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OBS교재(손진길 작성)

성경공부; 요나 제1과(1:1-3)(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2. 1. 6. 21:00

성경공부; 요나 제1(1:1-3)(손진길 작성)

[OBS30-1]

 

Q1. “야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1:1-2)에서 알 수 있는 사실들은 무엇인가?

 

l  첫째로, 아밋대의 아들 요나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직접 받게 되고 선지자로 세움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둘째로, 아밋대의 아들 요나가 이 글의 저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임. 물론 제3자가 요나 선지자의 이름으로 그의 활동을 기술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무리한 가설이 될 것임. 그 이유는 선지자가 받은 말씀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그의 행적을 차례대로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측면까지 서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제3자가 기술할 수 있는 범주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임.

l  셋째로, “아밋대의 아들 요나라고 정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요나의 고향과 활동시기까지 알 수 있음. 열왕기하 제14장 제25절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하나님 야훼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라고 되어 있음. 따라서 요나 선지자는 갈릴리 지경 가드헤벨(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4.8km지점이며 과거 납달리의 땅임) 출신이고 그의 활동 시기는 여로보암2세의 시대로 볼 수가 있는 것임(왕하14:26-28).

l  넷째로, 앗수르의 큰 성읍 니느웨에 대한 관심이 북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조되고 있었던 시대임(1:2).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여로보암2세의 시대는 앗수르와 그 동쪽의 아라랏이 서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북동면으로 북조 이스라엘이 진출할 수 있는 호기(好機)였음. 여로보암2세는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과거 다윗 제국 시대의 북쪽과 동쪽의 영토를 회복하였는데 그 북쪽 경계가 하맛 어귀이고 동쪽으로는 다메섹까지 점령한 것임. 그리고 그 동쪽 경계선을 남쪽으로 연결하면 아라바 바다까지 이르게 됨. , 아람을 속국으로 삼으면서 그 수도인 다메섹까지 차지함으로써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으며 이제 동북쪽으로는 앗수르와 국경을 마주하게 된 것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쏠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음. 그러한 시대에 앗수르의 대 도시 니느웨로 요나 선지자를 파견한다는 하나님의 인사명령이 떨어지고 있는 것임(1:2).

l  다섯째, 이방 나라 앗수르의 악독함이 하늘에까지 닿고 있었다는 것임(1:2). 그래서 그들의 수도 니느웨가 멸망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임. 그런데 니느웨를 멸망시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한 번 부여하고 있음. 요나 제3장 제4절을 참고하면, 니느웨가 40일 후에 멸망 당하도록 되어 있었음. 그 예정되어 있는 계획을 취소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의 파견과 성읍 주민들의 회개가 필요했던 것임.

………………………………………………………………………………………………………………………………………………………………………………………………………………………………………………………………………………………………………………………………………………………………………………

 

Q2. 그러나 요나 선지자는 동쪽인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정반대로 서쪽 끝 스페인의 다시스로 배를 타고 도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l  그 근본적인 이유는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15:5, 13-16) 그의 후손을 하나의 민족으로 육성하시고 출애굽을 시켜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계심(19:3-6). 애초에 아브라함을 하란 그 아비의 집에서 불러내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는 복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올바른 법을 가르쳐서 세상 모든 족속에게 신령한 복을 나누어주고자 했던 것임(12:1-3).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노예해방의 복, 만나와 메추라기의 제공,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은혜, 율법과 안식일의 제공, 가나안 땅의 정착, 성막과 성전 건축의 역사 등이 제공되었던 것임. 한 마디로, 온 세싱에 복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았던 것임(19:4-6).

l  그런데 가나안 그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평안과 풍요를 누리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만 아브라함의 큰 복을 온 세상에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선민사회 내로 가두어버렸던 것임. 그것은 국수주의이며 잘못된 선민사상이고 일종의 민족우월주의였던 것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만 대대로 누리고 싶어했던 것임.

l  온 세상에 전하고 나누어주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복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삼고서 선민의 특혜만을 누리면서 그들은 이방인들을 차별했는데 그 차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음; ①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선민의 행복과 번영만을 위하여 일하신다. ②하나님은 이방인들을 버리셨고 그들에게 벌을 주신다. ③율법, 할례, 성전 등의 규례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민 이스라엘에게만 향유하도록 주신 것이다. ④이방인들이 그것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대교를 믿고 이스라엘로 편입이 되어야만 한다. ⑤이방인에게는 하나님도 없고 구원도 없으며 말씀을 배울 권리도 없다.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처럼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닿아 있으므로 반드시 멸망 당할 것이며 선민 이스라엘의 노예가 될 운명인 것이다(9:21-27, 9:12, 3:7-8, 19-21, 37:25-28) .

