 하나님의 공의가 늘 갈등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경외에서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22:10-14). 그들의 하나님신앙은 여전히 선민구원사상과 현세구복사상을 보여주고 있지 결코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이르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선민들의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이키실 것이며(1:15-17), 아울러 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하는 인생으로(26:52-54바꾸어주시는 것일까요?

그 답을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 제1장에서 제시해주고 있습니다세례 요한과 메시아의 탄생에서부터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와 같은 기본적인 인식을 가지고 이제부터 본문말씀의 각 구절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그 거룩한 언약 기억하셨으니(1:72); 한 마디로출애굽의 역사를 반추하고 있는 내용입니다세상제국 애굽의 치하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엽게 생각하십니다(2:23). 그리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에 대하여 기억하십니다(2:24-25). 그 결과 출애굽의 역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러한 옛날 이야기는 의미상 다음과 같이 확대가 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선민 이스라엘 백성만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이방인들도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그러므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따라 선민의 조상만 긍휼히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요컨대 만민이 모두 구원의 대상입니다.

(2)  선민 이스라엘만 고쳐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선민과 원수지간(怨讐之間원수의 관계)이 되고 있는 애굽과 앗수르도 고쳐서 사용하실 것입니다그 사실은 벌써 이사야의 예언에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그들을 고쳐주시리라(19:22),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내 백성 애굽이여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4-25).

(3)  그러므로 세상제국인 애굽에 의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모든 세상의 사람들이 전부 경험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굴레에 대하여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사람들의 진짜 원수는 패권국이나 강대국 또는 침탈하는 이웃이 아닙니다그들은 깃털에 불과한 존재입니다진짜 원수 곧 원수의 뿌리가 되고 있는 실체는 사람들을 죄와 사망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사탄과 그의 부하들인 악한 영들인 것입니다(6:12).

(4)  따라서 그 원수의 실체를 어떻게 도려내어 사람과 분리시킬 것인가하는 문제가 구원문제의 본질이 되고 있습니다(3:15, 8:21, 9:11-17, 8:1-2). 그와 같은 맥락에서메시아가 오신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악한 영들의 머리인 사탄의 죄와 죽음의 권세를 박살내기 위하여 오십니다(3:15). 그래서 의사 누가는 순수한 여자의 후손으로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신다는 측면을 그의 복음서 제1장에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1:34-38).

(5)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대하여 살펴봅니다그 주요한 특징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생을 살게 되면 그를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큰 복이 전해진다는 것입니다(12:1-3).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과 애굽 그리고 블레셋의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그 시행착오를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정답을 말씀해주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6)  해답은 이미 주어지고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매사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묻고 정확하게 그 뜻을 깨달아서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①첫째사람은 스스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의식이 강한 존재입니다그래서 하나님에게 묻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행하기를 좋아합니다②둘째모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부터 살고자 하는 이기심이 먼저입니다③셋째영생보다는 현세에서 당장 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7)  그와 같은 사람의 심성을 어떻게 하면 완전하게 고칠 수가 있을까요그렇게 행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그 해답이 메시아이며 성령님이십니다그와 같이 행하는 인생을 메시아가 자신의 일생으로 보여주십니다(16:24-28, 22:28-30, 15:1-5, 16:33).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능력을 공급해주십니다(1:8). 그러한 해결책에 대하여 특히 의사 누가의 글인 그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많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우리가 원수 에서 건지심을 받고(1:73-74);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원수의 손’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선민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합니다그런데 실제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에 국한이 되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아브라함은 8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삭입니다(21:1-7). 그리고 이삭도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아버지입니다(25:21-26). 그 가운데 야곱이 훗날 하나님의 대 족장의 칭호 이스라엘을 가지게 될 뿐입니다(32:28, 35:10).

