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주석

룻기 제1장 옥스포드 주석(요약자; 청지기)

손진길 2023. 7. 26. 20:12
룻기 제1장 옥스포드 주석(요약자; 청지기)
     

 

   
룻기는 전체가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별로 장면의 전환이 비교적 분명하게 이루어진다.

1장은 모압 땅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귀향하는 귀향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4장은 이스라엘 베들레햄으로 장면이 전환되는데, 2장은 보아스의 추수밭을, 3장은 타작 마당을, 4장은 베들레햄 성문을 중심으로 하여 사건의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단으로 이루어진 1장은 룻기의 단편 소설적 구성으로 발단(OpenÍng) 부분이라고 있다.

먼저 첫번째 문단인 1:1-5 부분은 나오미에게 연속적인 불행이 닥치는 내용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나오미는 유다 베들레햄 지방에 살고 있었으나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자 흉년을 피해 아들과 함께 남편 엘리멜렉을 따라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 엘리멜렉은 모압 땅에서 죽게 되고 그녀의 아들마저 땅에 거한 10 즈음에 자식도 없이 모두 죽고 만다

여기서 과부로 남게 나오미의 불행의 원인을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인간사에 있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행들은 반드시 인과 응보(因果應報)적인 상관 관계 속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3절은 나오미가 자신의 불행을 여호와의 손이 자신을 결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을 근거로 우리는 나오미 가정의 불행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The Promised Land) 떠나 이방 땅으로 향한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추측해 있다. 이방 모압으로의 이주와 더불어 시작된 나오미의 불행이 이스라엘 귀향과 더불어 반전되어 회복되어 가는 것은 이러한 추측에 개연성을 더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어떠한 이유로든지간에 설령 그것이 생계를 목적으로 것이라 해도 그분의 보호의 품을 떠나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것임을 문단은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1:6-18절은 나오미가 이스라엘에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햄으로 귀향하는 길에 있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도중에 나오미는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을 향해 자신을 따르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것을 종용한다. 거듭되는 종용에 결국 오르바는 모압에 잔류하게 되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와 동행하고자 하는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는다
 
여기서 오르바는 나쁘고 룻은 선하다는 식으로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구분해서 보아서는 안된다. 룻기에서 사실 악한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르바는 평범한 보통 사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나오미는 8절에서 며느리들이 지금껏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에게 선대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선대' 히브리어로 인애를 의미하는헤쩨드이다. 오르바는 지금껏 모압 땅에서는 나오미에게 인애를 베풀었지만 나오미가 멀리 타국에 있는 그의 본향 유대 땅으로 귀향하게 되자 끝까지 따르지 못한 것이다. 극적 효과의 면에서 오르바는 하나의 대조적 인물(a foil)로서 룻의 결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기로 결심한 룻의 결단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줄 있는 수준을 초월한 것이기에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한편 나오미와 동행하겠다고 하는 룻의 결심은 일차적으로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신앙의 결단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16)라고 자신의 결심을 밝히는 룻의 고백에서 나타나 있다. 룻은 나오미를 통해 갖게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압의 신과 민족, 땅의 문화, 재혼하여 삶을 출발할 있는 가능성 등을 모두 포기한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 낯설고 물설은 이스라엘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1:19절부터는 내용 전개의 무대가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바뀌게 된다. 1:19-22절의 문단은 룻과 함께 나오미가 초라한 모습으로 귀향하게 되는 것과 나오미를 성읍 사람들의 반응을 기술하고 있다. ‘이가 나오미가 아니냐 떠들썩하게 자신을 맞이하는 성읍 사람들을 향해 나오미는나를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하라 대답하고 있다. 나오미는감미로움이란 뜻이고 마라는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괴롭게 하셨으므로 자신을 향해 나오미라 부르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풍족한 상태에서 이스라엘을 떠났으나 여호와께서 자신을 상태로 돌아오게 하셨다고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미는 이방 땅으로 이주하였다가 완전히 '(Emptiness) 상태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오미의 고백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대한 탄식과 함께 여호와께서 자신의 삶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신세 한탄이나 여호와께 대한 원망 또는 불평과는 다르다. 룻기 전체를 주의 깊게 보면 나오미는 일관되게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지키고 있음을 있다. 그러므로 나오미의 탄식 어린 고백은 오히려 불행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섭리하시는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고통 가운데서의 애가(哀歌)라고 말할 있다.
 
성도는 이처럼 고통 가운데서 애가를 불러야 때가 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서도, 감당키 어려운, 혹은 이해할 없는 불행에 처하게 되었을 성도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선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나의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는지 이성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앙의 사람은 이때에 하나님을 원망하겠지만,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애가를 부른다.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영원히 애가만 부르도록 방치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처지와 슬픈 심정을 토로하며 하나님께 탄식의 기도를 드릴 하나님은 성도의 처지를 살피시고 슬픈 노래를 그치게 하신다. 발단부에서 등장한 애가는 룻기 결말 부분에 이르러 찬가로 바뀌게 된다. 시편의 수많은 애가들이 중도에 여호와를 찬양하는 찬가로 바뀌는 것처럼, 여호와는 자신을 향하여 애가를 부르는 자들의 노래를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