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8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14. 12:29

이사야 강해 제183(41:8-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210()

 

이사야의 예언은 제39장에서 제40장으로 건너오면서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이사야 예언의 가장 큰 특징은 성경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제39장까지는 제사장나라에 대한 예언과 진술입니다. 그리고 제40장부터는 메시아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두 가지가 실로 절묘하게 접합이 되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강해한 그 언저리의 제목을 가지고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38장 제1-8; 히스기야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견인(堅忍, 참고 인내하심)과 구원에 대한 증거들

(2)   38장 제9-10; 중년의 나이에 죽음을 직면하게 된 히스기야 왕이 우연히 깨닫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

(3)   38장 제9-20; 하나님의 역사로 죽을 병이 낫게 된 히스기야 왕이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가?

(4)   38장 제21-22; 창조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을 죽을 병에서 낫게 하시고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시켜주겠다고 이미 약속하셨는데 어째서 이사야는 한 뭉치의 무화과를 아픈 곳에 붙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5)   39장 제1-2;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은 누구이며 왜 유다 왕 히스기야에서 호의를 보이고 있는가?

(6)   39장 제1-8; 바벨론 사자에게 유다 왕국의 보물창고와 무기고까지 모두 공개하고 있는 히스기야 왕의 잘못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지적을 하다.

(7)   40장 제1-2;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와 같은 이기적인 신앙인이 겪고 있는 삼중고(三重苦, 노역과 죄와 벌)장차 하나님의 은혜로 끝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알고서 미리 동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다.

(8)   40장 제3-5;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히스기야와 같은 삶인가? 아니면 아브라함과 같은 삶인가?

(9)   40장 제6-11; 이사야가 동족들에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 두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40:6-8)하나님을 보라”(40:9-11)의 차이에 대하여

(10)                40장 제12-17;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그 위상에 대하여 이사야가 선민들에게 다시 설명을 하고 있는 이유

(11)                40장 제18-26;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12)                40장 제27-31;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오해하고 있으며 무엇을 알지 못하고 있는가?

(13)                41장 제1-4; 세상의 모든 민족과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의 증언

(14)                41장 제5-7;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반발하고 있는 민족들과 나라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15)                41장 제8-13; 새로운 이스라엘을 땅끝 모퉁이에서부터 부르시는 하나님,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제38장과 제39장의 내용은 히스기야 왕이 두 번 기도하여 예루살렘 성이 구원을 받고 자신의 불치의 병이 나으며 15년 수명연장을 받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 결국은 현세적인 구원과 소원을 성취해주시는 하나님을 히스기야 왕과 선민 유대인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하나님신앙의 모습이라고 이사야는 제39장 말미 제8절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제40장을 시작하면서 이사야는 더 이상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장차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한 만민구원의 기치를 들고 현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시는 메시아와 그의 영원한 나라에 대하여 예언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과 유다 왕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중단이 되고 메시아와 성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40장부터 이사야 예언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민들의 제사장나라와 메시아와 성도들의 하나님나라와의 차이

 

이사야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동족들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특징은 하나님신앙을 이방세계 땅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활동이 전통적으로 선민사회 내에 국한이 되고 있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점입니다. 그와 같은 종교적인 개방과 개혁은 유대사회에 메시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정식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와 하란 땅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이방세계 가나안 땅으로 보내시고 계십니다(12:1-4). 그 뜻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워서 이방세계에 하나님신앙을 전파하고자 한 것입니다(20:7, 23:6). 그런데 그의 자손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그 일을 계승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자신들만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면 선민들은 모두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19:6). 그것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한없이 작게 축소하고 있는 이기적인 신앙의 형태에 불과합니다.

자신들만의 종교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구태여 제사장나라라는 용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기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번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들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민만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들의 나라입니다. 다른 민족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선민들이 자발적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그러한 의미의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40장부터 나타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은 히스기야 왕이 이끌고 있는 기존의 제사장나라 대신에 만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에 집중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사역의 특징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습니다;

(1)  이 세상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나라를 선민들의 제사장나라 대신에 건설하는 작업입니다.

이에 따라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유대인들의 인위적인 이분법과 율법적인 차별이 사라지게 됩니다.

(2)  나아가서 집단이기적인 정의구현의 시대가 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하는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3)  만민을 구원하고자 땅끝까지 하나님신앙과 메시아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무신론자들로부터 조직적인 심각한 저항을 받게 될 것입니다.

(4)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메시아와 성도들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상이 창조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상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을 땅끝 4 모퉁이에서부터 부르시는 하나님, 그리고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41:8-13).

 

  이사야의 예언 제41장 제5-7절에 따르면,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세상 끝까지 달려나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의 발걸음을 보이는 세상’(visible world)의 권세와 우상문화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승리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적들은 보이는 존재이지만 그들을 파훼하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창조주’(invisible Creator)이시기 때문입니다(41:10-13).

겉으로 보면, 약한 성도와 강한 세상적인 권력과의 한판 승부로 보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그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41:10). 그 이유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적들은 감히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 그 뜻을 저지하겠다고 멋모르고 나서고 있는 애처로운 피조물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간략하게 그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그러나 나의 이스라엘, (b) 내가 택한 야곱, (c) 나의 벗 아브라함자손”(41:8); 복음서를 보게 되면 다윗과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하여 2가지 종류가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제1장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로 시간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정상적인 흐름의 족보가 실려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자연의 흐름에 맞게 기술되어 있는 합리적인 족보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그다지 큰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 제3장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색다른 족보가 실려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아담과 그 위의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고 있는 족보입니다. 그러한 기술의 의미는 인류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까지 갈 수가 있다고 하는 구원과 영생의 길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여기 본문의 짧은 내용에서도 훗날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그 영적인 족보를 일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à야곱-à아브라함순서로 용어가 나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뜻은 선민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신앙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수식어를 각각 달리 사용함으로써 또 하나의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1)  그러나 나의 이스라엘”(41:8a); 선민 이스라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은 선민사상을 고수하면서 종교적인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나님이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2)  내가 택한 야곱”(41:8b);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동생입니다. 고대 가부장 족장사회에서 에서는 차기 족장이며 아버지 이삭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의 아들이며 영적인 장자로 선택한 자는 둘째인 야곱입니다. 그 뜻에 따라 야곱은 훗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족장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3)  나의 벗 아브라함자손”(41:8c);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에게 하나님신앙을 전파하고 있는 자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원주민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이며 선지자입니다.