(2)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만 자신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이삭의 장남인 에서의 후손도 역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그리고 첩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16:15-16그의 자손들(25:12-18), 또한 후처 그두라가 낳은 6아들과(25:1-2그들의 후손들이(25:3-6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그와 같은 의미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선민과 이방인의 조상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3)  원수의 손’은 원수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는 용어입니다여기서 원수’는 사탄과 그의 부하인 악한 영들’이라고 이미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그렇다면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그것이 죄와 사망의 권세입니다왜냐하면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4)  본문에서 사가랴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1:74)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바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킨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사족을 더하자면그 작업은 메시아와 성령님의 합작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총지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 말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 () 두려움이 없이 (영생토록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1:75);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요의사 누가는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 가운데 그 해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첫째인생의 목적은 종신토록 하나님 앞에서 성결한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1)    흔히 성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화의 과정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처음부터 성도가 만족스러운 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거룩해진다는 의미입니다기본적으로거듭난 성도가 영적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그 속사람 속에 성전이 마련이 됩니다(고전6:19). 그러면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도의 영이 활성화되어 영적인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고전6:20). 그렇지만 처음에는 내주하신 성령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거나 지배적인 것이 아닙니다왜 그럴까요?

2)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 제3장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볼지어다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0-22). 두 가지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3)    첫째아버지 하나님 또는 주님은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절대로 그 문을 강제로 열어젖히지를 아니하십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인간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1:26-27).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선택권과 자유의지를 무시하시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형상과 모습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그와 같은 맥락에서아무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시급하다고 하더라도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면서 그 문 바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65:2, 10:21).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이며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그 문을 기꺼이 열 때까지입니다.

4)    둘째그 문을 열지 말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세력들이 있습니다인간의 이기주의와 현세구복사상을 부추기고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사람들은 그 세력과 싸워서 이기기가 참 어렵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의 논리는세상의 창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진리를(1:1근본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만 빼고 보면모두가 이치에 맞으며 현실타당성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모릅니다이에 따라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이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인정하기를 자꾸만 늦추고 있습니다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이론과 해석을 지니고 있는데 구태여 보이지 아니하는 창조주의 종 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참고로창조주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는 세력들인지라 그들 나름대로 세상적인 진리와 이치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10:1-3). 그렇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창조주의 의도와 능력을 부인하면서 자력갱생과 구원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피조물의 노력에 불과합니다따라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온전히 실천하기에는 한 마디로 족탈불급(足脫不及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 재주나 역량이 상대방의 발치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함)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인생의 목적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공의(公義righteousness)를 실천하는 것입니다공의는 본래 창조주의 것입니다왜냐하면그 의미가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공평하게 그 삶을 돌보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대하여 마치 자식을 사랑하듯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렇게 행할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그 이유는 이 세상이란 재화가 한정이 되어 있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이므로 자기살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어떻게 모두가 함께 살자고 하는 이상론(理想論idealism)을 마냥 부르짖으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2)   혹자는 도()를 깨달아 그렇게 실천하는 한 평생을 살아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하지만 피조물의 입장에서 창조주의 마음을 완전히 깨닫고 완벽하게 공의의 정신을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피조물은 그 자신 창조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만약에 그 구분이 사라지거나 그 분별이 무시가 되어버린다고 한다면그것은 유신론(有神論, theism,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이론)이 아니라 이미 무신론(無神論, atheism, 신이 없다고 하는 사상)이거나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 물질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하는 이론)이라고 하겠습니다그러므로 스스로 인간이 공의의 정신을 실천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론상 피조물이 지켜야 하는 법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이미 하나님신앙이나 하나님경외의 삶을 이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따라서 작은 결론을 맺어보자면창조주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공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실 때에 한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얻고 있는 자들이 누가복음 제1장에서는 세례 요한과 메시아 그리고 제사장 사가랴 부부와 처녀 마리아 등이라고 하겠습니다참고로창조주를 섬기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라고 가르쳐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한번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3)  셋째그리하면 죄와 사망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1)    메시아가 오심으로 사탄과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던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집니다(8:2). 하나님의 아들이 처녀 마리아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십자가 대속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인간을 사로잡고 있던 사탄의 정죄함을 없애버리시기 때문입니다(3:15, 8:1).

2)    하지만 그 사실을 영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14:26-27, 16:13, 20:22, 8:2). 따라서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믿고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그리스도의 승리가 주시는 마음속 평강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4:14, 20:21).

