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창세기 제50장에서 볼 수 있는 야곱의 거국적인 장례식 행렬과 애굽 총리 요셉의 위대한 신앙적 결단(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9. 04:00

제목; “창세기 제50장에서 볼 수 있는 야곱의 거국적인 장례식 행렬과 애굽 총리 요셉의 위대한 신앙적 결단”(50:1-26)

설교일; 주후 20246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5 9일 목요일 공개)

 

저는 주후 1984년에 처음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길에 유럽의 섬나라 영국의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의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으므로 젊은 시절입니다. 제가 방문했던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에는 주후 19세기에 대영제국(大英帝國)이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고대시대 애굽제국의 돌덩이들이 전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여러 돌덩이에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었기에 그것은 중요한 고대 유물입니다. 고대시대 인류의 문명이 큰 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그 가운데 큰 두개의 강 사이에서 발생한 문명이 제일 먼저입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크리스 강이 만나 거대한 삼각주를 만들고 있는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앞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청()나일 강과 백()나일 강이 만나 더욱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애굽의 문명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서는 애굽의 문명이 남긴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고대 석물을 가져다 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유독 저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암각화는 엄청난 규모의 장례 행렬입니다.

고대시대 애굽의 그 장례행렬은 언제 어떻게 발생한 것이기에 그러한 돌그림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암각화가 오늘날 현대인에게 전해주고 있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의 의문은 금방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영박물관 직원이 성경을 가지고 와서 창세기 제50장을 읽으면서 그 암각화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주전 19세기 애굽 총리인 아들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의 장례행렬을 묘사하고 있는 돌그림이라는 해설입니다.

그 직원이 한마디 의미가 있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여기의 암각화들입니다. 그 가운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이것 장례행렬 그림입니다. 히브리 바이블에 그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여 여러분에게 오늘날에도 보여주고 있답니다!... “.

그 자리에서 젊은 저는 두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  하나는, 성경의 기록 곧 창세기 제50장에 기록되어 있는 야곱의 거국적인 장례식 행렬이 없었다고 하면 애굽에서 영국이 가지고 온 그 돌그림을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인생이 진실로 중요한 것인지를 증거하기 위하여 그 돌그림을 남겨놓은 것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오래된 저의 추억과 그 고대 돌그림과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창세기 제50장의 말씀을 다시 한번 오늘 주일설교의 본문말씀으로 삼고 있습니다. 역시 창세기 제50장 전반부의 내용은 그 암각화의 그림이 증거하고 있는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제50장 후반부에는 지난 17년간 애굽에서의 이민생활에 있어서 자신들의 뒷배와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던 부친 야곱이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에 요셉의 이복형 10명이 애굽 총리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새삼 자신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비굴하게 간구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50:15-18).

부친의 유언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목숨과 자손들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비참한 이복형들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요셉총리가 그들에게 주고 있는 대답이 성경말씀의 입문서로 볼 수 있는 창세기의 마지막 결론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옮겨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12:17-21)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19-21);

그 말씀의 뜻을 깊이 묵상하면 두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은 죄를 범하고 창조주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하는 길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개인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고 집단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만민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부친 이스라엘에 이어 여호와의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자가 요셉 총리입니다. 그는 그후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을 창세기 제50장 말미에서는 두가지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요셉이 살아 있는 동안 자손 3대를 보면서 그들을 여호와신앙인으로 양육하는데 공을 들였다는 것입니다(50:22-23). 그가 애굽의 제12왕조의 수도 이트즈토위에서 수석총리로 오래 지내다가 퇴임한 다음에는 고센 땅으로 들어와서 성읍 라암셋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면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그렇게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47:6, 11-12).

(2) 또 하나는, 요셉이 110세 향년을 맞이하여 형제들과 자손들에게 먼 훗날 출애굽의 역사가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50:24, 15:13-16, 46:3-4). 그러므로 그때가 되면 부디 자신의 해골을 함께 출애굽하여 달라는 유언을 하면서(그것은 부친 이스라엘의 여호와신앙을 오래전에 총리직을 떠난 노년의 요셉이 나름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임, 47:29-31, 49:29-33), 110세의 요셉이 조용히 라암셋에서 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50:24-26). 