1)    특히 소돔과 고모라 성의 불 심판을 준비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방문하여 그의 의견을 청취하고 계십니다(18:20-33). 그것은 아브라함을 각별하게 벗과 같이 대접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2)    훗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비슷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15:15).

3)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벗이며 그리스도의 친구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중보하는 자로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장차 메시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성도들을 이사야가 하나님의 벗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a)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 (b)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c)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이라, 내가 너를 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41:9); 선민들은 자신들만을 구원하기 위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에게 있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이 선민인 유대인들의 사회 내에 들어와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켰을 때에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선민사회 내에 들어와서 유대인화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선민들이 이방인 사회에 들어가서 하나님신앙을 전파하거나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 또는 제사를 드려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는 새로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혀 반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41:9a); 그들은 땅끝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신앙을 전합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붙들어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2)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41:9b); 온 세상 동서남북 곳곳에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자를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계속 하나님의 일을 맡길 것입니다.

(3)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이라, 내가 너를 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41:9c);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종이며 진정한 선민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일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a)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b)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c)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d)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이방인사회에 하나님신앙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하기 위하여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큰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저항과 반발이 오죽 심할 것 같으면 이사야가 망치와 모루의 전술에 의하여 격퇴를 당하는 군대가 마치 성도와 같다고까지 예언을 하고 있겠습니까?(41:7) 그렇지만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다음과 같이 각별하기 때문입니다;

(1)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41:10a);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성도들에게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그 어떤 권력이나 피조물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8:39). 구체적인 선례는 여호수아에 대한 기록에서 상세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1:5-7).

(2)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41:10b); 하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고 사건의 현장에 임재하시게 되면 육체를 가진 인간은 놀라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원수로 보시고 징벌을 하시게 되면 그것은 완전한 절망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여기서 창조주가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축복 중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겠습니다.

(3)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41:10c); 가장 우선적인 도움은 마음속으로 오게 됩니다. 굳건한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적들을 보고서 겁을 먹고 벌벌 떨던 그 마음이 사라지고 평안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형편과 처지를 바꾸어주시는 현실적인 도움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4)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d); 하나님의 오른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그 손으로 나를 붙들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세워주십니다. 그것이 구원의 자리이며 공의인 하나님 우편’(the righteousness of God)입니다.

넷째로, “(a)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b)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c) 멸망할 것이라”(41:11);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났던 모든 대적들이 궤멸이 되고 있습니다;

(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41:11a); 하나님을 대적하고 선지자들을 괴롭히던 자들은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41:11b);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던 시비와 소송이 원인무효가 되고 맙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결말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3)  멸망할 것이라”(41:11c); 위와 같은 기이한 일이 시비를 거는 현장에서 발생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있는 세력들이 빨리 눈치를 채야만 합니다. 계속 적대행위를 하다가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모두 멸망의 길로 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a)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b)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41:12);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천국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것임을 벌써 예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대항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동족인 선민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아니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선민 가운데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영접하고 하나님신앙을 이방 땅에 전하고자 하는 자들이 생겨날 텐데 그들이 훗날 맞이하게 될 고난과 핍박에 대하여 생각할 때 이사야는 가슴이 아픕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그들을 얼마나 격려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대목에서도 그러한 이사야의 진심을 진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1)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41:12a); 일반적으로 국가간의 전쟁보다 종교전쟁이 더 심각입니다. 이념분쟁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민구원을 주장하는 메시아와 선민구원만을 고수하는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이 심각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세상 끝까지 하나님신앙을 전하고자 하는 성도들과 전통적인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려고 하는 세력들과의 싸움이 전쟁의 양상으로까지 발전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적대세력이 결국은 꼬리를 말고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41:12a 의역).

(2)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41:12b); 이사야가 그 결말에 대하여 한번 더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적대세력이 더 이상 성도들을 괴롭히지 못하고 그들의 계획이 전부 헛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41:12b). 더구나 그들이 판 함정에 자신들이 빠지고 말 것입니다. 좋은 예가 훗날 에스더에 대한 기록에서 볼 수 있는 소위 부림절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7:10, 9:1-10, 28).

여섯째로,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 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41:13); 마지막으로 이사야가 다시 한번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뒤집어서 묵상해보면 장차 메시아와 그 제자들이 만민구원을 위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신앙을 천국복음으로 전하는 그 장도가 심히 고난의 길임을 미리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약속의 땅으로 진군하는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대로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1)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1:5-6).

(2)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 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41:13); 모세와 여호수아를 도우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성도들에게 함께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와 성도들이 천국을 상속하고 또한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아주 먼 미래까지 바라보고 있습니다;

(1)  먼저,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복에 집착하게 되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장차 만민구원을 위하여 구주 메시아가 유대인 사회에 오신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선민들이 메시아에게 우호적이지 아니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3)  그래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부디 메시아와 성도들에게 적대행위를 하지 말라고 거듭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대항을 하게 되면 허무한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훗날의 역사가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을 재삼 음미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끝까지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