3)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대속의 십자가 제사와 무덤 속 부활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그것은 성도가 자신의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일생 가운데 이미 하나의 모범답안으로 제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6:19-20). 그 뜻을 따라 성도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그리스도의 생애와 같은 놀라운 미래를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22:28-30).

(4)  넷째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부활하여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게 됩니다;

1)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사상은 바리새인들의 부활사상과 상당히 다릅니다예수님과 베다니 마르다와의 대화 가운데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이르되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이것을 네가 믿느냐?(11:24-26).

2)   사람이 죽고 나서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입니다그 가르침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 마르다입니다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상당히 다릅니다그리스도가 부활이며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믿는 자는 살아서도 영적으로 부활을 경험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고 아버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은 이미 부활의 영을 모시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그와 같은 놀라운 인생을 이 세상에서도 경험하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설명이십니다그 가르치심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6)고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강조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메시아가 하나님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는 인생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사갸랴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72-75).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은 비록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성장을 하시지만 사람의 공통적인 약점인 이기심과 현세구복사상을 극복하십니다그리고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서 자신에게 보내어주시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을 대속의 산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그와 같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메시아가 오신 것이라고 세상사람들에게 소개를 하고자 사가랴의 아들로써 세례 요한이 탄생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사장 사가랴는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하게 된다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그 언약이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왜냐하면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과 더불어 이방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모두 구원하고자 메시아를 보내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성도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로 끌고 들어가던 원수들이 이제는 궤멸이 되고 말 것입니다성도들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평생 주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게 됩니다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평강을 누리며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1:72-75 의역).

아무쪼록 사가랴가 예언하고 있는 그 언약의 성취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참고자료7) 누가복음 강해 제19(1:76-80)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5 23()

 

제사장 사가랴가 예언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 세례 요한의 사명과 선지자의 사명에 대하여(1:76-80)

 

본문에서 제사장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의 아들로 태어난 세례 요한의 신분과 사명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무엇보다도 세례 요한의 신분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76a). 이에 따라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1)  첫째메시아보다 먼저 태어나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게 됩니다(1:76b).

(2)  둘째하나님의 백성에게 메시아의 죄 사함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1:77).

(3)  셋째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메시아를 제물로 보내어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사실을 전하게 됩니다(1:78a).

(4)  넷째메시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빛이 비로소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비추어오게 됩니다(1:78b-79a).

(5)  다섯째메시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맛보며 살게 되고 영원한 평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1:79b).

이상과 같은 세례 요한의 사명은 모든 선지자들의 사명을 완성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왜냐하면세례 요한이 메시아를 직접 백성들에게 소개하며 그 길을 바로 앞에서 예비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역사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그들은 선민들에게 진노와 멸망으로 향하고 있는 그 길을 돌이켜 부디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효과가 미미합니다따라서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완전한 구속자 메시아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아가 이제 오시게 됩니다세례 요한은 그 메시아에게 모든 선지자들의 소망을 이루어달라고 부탁할 것입니다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사명과 역할이 참으로 중요합니다이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닫게 된 세례 요한은 그와 같은 중차대한 역할을 장차 감당하기 위하여 히브리정경을 일찍 공부한 다음에 고행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1:80).

그것은 세속을 떠나 광야로 들어가서 적극적인 금욕주의 경건의 삶을 선택한 것을 말합니다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 나타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며 물세례를 줄 때까지 그는 광야에서 마치 당시의 엣세네 파처럼 히브리정경의 연구와 경건생활 그리고 철저한 금욕수련에 힘썼다고 하겠습니다(3:1-6, 3:2-6).

그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한 구절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 아이여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주 앞에 앞서 가서그 길을 준비하여(1:76); 사가랴는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어린 아기 세례 요한을 앞에 두고서(1:59그 앞길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67). 그 예언의 내용을 의사 누가가 수집하여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1:68-79), 사가랴의 예언은 모인 친족과 이웃들 앞에서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1:58);

(1)  우선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신분과 사명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간략하게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장차 하나님의 선지자로 불리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요한의 사명은 그보다 약간 뒤에 나타나실 메시아를 위하여 그 길을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1:76 의역).

