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제 3장 주석(요약자; 인내로 결실하는 자)
=====3: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 '일찌기 일어나다'의 히브리어 '솨캄'(* )은 그 자
체 로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지만, 본절에서처럼 '아침에'(* , 밥
보케르)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6:12), 아이 성
(8:10)을 정복하기 위해서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는데, 이는 대사(大事)를 앞두고 여
호수아가 항상 영적으로 먼저 무장했음을 보여준다.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유숙하니라 - '싯딤'과 '요단'에 관해서는 각각 1:2과 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떠나다'의 히브리어 '나사'(* )는 '천막 말뚝을 뽑다',
'출발하다', '여행하다'를 뜻하는 말로서, 천막 생활을 하며 유랑하였던 초기 이스라
엘 민족의 역사적 생활 무대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즉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갈 때
천막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은 다음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숙하다'의 히브리
어 '룬'(* )은 대개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숙박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
된다.
=====3:2
삼일 후 - 즉 싯딤(Shittim)에서 요단 강둑에 이른 지 3일이 지난 때이다. 이처럼
요단 강둑에 이르러 3일을 유숙한 이유는 요단 강 도하(渡河)직전 최종 마무리 준비를
해야 했고, 또한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Loen Wood, C.F. Keil).
유사 - 1:10 주석 참조.
=====3:3
레위 사람 제사장들 - 레위 지파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제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
다. 제사장은 그 가운데서 오직 아론의 자손에만 국한되었다(민 3:1-4). 신 31:25 주
석 참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 '법궤'(레 16:2), '증거궤'(출 30:6), '여호와의 궤'(수
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언약궤는 출 25:10-22에 그 규모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다(히 9:4; 왕상
8:9). 한편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으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
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다(신 31:9; 왕상 8:3, 6).
그 뒤를 좇으라 - 광야 생활 동안에도 줄곧 언약궤가 앞서 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행진하였다(민 10:33-36). 여기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바, 이를 뒤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뜻한다
(Matthew Henry).
=====3:4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 여기서 '상거'(相距)는 '멀리 나가다'(
* , 라하크)에서 파생한 형용사로 여기서 '...만큼의 거리거 떨어진'이라는 뜻이
다. 그리고 '규빗(Cubit)은 통상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까지의 거리고 약 45cm이다.
그러므로 2000 규빗은 약 900m 정도의 거리인데, 이 거리는 요단 강의 바깥 둑, 곧 엘
그호르(el-Ghor)에서 강바닥, 곧 에즈 조르(ez-Jor)에 이르는 거리고, 이는 제사장들
의 발이 강가에 닿았을 때(8절) 백성들은 여전히 바깥 강둑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언약궤를 따라가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Calvin,
Matthew Henry). (2)온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이었다(Keil, Woudstra). 한편 후일 유대 랍비들은 본절에 언급된 바 백성들과 언약궤
사이의 거리를 근거로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허용 거리를 산출하기도 했다.
가까이 하지는 말라 - '가까이 하다'의 히브리어 '카라브'(* )는 '끌어당기다
', '접근하다'를 뜻한다. 후일 법궤 운반시 웃사(Uzzah)가 무분별하게 법궤에 손을 댓
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삼하 6:6, 7)으로 미루어 볼때, 이 명령은 언약궤가 거룩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3:5
스스로 성결케 하라 - 요단 강 도하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
결'(* , 코데쉬)을 명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결의 구체적인 행위로 의복을
빤다든가(출 19:10, 14), 옷을 갈아 입는다는가(창 35:2), 또는 여인을 멀리하는 것
(출 35:2)등과 같은 외부적 성결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당시로서
는 그러한 준비를 할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수
아가 명령한 성결(聖潔)은 심령의 성결, 곧 영적 성결의 자세를 삼가 가다듬으라는 의
미로 봄이 좋다(Keil & Delitzsch, Vol. ?. p. 41). 한편 공동번역은 "목욕 재계하여
라"고 번역하였다.
기사(* ,팔라) -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 속에 개입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출
34:10에서도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3:6
앞서 건너라 - 여기서 '앞서'의 히브리어 '리프네'(* )는 단순히 '앞에서
'(before ; KJV, RSV)라는 뜻보다는 '선두에서'(ahead of ; NTV, 공동 번역)라는 뜻이
더 강하다. 실로 넘실대는 요단 강물에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큰 믿음과 용기가 요구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언약궤가 함께 하
였으므로 오직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3:7
여호와께서...이르시되 - 모세가 죽은후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크신 위
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던(1:9) 하나님께서 요단 강 도하 직전, 다시 한번
크신 능력의 말씀으로 여호수아를 격려하신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 기적적인 요단 강 도하 사건은 장차 여호수아를 영화롭게 할
일련의 기적적인 사건들의 시작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그들로 알게 하리라 - 홍해 도하(渡河)의 기적이 모세를 주의 종으로 확실히 인정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듯이(출 14:31), 요단 강 도하 사건의 기적은 여호수아를 이스
라엘의 신뢰할만한 지도자로 확실히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Keil &
Delitzsch, Vol. II. 42).
