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창세기 제23장에서 모세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의 깊은 의미는 무엇인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1. 6. 22:45

제목; “창세기 제23장에서 모세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의 깊은 의미는 무엇인가”(23:1-20)

설교일; 주후 2023111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17일 화요일 작성)

 

창세기 제23장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앞에 있는 창세기 제22장의 내용의 핵심을 다시 파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핵심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세기 제22장에서 아브라함은 여호와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는 최상의 칭찬을 얻고 있습니다(22:12).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여호와께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실제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가서 그 지시를 따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22:9-11);

(2)  둘째,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선물하셨는데(17:15-19, 18:11-14, 21:1-7) 이제는 그것을 거두어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22:2). 아브라함이 과연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를 수가 있을까요? 순종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여호와의 축복을 그대로 다시 바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약속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나면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 가운데 첫번째로 손꼽히고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번성은 이 세상에서 수포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3)  셋째, 사랑하는 아들을 인신제사로 드리는 것은 당시 가나안의 원주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참으로 어리석은 우상 섬김의 방법입니다. 그와 동일한 명령을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자신의 선지자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은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온전하게 영생의 신앙을 지니고 있는지를 시험하고자 하신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22:1).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사철 푸르른 에셀나무(Tamarisk tree)를 하나 심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며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믿음으로 아뢰고 있기 때문입니다(21:33).

(4)  넷째, 그 간구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자면 창세기 제4장 말미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 부부의 새로운 아들 셋의 신앙고백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신앙인 아담이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대물림하고 있는 유일한 아들 셋은(5:1-3)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생이라는 의미에서 에노스라고 짓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4:26). 그 이유는 유한한 인생을 바치고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제는 영생을 얻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셋과 에노스의 영생의 믿음을 계승하고 있는 의인의 가계가 그 다음 창세기 제5장과 제10장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아브라함 역시 부디 영생의 큰 복을 달라고 창조주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21:33, 22:17). 그 내용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모든 성취를 바칠 것이니 부디 천국에서의 영생을 얻고 싶다는 소원인 것입니다.

(5)  다섯째, 과연 아브라함의 신앙고백이 진실일까요? 아니면 그저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눈이 밝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판별하고자 그와 같은 모순 투성이의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계십니다(22:1-2). 그 사실을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가 믿음의 장으로 불리고 있는 제11장에서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17:19),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25-26, 42-44)”(11:17-19). 기적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신 하나님은 부활과 영생이라는 큰 복을 새로운 창조로 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벌써 믿고 있기에 순순히 여호와의 시험에 응하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여섯째, 여호와의 가장 어려운 시험 곧 영생의 믿음에 대한 최종시험에 통과한 아브라함과 이삭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으로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숫양을 대신 번제로 바치고(22:13-14) 하나님의 큰 복에 대한 축복의 언약을 얻어서 모리아산을 내려옵니다(22:16-18). 그리고 브엘세바의 집에 도착하여 안방마님 사라에게 그 소식을 전해준 것으로 보입니다(22:19).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게 된 사라는 그때부터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자신과 상의도 하지 아니한 채 모리아산으로 끌고가서 여호와께 번제로 바치려고 한 남편 아브라함이 원망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브라함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 이제는 그 옛날 영화를 누렸던 헤브론 땅으로 되돌아가서 여생을 마치고자 합니다;

(7)  일곱째, 사라의 마지막 결정을 그녀를 평생 사랑한 남편 아브라함이 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본문인 창세기 제23장에 들어서게 되면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23:1-3).

(8)  여덟째, 그 다음에 모세가 창세기 제23장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돈을 주고서 헤브론 마므레에 있는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밭을 헷족속으로부터 사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옛날에 아브라함은 헤브론의 호족인 아모리족속 마므레로부터 그 지역의 땅을 전부 돈을 주고 사서 자신의 아성으로 삼은 적이 있습니다(13:18, 14:13). 그런데 이제는 가나안 땅의 지배자가 헷족속으로 바뀌어 있기에 다시 장지로 사용하고자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밭을 돈을 주고 구입한 것입니다(23:16-20).

그 깊은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옛날 안방마님 사라의 요청으로 말미암아 씨받이 첩 하갈과 합방하여 서장자 이스마엘을 생산한 적이 있습니다(16:1-4, 16). 그런데 모세는 창세기 제22장에서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22:12, 16).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러한 점들을 살펴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창세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제2장에서 모세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만들어 주시는 결혼생활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애완용 동물을 의미함).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남자가 여자와 함께할 때에 외로움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better half임을 고백함).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11처제 가정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20-25).