요컨대, 이방의 제국 애굽에서 총리 사브낫바네아의 후손으로서(41:45) 한평생 귀족으로 살아가는 삶보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여호와신앙을 본받아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요셉의 가르침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이기에 그 사실을 진리로 믿고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그 신앙을 대물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약속의 땅에서 맞이하는 부활과 영생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 성도들도 요셉처럼 이 세상을 편안히 떠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입문서로 볼 수 있는 창세기 기록의 총 결론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귀족이며 애굽 총리를 지낸 요셉의 부친이므로 미이라 처리를 한 것임, 41:41-45), 3. 40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요셉이 애굽의 전직 수석 총리이므로 부친 야곱의 장례는 바로의 허락으로 국장의 예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임).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17년전 애굽의 수석 총리였던 요셉은 수시로 바로를 알현할 수가 있었음, 45:17, 46:31, 47:1, 7. 그러나 이제는 바로 궁의 대신에게 부탁하여 말하고 자신의 말을 바로에게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음, 그로 미루어 보아 요셉은 그 사이에 총리의 직을 물러난 것으로 보임. 그 이유는 첫째, 7년 흉년이 벌써 끝났으며 둘째, 어린 바로가 그 사이에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이제는 강력하게 친정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15세 정도의 어린 태자가 세누스레트3세로 즉위하여 30세 정도가 되어 친정을 실시했다고 하면 그가 즉위할 때 37세였던 요셉총리는 15년이 지나 52세 나이에 재상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임),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총리를 역임했던 요셉이 자신의 부친 야곱이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이며 그 옛날 가나안 땅의 대족장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바로에게 인지시킨 것으로 보임),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라(요셉이 총리시절에 바로의 권력을 엄청나게 강화해준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로이기에 아직도 크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임, 47:14-25).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애굽에서 총리를 오래 지낸 요셉의 권세가 여전히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음), 8. 요셉의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떼와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가나안에서 장례를 치르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실한 담보임), 9. (바로의 호의로 야곱의 장례행렬을 보호하도록 파견이 된)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떼가 심히 컸더라”(50:1-9);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귀족이며 애굽 총리를 지낸 요셉의 부친이므로 미이라 처리를 한 것임, 41:41-45), 3. 40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70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요셉이 애굽의 전직 수석 총리이므로 부친 야곱의 장례는 바로의 허락으로 국장의 예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임)”(50:1-3);

1)    1절은 창세기 제49장 마지막 절을 이어받고 있는 구절입니다. 따라서 관련구절을 이어서 제3절까지 한꺼번에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3. 야곱이 (12) 아들에게 (축복기도와 유언을)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또는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1. 요셉이 그의 (별세한) 아버지 (야곱의)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시신)(몰약과 유향과 침향 섞은 것, 43:11, 19:39-40)으로 처리하게(미이라로 만들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시신을 미이라로 만드는데 있어서) 40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날수가 걸림이며, (41:45, 45:8-9, 수도권 온 지방의 귀족이며 전국총리를 오래 지낸 실권자 사브낫바네아의 부친상이므로 명문귀족의 관례에 쫓아) 애굽 사람들은 70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49:33-50:3).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2)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이 12아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미래에 형성할 12지파에 대하여 축복과 예언의 말씀을 전한 다음에 12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그 시신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헤브론 막벨라 굴에 믿음의 열조들과 함께 안장하여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 일이 모두 끝나자 만족해 하면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49:1-33). 부친이 별세하고 나자 아들 요셉이 가장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가 청소년시절에 부친의 편애를 크게 받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37:3). 따라서 그는 부친의 얼굴에 입을 맞추면서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있습니다(50:1).

3)    그 다음에는 얼른 자기의 귀족가문에 소속이 되어 있는 의원에게 부친의 시신을 미이라로 정중하게 처리해달라고 당부합니다(2a). 고대 애굽의 제국에서는 바로와 왕족 그리고 귀족이 죽으면 미이라로 처리하여 무덤에 안장을 하고 있는데 그 일에는 많은 향재료들이 들어갑니다(2b). 예를 들면, 시신에서 모든 액체를 제거하고 그 다음에는 내장을 전부 제거합니다. 그 대신에 몸무게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몰약으로 그 속을 채웁니다. 그리고 시신의 고약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하여 침향과 유향을 함께 넣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물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시신을 바짝 말리게 됩니다. 그렇게 고대 애굽에서 하나의 미이라를 만드는데 있어서 40일이 걸린다고 정확하게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3a).

4)    그런데 애굽의 명문거족인 그것도 오랜 세월 실세인 총리를 역임한 사브낫바네아의 부친상이므로 백성들이 국장에 버금가는 70일의 애곡을 하고 있습니다(3). 참고로, 훗날 이스라엘민족의 국부(國父)라고 볼 수 있는 모세가 120세로 별세하였을 때에 백성들이 30일간 애곡하고 있습니다(34:8). 그와 비교하면 이방인제국 애굽에서의 명문귀족 가문의 장례에 있어서는 그 애곡기간이 2배이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국의 영토가 워낙 넓기에 지방의 귀족 가운데 전국총리를 오래 지낸 요셉의 절친들이 초상집을 찾아오는데 있어서 많은 시일이 걸리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41:43-46).  