(2)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 시초가 아브라함입니다(20:7). 모세도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18:15). 그 후 사무엘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수많은 선지자가 나타나서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선지자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장차 선지자활동을 개시할 것입니다(1:76a).

(3)  그런데 세례 요한의 선지자로서의 활동에 대하여 사가랴는 우선 두 가지 글귀를 사용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주 앞에 앞서 가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1:76b);

1)    여기서의 ’는 이 세상에 메시아로 태어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그 예언 그대로 세례 요한은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시는 메시아보다 6개월 먼저 이웃 마을에서 출생하고 있습니다(1:36).

2)    그리고 세례 요한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먼저 선지자 활동을 전개할 것입니다그의 사명은 메시아께서 행하실 일을 편히 하실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드리는 것입니다예를 들면백성들에게 메시아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일(1:29-36), 메시아의 제자를 미리 일부나마 확보해두는 일(1:37-51), 메시아가 무엇 때문에 선민의 사회에 나타나시는지를 다시 말해주는 일 등입니다(3:9, 16).

둘째로, 주의 백성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1:77);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메시아의 사명이 과연 무엇일까요그것은 오랜 세월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해오고 있던 다윗의 후계자인 그 메시아일까요?

(1)  선민들의 소원에 따르게 되면 메시아는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자입니다그렇게 하나님의 힘과 무력으로써 시온의 영광을 다시 온 세상에 떨쳐야만 합니다그 결과 선민들은 다시 세상의 주인이 되고 이웃 이방인들은 속국이 되어 선민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시대가 메시아로 말미암아 다시 도래해야만 합니다그것을 한 마디로 알기 쉽게 선민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희구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해줄 메시아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세례 요한의 메시아는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오시며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1:77). 요컨대선민들의 기대와 상상을 벗어나는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3)  그렇게 생소한 메시아를 세례 요한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를 해주지 아니하면 안됩니다그 역할이 참으로 곤욕스럽습니다따라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세례 요한은 그 심령을 굳건하게 하고자 일찍부터 말씀공부와 기도생활 그리고 경건한 삶에 매진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1:80).

셋째로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1:78); 사가랴는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희생양으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어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긍휼로 인한 메시아의 희생이 없으면 결코 치유와 회복이라는 새 시대의 광영이 하늘에서부터 이 땅으로 비추어올 수가 없다고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그 점에 대해서는 세례 요한 이전의 선지자들의 역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①첫째선민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며 우상문화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시늉에 불과하고 그들의 마음은 빨리 동산에 올라가서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수호신과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현세적인 복을 얻고 싶다는 것입니다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욕적인 삶을 즐기고 세상적인 성공과 쾌락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②둘째그와 같은 영적인 타락과 세상적인 부패를 청산하지 아니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될 따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③셋째그렇지만 그 죄악에서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시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실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2)  그렇게 선지자들이 계속 출현하여 수도 없이 외쳤지만 그 결과는 비극적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그 마음을 돌이키지를 아니합니다따라서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먼저 망하고 136년 후에는 주전 586년에 남조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그 후 일부 선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토로 돌아와 소규모이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하나님신앙을 회복하지만 강력한 외세에 의하여 휘둘리는 세월이 훨씬 더 깁니다그리고 선민들의 마음도 하나님신앙에서 다시 멀어져 버리고 맙니다그것이 소위  2성전시대 또는 중간기’의 역사입니다.

