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제28장 주석(요약자; 인내로 결실하는 자)
=====28:1
블레셋...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 여기서 `블레셋'은 가드 왕 아기스를 포함한
그들 모든 족속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전투는 블레셋의 다섯 부족들의 연합군에
의해 발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5:8; 29:2, 3). 그때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 전
투(에벤에셀 전투)(4:1-11)이후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전한 데 대하여 일대
복수를 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였을 것이다(14;52; 17:50-53; 18:6,30)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 이같은 아기스의 요구는 그로
서는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이같은 일을 위하여 아기스는 위험 부담을 안채 다
윗을 자신의 수하에 두었기 때문이다(27:6, 12). 더구나 아기스는 이미 다윗이 자신
의 동족을 침략함으로써 그들과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27:10, 12)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아기스는 다윗을 완전히 자신의 수하에
예속시키려 했던 것이다.
=====28:2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 이 말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다윗의 애매한 답변이다. 다윗이 이같이 애매한 답변을 한 까닭은, 그는 아기스
의 요구대로 자신의 동족을 공격할 수도 없고, 또한 그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들켜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안전히 피할 수 있는 훌륭한 은신처를 잃을 수도 없
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저자는 이와 같은 애매한 표현을
기술함으로써, 다윗이 극도의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 이것은 아기스가 다윗의 애매 모호
한 답변을 (1) 그가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2) 그리고 그가 전쟁에 참여
하는 일에 대한 어떤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머리
지키는 자'는 `경호 대장' 또는 `시위 대장'을 가리킨다. 한편 하나님 나라 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위대한 전사(戰士) 다우시이 한낱 이방 왕의 경호를 맡게 된
것은 다윗 스스로가 자초한 비극적 결과였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을 전적 의뢰하여 조국 이스라엘 땅을 끝까지 떠나지 말았어야 옳았다. 따라서
당장 목전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다윗이 우상의 나라 블레셋 땅으로 스스로 찾아든 것
은, 기근을 피해 언약의 땅 가나안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아
브라함의 경우와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창 12:10-20).
=====28: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장사하였고 - 이 사실은 이미 25:1에서 언급되었다. 그런
데 본서 저자는 이같은 사실을 여기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사울이 이미 죽은 사무엘의
혼(魂)을 불러내려는 노력을 한 사실과 연결시킨다(8절).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쫓아내었었더라 - 이같은 종교적 숙정(肅正) 행위는
분명히 사울의 집권 초기에 이뤄졌을 것이다(Smith). 이 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1)
사울은 왕위에 오르는 예식이 행해질 때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
히 좇을 것을 명령받았으며(12:14), (2) 무당과 박수를 쫓아내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
의 지도자에게 강력히 요구되던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인 바, 처음 사울은 율법 준수에 대한 열심으로 이러한 일을 시행할 가능성
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의 `신접한 자'(* , 오보트) - 에 대해서는 어원학상의 여러 이
론(異論)에 따라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즉 (1) `오브'(`오보트'의 단수)를 비
히브리어계의 단어 `아브'에서 온 것으로 보고, 어떤 `제의적(祭儀的) 구멍'에서 유출
되는 영혼 혹은 유령이라는 해석(Hoffner), (2) `오브'를 어원학적으로 `조상' 및 `아
버지'의 의미가 있는 `아브'(* )에서 온 말로 보고, 죽은 조상들의 영혼을 불러내
기 위하여 사용되는 `형상' 및 `도구'라는 해석(Lust), (3) `오브'를 `가죽 부대'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 `오브'(* )에서 온 말로 보고, 죽은 귀신이 들어가서 볼록
하게 튀어나온 `복화술사의 배'를 가리킨다는 해석(Smith), (4) `오브'를 `어리석은',
`공허한'이란 의미를 갖는 히브리어 `우브'(* )에서 온 말로 보고, `공허한 말
을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Lange)등이 있다. 그런데 이같은 여러 견해 중 첫째, 본절
의 `쫓아내었더라'(* , 헤시르)란 말은 우상과 같은 유형적 형상의 제거를 가
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단어이며(왕하 18;4; 23:19; 대하 17:6; 30:14; 사 3:23) 둘째
7절의 `신접한 여인'은 문자적으로 `오브를 다스리는 여자'란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등에서 볼 때, '오브'는 (2)의 견해처럼 죽은 사람의 혼(魂)을 불러내는 데 사용되는
어떤 '형상'이나 '도구'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미신
적 도구를 사용하여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 사후(死後) 세계와 교통하는 자들을 가리
킨다고 볼 수 있다(레 19;31).