(2)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17년전 애굽의 수석 총리였던 요셉은 수시로 바로를 알현할 수가 있었음, 45:17, 46:31, 47:1, 7. 그러나 이제는 바로 궁의 대신에게 부탁하여 말하고 자신의 말을 바로에게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음, 그로 미루어 보아 요셉은 그 사이에 총리의 직을 물러난 것으로 보임. 그 이유는 첫째, 7년 흉년이 벌써 끝났으며 둘째, 어린 바로가 그 사이에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이제는 강력하게 친정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15세 정도의 어린 태자가 세누스레트3세로 즉위하여 30세 정도가 되어 친정을 실시했다고 하면 그가 즉위할 때 37세였던 요셉총리는 15년이 지나 52세 나이에 재상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임),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총리를 역임했던 요셉이 자신의 부친 야곱이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이며 그 옛날 가나안 땅의 대족장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바로에게 인지시킨 것으로 보임),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라(요셉이 총리시절에 바로의 권력을 엄청나게 강화해준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로이기에 아직도 크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임, 47:14-25).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애굽에서 총리를 오래 지낸 요셉의 권세가 여전히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음), 8. 요셉의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떼와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가나안에서 장례를 치르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실한 담보임), 9. (바로의 호의로 야곱의 장례행렬을 보호하도록 파견이 된)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떼가 심히 컸더라”(50:4-9);

1)    히브리인 청년 요셉을 애굽제국의 전국총리로 전격적으로 발탁한 강력한 바로가 제12왕조의 4번째 황제인 세누스레트2세입니다. 요셉을 발탁한 이유는 7년 연속 풍년에 이어 7년 연속 흉년이 찾아올 것이므로 그 흉년에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셉이 해몽한 바로의 꿈이야기 그대로 정말 7년간 애굽에 대단한 풍년이 계속되었습니다. 7년 동안 전국총리 사브낫바네아가 전국을 부지런히 순찰하면서 소출의 2할을 거두어 지방의 창고에 저장했습니다(41:47-49). 이제는 이어서 7년 흉년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공교롭게도 원숙한 바로 세누스레트2가 별세합니다. 주전 1,878년에 서거하면서 그는 총리 요셉에게 후사를 부탁합니다. 부디 미성년자인 태자를 바로로 세우고 그를 적극 보좌하여 7년 흉년을 이기고 애굽제국을 반석위에 세워달라는 유언입니다.

2)    신실한 수석총리 요셉이 그의 유언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 결과 7년 연속 흉년을 통하여 애굽의 바로 세누스레트3는 큰 돈을 벌고 전국의 토지와 백성들의 명실상부한 주인이 됩니다(47:13-26). 그리고 15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바로가 된 그가 30세가 되는 때 곧 주전 1,863년경에 세누스레트3세는 수석총리 요셉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친정을 펼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후 4년이 지나자 전직 총리 요셉의 집에서 부친상이 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바로가 듣고 있는데 궁내대신을 통하여(4) 사브낫바네아의 요청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5).

3)    요셉이 바로에게 베푼 큰 은혜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부탁은 즉석에서 들어줄 수가 있습니다(6). 바로의 허락을 얻은 요셉이 치밀하게 출애굽을 준비하고 시신을 가나안으로 운구하여 그곳에서 장례를 치르는 긴 여정을 다음과 같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로가 의심하지 아니하도록 자신들이 부친의 장사를 가나안에서 치르고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의미로 처자식과 가축과 재산을 모두 애굽에 남기고 있습니다(8). 둘째, 애굽인들의 조문을 현지에서 받고 장례행렬을 뒤따른다고 하더라도 애굽의 귀족들이 결코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조치합니다(7). 셋째, 가나안까지 험하고도 먼 길을 가고 있으므로 바로가 보내어준 애굽의 군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9).  

 

