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요나 제2과(1:4-17 )(손진길 작성)
[OBS30-2]
Q1. 요나는 비록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명령보다는 선민들의 전통과 관념을 더욱 중시하고 있었음.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길 곧 갈릴리에서 동쪽으로 800km정도 떨어져 있는 니느웨 성으로 가지 아니하고 반대로 서쪽 끝 스페인의 (당시 페니키아의 가장 먼 지중해 식민지로서 주요 광물의 개발 수출 항구였던) 다시스로 향하고 있었음(1:3). 그 항로를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기 위하여 비상 수단을 사용하고 계시는데(1:4-17) 그 방법은 무엇인가?
l 첫째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불게 하시고 폭풍이 일어나 그 배를 거의 깨어지게 만들고 계시는 것임(1:4). 요컨대, 요나가 더 멀리 엇나가지 못하도록 먼저 그 진행을 신위적으로 정지시키고 계심. 그와 같이 잘못된 선지자의 행로를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초대교회시대에도 있었음. 두드러진 경우가 제2차 선교여행 당시 사도 바울의 소아시아 재차 방문계획을 취소시키시고 그 발걸음을 유럽으로 향하도록 성령과 예수의 영이 함께 역사하고 계시는 장면임(행16:6-10). 동쪽으로는 방문의 여건이 조성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서쪽 마게도냐로 가라는 환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임.
l 둘째로, 배 밑층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요나를 깨워서 선지자의 사명을 다시 일깨우고 계심(1:5-6).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배 위의 사람들을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우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인 것임(1:6).
l 셋째로, 재앙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 “제비 뽑기”(‘푸림’)를 할 때에 요나가 당첨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고 계심(1:7). 재앙의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있는 자신에게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하고 있음.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다시 바로서는 것이 재앙을 멈추고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해주고 있는 대목임(1:8-10).
l 넷째로, 회개하는 자는 대속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제11절과 제12절임. 하나님 앞에 바로서고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음. 즉, 그러한 자가 비로소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칭호를 들을 수가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음(1:9). 주변 상황이 하나님의 섭리로 그와 같이 전개되자 요나는 마침내 자신의 사명을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하면서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가를 묵상하고 있음. 결국 자신의 생각 그리고 선민들의 사고방식이 모두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이방인 구원을 위하여 바뀌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임.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유익을 부인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여기서는 깊은 바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의 삼 일간의 시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임(1:17, 마16:24).
l 끝으로, 그러한 깨달음이 있게 된다면 죽음의 시간 삼 일이 지나고 드디어 사명자로서 부활하는 새 삶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그 속에 내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참고로, 큰 물고기는 음부의 세계 ‘스올’이라고 요나가 표현하고 있음(2:2). 그렇다면 인간의 유한한 삶과 죽음의 절차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믿는 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오각성시켜서 부활과 영생으로 이르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하나님의 예비하심”(야훼 이레’)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임(창3:19-24, 고전15:50-58, 계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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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하나님의 뜻이 다시 분명하게 드러나자 요나는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선민과 이방인들 그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1:12)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가?
l 자신의 희생으로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배 위의 사람들을 모두 구하고자 하는 것임(1:12). 요나가 그와 같이 작심하게 된 동기는 그 바다 태풍의 재앙이 하나님의 명령을 회피하고 도망을 치고 있는 자신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임. “너희가 이 큰 태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1:12)는 대목이 그 점을 보여주고 있음.
l 만민에게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저주스러운 십자가 형벌을 당하면서 완전한 희생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바 있음. 종의 책임이 주인의 책임만큼 무거운 것이 아니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만큼 큰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아님(마10:24-25, 11:28-31). 그러므로 기꺼이 작은 손해와 희생을 감당하면서 많은 자들에게 유익함을 주고 그들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고 있는 크리스챤의 삶의 모습이라고 할 것임.
l 창세기에서도 자신의 희생으로 형제들이 인질과 종이 되는 위기를 벗어나서 양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있는 유다의 경우를 볼 수 있음(창44:32-34). 그러자 요셉의 입을 통하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선포되고 있음(창45:5). 요컨대, 그와 같은 맥락에서 메시아가 오고 복음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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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는 요나의 성품은 그의 이름자의 뜻처럼 ‘비둘기 같이 온유한 것”인데 그것은 어떠한 성경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l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비둘기는 크게 보아 다음 네 가지 경우임; ①노아의 비둘기(창8:8-14). ②아브라함의 비둘기(창15:9-21). ③세례 요한의 비둘기(막1:10-11). ④예수님의 비둘기(마10:16) 등임.