박수(* , 이드오님) - 이것은 `알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야다'(*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점(占) 또는 마술 등의 방법을 통하여 미래에 관한 지식
을 알려주는 자, 곧 점장이나 마술사를 가리킨다(Lust, Fay).
=====28:4
브레셋 사람이...수넴에 이르러 - 여기서 `수넴'(Shunem)은 `두 개의 휴식처'란 의
미이다(Gesenius). 그 위치는 침공해 오던 블레셋 군을 및이하여 사울이 진을 쳤던
`이스르엘'(29:1; 수 19:17, 18)의 북쪽 약 5.6km 지점으로, 바로 이 지점은 `모래 언
덕(창 12;6)의 남서쪽 기슭이었다. 즉 이스르엘 계곡에 의해 분리되는 길보아 산 맞
은편의 소(小) 헬몬산 서쪽 경사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Conder, Robinson). 아마도
이때 블레셋 군대는 `아벡'(4:1; 29:1)에서 소집되어 `수넴'은 가나안 정복 후 잇사갈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며(수 19:18), 동녀(童女) 아비삭의 고향이고(왕상 1:3), 또한
엘리사를 영접한 귀한 여인의 고햐이기도 하다(왕하 4:8-10). 그리고 현재의 지명은
`술렘'(Sulem)이다(Eusebius).
사울이...길보아에 진 쳤더니 - '길보아'(Gilboa)는 사마리와와 갈릴리 사이의 에
스드렐론(Esdraelon) 평지 동쪽에 있는 길이 약 12.8km, 그리고 폭 약 8km 정도의 산
악 지대이다. 그곳 중 가장 높은 지대는 해발 약 565m 정도이다. 이 길보아 산악지
대의 특징은, 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해발 약 10m의 에스들렐론 평지에 다다르
며, 반면 북쪽과 동쪽은 급격한 경사를 이루어 요단강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
때 사울은 바로 이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Jezreel)에
진을 쳤다(29:1).
=====28:5
사울은 불과 수 마일 거리에서 진치고 있는 블레셋의 엄청 많은 군대로 인하여 심
히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보고(* , 라아) - 미세한 것을 들여다 보듯이 세심하게 탐색하는 행동을 가
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16:6; 23:23; 25:15; 왕하 7:13).
두려워서(* , 야라) - 이 말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점층적으로 더 큰 두려
움을 갖게 되었던 사실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8:29). 본 저자는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블레셋의 많은 군대를 보고 사울이 얼마나 극심한 두려움에 사
로잡혔는지를 강력히 시사한다.
떨린지라(* , 하라드) - 이 단어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의 기습 공격으
로 인하여,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나타냈던 당혹스럽고 어쩔줄 모르는 심리적 반응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4:15). 바로 이같은 단어는 사울의 절망감을 잘 보여준
다(13:7; 사 32:11). 아무튼 사울은 과거 대(對) 블레셋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음에
도 불구하고(14:21-23, 31, 47; 17:53), 금번 길보아 전투를 맞이하여 `두려워 크게
떨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엘라 골짜기 전투(17:1-3) 이후 가장 대규모의
전투인 이번 전투를 맞이하여, 힘의 원천이요 전쟁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더이상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패배에 대한 두려움
과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Keil, Clericus).
=====28:6
사울이...묻자오되 - 여기서 '묻자오되'(* , 솨알)는 '요구하다' 혹은 '문의
(問議)하다'란 의미로서, 사울은 이때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하였던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15:26; 16:14)을 잘 알면서도, 이처럼 사울이 허둥지둥 여호와를 찾는 모습은 블
레셋 군대로 인한 사울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대답지 아니하시므로 - 이같은 결과는 말할 나위없이 사울에 대한 하
나님의 징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희귀는 어느 인물 또는 어느 시대의 사
악성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3:1).