둘째로, “10. 그들이 요단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점으로 하여 모세오경을 저술하고 있다고 보면, 요단 강 건너편은 그 동편인 얍복시내를 말하고 있는 것임. 그곳에서 숙적 에서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야곱이 처자식을 살리고자 밤새도록 여호와께 눈물을 흘리고 간구한 것을 아들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 따라서 그 생각이 나서 몸부림을 치면서 애통해하고 있는 것임, 32:9-12, 24-32),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애굽인의 곡함)이라 하였으니 요단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49:29), 이는 아브라함이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이더라(49:30-32, 23:16-20).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50:5, 41:45, 애굽의 총리를 지낸 귀족 사브낫바네아 곧 요셉이 황제인 바로와의 약속을 지킨 것임). 15. 요셉의 형제들이(사실은 이복형 10명을 말함)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부친 때문에 그동안 우리를 용서하는 척 하였지만 이제는 거리낌이 없이 본심을 드러내어),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부친 야곱으로부터 그와 같은 유언을 직접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것이 이복형들이 꾸며서 하는 이야기인 줄을 번연히 알았지만 그와 같이 그들이 둘러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 죄책감과 위기의식을 알고서)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10명의 이복형들은 39년전에 요셉을 죽이고자 한 자신들의 범의와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단에 돈을 받고서 노예로 팔아 치운 자신들의 범행이 여전히 엄청난 죄책감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음, 37:18-20, 26-29, 45:5-15.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보고서 요셉은 그들이 불쌍하여 한없이 울었다고 볼 수 있음). 18. (서로 울면서 불편한 감정과 죄책감을 모두 털어낸 것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애굽의 수석총리라고 하는 현직에서 떠난 지 오래된 요셉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세가 너무나 대단하기에 여전히 동생의 본심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이복형들이 아직도 제발이 저리어서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그 옛날의 분풀이를 하라는 의미로 보임).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죄는 인간이 범하고 완전한 용서는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임)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8:28),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만민구원이 창조주의 뜻임)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끝까지 생계를 도와주고 여호와신앙으로 돌보는 것을 말함),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10-21);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0. 그들이 요단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점으로 하여 모세오경을 저술하고 있다고 보면, 요단 강 건너편은 그 동편인 얍복시내를 말하고 있는 것임. 그곳에서 숙적 에서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야곱이 처자식을 살리고자 밤새도록 여호와께 눈물을 흘리고 간구한 것을 아들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 따라서 그 생각이 나서 몸부림을 치면서 애통해하고 있는 것임, 32:9-12, 24-32),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애굽인의 곡함)이라 하였으니 요단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49:29), 이는 아브라함이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이더라(49:30-32, 23:16-20).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50:5, 41:45, 애굽의 총리를 지낸 귀족 사브낫바네아 곧 요셉이 황제인 바로와의 약속을 지킨 것임)”(50:10-14);

1)    여기서 유의하여야 하는 대목이 2군데입니다; 하나는, 야곱의 아들들이 요단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7일간 애통하였다는 대목입니다(10). 먼저 요단강 건너편이라고 부를 때에 저자인 모세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여호와의 은혜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그가 말하고 있는 요단강 건너편은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던 요단강 동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 중에서도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은 얍복 시냇가입니다(32:22-24). 숙적 에서가 400명의 사병을 이끌고 북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야곱은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32:6-7). 20년전에 자신을 죽이려고 살의를 품고 있던 에서입니다(27:41);

3)    지금 기마대를 이끌고 급히 북상하고 있는 것은 그때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은 용맹한 에서와 그의 군대를 막을 수 있는 무력과 사병이 그만큼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살려달라고 밤새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32:9-12, 24-26). 사력을 다하고 있는 야곱의 간구로 여호와께서 형제간 화해의 장을 마련하고 야곱의 가족 모두의 목숨을 보전하여 주셨습니다(33:4-8).

4)    그와 같은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야곱의 아들들은 부친의 희생과 사랑을 도저히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옛날 그들이 여호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장소 곧 백부 에서와의 화해가 이루어진 그 현장에서 부친의 헌신과 사랑을 생각하면서 7일간이나 애곡을 합니다(10). 그 현장이 지금은 타작마당으로 변해 있습니다(11a).

5)    그 소유주도 아닷입니다. 그들 야곱의 아들들은 지난 17년간 애굽의 라암셋에 거주하면서 고센 들판에서 양치기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행색이 애굽인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아닷 타작마당의 원주민들이 애굽인들의 통곡마당 곧 아벨 미스라임이라고 그 지명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11);