=====3:8
명하여 이르기를 - 홍해 도하 기적에 있어서의 모세의 역할보다 요단강 도하 기적
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의 역할은 간접적이다. 즉 모세는 지팡이를 들므로써 직접 사역
한 반면에(출 14:16, 21),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림으로써 간접 사역을
하였던 것이다.
요단에 들어서라 - '들어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다'(* )는 '서다', '머무르다
'란 의미이다. 따라서 요단 강에 들어가 계속 서 있음을 뜻한다.
=====3:9
이리 와서 - 여기서 '와서'에 해당하는 '고슈'(* )는 '끌어 당기다', '가까이
가다'란 의미이다(삼상 14:38; 룻 2:14).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라는 뜻으로, 이하 선포되는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주
의를 기울이게 한다. 물론 여기서 여호수아가 직접 말씀을 선포한 대상은 이스라엘 백
성의 대표자들일 것이다(Keil).
=====3:10
사시는 하나님 - 이 말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토록 살아계시사 우주 만물의 운
행과 인간의 모든 역사에 친히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말이다. 실로 여호
와는 이방의 온갖 목석의 죽은 신(神, 시 96:5;115:3-7)과는 현격히 대조되는 살아계
신 하나님 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당
신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시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
속을 진멸시키심으로써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것이었다(Keil).
계시사(* , 카라브) -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란 의미로서, 9절의 '고슈'
와 동의어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
요구되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까이 접근하심이 묘사되어
있다.
가나안 족속...여부스 족속 - 소위 가나안의 후기 일곱 족속이다. 이들 족속에 대
해서는 신 7:1 주석과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및 9:1-2 강해, '가나
안의 일곱 족속' 부분을 참조하라.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알리라 - 가나안 일곱 족속의 진멸의 필연성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서 '쫓아내다'의 히브리어 '야라쉬'(* )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 거주
하고 있는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을 점유하는것'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의 낱말로
서, 구약 성경,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었다
(Hartley).
=====3:11
보라(* , 힌네) - 단순히 '바라보라'는 개념이 아니라, 큰 주의를 요(要)할
때 쓰는 감탄사이다.
온 땅의 주 - 당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신을 민족신 내지는 지역신으로 생각하고 있
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한 지역(민족)에서 다른 지역(민족)으로 들어갈 경우에
그 지역(민족)의 신을 따라 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분명 지
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무변성(無邊性) 및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을 강조함
으로써 하나님을 어느 폐쇄적 공간이나 특정한 대상에게만 국한시키려는 시도들을 미
연에 방지하고 있다(왕상 8:27;사 66:1;행 7:48, 49). 한편, 특히 이 표현이 요단 강
도하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세상의 전 영역 즉, 바다와 강들도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이었다(Calvin, Keil).
=====3:12
십 이 명을 택하라 -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도합 열 두 명이 선발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統一性)과 완전성(完全性)을 뜻한다. 이들은 전 이스라
엘 백성을 대표하여 여호수아, 혹은 제사장들 곁에서 요단 도하 사건과 관련하여 그때
그때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4:3).
=====3:13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 - 요단강은 헬몬 산 부근의 4개의 수원(水原)에서 시작
되므로 '위'는 곧 '헬몬 산에서부터 발원하는 곳'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1:2 주석
참조. 실로 반석에서 물을 내실 수 있는 하나님은(출 17:6). 또한 물의 근원을 막으실
수 있는 분이기도 하다.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 출 15:8에 나타나 있는 홍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다. 여기서 '끊어지다'의 히브리어 '카라트'(* )는 '자르다', '분리하다'의 뜻으
로서,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분리되어 그 아래의 물과 합쳐지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쌓이다'의 히브리어 '나다드'(* )는 멈춘 물이 점차 산처럼 쌓여갔음을
보여주고, '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드'(* )는 마치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일으켜
세우듯 물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계속 불어났음을 나타낸다.