꿈으로도 - '꿈'(* , 할롬)은 사람이 자의식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잠을 잘
때, 외부의 벼노하 없이 인간 내면(內面)의 사고 작용 및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구약 시대의 계시(啓示) 방편이다(창 20:6; 민 12:6
; 단 2:4). 그런데 여기에 언급된 꿈, 우림, 선지자 등 3가지 계시 방편은 저급한 단
계에서 보다 고급한 단계의 순서인 것 같은데(Fay), 꿈은 그 전달 방법이 간접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가장 비점진된 최하급의 계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Erdman).
한편 여기서 사울은 자신이 직접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라도 계시적(啓示的)성격의 현몽(現夢)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을 것이다.
우림으로도 - 여기의 '우림'(Urim & Thummin)의 약칭이다(출 28:30 주석 참조; 민
27:21). 그런데 사울이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
은 철저히 사울의 자업 자득(自業自得)이었다. 즉 사울은 우매한 판단으로 놉(Nob)의
제사장들을 몰살시킴으로써,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아비아달'로 하여금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는 '에봇'을 갖고 다윗에게로 피신하도록 한 것이다(22:18-20; 23:6).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 '우림과 둠밈'이 없었고, 또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대제사
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추측컨대, 사울은 놉(Nob)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8,1
9) 이후 성막을 기브온 자기 궁성(宮城)으로 옮긴 다음 엘르아살 계열의 아히둡의 아
들 '사독'(Zadok)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던 것 같다(대상 16:39). 그리고 이에 덧붙
여 본래의 것을 본뜬 모조(模造) '우림과 둠밈'도 만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 사후 다윗 시대의 두 명의 대제상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로써
도 입증된다(삼하 8;17; 15:24, 29, 35; 대상 15:11; 18:16). 한편 사울의 이러한 시
도는 (1) 놉 제사장 학살 사건 이후 민심(民心)을 수습하고, (2) 자신의 측근들로 제
사직을 독점하고자 한 정치적 계산 또는 왜곡된 종교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울의 '우림을 통한 문의'에 여호와께서 대답하실 리 만무한 것이다(K
eil & Delitzsch, Vol. II-ii. pp. 260-261; Smith, Fay).
선지자로도 - 하나님의 대선지자 '사무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3절; 25:1). 또한
그밖의 선지자들도 이미 하나님께서 버린(13:13, 14; 15:26; 16:14) 사울의 왕국을 떠
나 망명객 다윗에게로 도망을 쳤다(22:5).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사울은 선지자
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없었다. 아무튼 꿈과 우림과 선지자는 모든 구
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는 방편이었다(15:10, 11; 23:9-12). 하지만
사울은 그 어는 것으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불순종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15:1-23).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만날 만한 때에',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기회가 지나가지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암시해 준다(사 55:6; 고후 6:1, 2).
=====28:7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 이같은 사울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레 19:31), 또한 사울 자신이 세워놓은 규범(3절)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아
무튼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의 계시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비신앙적 인물인 사울
이 필연적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한편 여기서 '신접한'(* -
, 바알라트 오브)은 문자적으로 '혼령을 다스리는'이란 의미로, 곧 '신접(新接)
한 여인'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자를 가리킨다(Keil, 레 1
9:31).
물으리라(* , 다라쉬) - '자세히 묻다'란 의미이다(신 13:14; 시 9:12; 111:
2).
엔돌에...있나이다 - '엔돌'(Endor)은 '거주의 샘'이란 뜻이다. 그 위치는 다볼
산(Mt. Dabor) 남쪽 약 6.4km, 소(小) 헬몬 산 북쪽 경사 지대이다. 그리고 '수넴'으
로부터는 북동쪽으로 약 6~7km 정도의 지점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도 소 헬몬산 경
사 지대에 '엔돌'이란 마을이 있는데(수 17:11), 무당들이 거처하기에 좋은 많은 동굴
들이 있다고 한다(Robinson, Thompson, Stanley).
=====28:8
사울이...변장하고 - 옷은 곧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는 점(18:4)에서, 사울은
왕의 표시가 되는 일체의 복장과 장식물을 제거하고 완전한 평민의 복장을 취했던 것
같다(Fay). 즉 아무도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 사울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울이 위와 같이 철저히 변장을 한 까닭은 신접한 여인이 살던
엔돌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사울은, '엔돌'이 블레셋의 진영과 인접
한 곳이었으므로, 혹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두려워한 것이다. 즉 만일 변장을
하지 않는다면,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 경우 그 의복에 의하여 그가 이스라엘 왕
사울임이 밝혀지고, 이에 따라 그들의 맹렬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왕상 22:30).