l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을 보더라도 ①그들은 그 때까지 이웃 이방인들을 개라고 불렀으며(7:27-30,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병도 고쳐주시었음) ②같은 동족이지만 혼혈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인들까지 차별하여(4:9,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음) 인간 취급조차 아니하고 있었던 것이다(10:30-37,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인이 좋은 이웃이라고 말씀하심). ③선민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아니하며 이방인처럼 타락하였으므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멸망할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오랜 세월 외면하였으며 그들을 핍박했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했다(왕상19:1-10, 7:10-17, 14:3-12, 26:63-68, 27:22-26, 7:52-53). ④유대인들의 외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엄청나게 꾸중하셨다. 특히 하나님 말씀인 율법을 버리고 장로들의 유전과 교훈만을 지키고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전통적인 유대사회의 유전과 교훈이라는 것은 유대교인들의 생활수칙으로서 선민들의 특권을 율법의 생활수칙으로 규정한 것이었다(23:1-36, 7:6-8).

l  그와 같은 선민 사상에 물들어 있었던 요나인지라 이방족속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받아 들일 수가 없었던 것임. 그래서 동으로 가지 아니하고 반대방향인 스페인의 다시스 항구로 피신하고자 한 것임. 변방 갈릴리 출신 요나 마저 그와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선민 사상과 특권의식은 얼마나 대단하였던 것인가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임.

……………………………………………………………………………………………………………………………………………………………………………………………………………………………………………………………………………………………………………………………………………………………………………..

 

Q3. 이방 땅 니느웨에도 심판과 회개 그리고 회복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갈릴리 출신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이색적으로 구약에서 드러나고 있음. 그와 같은 메시지가 신약시대를 열고 있는데 훗날 그 주인공 두 사람이 역시 요나와 같은 고향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l  무엇보다도 이사야 제9장 말씀의 성취라고 볼 수 있음;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야훼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1-2).

l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성전이 있는 유대교 중심지 예루살렘보다는 그래도 변방 갈릴리가 종교개혁의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임.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상은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발생하여 그것이 중앙으로 침투하는 것임. 중심이 변화하게 되면 드디어 새로운 사상은 이웃과 열방으로 퍼져나가게 됨.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성령강림이 오순절 날 있게 되자 드디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선교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임(28:18-20, 1:8, 2:1-42).

l  갈릴리에서 앗수르 니느웨로 이르는 요나의 이방 선교가 BC 8세기에 있었다고 하지만 그 후 역사에 있어서 무늬만 제사장 나라였던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가 이방에 하나님 경외사상을 전파한 적이 없음. 그래서 제사장 나라가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말았는데 수백 년이 흐른 다음 AD 1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방세계에도 복음을 전하는 올바른 제사장 나라가 메시아의 나라(7:13-14, 고전15:24) 또는 하나님의 나라(3:2, 4:17)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나고 있음. 그 중심인물이 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인데 그 두 사람은 묘하게도 요나와 같은 고향 갈릴리 출신이며 메시지에 있어서도 요나의 뒤를 잇고 있는 것임(4:12-17).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 유대인들에게 보여줄 기적이란 요나의 기적 밖에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요나가 일찍이 경험한 이방선교의 기적이 새로운 복음 시대 하나님 역사의 방향이 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해주고 있는 것임(16:4).

l  그런데 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 사이에는 메시지의 차이가 다소 있음. 요한은 자신의 신분과 역할을 메시아의 시대를 예비하기 위한 길잡이라고 정의하고 선민 유대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강조하였음.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그 자신 메시아라고 주장했으며 선민 사상에 젖어 있는 유대인들의 잘못을 질타하고 선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복음사상으로 선포했던 것임.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께서 직접 파송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유일하게 하나님의 계시를 완전하게 주관하는 자라고 주장했음(11:27).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라는 기적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음.

………………………………………………………………………………………………………………………………………………………………………………………………………………………………………………………………………………………………………………………………………………………………………………  

 

Q4. 헬라파 유대인들 중 일부가 유대교를 개혁하여 이방세계에 그 문호를 개방하자고 주장하였다고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역사적 발견은 무엇이며 그들의 움직임은 어떠한가?

