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168강(창31:49-5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14. 23:47

창세기 강해 제168(31:49-5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2()

 

자기들이 맺은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지켜주시도록 라반과 야곱이 조상의 하나님께 위탁을 하다(31:49-55)

 

언약은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과 믿음의 사람 사이에 세워지는 언약입니다. 다른 하나의 언약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집니다. 믿음의 열조가 되고 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경우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언약이 모두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언약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는 아브라함 때에 먼저 발생합니다(12:1-4). 그리고 그 언약이 대를 이어서 이삭과 야곱에게 승계가 되고 있습니다(17:7, 19, 26:2-5, 28:13-15). 둘째, 아브라함과 블레셋의 최고 권력자인 아비멜렉과의 언약이 브엘세바에서 발생합니다(21:31). 동일한 언약이 이삭 때에도 발생을 합니다(26:28-33). 그런데 야곱의 경우에는 아비멜렉이 아니라 그의 장인인 하란의 실력자 라반과 길르앗에서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31:23, 43-55). 장인과 사위 사이인 라반과 야곱이 왜 서로 언약을 맺고 있는지 그 이유와 내용이 본문에서 상세하게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라반은 야곱을 해칠 수 있는 군사력이 있으나 그것을 실행할 수가 없습니다(31:43). 야곱에게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1:24).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호불가침조약을 언약으로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31:29, 44). 야곱을 힘으로 치고 그의 처자식과 재물을 빼앗아온들 라반에게는 이익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더 큰 보복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이 그의 누이동생인줄 잘못 알고서 후궁으로 취했습니다(20:2).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경고하시고 동시에 왕궁 여자들의 태를 모두 닫아버리셨습니다(20:3, 18). 아비멜렉은 겨우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그의 환심을 사는 동시에 사라를 깨끗하게 돌려보냄으로써 그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인들의 태를 다시 열어주신 것입니다(20:17). 그와 똑 같은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라반이 미리 조심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라반은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사후에라도 올 수 있는 위협을 차제에 모두 예방하고 싶습니다. 그 방법은 야곱 일행을 고이 보내어주는 조건으로 상호불가침조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것도 야곱을 보호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야곱이 맹세를 하는 언약이라야 안심이 될 것만 같습니다. 사실 그래야 실효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은 라반의 의도가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라반)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옵소서 함이라”(31:49), “보라, 하나님이(라반)와 너(야곱)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31:50). 야곱은 비로서 라반이 진정 원하고 있는 조약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이 맹세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의 소원대로 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31:53). 마침내 라반이 크게 만족을 합니다. 그는 흔쾌히 야곱의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고 나서 그 다음날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31:53-55).

셋째로, 야곱도 장래에 라반이 그 마음이 변하여 자신을 추격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라반이 있는 자리에서 조상들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만약 라반이 언약을 어기고 침범을 해오는 경우에는 하나님이 가차없이 징계를 해달라는 위탁의 뜻입니다. 물론 라반의 경우에는 그 반대로 해석을 할 것입니다. 야곱이 약속을 어기고 훗날 힘이 강해져서 쳐들어오는 경우에는 하나님이 간섭해달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라반 일행을 위해서 크게 잔치를 베풀어 줌으로써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계산이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는 국면을 모세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배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31:50-55).

넷째로, 라반은 야곱의 하나님께서 라반 자신의 가족도 보호해주실 수 있는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야곱에게 환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는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31:53).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만을 생각하면서 의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의 언약이 이삭을 통해서 야곱에게 계승이 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옹졸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라반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본래 그들 셈족의 조상의 하나님이십니다. 노아의 장자인 셈의 아들 가운데 특히 삼남인 아르박삿의 가문이 하나님 신앙을 가장 확실하게 파수해오고 있음을 은근히 창세기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족보가 시사해주고 있습니다(10:22, 11:10-26). 그 아브라함의 동생이 바로 나홀입니다. 그래서 라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인 나홀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르박삿의 하나님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하나님 신앙의 기원을 찾아서 올라가다가 보면, 노아의 하나님 그리고 셋의 하나님 더 나아가서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복음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성도들의 족보가 누가복음에 다음과 같이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3:38). 창조주 하나님을 모든 피조물이 차별이 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훗날 예수님이 구원의 길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 복음적인 시각이 언뜻 라반의 말을 통해서도 엿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