밤에...이르러 - 사울은 변장한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에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이렇듯 변장한 채 엔돌의 신접한 영인을 찾아가는
사울의 모습에서 그의 철저한 타락상을 볼 수 있다. 한편 미신적(迷信的)인 발상에서
무당이나 점장이를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바 있는 영적 간음 행위이다
(레 19:31; 신 18:9-14). 그러므로 성도들은 급박한 상황이 닥칠 때일수록 더욱 하나
님을 굳게 의지하고 성경 말씀에 근거한 상담과 기도에 힘쓰는 등 끝까지 신앙적인 자
세를 지켜야만 할 것이다.
신접한 술법으로 - 히브리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유령' 혹은 '그것을 불러내기 위
한 도구'를 의미한다(3절). 한편 '술법'(* , 카삼)은 '점을 치다'란 의미가 있
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겔 21:29; 미 3:6), 바로 이 동사에서 본서 6:2에서도 나타
나는 '복술자'(卜術者)라는 단어가 나왔다(신 18:10; 사 3:2; 슥 10:2). 따라서 사울
은 지금 신접한 여인에게 '복술'(卜術) 행위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술
행위는 하나님께 가증한 행위로서, 율법에서 철저히 금지시킨 행위였다(신 18:10-14;
레 19:31; 20:27).
사람을 불러 올리라 - 즉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11절 주석
참조.
=====28:9
신접한 자와 박수 - 3절; 레 19:31 주석 참조.
어찌하여...올무를 놓아...죽게 하려느냐 - 이 말은 신접한 그 무녀(巫女)가 변장
한 사울을 몰라봤음을 말해 준다. 즉 이때 그녀는 사울 일행을 자신과 같은 점치는
사람들을 적발하여 죽이기 위하여(출 22:18; 레 20:27; 신 18:11) 왕의 명을 받고 그
곳으로 온 왕의 사신들로 알았던 것이다. 이같은 그녀의 판단은 (1) 이전에 사울이
복술 행위를 엄히 금지시켰으며(3절), (2) 사울 일행은 무녀의 눈에 매우 낯설었기 때
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한편, 비록 밤늦게 방문한 낯설은 사울일행에
대해서는 그 무녀(巫女)가 이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라도, 그당시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통한 복술을 베풀어 유명한 무녀로 통했을 것이다.
=====28:10
본절에서 사울은 자신이 복술 행위를 적발키 위해 찾아온 사람이 결코 아님을 밝힘
으로써 그 무녀를 안심시킨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여호와께서 사시는 것처럼, 또는 여호와께서 살아 존재하
시는 한 맹세한 사항이 확실이 이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짐할 때 사용하는 히브리 맹
세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다(25:26). 한편, 여기서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
해 하나님께서 가중히 여기시는 복술 행위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요청하는등 그의 완악
해지고 굳은 심령의 타락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8:11
내가 누구를...불러 올리랴 - 이같은 무녀의 질문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음부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모두 '스울'(Sheol) 즉 '음
부'(陰部)라고 부르는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시체가
땅 속에 묻히는 것과 관련되어 파생된 단순한 개념인 듯하다(창 27:35, 반면 고대 히
브리인들은 하나님이나 천사는 땅 위의 어느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욥 26:5-14 강해, '히브리인들의 음부 개념' 참조). 그러므로 죽은 자의 세계 또는
죽은 자의 혼과 교통할 수 있다고 믿는 접신녀(接神女)는 '스올'(음부)로부터 죽은 자
의 혼(魂)을 불러 올릴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 사울이 많은 사람 중 하필 사무엘의 혼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사무엘은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람으
로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조언자 역할을 담당했었으며(10:1; 15:1), (2) 또한 사무엘
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7:10-12), 블레셋의 침공으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울
은 그때 이같이 사무엘을 부름으로써, 그로부터 블레셋과의 싸움과 관련해서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하여 조언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사울은 다윗과 관련된 자신
의 미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사울이 접신녀(接神女)를 찾아
가서 문의한 이 사건은, 사울의 집권 초기에 그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든 박수와 무
당들을 쫓아낸 것(3절)이 그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
다. 즉 사울은 (1)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을 충실
히 지켜야 된다는 신념이나, (2) 또는 초혼술(超魂術)은 철저하게 미신적이어서 신뢰
의 대상이 못된다는 신념 등에 따라 박수와 무당을 축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
울은 다만 이스라엘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무엘과, 그리고 여호와 하나
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으로 막 발돋음해 가던(7:2, 5-11)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인간적 목적에 따라 그같은 정책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28: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 이 접신녀(接神女)가 실제로 사무엘을 보았는지에 대한 해
석은 구구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된다. 즉 (1) 실제로 사
무엘의 혼이 임한 것을 무녀가 보았다는 견해(Josephus, Klein, Keil, Lange), (2) 거
짓 혼이 사무엘의 혼인양 행세하면서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견해(Luther, Calvin, M.