(3)  그와 같은 역사적인 우여곡절과 선민들의 하나님신앙의 거듭된 타락상을 보시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침내 중대한 결정을 내리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지 아니하는 자는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장하고 있는 선민의 영광이나 다윗 제국의 재건은 하나님신앙의 회복이나 구원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세상적인 가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이에 따라 사가랴의 예언과 같이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므로 하나같이 죄 사함을 말미암는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77).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차이가 없습니다그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완전한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고 또한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해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4)  그 긍휼이 바로 영원한 죄 사함의 제물로 메시아를 보내어주시는 것입니다이에 따라 메시아를 자신의 구속자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이 하늘에서부터 임하게 됩니다그 창조의 능력이 과연 무엇일까요그것을 오랜 세월 믿음의 열조들이 소망해왔음을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넷째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우리 발을 평강의 길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1:79);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두 가지의 큰 일을 행하십니다①첫째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속죄의 제사가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지게 하는 것입니다②둘째무덤 속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따라서 그 사실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부활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그와 같은 메시아의 사역에 대하여 사가랴가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영적으로 죄의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는 불쌍한 백성들입니다그러므로 세상적인 성공과 형통함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와 향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자신이 어떠한 죄의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달아야만 합니다솔직하게 자신의 힘과 지혜로써는 그 어두움과 악한 영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해야만 합니다그렇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는 자들에게 메시아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영적으로 임하게 됩니다(1:79a).

(2)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어주십니다성도에게 임재하여 평생 떠나지 아니하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날로 깨달아지고 성화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땅끝까지 전하게 됩니다(24:491:8). 그 마음속에 죄와 사망의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적인 평강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그리고 그 인생 끝에서 부활의 날을 맞이하며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1:79b).

다섯째로,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1:80); 심령(心靈영과 마음)이 강하여진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그 일을 위해서 왜 빈들에서 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1)  사람의 영과 마음이 강하여진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영향과 심적인 영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영적인 강화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질 때에 발생합니다그리고 심적인 강화는 마음속으로 확신이 생길 때에 발생하게 됩니다세례 요한의 경우에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있기에(1:15하나님과의 교제가 원활하고 영적인 강화가 일찍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그렇다면 마음속 확신은 어떻게 주어지고 있기에 심적인 강화를 얻고 있는 것일까요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세상경영의 이치를 많이 깨닫고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난 세례 요한은 주변의 레위 인 친족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히브리정경 두루마리를 빌려서 두루 읽으면서 자라나고 있습니다그래서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게 되고 그 이치를 깨닫고 있습니다하나님지식이 많아질수록 믿음에 대한 확신이 점점 강화되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심령만 강화되어서는 되지 않습니다심신도 아울러 단단하게 수련이 되어야만 합니다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세례 요한은 수행에 나서고 있습니다마치 엣세네 파 사람들처럼 광야로 찾아서 들어갑니다빈들에서 외로움과 굶주림을 이기면서 금욕주의적인 경건생활에 힘쓰고 있습니다(1:80b). 유대인들이 정식으로 출가하는 나이 30에 세례 요한이 드디어 요단 강가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기를 시작합니다(3:1-6). 회개하고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그 일은 메시아로 오신 나사렛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반년 전의 일입니다.  

결론적으로사가랴는 아들 요한의 신분이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전통적으로 선민들의 영적인 타락상에 대하여 지적을 하고 만약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장차 세례 요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얼마나 신랄하게 선민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3:7-9). 그런데 다른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은 좀 다릅니다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직접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동안 선민들이 부디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해오고 있습니다그러므로 메시아가 그들의 땅에 나타나게 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그 이유는 선민들이 바라고 있는 메시아의 상이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주고자 하시는 메시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구체적으로오랜 세월 외세의 지배에 시달리고 있는 선민들은 정치적인 구원자를 요청하고 있습니다외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치고 다윗 제국을 재건해줄 수 있는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는 그것이 아닙니다칼과 활을 사용하지 아니하며 더구나 천사를 불러서 점령군을 도말하는 것이 아닙니다(26:52-54).

하나님의 메시아는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십니다그리고 무덤 속에서 부활하심으로 성도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고자 하십니다어두운 죄와 사망의 그늘을 백성들에게 덧씌우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을 제거하고자 하십니다그와 같은 메시아의 사역의 방향에 대하여 어느 정도 백성들에게 사전에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요한은 메시아가 오시기 직전에 이 세상에 오며 메시아를 도울 제자를 준비하게 됩니다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일컬어 선지자들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있는 선지자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성도들도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이방인들에게 소개하고 그 역할을 알려주는 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그 점에 있어서 세례 요한과 같은 마감 선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아무쪼록 세례 요한과 같이 심령을 단단하게 하며 금욕적인 경건생활에 힘써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