6)    또 하나는, 야곱의 아들들이 부친의 시신을 운구하여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서자 곧장 남행하여 멀리 헤브론으로 들어갑니다(12). 그리고 믿음의 열조들이 잠들어 있는 막벨라 굴에 야곱의 시신을 안장하면서 그곳에서 장례를 치루고 있습니다(13).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이 소망한 그대로 주님이 훗날 그 무덤을 찾아오셔서 영생의 부활을 선물할 것입니다(5:25-29). 그 사실을 야곱의 아들들이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7)    상주들과 호상꾼들이 애굽 군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애굽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14). 특히 그 가운데 일부 장례장면이 오늘날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대 애굽의 오래된 암각화에 남아 있습니다. 38백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 옛날 막벨라 굴에서 주님을 만나 부활과 영생을 얻겠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믿음과 소망이 그의 아들들에게 전수가 되고 오늘날에는 그 암각화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증거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15. 요셉의 형제들이(사실은 이복형 10명을 말함)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부친 때문에 그동안 우리를 용서하는 척 하였지만 이제는 거리낌이 없이 본심을 드러내어),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부친 야곱으로부터 그와 같은 유언을 직접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것이 이복형들이 꾸며서 하는 이야기인 줄을 번연히 알았지만 그와 같이 그들이 둘러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 죄책감과 위기의식을 알고서)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10명의 이복형들은 39년전에 요셉을 죽이고자 한 자신들의 범의와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단에 돈을 받고서 노예로 팔아 치운 자신들의 범행이 여전히 엄청난 죄책감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음, 37:18-20, 26-29, 45:5-15.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보고서 요셉은 그들이 불쌍하여 한없이 울었다고 볼 수 있음). 18. (서로 울면서 불편한 감정과 죄책감을 모두 털어낸 것으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애굽의 수석총리라고 하는 현직에서 떠난 지 오래된 요셉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세가 너무나 대단하기에 여전히 동생의 본심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이복형들이 아직도 제발이 저리어서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그 옛날의 분풀이를 하라는 의미로 보임).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죄는 인간이 범하고 완전한 용서는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임)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8:28),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만민구원이 창조주의 뜻임)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끝까지 생계를 도와주고 여호와신앙으로 돌보는 것을 말함),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15-21);

1)    창세기 제45장을 살펴보면 요셉과 그의 10명의 이복형들 사이에 눈물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45:1-15). 비록 창세기 제44장 후반부에서 형제들을 대변하여 유다가 감동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애굽 총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요셉으로 하여금 온전하게 화해의 마당으로 나아오게 한 것은 아닙니다(44:26-34). 인간의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그러한 놀라운 화해는 어디까지나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왜냐하면. 형제 간의 원한관계를 청산하게 역사하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 분만이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서는 만민구원의 놀라운 섭리를 믿는 자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구체적으로, 요셉이 자신의 억울하고도 험난한 인생살이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시는가를 확실하게 깨닫고 있기에 감히 22년전에 자신을 해치려고 하다가 급기야는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단에 돈을 받고 노예로 팔아 치운 파렴치한 이복형들을 용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완전한 용서와 화해가 역시 아닙니다. 그 이유는 부친 야곱이라고 하는 방패막이가 사라지고 나자 이복형들이 다시 불안에 사로잡히고 있기 때문입니다(15). 동생 요셉이 그동안 부친 야곱이 살아 계셨기에 이복형들에게 좋은 말을 하면서 원한을 갚지 아니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3)    이제는 이복형들을 모조리 붙잡아서 처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막을 힘이 자신들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부친이 자신들에게 전해준 유언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동생 요셉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16-17). 요셉이 울고 이복형들이 울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이 완전한 용서를 받고 죄책감이 모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4)    요셉의 형제들이 고센 땅의 성읍 라암셋에서 살면서 넓은 들판에서 목축업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년전에 애굽의 총리직에서 물러난 요셉이 수도권 온 땅의 귀족으로 살다가 부친 야곱의 장례를 끝내고 몇 년이 지나자 형제들이 살고 있는 라암셋으로 이주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형제들과 매일같이 만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자 이복형들은 다시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애굽의 유명한 귀족 온 땅의 제사장이며 방백인 보디베라의 사위가 요셉이며 그는 애굽에서 수석총리로 무려 22년간을 지낸 인물입니다. 따라서 라암셋으로 이주하자 고센 땅의 실권자가 되고 있습니다.

5)    고센 땅에서는 사브낫바네아 요셉의 영향력이 지방장관의 것보다 우월합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이복형들이 다시 불안에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셉을 찾아와서 읍소를 하고 있습니다; “18. 그의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18). 그 말을 듣자 요셉은 인간에게 완전한 용서와 죄책감을 영원히 없애 버릴 수 있는 능력은 온전히 여호와의 은혜이며 능력이라고 깨닫고 있습니다.

6)    훗날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승천하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복음을 믿는 자 곧 성도의 심령속에 진리의 성령님을 보혜사로 임재하게 해 주십니다(14:16-20). 그렇게 되면 두가지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서 깨닫고 실천하게 되는 영적인 능력을 얻게 됩니다. 또 하나는,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를 하는 자는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그와 같은 보혜사의 은혜가 아직 없습니다. 따라서 이복형들이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7)    그러한 비극적인 참상을 보고서 요셉이 가슴 아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결심을 형제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8:28),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만민구원이 창조주의 뜻임)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끝까지 생계를 도와주고 여호와신앙으로 돌보는 것을 말함),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19-21).

