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요한복음 제 25과(7:6-10)(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0. 3. 02:26

요한복음 제 25(7:6-10)(손진길 작성)

|OBS20-25|

 

Q1. 7 6-10절에서 예수님은 동생들을 먼저 예루살렘으로 보내시고 자신은 은밀하게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그 사연은 어떠한 것인가?

 

Ø  공생애를 30세에 시작하신 예수님은(3:23) 첫 해 유월절과(2:13) 두 번째 유월절을(5:1) 예루살렘에서 보내셨으나 세 번째 유월절에는(6:4)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서 일하시고 계셨슴.

Ø  그 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과(6:9-15)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을(6:19) 보여 주셨으나 모세의 율법과 만나의 신성함 보다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의 말을 듣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고(5:24, 6:29,40) 생명의 떡인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만이 영생과 부활을 얻을 수 있다는(6:47-58) 생소한 교리를 주장하게 되자 유대 교의 전통 교리를 믿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 버렸슴(6:66).

Ø  이를 목격한 예수님은 그 때까지 남아 있는 열두 제자에게 그들의 잔류 의사를 거듭 확인하셨으며(6:67-71) 예수님의 동생들은 차라리 그 동안 두 차례나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많은 이적을 행하고 니고데모와 같은 힘있는(7:50) 제자들을 양성해 놓은 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임(7:3-4).

Ø  이와 같은 주장의 뿌리에는 ①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있는 형 예수의 전도 활동이 고향 갈릴리 지방에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으며 ②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과 함께 자라난 인간 예수이지 하나님의 아들로는 믿어지지 아니했기 때문이었고(7:5) ③ 또한 이미 새해가 반 년쯤 지났지만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에는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싶었던 동생들(예수님 형제들, 7:10)의 소망이 형 예수의 예루살렘 방문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임.

Ø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 너희들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 나는 핍박을 받겠지만 너희들은 무방할 것이다. 그러하니 너희들이나 예루살렘으로 먼저 올라가라.”(7:6-8)는 뜻의 말씀을 하신 것임.

………………………………………………………………………………………………………………………………………………………………………………………………………………………………………………………………………………………………..

 

Q2. 이로 미루어 보아 예수님의 동생인(6:3) 야고보와(1:1) 유다(1:1) 등의 사고 방식은 무엇인가?

 

Ø  한 마디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 수 있다는 율법적 의이며(10:5) 선택받은 민족 유대 인들의 의로움을(10:3) 철석같이 믿고 있었슴.

Ø  이를 부정하고 있는 형 예수의 사상이 이단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임. 따라서 산헤드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함께 올라가서 종교적인 심판을 그 곳에서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임. 만약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과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지만(27:40) 그러하지 아니하다면 그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 것이라는(27:42)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 있었던 것임.

………………………………………………………………………………………………………………………………………………………………………………………………………………………………………………………………………………………………

 

Q3. 이와 같은 동생들의 생각과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인가?

 

Ø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7:16)는 어려운 말씀인 것임.

Ø  그 뜻은 첫째로, 네 번째 유월절에(12:1, 13:1, 17:31)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야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가(1:29, 24:44-48, 22:13-14) 아직 그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슴을 지적한 것이며 둘째로, 동생들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만 하면(3:5)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3:3)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맞아 들일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려 있슴을(3:16-18) 지적하고 계시는 것임. 이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동생들이 안타까와서 주님이 당부하고 계시는 말씀으로 볼 수 있는 것임.

………………………………………………………………………………………………………………………………………………………………………………………………………………………………………………………………………………………………

 

Q4.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던 예수님과 제자들이 초막절에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이유는 무엇인가?

 

Ø  초막절에서부터 시작하여 유월절에 이르는 예수님의 마지막 공생애 기간, 그 때가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임(7:6,10).

Ø  일년중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은 9월 추수가 모두 끝나면 이를 곡식 창고에 저장한 후 10월부터 시작되는 농한기에 일주일 동안 천막을 치고서 옛 날 출애굽했던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낸 그 때를 추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일주일간 교제하면서 율례를 배우는 절기였슴(23:16-17, 16:16, 수장절 또는 장막절로도 부름).

Ø  일년중 처음 절기인 유월절은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면서 유대 인들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인방(門引枋, 문위의 가로 막대)과 설주(楔柱)라고도 부르는 문주(門柱, 문의 양쪽 기둥)에 발라서 장자(長子, 맏아들)의 죽음을 면제 받았던 그 때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여 주심에 감사드리는 절기였슴(12:6-14).

Ø  두 절기의 의미를 연결하여 풀이해 보면,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 목숨을 연명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3:17-19) 그래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3:15) 붙들고서 메시야의 오심을 학수고대하는(8:56, 2:25-38, 8:19, 11:13) 부르짖음의 기간이(2:23-25) 초막절이며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으로 보내어 주신 분이(1:29, 3:13-18, 22:10-14) 하나님 아버지이시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할 수 있을 것임.

Ø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는 백성들을 만나기 위해서 유대 인 권력자들의 살해 위협을(5:18) 부릅쓰시고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임. 이 때부터 6개월후 유월절까지가 예수님의 마지막 공생애 기간인 것임.

……………………………………………………………………………………………………………………………………………………………………………………………………………………………………………………………………………………………….

 

Q5. 예수님의 공생애 제3년 초막절(10)부터 제4년 유월절(4)까지 6개월간, 그리고 부활 승천이 이루어지는 40일간, 모두 합해도 8개월 정도인데 사도 요한은 어째서 3년반 동안의 공생애 기간 중 1/5에 불과한 이 마지막 기간을 기록하기 위하여 요한복음서 21장 가운데 무려 2/3가 넘는 지면을(7장부터 21장까지) 여기에 할애하고 있는가?

 

Ø  예수님의 복음이 전통적인 유대 교인들의 교리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그 갈등이 증폭되어 마침내 십자가 처형을 초래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이 이 기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임.

Ø  이 기간의 기록을 예수님의 주장과 이에 대한 유대 인 유대 교 지도자들의 반론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이해해 나간다면 다음과 같은 유익이 있기 때문임; ① 그리스도의 복음과 유대 인들의 율법적 사고 방식의 차이를 알 수 있으며 ②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독생자를(son of God) 천한 인간의 아들로(人子, son of man) 성육신시키고 십자가 처형의 모멸과 고통까지 감내하게 하면서 기필코 인간에게 올바로 전해주고자 했던 하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③ 아울러 인간들이, 특히 선민이라고 자랑하는 유대 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동안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자기들에게만 유리하도록 편의적으로 적용시켜왔던가 하는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임.

Ø  특히 사도 요한은 이방 땅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헬라 사람들이 이를 철학적 사고의 틀에 맞추어 이해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인간의 이성적인 인식과 사고의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그 초월적인 영광을 여기에서 생생하게 설명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