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요한복음 제 1과(1:1-5)(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9. 25. 00:12

요한복음 제 1(1:1-5)(손진길 작성)

|OBS20-1|

 

Q1. 에스겔서 예언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새 성전의 규모 성소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시내와 강을 이루어 마침내 아라바 골짜기와 죽은 바다를 되살리는 기적 거룩한 땅에는 제사장들이 그리고 구별된 허리 띠 모양의 땅에는 왕들이 살게 된다는 예언 이스라엘 땅은 새로이 등장하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재분배된다는 예언 등인데(45-48) 이를 요한복음 등 신약에서는 어떻게 성취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인가?

 

Ø  첫째로, 성소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하나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말씀(Logos)인데 이 말씀이 성육신하여 인간의 형상과 모양으로 하나님의 만민 구원의 뜻을 이 세상에 전달했을 때 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 회복의(15:20-24) 기쁨이 물밀듯이 밀려왔으며 아울러 그 동안 메말라 죽어 가던 땅들도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에스겔 예언에 대한 그리스도의 성취라고 볼 수 있는 것임(1:1-12, 8:19-23).

Ø  둘째로, 대속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죄사함의 기회가 찾아 왔으며 이를 하늘 제단에서도 성취하기 위하여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하늘 나라 성전에서 봉사하고 계신다는 것임(9:11-14).

Ø  셋째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나면(2:19) 새 예루살렘 성이 나타나는데(21:9-27) 그 곳 성전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고 왕들이 출입하고 있다는 것임. 그리고 예루살렘 성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임.

Ø  넷째로, BC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고 나자 앗수르 제국의 잡족 이주 정책과 혼혈 정책에 의하여 이스라엘 열 지파의 족보는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를 남조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 되살리고 있는 뜻은 혈통이 아니라 인위적인 족보를 만들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되찾겠다고 하는 이른 바 시오니즘의 일환인 것임. 그런데 요한복음은 이를 배척하면서 하나님의 뜻으로 열국 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된다는 사실을 갈파하고 있는 것임(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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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요한의 복음서가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인 공관 복음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Ø  마태가 유대 인의 왕으로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마가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누가가 소외된 자와 죄인을 찾아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각 유대 인적인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면, 요한은 헬라 철학, 특히 영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어떻게 그들의 인본주의적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 넘고 있는 초월자이신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임.

Ø  그러므로 유대 땅을 넘어서서 전체 헬레니즘의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자 마지막 사도인 요한이 노후에 심혈을 기울여서 적은 복음서가 바로 요한복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임.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20대 초반의 요한이 90대의 노인이 될 때까지 헬레니즘의 철학과 학문을 습득하고 이를 복음의 진수로 뛰어 넘기 위하여 그의 인생 대부분을 바쳐서 공부하고 묵상했을 것임을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임. 따라서 요한복음은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사도 요한이 평생을 통하여 헬레니즘 철학과 학문을 공부한 결과 나타난 그 산물인 것임.

Ø  결론적으로, 공관 복음은 유대교 전통을 따르는 자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쓰여진 복음서들이라고 본다면, 요한복음은 헬레니즘을 받아 들인 전세계 이방인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쓰여진 복음서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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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네 가지 복음서는 각각 언제 쓰여진 것인가?

 

Ø  일반적으로 공관 복음 가운데 가장 간결하게 16장으로 구성된 마가복음을 제일 먼저 기록된 복음서로 보고 있슴. 그 시기는 로마 황제 네로의 핍박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던 AD 60년대 중반 쯤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임.

Ø  마가복음의 내용을 총 28장으로 확대하여 더욱 상세하게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이므로 그 기록 시기를 마가복음보다 약간 늦게 AD 65-70년경으로 보고 있슴. 여기서 AD 70년 이후가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AD 70년에 발생하는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이 아직 역사적 현실이 아닌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임.

Ø  24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는 누가복음은 그 서문에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내력을 보고하기 위하여 필을 들었는데 이미 여러 사람이 저술한 바 있는 내용을 공식 문서로서 체계화한 것이라는 취지가 언급되어 있으므로(1:1-4) 이 역시 AD 65-70년 사이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임.

Ø  이상의 공관 복음보다 20년 이상 후의 작품이 요한복음임. 그 이유는 첫째로, 공관 복음의 내용을 보충하고자 하는 의도. 둘째로, 헬라 철학을 습득하기까지 사도 요한에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 셋째로, 이제는 이 작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지가 된 때 곧 밧모 섬으로의 유배가 이루어지는 AD 95년 전후로 볼 수 있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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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태초에(1:1) 의미는 무엇인가?