=====3:14
본절로부터 17절까지는 요단 강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으로 통과한 이
적적인 사건이 간단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수사학적인 미사여구(美辭麗
句)로 장식하지 않고 발생한 사건만을 간략히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의 실제성을 더욱
분명히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니산월(오늘날 태양력으로
는 3, 4월경) 10일이었는데, 출애굽할 때에도 역시 니산(Nisan)월이었다. 이 무렵의
팔레스틴은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호수나 강들이 최고 수위(水位)를 기록한다. 이러한
때에 처자식과 가축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외에 다른 것으로써는 도저히 설명 되어질 수 없다. 진정 출애굽 당시
나 광야 생활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진입 때에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役事)가 나
타났던 것이다(출 14:21;16:13). 그리고 이는 향후 가나안 땅에 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조(前兆)라 할 수 있다.
언약궤 - 3절 주석 참조.
=====3:15
모맥 거두는 시기 - '모맥'(牟麥)은 '밀과 보리'를 뜻한다. 그런데 이 '모맥'이란
말은 히브리 맛소라 사본(MT)에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헬라어 70인역(LXX)에 나타난
말이다. 한편 아열대(亞熱帶) 기후에 속하는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 4,5월 경이 그 수
확기이다.
언덕에 넘치더라 - 여기서 '언덕'(* , 가다)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을 가리킨다. 또한 '넘친다'(* , 말라 알)는 것은 단순히 물이 제
방에 가득 차는 것을 뜻하지 않고 가득 차 범람하는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실제로 모맥 거두는 시기 쯤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
이 녹을 뿐 아니라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되
고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넓이는 30m 이상이 된다고 한다(J.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이처럼 전체 요단 강물이 만수가 되어 염해
(사해)로 흘러가는 이 때에는 요단 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방법
으로 도강(渡江)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Rovinson). 더구나 처자식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두조차 못낼 일이었다(Keil). 그러나 이러한 완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 도강(渡江)이 오직 하나님의 기적
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Calvin).
발이 물가에 잠기자 -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
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를 메고 물 속으로 담대히 들어간 제사장들의 용기
는 아주 크다고 하겠다(Calvin).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
의 약속을 믿는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볼수 있다.
=====3:16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기자 곧
요단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섭리임에
틀리없다. 한편 우리는 성경을 고찰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적을 이루시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연을 이용한 초자연적인 기
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다. 전자의 예로 우리는 애
굽에 내린 10대 재앙 중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재앙(출
12:29, 30), 그리고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수 10:12-15)및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10도를 물러난 사건(왕하 20:8-11)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나타난 요
단 강물의 멈춤 사건에 대하여 자연을 이용한 기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즉 아담
지방 근처에는 오늘날 까지도 큰 절벽이 있는데, 가끔 지진 등으로 인해 바위가 무너
져 내려 요단 강물을 일시 정지하게 한다고 한다. 실제 그러한 일이 A.D. 1267년 12월
에 일어나 16시간, A.D. 1927년 7월에 일어나 21시간 30분 가량 요단 강물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J.P. Free, en-Nuwairi).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당시의
요단 강물도 막았다는 주장을 편다. 이것 역시 가능한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적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본문의 내용상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방금 까지도 넘실대며 흐르던 물이 곧 멈추며 뒤로 물러나 쌓였다는 기록으
로 볼 때,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및 가축 떼까지 건너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시
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해 볼 때,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은 순수한 하나님
의 초자연적 이적 사건으로 봄이 좋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rory).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 - 흐르던 물이 그치고 쌓이는 바람에 일
종의 역류(逆流)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사르단'(Zarethan)은 여리고 북방 약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는 성읍인데, 후일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 때 이곳에서
놋을 부어 기구를 만들었다(왕상 4:12;7:46).
=====3:17
여호와의 언약궤 - 3절 주석 참조.
요단 가운데 - 이말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단지 '강 가'(by the river)에 서있
었다는 말이 아니라, '강 바닥'(the bed of the river)에 서있었다는 뜻이다(Keil).
마른 땅에 굳게 섰고 - 여기서 '마른 땅'은 '물기 없는 땅'(dry ground;창 7:22;출
14:21)을 뜻한다. 그리고 '굳게'라는 말은 '서다'(* , 아마드)와 대등한 의미를
지닌 동사 '쿤'(* )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확정짓다', '고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
사장들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 부동하게 지켰다는 말이다.
요단을 건너니라 - 원문에는 '완전히'(* , 탐무)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고 있
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요단
강을 온전히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도합 200만으로 추산할 때(민 26:51), 그들이 그 행군의 폭을 1-2km
정도로 했다면 요단 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반나절(half a day) 정도 걸
렸으리라 추정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I.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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