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32강(창8: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18. 00:18

창세기 강해 제32(8: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92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 들었고말씀의 의미(8:1-5)

 

홍수심판의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40일 동안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땅 속에서는 지진이 발생을 하고 지층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그 틈새로 용암과 지하수가 지상으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전자를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7:11-12)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7:11)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공포의 대상입니다; 폭우가 내리는 기간은 어차피 40일로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7:4). 그러나 40일 후에도 계속 지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지하수가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가장 높은 산마저 모두 물에 잠겨버리고 말았습니다(7:19-20). 이미 코로 숨을 쉬는 짐승치고 방주에 타고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서는 지상에서 모두 멸절이 되고 말았습니다(7:21-2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하수는 계속 터져 나오고 방주 주변의 물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7:24). 그것은 방주에 타고 있는 자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폭우는 멈추었지만 물이 계속 불어나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방주에 실어 놓은 먹거리가 충분할지 걱정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냥 방치를 하신다면 방주 내의 생물들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들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들이 모든 생물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방주에 타고 있음을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이 공포의 물이 이제는 물러가게 조치를 해주십시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마른 땅을 저희에게 허락해주십시오”. 드디어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타고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을 기억하십니다(8:1). 그 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마치 성령님의 바람이 부는 것과 같습니다(3:8, 2:2). 드디어 물이 줄어들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시고 동원하시는 그 바람이 물을 말리고 있는 장면을 모세가 훗날 홍해사건에서 다음과 같이 실감이 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14:21).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결과 홍수심판이 시작된 지 150, 5달만에 가장 높은 아라랏 산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8:3-5). 새로운 땅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 그날이 감격스러워서 그 날짜를 노아의 후손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짜를 모세가 ‘717이라고 적고 있습니다(8:4).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아 600217일에 홍수가 시작되고 5개월이 지난 그 해 717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면 새로운 살 길이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아니하시면 구원은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방주 속에 마냥 타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 구원이 자신의 것이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셔야만 성령의 바람이 땅 위에 불게 되는 것입니다(8:1). 그래서 죄와 죽음이라는 심판의 홍수가 물러가게 됩니다(8:1-3, 8:1-2). 마른 땅이 나타나고 드디어 새로운 삶이 시작이 됩니다(8:14-22). 그렇다면 차제에, 방주에 타고 있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 그 예언의 말씀에 의지하여 구원해달라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셋째, 자꾸만 하나님의 생각과 어긋나고 있는 환경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야만 합니다. 그 환경에 휩쓸리지 아니하도록 강한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한 마디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3:5, 8:9-17, 고전6:19-20).

그와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여 승천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그 말씀에 따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열심히 모여서 기도를 했더니 성령께서 바람처럼 임하시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그 때부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마치 노아 가족이 밟게 되는 새 땅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며 하나님이 기억을 하시고 조치를 하시겠다는 응답을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간구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벌써 모든 것을 아시고 또한 그 적절한 역사의 시기를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성도들은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보고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미 약속하신 대로 구원이 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을 하여야 합니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때가 되면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실시하실 것입니다. 적합한 좋은 예를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