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제273강(창47: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4월 25일(금)
요셉은 왜 형제 11명 가운데 5명만 선택하여 바로에게 보이고 있는가?(창47:1-2)
애굽의 황제인 바로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까요? 최고통치자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픈 자리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만 하고 또 이야기를 듣고 나누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명석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접견자의 수가 열명이 넘어서게 되면 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들과 나눈 이야기도 전부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효과가 나타납니다. 친견을 한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최고통치자를 만나는 영광을 나누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밀함을 더해주고자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를 못하고 더구나 그들과 나눈 이야기도 전혀 알지도 못하게 되면 서로 친교가 아니라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통치자의 접견자리에는 여러 보좌관들이 따라붙습니다. 더구나 의전방침을 정하여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수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본문에서는 그 옛날 애굽 황제를 만나는 의전행사에 있어서 그 접견인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인 사브낫바네아 요셉과 기타 의전관들의 수를 제외하고 나면 순수한 예방인의 수는 5명으로 제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창47:2). 왜 하필이면 5명으로 제한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한꺼번에 5명을 만나더라도 그 정도는 그 이름과 내력을 기억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가락이 좌우의 손에 각각 5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씩 손가락을 꼽아보면 거의 한 손으로 암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상착의를 가지고 그 사람의 생업과 관심사항을 짐작할 수가 있게 됩니다. 따라서 5명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주 현명한 의전의 규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행정구역이나 군대의 편제 또는 관직을 분류할 때에 주로 ‘5’가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동서남북과 중앙” 또는 “전후좌우와 중앙” 등으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있습니다. 말단 행정구역에 대한 감시체제도 ‘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서 소위 ‘5가 작통법’(五家作統法)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군대의 편제도 ‘1군’에서부터 ‘5군’까지로 쉽게 분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위 ‘5위 도총부’가 있으며 ‘삼국지’를 보더라도 ‘5호 장군’의 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고대의 관직도 백제의 경우 처음에는 ‘5좌평’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하나를 더하여 ‘6좌평’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본래 다섯 손가락 ‘5’를 꼽다가 사회가 복잡해지니까 어쩔 수 없이 ‘6조’나 ‘6방’이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셉은 10명의 이복 형들 가운데 5명만을 뽑아서 바로 앞에 세우고 있습니다(창47:2). 그들 가운데 말을 잘하고 설득력이 있는 유다가 리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애지중지하고 있는 베냐민은 고센 땅에 두고 왔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아니고 ‘형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창47:2). 물론 나머지 형제 5명이 또 고센 땅에 남아서 목동들과 함께 가축을 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이 함께 목축을 할 때와 종들이나 목동들만이 양떼를 돌보고 있을 때는 양떼를 돌보는 자세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인이 종업원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뛰고 있는 경영이 가장 효과적이며 바람직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를 예방하는 의전의 순서를 살펴보면, 형들 5명을 바로 앞에 세우기 전에 총리인 요셉이 먼저 바로를 친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창47:1-2). 바로의 의전순서를 요셉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형들에게 언급한 그대로(창46:31-34) 그가 먼저 고센 땅을 얻기 위하여 말문을 트고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을 모두 끌고서 고센 땅에 와서 현재 방목상태에 있음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창47:1). 그 말을 들은 바로는 그 다음에 요셉의 형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점에 관심을 가지고 일종의 질문을 통하여 확인작업을 행하고 있습니다(창47:3-4).
바로의 질문과 요셉의 형제들의 답변의 내용(창47:3-4)
바로는 총리인 요셉이 했던 말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이 가나안의 가뭄과 흉년 가운데에서도 가축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 먼 길 애굽까지 끌고 왔다고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현재 목초가 잘 자라고 있는 고센 땅에 그들이 가축과 함께 머물고 있다고 말합니다”(창47:1). 요셉의 말을 바로는 정확하게 알아 듣고 있습니다; “요셉의 말은 그의 형제들이 모두 목축업자들이므로 애굽에서도 가축을 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황제인 바로께서 고센 땅을 지정하여 그들의 목축지로 하사해주시면 황은이 망극하다는 취지입니다”(창46:34). 그래서 바로는 다음과 같이 요셉의 형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의 생업이 무엇이냐?”(창47:3a).
요셉의 형들의 답변은 요셉의 기대를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요셉이 가르쳐준 그대로 대답을 잘 하고 있습니다(창46:34). 즉, 그들의 생업은 선조들의 뒤를 이어서 여전히 목축업이라는 것입니다(창47:3b). 둘째,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양떼를 치지를 못하고 모두 애굽에 끌고 왔으므로 부디 목초가 잘 자리고 있는 고센 땅에 살 수 있도록 윤허를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창47:4). 그 요청은 요셉의 가르침보다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절실한 요구가 바로에게 먹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두 가지로 추정이 됩니다; 첫째, 이미 바로가 요셉에게 그들이 원하면 애굽의 좋은 땅을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을 한 바가 있습니다(창45:18). 따라서 바로가 차제에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직 5년간의 흉년이 남아 있습니다(창45:6). 어린 바로가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방면의 전문가이며 지혜자인 총리 요셉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요셉의 부모와 형제들을 이번 기회에 크게 선대함으로써 요셉으로부터 최대한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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