 

l  제임스 던(James D.G. Dunn)과 샌더스(Sanders) 등의 신학자들이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라고 주장하고 있음. 그것이 이른 바 바울 신학의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이며 오늘 날 신학계에 밀어 닥치고 있는 3의 물결. 그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복음주의 입장에서 김세윤 교수가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의 박사학위논문인 바울복음의 기원(the Origin of Paul’s Gospel, 1977)”.

l  유대교를 개혁하여 이방인도 손쉽게 유대교인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지는 것이 AD 1세기 초에 등장한 힐렐 학파였음.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 그리고 율법을 확실하게 지키지 아니하는 이방인은 결코 선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샴마이 학파나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정체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열심당원들의 주장을 수정하고자 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음. 이상과 같은 입장의 힐렐 학파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샌더스(Sanders)는 제2성전시대 언약적 율법주의에서 찾아내고 있으며 제임스 던(James D.G. Dunn)은 바울의 다메섹 회심에서 찾아내고 있음. 샌더스는 할례나 율법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언약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이방인도 유대교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해석을 가하고 있음. 그리고 제임스 던은 다메섹 체험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울이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명하시는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그가 샴마이 학파로부터 힐렐 학파로 그 전략적 입장을 수정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근본적으로 유대교가 잘못되고 기독교가 옳다고 하는 것 소위 율법이나 할례가 아니고 오로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이신칭의론으로의 확고한 변화는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 그러한 해석들이 새 관점이나 제3의 물결의 핵심 내용들임.

l  이에 대하여 김세윤 교수는 그의 저서 바울 복음의 기원바울 신학과 새 관점(Paul and the New Perspective, 2002)”에서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음. 김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임; ①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그 분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자로서 종말로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다. ②그 분의 말씀을 믿고 구원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다. ③그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개혁의 범주를 벗어나서 질적으로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만민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으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

………………………………………………………………………………………………………………………………………………………………………………………………………………………………………………………………………………………………………………………………………………………………………………

 

Q5. 그렇다면, 유대교를 개혁하여 로마 제국으로 진출하자고 시도했던 의사 누가, 바나바, 그리고 사울을 비롯한 많은 경건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떠나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l  의사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 출신으로, 바나바는 구브르 출신으로(4:36-37),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21:39) 알려져 있으며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임(6:1). 그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었으며(2:5) 헬라어에 능통했고 로마 제국 내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 교포 출신들이었음.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신봉하고 있는 유대교를 로마 제국 내에 전파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의 개혁과 개방에 대하여 그들은 열심당원과 샴마이 학파의 걍경한 태도 때문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음.

l  그러한 때에 약 430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던 그들의 암울한 회색시대에 기이하게도 갈릴리 출신 선지자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요단 강가에서 등장하였던 것임. 그들은 먼저 나타난 세례 요한을 찾아가서 질문공세를 펼쳤음. “당신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야입니까?”(3:15-20). 요한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소개했기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예수 일행을 그 때부터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으로 보임.

l  그런데 열두 명의 사도 가운데 여덟 명이 갈릴리 출신이고 네 명이 본토 유대인이므로 헬라파 유대인은 사도에 들지를 못하고 오순절 이후 일곱 집사 가운데 참여하고 있음(6:1-7). 사도의 조건이 예수님의 삼 년 반 동안의 공생애 기간 중 처음부터 끝까지 쫓아다닌 자들을 말하고 있으므로(1:21-22) 헬라파 유대인들은 도중에 합류한 셈이 되는 것임. 그러했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이 있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발생하고 나자 초대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이방 선교의 기수로 변모하고 있음. 그 이유는 그들이 꿈꾸던 유대교의 개혁 개방의 실현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의 수행이라는 것으로 변모되어 나타났기 때문임.

l  왜 그들은 유대교의 개혁을 포기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남은 생애를 로마제국 내 복음 전파와 교회 개척을 위하여 헌신한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과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론과 구원론이 모두 바뀌어버렸기 때문일 것임. 유대교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의 신 야훼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가지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진 것임(9:3-22, 17:3, 4:6). 동시에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아들인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영을 받아 들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임(1:12-14, 8:14-17). 더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받아들이면 영생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만민 구원의 복음은 폐쇄적이고 구 시대적인 유대교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 넘어서게 하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