 

Ø  태초에(ε√ άρχη)의 뜻은 ① 세상의 기초에(foundation) ② 물질의 핵심에(core) ③ 무엇보다 처음에(in the beginning) ④ 우주적 법칙, 그 근본적인 깨달음(law and truth) 등으로 새겨볼 수 있을 것임.

Ø  첫째로, 세상 만물의 물질적 기초가 되고 있는 원자(原子, atom)를 들여다 보면, 원자가(原子價)를 형성하는 전자(電子, electron)가 자신의 궤도(軌道, orbit)를 돌고 있슴. 그런데 인간이 여기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1/10(n=8)cm라는 미시적인 차원의 단위가 필요한데 이를 1 (옹스트롬)이라고 부르고 있슴. 그리고 전자들이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고 계속 돌고 있는 이유는 대 부분의 질량을 차지하고 있는 핵(, nucleus) 1/10(n=1112)cm 세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임. 그러므로 세상의 기초(foundation)는 ① 물질론적으로 보면, 전자와 핵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며 ② 창조론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힘의 균형의 이치를 현실화시키고 이를 유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인 것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임.

Ø  둘째로, 물질의 핵심(core)에는 질량 덩어리이며 모든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핵이 존재하는데 핵은 중성자(中性子,neutron)와 양성자(陽性子, proton)로 구성되어 있슴. 성질이 다른 이 두 가지 종류의 입자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주위를 전자가 궤도를 유지하여 계속 돌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세상 만물은 무게 중심을 잡고 자신들의 모양과 형상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임. 그러므로 핵의 결합력(binding energy)이 피조 세계의 안정의 기초이며 이것이 깨어지면 핵폭발이 발생하고 모든 에너지가 방출되며 질량의 세계가 산산 조각이 나버리는 대 참사가 발생하는 것임.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다고 인간들이 자꾸만 깨뜨리고 있는 핵의 결합력을 지금도 보호 유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을 여기서 엿볼 수 있을 것임.

Ø  셋째로, ‘무엇보다 처음에’(in the beginning)는 존재론적 시초를 말하는데 이 때에 하나님이 무질서한 세상의 에너지와 질량을 핵속에 갈무리하시고 전자의 궤도를 마련하여 피조 세계의 모양을 디자인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슴. 쉽게 말하면, 여기서의 태초의 개념은 무질서의 세계가(chaos) 질서의 세계로(cosmos) 바뀌는 싯점을 의미하고 있슴.

Ø  넷째로, 우주적인 법칙을 발견하고 그 이치를 깨달아 응용하고자 하는 노력은 모든 철학과 종교 그리고 학문의 뿌리가 되고 있슴. 고대 시대부터 헬라 철학자들이 마치 동굴속에서 명상을 하다가 한 줄기 진리의 빛을 발견하여 학문의 기초를 놓은 것처럼 인도의 브라만들도 우주의 법칙 발견에, 그리고 불교의 석가도 그 해탈적 깨달음에 각각 사고의 뿌리를 두었던 것임. 그 만큼 태초에라는 아르케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철학자와 모든 종교인들의 공동 관심사였슴.

Ø  참고로, 태초부터 존재하는 우주적인 물질적 법칙에만 관심을 두는 자는 유물론자가 되고 반면에 법칙을 마련하고 만물이 그 법칙을 지키도록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영향력과 힘을 행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눈치 챈 자들은 유신론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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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말씀’(1:1)의 뜻은 무엇인가?

 

Ø  말씀(logos)의 뜻은 창세기를 보면, 창조를 행하는 하나님의 명령(1:3, 가라사대)인 것임.

Ø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무질서의 세계에(1:2) 질서를 창조하고 무원칙의 세상에 원칙을 세워나가며 태초에 만든 세상의 기초와 핵심적 결합 관계 그리고 근본적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생명을 살리고 돌볼 수 있도록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것임.

Ø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로고스(말씀)를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로서 그리고 말씀이 성육신한 것이 바로 인간 예수라고 사도 요한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1:1-5) 첫째로, 하나님이 바로 인간이 되셨다고 하는 불경스러운 가설을(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이 그 좋은 예임)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 동시에 둘째로, 죄악된 인간의 육체를 거룩하신 하나님이 도저히 옷입을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영지주의자들의 비판을 우회하고자 하는 고육지책 그리고 셋째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질서와 구별을 부여하기 위함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임.

Ø  여기서 부터 일명 로고스 기독론이 출발하고 있는데 참고로 이에 대비되는 영적 기록론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 제8장에서  잘 엿볼 수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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