위의 말씀의 특징적인 의미가 대체로 다음 3가지입니다;

(1)  첫째, 사람은 애완용 동물과 함께 지낸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쓸쓸함을 완전히 달랠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을 때에 그 외로움을 달랠 수가 있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은 그 남자 아담의 갈빗대로 오로지 하나의 여자를 아내로 만들어서 그에게 반려자로 데려다 주십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결혼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룰 때에 그 일부일처제의 가정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3)  셋째,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아니한 부부생활은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가정을 이루어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모범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인물이 오늘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23:1-2). 돌이켜보면, 그들은 아브라함 100, 사라 90세에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랄 땅에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고 있습니다(21:1-7).

창세기 제12장에서부터 아브라함 부부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방인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오랜 세월 여호와 신앙을 파수하면서 선지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때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다국적군대를 물리치고 가나안 땅에서 구국의 영웅이 되어 헤브론 마므레에 아성을 건설하고 잘 살기도 했습니다(14:13-16, 15:2-3). 그러나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풍요로운 목축지를 찾아서 블레셋 족속이 살고 있는 그랄 땅으로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19:28, 20:1).

그런데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브라함 부부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제12장 제2-3절에 기록되어 있는 축복의 언약을 작동하십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 부부가 종들을 시켜서 우물을 파게 되면 들판에서 우물물이 솟아나오고 있습니다(21:25, 26:15, 18).

아브라함 부부는 하나님과의 축복의 언약에 따라 그 우물물을 원주민 블레셋 족속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12:3). 그런데 블레셋 족속의 탐욕이 지나칩니다. 그들은 떠돌이 호족에 불과한 아브라함 가족을 내쫓고 힘으로 그 우물을 차지하고 마는 것입니다(21:25).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힘이 약한 아브라함 가족은 계속 동쪽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가나안과의 접경지역 브엘세바에 머물게 됩니다. 브엘세바에 살고 있을 때에 두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겨우 젖을 뗀 이삭을 놀리고 있는 이스마엘을 보고서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강력하게 요청하여 그들 모자를 브엘세바 광야로 쫓아낸 것입니다(21:8-14). 또 하나는, 10수년이 흐르자 블레셋의 연맹 왕이며 그랄 평야의 주인인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과 상호불가침평화조약을 맺고자 브엘세바로 찾아온 것입니다(21:22-24).

아비멜렉과 비골은 여호와의 선지자인 아브라함과 무사히 평화조약을 맺게 되자 그것으로 만족하여 다음날 블레셋 땅으로 돌아갑니다(21:31-32).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때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4가지가 이미 성취가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1)  첫째, 약속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태어나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21:1-8). 그러므로 자손의 번성은 확실합니다.

(2)  둘째, 브엘세바에서 블레셋의 연맹왕과 일대일로 평화조약을 맺고 있는 아브라함 자신은 그 이름이 창대합니다(21:31).

(3)  셋째, 아비멜렉이 사라의 미모에 반하여 그녀를 후궁으로 데려가자 여호와께서 진노하십니다(20:1-7, 17-18). 그 결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배상금도 많이 받았으며 거주권까지 얻고 있습니다(20:14-16).

(4)  넷째, 아브라함 부부가 종들에게 명령하여 들판에 우물을 파게 하면 귀한 지하수가 솟아나오고 그것을 원주민들과 나누어 사용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아브라함은 마지막 소원을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몸을 벗고서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21:33). 요컨대, 실락원에서 의인의 가계를 시작하고 있는 셋의 소원과 동일한 것입니다(4:26).

이 세상의 모든 성취와 자신이 가진 그 모든 것을 바치더라도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께 돌아가서 그 자녀로서 영생을 누리고 싶어하는 아브라함 믿음이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한번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창세기 제22장의 주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확고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적인 방법으로 대속자를 보내어 주시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 점을 선지자 이사야는 물론 훗날에 사도 요한이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53:4-12, 65:17-18. 66:19-22, 21:1-2, 27, 22:1-5).

그와 같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찬양하면서(22:14) 여호와 경외자로 불리게 되는 아브라함은(22:12) 약속의 아들 이삭과 함께 다시 브엘세바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22:19).

그러나 브엘세바 집을 지키고 있던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 대한 원망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려고 그 먼 모리아산까지 갈 수가 있는 것일까요?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다녀온 남편 아브라함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그 결과 사라는 그 옛날 영광을 누리던 그곳 헤브론 마므레로 돌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부부가 가나안 땅을 떠나온 이후 그곳의 주인이 바뀌어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에서 철기문명을 가지고 남하한 힛타이트 족의 한 갈래가 아모리 족속을 치고서 가나안 땅의 새 주인이 된 것입니다.