Henry, Grotius, Patrick), (3) 본문의 '사무엘'(* , 쉐무엘) 앞에 '이름'
(* ,쉠)이라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됐을 것으로 간주하고, 그 무녀(巫女)
는 사무엘의 어떤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다만 사울의 입에서 나온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뿐이라는 견해(Hertzberg), (4) 그냥 아무것도 본 것이 없으나 거짓
으로 본 척했을 뿐이라는 견해(Smith)등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네가지의 견해 중 (1)의 견해는 첫째, 하나님께서 성도 특히 선지자의 영혼을 무당
의 술수에 이용되도록 하실 리 없으며 둘째, 혼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13절의 언급은
성도들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는(전 3:21; 눅 16:22, 23) 성경적 개념과는 배치되
며, 오히려 접신술(接神術) 등과 같은 거짓 사상과 합치된다(사 29;4)는 점 등에서 잘
못됐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3)의 견해는 뚜렷한 근거 없이 원문 중 '보고'를 '듣고'
로 변경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또한 (4)의 견해는 첫째, 12절의 '사무엘
을 보고'는 무당의 말이 아닌 본서 저자의 언급이며 둘째, 영매(靈媒)등은 주관적 혹
은 심리적으로 어떤 형상(혹은 환상)을 보기도 한다는 점 등에서 볼 때 타당성이 없
다. 따라서 본절에서 그 무녀가 본 것은, (2)의 견해대로 실제 사무엘의 혼이 아닌
사무엘을 가장한 사단의 어떤 형상을 봤음이 분명하다.
큰 소리로 외치며...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 이같은 무녀(巫女)의 언급은, 그녀가
그때까지는 자신에게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한 인물이 사울인 줄 몰랐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비록 사울은 거구의 소유자여서(10:23) 타인의 눈에 쉽게 띄일 여지가
많았으나, 그래도 당시 사울은 밤에 변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8절), 무녀의 눈에 의
해서 간단히 분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여기서 어떻게 자신에게 사
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사울인 줄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추측컨대,
그때 그 무녀(巫女)는 사울이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사울인줄 몰랐으나, 사무엘의 형상을 보는 순간 그가 사울인 줄 깨달았을 것이다. 즉
그 무녀는, 블레셋의 침공이 격렬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사무엘의 혼을 부를 사람은
그 전쟁으로 인하여 최악의 곤궁에 빠져있을 사울 밖에는 달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Keil, Lange, Klein). 더구나 그녀는 사울의 큰 키를 이미 본 터였기 때문이다. 따
라서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3, 9절) 두려움과 공포에 차서 즉각 큰 소리
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8:13
왕이...이르되 두려워 말라 -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무당과 박수를 축출시켰던 장본
인이다(3절). 따라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현장을 그 사울에게 목격당한 그 무당
여인으로서는 큰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9절).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
에, 사울은 그 무녀(巫女)에게 '두려워 말라'라는 말로 안심 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중히 여기시는 복술(卜術) 행위 조
차도 서슴없이 독려하는 자아 모순적인 작태를 드러내고 있다.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 이 질문은, 그때 사울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음을 시사
해 준다. 사실 그 무녀가 어떤 형상을 본 것은 초자연적 혹은 심리적 현상이었기 때
문에, 사울이 아무것도 못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여기 사울의 이 질문은 사
울이 무당이 위치했던 곳과 어느 정도 격리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렇다
고 해서 사울과 무당이 각기 다른 방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Smith).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 여기의 '신'(* , 엘로힘)
은형태상으로는 복수이나 단수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그 무녀는 자기가 본 어떤
형상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반영하기 위하여 한 혼의 형상만을 보았으면서도, 그것
을 복수 곧 '장엄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신'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
는 무엇일까? 이 '신'은 항상 어떤 '신'(god) 장체만을 의미치 의미치 않는다. 즉 이