8)    구체적으로 3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 위로의 말입니다; 첫째, 여호와의 은혜를 깨닫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성도는 원한관계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원한관계를 대신 청산하고 쌍방을 모두 구원하는 길을 여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요셉은 이복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자녀까지 올바른 여호와신앙인으로 양육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라암셋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남은 인생동안 요셉이 실천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셋째로, “22. 요셉이 (애굽의 총리직에서 은퇴를 하여 수도 이트즈토위를 떠나 라암셋으로 이주하여)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 (고센 땅) 거주하여 110세를 살며, 23. (차남)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으며 (장남)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이스라엘의 여호와신앙을 배우면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15:13-16, 46:3-4), 25.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부친 이스라엘의 부활과 영생의 여호와신앙을 계승한 요셉임을 알 수 있음, 47:29-31, 49:29-33). 26. 요셉이 110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애굽의 귀족이었으므로 미이라로 만들어 일단 애굽의 고센 땅에 장사한 것임)”(50:22-26);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22. 요셉이 (애굽의 총리직에서 은퇴를 하여 수도 이트즈토위를 떠나 라암셋으로 이주하여)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 (고센 땅) 거주하여 110세를 살며, 23. (차남)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으며 (장남)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이스라엘의 여호와신앙을 배우면서) 양육되었더라”(50:22-23);

1)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끌려온 히브리인 노예입니다(37:26). 셈족인 요셉이 함족의 제국 애굽에서 바로의 시위대장인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서 그를 섬기는 종으로 살게 됩니다(37:36, 39:1). 그때 요셉이 당면한 문제가 다음 3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첫째, 문화와 언어가 전혀 다른 애굽입니다. 그러므로 말과 글을 빨리 습득하고 그들의 문물을 익혀야만 종살이가 가능합니다. 상전의 명령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여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면 매 타작의 대상이 될 따름입니다. 둘째, 노예에 대한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주인에게 잘못 보이면 채찍질을 당하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전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셋째, 외국에서 팔려온 노예 신세이므로 평생을 종으로 살다가 죽을 운명입니다. 미래의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노예신분을 벗어나게 만들어줄 능력자는 도대체 애굽제국에서 누구일까요? 17세의 히브리종 요셉의 암중모색이 사활을 걸어놓고 진행이 되기 시작합니다.

2)    그런데 요셉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머리가 좋다거나 신체조건이 탁월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훨씬 내적인 것입니다. 요셉이 어릴 때부터 부친 야곱으로부터 듣고 보면서 배우고 익힌 특이한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방 땅 가나안 일대에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면서 선지자로 살아온 조상들의 내력입니다. 본래 그들 가문의 시조인 아르박삿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지역 시날 평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10:10, 24-30, 11:10-28). 아람족의 한 갈래인 갈대아인들이 유프라테스강을 타고서 남하하여 그 지역을 점령하였기에 모세는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1:28, 31). 주전 1,526년경에 태어나 애굽제국의 상속녀인 핫셉수트 공주의 양자가 되어 바로궁에서 왕자대접을 받으면서 교육을 받은 모세의 입장에서는 바벨제국의 중심세력인 갈대아인들을 의식하면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그 지역의 지명을 그렇게 배운 것으로 보입니다(2:10, 7:21-23).

3)    창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주전 2,357년경 바벨탑 붕괴로 인하여 원시 바벨제국이 멸망하면서 함족의 지배를 받고 있던 원주민 셈족들이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서 재빨리 동서남북으로 탈출하기를 시작합니다(11:9). 그 가운데 동쪽으로 이주한 집안의 이름이 하나 히브리 바이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벨렉의 아우 욕단의 집안입니다(10:2531). 그리고 아주 나중에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서쪽 변경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메소포타미아의 앞선 문명을 전해주고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전해주기 위하여 선지자로 고향을 출발하고 있는 집안이 또 하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지도자가 족장 데라이고 장남이 아브람이며 장손이 입니다(11:31). 그 시기는 주전 21세기초입니다;

4)    그런데 부자인 족장 데라가 유프라테스강 상류에서 좋은 땅을 발견합니다. 배산임수(背山臨水)길지(吉地)입니다. 그곳 땅을 싼값에 사들여서 신도시를 개발하면 떼돈을 벌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얼른 그곳의 땅을 사들여서 고향에서 일찍 죽은 3남 하란의 이름을 지명으로 삼고 부동산개발을 하는 일에 몰두합니다(11:26, 31). 선교의 목적지 가나안까지 가라고 여호와께서 아무리 독촉하여도 돈 욕심이 가득한 데라는 요지부동입니다(11:31-32).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족장 데라를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치부하시고(7:4) 그 대신에 무자식인 장남 아브람 부부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시면서 목적지까지 남하를 하라고 지시하십니다(12:1-5).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람 부부가 가나안 땅으로 남하합니다. 그 행렬에 장조카 의 가족이 동행하게 됩니다.