그에 따라 헤브론의 지명이 거인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의미로 아예 기럇 아르바로 바뀌어 있습니다(23:2). 헤브론 마므레 지역의 호족이었던 그 옛날 아브라함의 연고권이 모두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이삭의 나이 17세무렵에 모리아산을 다녀온 이후 10년 정도의 세월이 더 지나자 아브라함이 마침내 안방마님 사라의 소원을 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창세기 제23장 첫머리를 살펴보면 헤브론에서 떠돌이 호족으로 살고 있는 아브라함 가정에서 127세를 향년으로 안방마님 사라가 별세하고 있습니다(1-2a);

35년전에 젊은 첩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집을 떠난 이후(21:14) 아브라함은 오로지 사라만을 아내로 삼아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슬픔이 대단합니다(2b).

그렇지만 가장인 아브라함은 조강지처 사라의 장례를 치루어야 합니다. 계속 슬픔에 잠겨 있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옛날 자신의 헤브론 아성이 있던 마므레 지역의 막벨라 굴을 새로운 소유주 헷족속 에브론에게서 사들이고자 원주민들의 장로들이 모여 있는 성문 앞으로 찾아가고 있습니다(23:3, 8-10).

떠돌이 호족에 불과한 아브라함에게 과연 헤브론의 지배자인 헷족속들이 자신들이 땅 일부를 팔도록 허가를 할까요? 만약 매장이 가능하도록 헷족속들이 땅의 매매를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은 많은 대금을 주고 비싼 값에 그 땅을 사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일련의 절차가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본문에서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 18.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23:17-20).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제23장에서 마므레의 막벨라 굴과 주위의 묘답이 전부 아브라함의 소유지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무려 3차례나 거듭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막벨라 굴이 너무나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생활의 종착지로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성령님의 감동으로 창세기 제47장 제29-31, 49장 제29-33, 히브리서 제11장 제16, 요한복음 제5장 제27-29, 누가복음 제22장 제28-30,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제4장 제16-18절에서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대목을 여기서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47:29-31).

(2)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49:29-33).

(3)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4)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7-29).

(5)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6)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6-1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사라가 127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그때 아브라함은 137, 이삭은 37세임).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기럇 아르바(새로운 정복자 헷족속의 거인 아르바의 성읍임)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과거의 연고권이 모두 사라진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하나님을 섬기는 진실한 신앙인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임)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일종의 매장허가서의 발부임).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으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이제 매장허가를 받았으니 구체적으로 에브론으로부터 그의 소유지 일부를 매장지로 사고 싶다는 것임),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23:1-9);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1. 사라가 127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그때 아브라함은 137, 이삭은 37세임).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기럇 아르바(새로운 정복자 헷족속의 거인 아르바의 성읍임)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23:1-3);

1)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번제로 바치고자 모리아산으로 간 시점이 대략 이삭의 나이가 17세인 준()어른 청년시기로 보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무거운 장작을 이삭이 지고서 가파른 모리아산으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라의 나이는 107세입니다.

2)    그런데 헤브론에 살던 그녀가 향년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 127세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사이 중간의 때에 그녀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졸라서 브엘세바를 떠나 그 옛날의 그녀의 영광이 깃들어 있는 헤브론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조강지처 사라가 죽자 일편단심 그녀만을 사랑한 남편 아브라함의 슬픔이 지극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 이삭처럼 계속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3일장을 치르자면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그것도 그 옛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헤브론 마므레 지역의 막벨라 굴이라도 새로운 지배자 헷족속으로부터 빨리 구입하여 묘택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2)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과거의 연고권이 모두 사라진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하나님을 섬기는 진실한 신앙인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임)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일종의 매장허가서의 발부임) ”(23:4-6);

1)    가장 먼저 아브라함이 달려간 곳은 헤브론의 성문 앞입니다. 전통적으로 그곳에서 헷족속의 장로들이 모여서 부족회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헷족속의 장로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나그네이지만 아내가 별세하였기에 헤브론 땅에 안장할 수 있도록 매장허가를 내어달라는 것입니다. 일단 헤브론의 지배족속인 그들의 허가가 있어야 비로소 떠돌이 호족에 불과한 아브라함이 사라의 시신을 그들의 땅에 안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 떠돌이가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는 것은 일종의 특혜에 해당합니다. 70여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의 시골에서는 공동묘지나 선산에 무덤을 쓰자면 부락이나 그곳 문중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 경우 부락민과 문중이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약 풍습에 거슬리는 행위를 한 자는 결코 매장지를 얻지 못합니다.