말은 '신적인 존재' 곧 '영'(靈)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Hertzberg, Klein), 어
떤 '영적인 존재' 곧 '유령'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Keil, Smith). 한편 '사
무엘을 불러 올리라'는 사울의 요청(11절)으로 접신녀가 불러 올린 사무엘에 대한 해
석은 매우 어려운 난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접신
녀와 초혼술(招魂術)의 정체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초혼술을 행사하는 접
신자는 우선 강신(降神)이라고 하는 특수한 심령적 경험을 통과한 사람으로서, 죽은
자위 혼을 불러 일으켜 현실의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의 역할
을 하게 된다. 이것이 소위 초혼술(招魂術)이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이교적 사술(邪術
)형태이다. 그러나 초혼술은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에서 악령의 역사이며, 사단의
속임수이다. (1) 초혼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즉 성경은 사람이 죽게 되면 그 혼은
즉시 지상의 세계와 차원이 다른 처소(천국 혹은 지옥)로 옮겨지고 지상의 세계와 교
통하지 못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눅 16:19-31; 23:43; 고후 5:1). 따라서 초혼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결코 죽은 자의 혼이라 볼 수 없고, 다만 죽은 자의 혼을 가장한
사단 혹은 귀신의 역사에 불과할 뿐이다. (2) 초혼자는 사단의 역사를 위해 동원된
도구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초혼자는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과의 바
른 교제를 방해하며 미혹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
다(신 18:10, 11). 즉 성경은 신접자, 초혼자, 무당 등을 존재 자체부터 정하고 있는
것이다(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 결국 이런 이유로 여기서 접신녀
가 불러 올린 사무엘은 진짜 사무엘의 혼이 될 수 없다. 즉 '땅에서 올라온 그 신'은
루터(Luter)나 칼빈(Calvin)이 말한대로 사무엘의 형체를 입고 나타난 사단적 유령(곧
사단의 부림을 받은 귀신)으로 보아야 한다.
=====28:14
그 모양이 어떠하냐 사울의 이같은 질문은, 무당이 실제로 사무엘의 형상을 보았
는지의 여부를 확인키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때 사울은 무당이 사무엘을 봤다는 언
급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 사무엘이 83세에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25:1 주석
참조), 사단적 유령이 이같이 '노인'의 모습으로 무당에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
이다.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 여기서 '겉옷'(* , 메일)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망토식 가운으로서,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구별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입었던 옷이다(출 28:4; 레 8:7; 삼하 13:18; 대상 15:27), 사무엘도 생전에
선지자의 외투로서 이같은 겉옷을 입었었다(15:27). 결국 그 무당은 자기가 본 형상
의 주인공이 '노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이같은 '겉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
인한 순간, 그가 사무엘임을 넉넉히 느꼈을 것이다(Hertzberg).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절하니라 - 이것은, 그때 사울이 사무엘의 형상을
직접 봤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은, 그 접신녀가 '노인'과 '겉
옷'을 언급한 사실로 인하여, 그녀가 실제로 사무엘을 본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사
울은 무녀가 사무엘이 올라온 곳이라고 암시하는 곳을 바라보며 경외와 존경의 표시로
넙죽 절을 한 것이다.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 성경 기자는 여기서 마치 실제의 사무엘이 등장하여
말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성경 기자는, 사무엘을 흉내내
어 나타났고 그 이름을 빙자하여 말하고 있는 악령을 편의상 간결하게 '사무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악령은 초혼술(招魂術)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영
매(靈媒)인 접신녀(接神女)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로 분요케 하느냐 - '분요케 하느냐'(* , 히르가즈타니)는 '격
분하다', '진동하다'란 의미를 갖는 '라가즈'(* )의 사역형으로서 '안식을 방
해하다'(disquit, KJV; disturb, NIV)란 뜻이다(렘 50:34). 특히 이 단어는 시돈의
왕 타브닛의 비문에서 무덤에 대한 모독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Klein).