5)    거부인 145세의 부친 데라의 막대한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포기하면서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랐기에 진정한 축복의 대상입니다. 그때부터 가나안 땅 일대에서 살아간 여호와의 선지자 아브라함 부부와 약속의 아들 이삭 부부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모세에 의하여 창세기에 기록된 그 이야기를 부친 야곱으로부터 재미나게 듣고서 자란 요셉입니다. 그리고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는 부친 야곱의 거듭난 인생입니다. 야곱은 본래 이삭부부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둘째입니다(25:26). 당시 고대의 족장사회는 엄격한 장자상속의 철칙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나야 차기 족장이 됩니다. 차남으로 태어나게 되면 훗날 족장이 된 형의 신하가 될 따름이며 그의 자손들은 족장의 소유물인 종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한 미래를 바꾸기 위하여 평생 여호와께 간구하면서 몸부림을 친 인물이 바로 야곱입니다(25:27-34, 27:19-30).

6)    3번의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야곱은 기어코 여호와의 축복을 얻어서 영적인 장자가 되고 가나안 땅의 지배자인 대()족장이 됩니다(37:12-17, 48:22).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됨으로써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32:28, 35:7-13). 부친의 그러한 인생역정이 효자인 요셉의 가슴을 쳤습니다;

 따라서 그는 애굽의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여호와께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합니다. 부디 자신의 운명을 부친 야곱처럼 종에서 족장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여호와의 신앙을 대물림하고 있는 요셉에게 애굽의 수도 이트즈토위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당시 애굽의 통일왕조 중왕국시대의 제12왕조는 중()이집트에 있는 수도 테베를 버리고 나일강 삼각주가 있는 하()이집트의 고도 멤피스의 남부에 새로운 수도 이트즈토위를 건설하고 그곳에 천도하여 있는 것입니다.

7)    요셉을 향한 여호와의 축복은 13년간의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통하여 그를 철부지 청소년에서 애굽의 문물을 가장 빨리 익히고 행정능력은 물론 정치적인 감각까지 익히게 하는데 이르고 있습니다(39:4, 22-23, 40:4). 여호와신앙심이 날로 깊어져서 드디어 요셉은 바로의 기이한 꿈을 풀이하고 더구나 7년 풍년과 그 뒤를 잇게 되는 7년 흉년에 대비하는 여호와의 지혜까지 선보이고 있습니다(41:25-36). 마침내 히브리인 종인 요셉은 30세에 당시의 바로 세누스레트2에 의하여 애굽의 전국을 바로를 대신하여 통치하는 전국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41:40-46). 요셉총리의 사명은 한마디로, 다가오는 7년 풍년과 그 뒤를 잇게 되는 7년 흉년을 극복하는 정책을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대신하여 전국적으로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8)    그러므로 그러한 미래가 요셉의 해몽처럼 도래하지 아니하거나 그 대책이 미흡하게 되면 모든 정치적인 책임은 전국총리가 되어 그 일을 전담하고 있는 히브리인 요셉에게 묻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세누스레트2세의 용병술이 놀랍습니다. 마치 살얼음판과 같은 처지의 요셉총리이지만 여호와의 섭리로 7년 풍년이 발생하고 그 대책이 그의 정책 그대로 실행이 됩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기전에 바로 세누스레트2세가 운명하게 됩니다. 그는 다가올 7년 연속 흉년을 부디 극복하여 달라고 수석총리 사브낫바네아 곧 요셉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리고 어린 태자를 바로로 세우고 그를 적극 보좌하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유언을 철석같이 지키고 있는 충신이 바로 수석총리 요셉인 것입니다(41:55-57, 45:8-11). 그러므로 어린 바로 세누스레트3세는 수석총리 요셉을 사부로 모시고 서서히 자신의 친정(親政)의 시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9)    그렇다고 하면 언제 요셉이 총리자리에서 물러나고 세누스레트3세가 친정을 실시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착안하여 흔히 역사학자들이 즉위 20년이 되자 세누스레트3세가 성년이 된 태자에게 애굽에서 공동통치를 의미하고 있는 대리청정을 맡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요셉이 총리직을 떠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상관없이 애굽제국의 왕조와 바로들의 통치기간을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다릅니다. 세누스레트3는 죽기 1년전인 주전 1,842년에 태자에게 공동통치에 해당하는 대리청정을 시켰으며 그 태자가 바로 아메넴헤트3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수석총리의 자리를 사임한 것과 태자의 대리청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0)  오히려 미성년자로 바로의 자리에 올랐던 세누스레트3세가 친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가 되는 시점이 요셉의 총리직 사임의 때로 보입니다. 그 시기가 15세에 즉위한 것으로 보이는 세누스레트3세가 30세가 되는 주전 1,863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시기는 주전 1,876년에 애굽으로 이주하여 17년을 살다가 야곱이 고센 땅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해 주전 1,859년의 4년전입니다(47:27-29). 그에 따라 당시 현직에서 물러난 요셉이 부친의 시신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조상들의 묘역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하는 내용을 궁내대신을 통하여 아주 조심스럽게 바로인 세누스레트3세에게 청원하고 있는 것입니다(50:4-6). 그가 현직에 있었다고 한다면 곧바로 바로를 예방하고 그렇게 요청하였을 것입니다(45:17, 46:31, 47:1).