3)    그와 같은 사실을 참조하면 헷족속이 떠돌이 호족인 아브라함에게 호의적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라함의 신앙이 주위에서 존경받을 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장허가가 곧바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헷족속 가운데 누구의 소유지의 일부를 사서 자신의 매장지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3)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으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이제 매장허가를 받았으니 구체적으로 에브론으로부터 그의 소유지 일부를 매장지로 사고 싶다는 것임),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23:7-9);

아브라함이 원하고 있는 매장지는 그 옛날 자신과 사라가 소유하고 있었던 마므레 지역의 막벨라 굴입니다. 그 일대를 지금은 헷족속 에브론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에브론의 막벨라 굴을 사겠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과연 에브론은 힘으로 얻은 그 땅을 어떠한 조건으로 떠돌이 호족인 아브라함에게 팔고자 나서는 것일까요?

둘째로,10. 에브론이 헷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그 속셈은 묘택인 굴과 더불어 묘답으로 밭을 끼워 팔고자 함. 그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임. 한마디로 폭리를 취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임),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사정이 급한 아브라함에게 매장지를 거금을 받고서 팔 의사가 있다고 마치 선심이나 쓰는 척 밝히고 있는 것임).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그의 땅을 매장지로 사용하고자 거금을 주고 살 의사가 있음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임).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값은 400세겔(대충 계산해보아도 16천만원의 거금임)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23:10-16);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0. 에브론이 헷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그 속셈은 묘택인 굴과 더불어 묘답으로 밭을 끼워 팔고자 함. 그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임. 한마디로 폭리를 취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임),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사정이 급한 아브라함에게 매장지를 거금을 받고서 팔 의사가 있다고 마치 선심이나 쓰는 척 밝히고 있는 것임) ”(23:10-11);

1)    에브론이 헷족속 장로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이미 장로의 신분을 지니고 있는 부족의 유력한 자이며 상당한 부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에브론은 머리회전이 빠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급한 처지를 십분 이용하여 차제에 막벨라 굴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밭까지 전부 끼워서 고가로 팔고자 합니다.

2)    그러므로 그의 말은 굉장한 선심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실로 고약합니다. 그렇지만 사정이 급한 아브라함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금을 주고 그 땅을 사야만 합니다. 과연 에브론은 얼마를 제시하게 되는 것일까요? 흔히 말하기를 이민사회에서는 먼저 이민 온 자들이 나중에 이민 오는 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부동산을 팔고 있다고 합니다. 그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2)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그의 땅을 매장지로 사용하고자 거금을 주고 살 의사가 있음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임).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값은 400세겔(대충 계산해보아도 16천만원의 거금임)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23:12-16);

1)    에브론이 놀랍게도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16천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환산의 방법은 1세겔이 4데나리온인데 1데나리온이 고대사회에서는 하루의 품삯입니다(20:2). 오늘날 하루의 품삯을 대략 10만원으로 보면 은 1세겔의 가치가 40만원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은 400세겔은 16천만원이 되는 것입니다.

2)    그것이 터무니가 없는 바가지라는 사실을 137세의 노인 아브라함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급한 쪽은 자신입니다. 따라서 에브론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값을 그에게 지불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고대사회이므로 그들의 표현기법이 실로 인정 어린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실제 내용은 잇속에 밝고 탐욕적이며 살벌하기가 그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 18.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23:17-20);

(1)  모세가 막벨라 굴과 그 주변의 밭 일체를 당시 아브라함이 지배자인 헷족족이 보는 앞에서 정당하게 거금을 주고 샀다는 사실을 여기서 3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하게 증거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월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것임을 누구나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2)  그 뿐만이 아닙니다. 창세기의 내용이 진행이 되어가면 영생을 희구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을 대물림하고 있는 그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야곱이 말년에 애굽 땅에서 제국의 총리로 행세하고 있는 11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애원하고 있습니다(47:29-31).

(3)  부디 자신의 시신을 운구하여 막벨라 굴에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안장을 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 굴에 안장이 되기를 그토록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49:29-33) 그 해답이 바로 훗날 히브리서 제11장 제16절에 명쾌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믿음의 열조들이 여호와신앙인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평생 살아가면서 한가지 소원을 꼭 이루고자 합니다. 그 소원이 바로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가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제11장에 기록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차제에 그 내용을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생명의 창조주)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영생의 천국인 새 예루살렘, 21:1-2, 27)을 예비하셨느니라”(11:16).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먼저 향년을 맞이한 성도들은 무덤에서 그 음성을 듣고서 영생의 부활로 나아가게 됩니다(5:27-29). 살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은 휴거의 대상이 됩니다(살전4:16-17).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아무쪼록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가서 영광스러운 영생의 천국잔치와 그 논공행상에 참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