따라서 이 단어는 무덤을 평온하게 안식하는 장소로 인식하고 있는 고대 중근동의 내
세관과 잘 부합된다(Klein; 욥 3:13-19; 사 14:9). 아울러 이 말은 사람이 죽으면 경
건한 자나 불경건한 자를 막론하고 지하 세계인 음부(스올)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히브
리인들의 고대 사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계시(啓示)가 점진 완료된 신약 시대의 관점
에서 엄밀히 말하면, 죽은 자 중 성도는 낙원으로 가 위로와 안식을 누리고, 불신자는
지옥으로 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자도 음부에서 단순한 휴식을 취하지는
않는다(눅 16:19-31).
심히 군급하니이다 - 여기서 '군급하다'(* , 차르)는 대적의 맹렬한 공격으로
인하여 당하는 커다란 고통을 가리키는 단어이다(삼하 24:13; 욥 6:23; 7:11). 따라
서 영역본들(RSV, NIV)은 '커다란 재난에 처해있다'(be in great distress)란 말로 번
역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
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23:17).
선지자로도 꿈으로도...대답지 아니하시기로 - 이러한 계시(啓示)의 단절은 악한
인물 또는 악 다 시대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6절; 3:1), 여기서는 곧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객관적 증거이다. 한
편,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6절에는 언급되어 있는 계시 수단인 '우림과 둠밈'을 생략
한 것은 '우림과 둠밈'(Urim & Thummin, 출 28:30 주석 참조)이라는 계시 수단은 다른
것과는 달리 자신의 극심한 잘못 때문에 상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Talmud, Berach, X
ii. 2). 즉 사울은 제사장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22:18, 19)으로 인하여 '우림과
둠밈'이라는 계시 수단을 자신의 경쟁자인 다윗에게 넘겨주고 말았던 것이다. 6절 참
조.
행할 일을 배우려고 - '행할 일'은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는 방책(方策)을 가리킨
다.
=====28:16
네 대적이 되셨거늘 - 이 말은 칠십역(LXX)의 번역대로 '네 이웃의 편이 되셨거늘'
이란 의미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
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15절).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 만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등을 돌리셨다면, 사울
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에게 묻는 행위는 가당치 않다는 뜻의 반문(反問)이다.
=====28:17
본절의 언급에 대해서는 15:27, 28 주석을 참조하라.
=====28:18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는 사울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
불순종한 여러 사건 중 '아말렉 진멸 명령'(15:3)을 어긴 사실이 가장 치명적인 사울
의 범죄 행위임을 시사해 준다. 아마도 출애굽 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선민 이스라엘
의 여정을 최초로 그리고 비겁하게 방해하고 적대한(신 25:17-19)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회심(會心)의 복수전을 사울이 그의 사악한 탐심으로 말미암아 망쳤기 때문
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행하셨고 - 본절은 이때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을,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15:3)을 이행치 않음으로써(15:9) 나타난 결과라
고 말한다. 그렇다면 15장에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사울에게 왕위
(王位) 박탈 선언을 했다는 점(15:26)과 연결하여, 여기서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은
사울을 왕의 자리에 더이상 앉아 있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작업
중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8:19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붙이시리니 - 여기서 '붙이시리니'(* , 나탄)란 말
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어떤 당사자나 나라에게 확실한 승리를 부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사무엘
처럼 '죽은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는 뜻으로, 곧 '죽을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네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함께 죽을 사울의 세 아들, 곧 '요나단'과 '아
비나답'과 '말기수아'를 가리킨다(31:2; 대상 10:2).
=====28:20
사울이...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 무릎을 꿇고 있던 상태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
로 쓰러져버린 것을 가리킨다. 즉 사울은 자기 앞에 나타난 악령을 진짜 사무엘의 영
으로 착각하고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14절). 그
러다가 자기가 기대하던 해결책은 얻지 못하고 대신 악령으로부터 자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되자(16-19절), 그는 (1) 큰 두려움의 엄습과 (2) 육체적 탈진으로 땅바
닥에 길게 엎드러지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행 자지(自行自止)하던
타락자 사울 왕이 머지 않아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에 대한 하나의 전조(前兆)였다.
