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제 3과(1:13-28)(손진길 작성)
|OBS20-3|
Q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① 혈통이 아니고 ② 사람의 뜻도 아니고 ③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방법으로 거듭난 자에게(요1:12-13)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례는 어떤 것들인가?
Ø 믿음의 조상들의 경우를 보면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잘 알 수 있슴; 첫째로, 이삭이 결혼한지 20년만에 기도로 쌍둥이 아들을 얻었는데 혈통으로 따지면 에서가 야곱의 형이였으며 이삭 또한 사내다운 맏이 에서를 좋아 했슴(창25:24-28).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자신이 죽기 전에 마음껏 축복해주고 싶었슴(창27:4).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혈통주의 순서에 의한 에서가 아니고 더구나 이삭이 족장으로 세우고 싶어했던 사내다운 장자 에서가 아니었던 것임(창25:23, 27:25-29). 하나님이 인간적으로 보면 둘째가 될 수 밖에 없는 야곱을 사랑하시고 오히려 첫째가 되는 에서를 미워하셨던 이유는(말1:2-3, 롬9:13)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는 ① 택하심의 순서와 ② 긍휼 베푸심의 순서를(롬9:11,16) 주권적으로 보유하고 계셨으며 더구나 ③ 하나님 경외자로 거듭난 자(창21:33, 22:12-18, 히11:10, 16, 19) 및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창32:30, 요3:3-8, 롬6:4, 13)에게 하나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계셨기 때문으로 볼 수 있는 것임.
Ø 둘째로, 아브라함은 현실적 대안을 추구하는 인간인지라 아들이 없었던 시절에는 청지기 다메섹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기를 원했고(창15:2-3) 그 후 씨받이 하갈에게서 서장자 이스마엘을 얻었을 때에는 그를 상속자로 삼고자 했슴(창17:17-18).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현실적인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이었슴(창15:4-6, 17:19).
Ø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혈통 주의에 묶여 있지 아니하므로 양자(롬8:15) 또는 접붙임(롬11:17)이 가능한 것임. 따지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도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 양자격이었던 것임.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현실 고착적인 사고 방식을 훨씬 뛰어 넘어 새 시대를 열어 가는 창조적인 것인데 그 점을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후에 도래하는 부활과 승천의 새 역사에서 잘 엿볼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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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1:14) 전무후무한 대 사건이 발생하자 이 세상에 무엇이 나타났는가?
Ø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나타나게 된 것임(1:14).
Ø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 있기 전까지는 독생자의 영광을 인간이 알지 못했다는 것임(시110:1-5,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마11:27).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권위를 상속하고 이를 성취하는 자이므로(마11:27, 28:18-20)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온전히 드러나게 된 것임(요10:50,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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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이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는 어떠한 것인가?
Ø ‘요1:15-18’말씀 가운데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슴; ① 독생자는 피조물인 사람보다 먼저 계신 자이다(1:15, 선재설, 先在說) ② 독생하신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인간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뜻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1:18) ③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것보다 우리에게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 더욱 큰 은혜이다(1:16). 왜냐 하면, 만민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 말씀(율법)의 정확한 뜻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드러나기 때문이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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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BC 430-420년경 유다 땅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한 바 있는데 AD 27년경 유다 땅에 450년만에 다시 선지자가 나타나자 백성들은 세례 요한에게 어떠한 질문을 하고 있으며 세례 요한의 답변은 어떠한가?
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2)고 선포하며 요단 강가에서 죄를 자복하는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고 있는 요한에게 백성들은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했슴; ① 혹 그리스도신가?(눅3:15) ② 엘리야냐?(1:21) ③ 선지자냐?(1:21후반).
Ø 이에 대한 세례 요한의 답변은 한결같이 다음과 같았슴(1:20-23); “나는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다. 다만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Ø 바리새 인들은 그 때부터 세례 요한의 영적 권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도전하였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닌 자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1:25). 이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시는 메시야의 권위를 빌려서 자신의 영적 권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슴. “물 세례를 주고 있는 나는 메시야의 종이다. 그 분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비천한 종이지만 그 분은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시다.”(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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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세례 요한의 정체성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무엇이며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평가는 세례 요한의 인생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Ø 세례 요한은 바리새 인들과 백성들에게 자신은 엘리야도 아니며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증언은 이와 다름; “세례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며 말라기 선지자가 오리라고 예언했던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마11:9-15).
Ø 왜 이와 같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임; 첫째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정의하고 있었던 세례 요한이었기에 ① 사람들의 도전적인 질문에 대하여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아니하였고 ② 백성들이 그 영적 권위를 이미 인정하고 있었던 엘리야나 그 옛 날 선지자들과 같은 신분적 대우나 대접을 받기를 결코 원하지 아니했으며 ③ 오로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는 청지기의 사명과 그 역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임.
Ø 둘째로, 이와 같은 세례 요한의 마음 가짐과 처신이 위와 같은 그리스도의 칭찬과 좋은 평가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임. 사람들이 업수이 여기고 선지자다운 대접을 아니해 준다고 섭섭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인되시는 그 분의 인정(認定, recognition)과 올바른 평가(評價, valuation)가 진정 기쁜 것이며 자신의 영생(永生, eternal life with the God)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임(눅17:10, 10:19-20, 마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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