l 첫째로, 노아의 시대에 홍수심판이 끝나자 땅이 말랐다는 소식을 최초로 알려준 새가 바로 노아의 비둘기였음(창8:8-14). 먼저 까마귀를 방주에서 땅으로 내 보내었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를 아니했음. 그 이유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뜯어 먹으면서 까마귀가 바깥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임. 그러나 비둘기는 식물의 잎이 다시 생성될 때까지 방주에서 기다려야만 했던 것임. 깨끗한 잎을 먹이로 삼는 비둘기는 올리브 잎사귀를 하나 노아에게 물어다 주고서 인사를 한 후에 땅으로 떠나간 새임. 그 만큼 비둘기는 의리가 있는 전령이며 탐욕스러운 육식의 새가 아니라 깨끗한 잎을 먹이로 하는 새임. 한 마디로 비둘기는 창세기 때부터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음.
l 둘째로, 아브라함의 비둘기는 가장 간단한 제사의 제물을 말하고 있음. 별로 부자가 아니라도 비둘기를 마련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가 있는데 그 효과는 아브라함 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임(창15:9-21).
l 셋째로, 세례 요한의 비둘기는 나사렛 예수가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말하고 있음. 그 때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가 함께 울려 나왔음(막1:10-11). 그러므로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의 축복이 임하는 것임; ①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심. ②성령님이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심, ③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심.
l 넷째로, 예수님의 비둘기는 비유로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에덴 동산에 등장하고 있는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각색하여 인간을 타락시킨 원흉임(창3:1-15). 그 점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뱀 같은 지혜를 가지라고 말씀하고 계심. 그 이유는 그만큼 지혜를 가지고 사탄을 대적하라는 뜻임. 그러나 지혜를 가지고 지식을 가질 수록 그 마음은 평화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비둘기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임.
l 요컨대, 인간의 지혜를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며 무력을 버리고(마26:52-54) 자기 희생의 온유함으로(마11:29, 빌2:5-8) 모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성도의 삶이란 비둘기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임. 그래서 성령의 강림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그와 같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새가 바로 비둘기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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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요나를 살리기 위하여 선장과 배위의 사람들은 어떠한 노력을(1:13-16) 하고 있는가?
l 사람을 바다에 제물로 바치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힘써 노를 저어서 육지로 상륙해보고자 노력하였음(1:13). 그러나 태풍이 더욱 심해지므로 성공하지를 못했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제물로 던져 넣게 된 것임(1:15).
l 요나를 살릴 수 없게 되자 이제는 무리들이 배 위의 나머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야훼 하나님께 다음의 서원 기도를 하게 됨; ①야훼께서 바다의 태풍을 지배하고 계시는 줄 이제는 알고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②요나의 잘못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을 멸망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③요나를 제물로 드리는 저희들을 용서해주십시오. ④요나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것은 야훼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1:14).
l 그와 같은 서원 기도를 하면서 요나를 바다에 제물로 던져 넣자 곧 태풍이 그치게 된 것임(1:15-16).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장과 배 위의 사람들이 요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였으나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제물로 던져 넣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음. 그 결과 그들의 서원 기도대로 바다는 곧 조용해지고 그들은 모두 정상적인 항해를 할 수 있게 된 것임.
l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로 희생시키고 자신들의 유대교를 보존시키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정반대의 입장임. 그들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그토록 나사렛 예수의 무죄를 말하면서 방면하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묵살하고 십자가 형에 처하라고 군중을 선동하고 총독에게 정치적인 압력까지 행사한 것임(눅23:13-25). 그러므로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노력했던 유대인들은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망하고 모두 본토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만 것임. 그것은 요나의 생명을 살려보고자 노력했던 선장과 무리들의 경우와 정반대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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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자기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자 했던 요나를(1:12) 다시 살려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비상한 조치를(1:17) 마련하고 계시는가?
l 죽음의 바다 속으로 던져짐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공기가 들어 있는 그 뱃속에 집어 넣게 하신 것임(1:17). 일반적으로 육체를 가진 인간이나 동물이 큰 물고기의 뱃속에 삼킨 바 되어 들어가게 되면 그대로 녹기 시작하는 법임. 그 이유는 육질을 강력한 산성 소화액으로 녹여서 영양소로 분리하기 위한 것임. 그것이 소화기의 기능이며 소화의 개념임. 그런데 위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상식이 무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비상한 조치인 것임.
l 훗날 그와 비근한 사례로서 무덤 안으로 들어간 나사렛 예수의 시신이 사라지고 부활의 몸을 입고서 되살아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고 있음(눅24:3-12, 요20:1-18). 전통적으로 큰 물고기의 뱃속에 삼킨 바 된 것은 죽음에 삼킨 바 된 것 곧 음부 스올의 뱃속에 들어간 것을 말하고 있음(2:2). 그 음부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의 몸으로 되살아 나오는 사례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것을 사도 바울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부르고 있음(고전15:20).
l 예수님처럼 한 평생을 사는 자에게는 동일한 부활의 은혜가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임(요5:21, 11:25-26, 14:1-3, 고전15:21-24). 그와 같은 부활 신앙과 종말론적인 구원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예표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후에 되살아 나오는 요나의 기적인 것임. 그러한 의미의 상통함이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기적으로서 요나의 기적을 손꼽고 계시는 것임(마12:38-41,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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