(31:1-6).
종일 종야에...먹지 못하였음이라 - 사울은 전투에 앞서 금식을 하곤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14:24). 이와 유사하게 당시에도 (1) 사울은 엔돌의 이 접신녀
에게 자신이 행할 바를 묻기 위하여 (2) 그리고 엔돌로 향하는 과정에서 블레셋의 수
비망을 뚫고 가야한다는 어려움을 예상하여(Klein) 일부러 금식을 하였던것 같다. 그
러나 그러나 이 견해와는 달리, 먼거리를 오느라고 식사를 하지 못했으리라는 가정은
(1) 당시 이스라엘의 진지인 이스르엘(29:1)에서 무당이 거주하던 엔돌까지의 거리는
불과 8km 정도(Aharoni), 즉 두 시간 거리밖에 안되며 (2) 23절에서는 사울이 주위 사
람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먹기를 거부한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성립되
지 아니한다.
=====28:21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사울은 접신녀의 입을 통하여 나오
는 말을(15절) 마치 사무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로 속아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
다. 더구나 그 접신녀는 자신과 사울 사이의 시계(視界)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향을
피웠을 가능성도 있다(Smith).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 여기서 '고통함'(* , 바할)은 '두려워 떨다'란 뜻
이다(창 45:3; 출 15:15; 삼하 4:1; 시 6:2). 그리고 '보고'(* , 라아)는 자세
하게 관찰하는 행동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같은 행동 뒤에 취한 접신녀의 태
도는 극도의 공포로 떨고 고통스러워 하며, 또한 육체적 탈진으로 기력이 쇠잔해 있는
사울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돈 것임이 분명하다(Hertzberg, Smith).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 '왕의 말씀;은 사무엘의 혼을 불러 달라는 사울의 명령
을 가리키다(11절).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 사무엘을 불러내라는 사울의 명령(11절)은 초혼(招
魂)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 그당시 상황으로 인하여(3절), 무녀에게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으로 들렸을 것이다(9절). 그러므로 그 무녀가 그같은 니한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는, (1) 사울로부터 목숨 보장에 대한
맹세를 이미 받았고(10절) (2) 또한 당시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물을 통로가 하나
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사울이 자신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음을 알고 있는 마당에서,
그 무녀(巫女)가 사울의 명령을 이행한 것은 결코 생명을 건 모험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라는 무녀의 말은 자신의 공을 자찬
(自讚)하는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28:22
본절에 언급된 무녀의 행동은 사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접신녀의 이같은 동정도 사울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는 정신적이며 근
본적인 원인을 결코 제거할 수는 없었다.
=====28:23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 이것은 당시 만사가 귀찮은, 그리고 거의 자포 자기의
상태에 있는 사울의 탈진한 심리 상태를 잘 반영해 준다.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낙담한 정신 상태를 어느
정도 수습했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따라서 사울은 지금까지 땅바닥에 엎드려져 있
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았던 것이다. 한편 여기의 '침상'(* , 밋타)
은 방의 벽을 따라 길게 배열된 푹신한 긴 의자를 가리킨다(Keil, Thenius, Smith).
=====28:24
살진 송아지...잡고 - 이것은 사울에 대한 무녀의 저성이 극진했음을 잘 시사해 준
다(창 18:7; 눅 15:23).
무교병 - 이것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으로, 급히 장만할 수 있는 음식이다(출
12:8, 15-20). 이때 그 무녀는 보다 먹기 좋은 유교병은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준비
하지 못한 듯하다.
=====28:25
그 밤에 가니라 - 날이 밝을 경우 (1) 블레셋 군대에게 발각될 위험과, (2) 그리고
블레셋의 공세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이같이
급히 서두렀을 것이다(Klein). "실로 사울은 자신과 아들들과 백성들의 죽음과 패배
를 괴로워하고 슬퍼하기에는 그 양심이 죄로써 너무 둔감해져 있었다. 따라서 사울은
그의 강퍅한 심령을 이끌고 자신의 운명을 맞으러 갔다. 즉 한때 여호와의 신이 임했
으며,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는 축복을 누린 자 - 사울은 이처럼
절망감 속에서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맞으러 간 것이다"(O.V. Gerlach; Keil & Delitz
sch. Vol. II-ii. pp. 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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