11)  이제는 본문, “22. 요셉이 (애굽의 총리직에서 은퇴를 하여 수도 이트즈토위를 떠나 라암셋으로 이주하여)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 (고센 땅) 거주하여 110세를 살며”(12)라는 구절풀이와 관련하여 현직에서 물러난 요셉이 언제 자신의 귀족가문이 살고 있는 수도권을 떠나 고센 땅의 성읍인 라암셋으로 이주하였는지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그 대목은 한마디로, 부친의 장례를 치른 다음에 요셉의 이복형들이 그에게 2번이나 사죄를 한 일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죄는 분명히 장례를 치르고 애굽으로 돌아온 직후입니다. 두번째 사죄는 몇 년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이복형들이 다시 한번 요셉에게 사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적 간격을 두고서 거듭 사죄하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12)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 사이에 수도권에 살고 있던 애굽의 명문거족 사브낫바네아 곧 요셉이 자신의 자손과 형제들의 자손 곧 이스라엘의 자손을 확실하게 여호와신앙인으로 양육하고자 스스로 라암셋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요셉은 부친이 별세하기 4년전에 세누스레트3세가 이제 30세가 되자 그에게 친정체제를 확실하게 구축해주고자 스스로 총리직을 사임하였으며 부친상을 치른 다음 4년후에는 수도권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스로 고센 지역의 중심 성읍인 라암셋으로 이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는 60세쯤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60세의 요셉이 장남 므낫세와 차남 에브라임의 집안과 그들의 자손들을 돌보면서 이제는 애굽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그리고 신실한 여호와신앙인으로 그들이 살아가도록 양육하고 있습니다(참고로 모세의 경우는 출2:11, 7:22-23).

13)  그런데 그만 장남 므낫세가 요셉 자신보다 먼저 별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2. 요셉이 (애굽의 총리직에서 은퇴를 하여 수도 이트즈토위를 떠나 라암셋으로 이주하여)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 (고센 땅) 거주하여 110세를 살며, 23. (차남)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았으며 (장남)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이스라엘의 여호와신앙을 배우면서) 양육되었더라”(50:22-23). 요컨대, 요셉은 60세부터 110세가 될 때까지 50년 세월을 라암셋에서 형제들과 함께 살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전부 여호와신앙인으로 양성한 것입니다. 부친 야곱처럼 당당하게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이 요셉의 소원으로 보입니다. 요셉의 사역은 먼 훗날 나사렛 예수의 공생애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2)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15:13-16, 46:3-4), 25.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부친 이스라엘의 부활과 영생의 여호와신앙을 계승한 요셉임을 알 수 있음, 47:29-31, 49:29-33). 26. 요셉이 110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애굽의 귀족이었으므로 미이라로 만들어 일단 애굽의 고센 땅에 장사한 것임)”(50:24-26);

1)    110세를 향년으로 하여 요셉이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라암셋에 이웃하여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유언을 합니다(24a). 그 내용이 2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옛날 조상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예언하시고(15:13-16) 부친 야곱에게 말씀하신 그대로(46:3-4)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출애굽의 역사가 400년후에 반드시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24b). 그러므로 그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고서 자손들의 여호와신앙교육에 철저를 기하라는 당부의 유언입니다.

2)    또 하나는, 비록 자신의 무덤을 라암셋 교외에 쓰게 되겠지만 먼 훗날 출애굽의 날에는 파묘하여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함께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곳 약속의 땅에 반드시 이장을 해달라는 것입니다(25b). 그리고 요셉은 용의주도하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반드시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맹세까지 받고 있습니다(25a). 모든 유언을 마친 요셉은 안심하고서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의 명문귀족이 되어 있으므로 그의 시신은 미이라로 만들기 위한 향처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26).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41:56-57, 45:7-11, 50:20)과 영생구원(50:24-25)의 복음의 뜻을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통하여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5-1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4-29).  

요컨대, 요셉의 죽음으로 창세기는 성경의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창세기에서 요셉의 일대기를 자주 읽고 그 의미를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 묵상함으로써 성도의 삶에 있어서 실천적인 도움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