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182강(사41:5-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년 12월 9일(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반발하고 있는 민족들과 나라들의 입장은 무엇인가?(사41:5-7)
이사야 제41장 제1-4절에서는 하나님신앙을 땅끝까지 전하는 성도들의 앞날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명령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 메시아의 오심과 제자들이 실천하는 세계의 복음화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말씀 ‘사41:5-7’ 절에서는 이에 대하여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진군을 했을 때처럼 원주민들은 두려워 떨면서 서로 공조하여 저항을 시도합니다(수2:9-11, 5:1, 10:1-5, 11:1-6). 이유는 자신들의 땅을 빼앗으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갔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계복음화에 나서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진리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요18:36-38). 그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영원한 생명이 지배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나라들이 경영하고 있는 나라와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나라의 특징은 한 마디로, 자신들만의 정의를 수호하며 현세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주의 공의를 실천하고자 하며 영생의 구원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사상은 십자가 구원과 부활사상입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조직적인 저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사41:6). 그 이유는 본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성도들이 십자가를 들고서 세상을 정복한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사41:5). 그리고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을 정당화해주고 있는 우상문화를 청산하기 싫기 때문입니다(사41:7). 이제부터 과연 그러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그 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섬들(the islands)이 보고 두려워하며, (b) 땅끝(the ends of the earth)이 무서워 떨며, (c) 함께 모여 와서”(사41:5); 세상나라와 민족들이 어떻게 서로 공조를 하여 조직적으로 성도들의 세계복음화에 저항을 하고 있는지를 선지자 이사야가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1) “섬들(the islands)이 보고 두려워하며”(사41:5a); 대륙과 달리 ‘섬들’을 언급할 때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땅들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자주 왕래를 하지 아니하고 있던 독자적인 나라들이라는 뜻입니다.
1) 그런데 갑자기 공동으로 대처를 해야만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세계복음화라고 하는 이슈는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 나라와 백성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는 지진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세상적인 방법으로 범신론적 우상문화와 인본주의 사회를 형성하고 그런대로 자기들끼리 잘 살고 있던 나라와 민족들이 생소하게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이야기 하고 있는 유일신 신본주의 사상을 만난 것입니다.
2) 그래서 그 새로운 사조의 등장에 대하여 서로 두려워하고 있는 나라들이 급기야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대처를 할 수 없는 큰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함께 공조(共助, 함께 돕고 협조함)를 하자는 것입니다.
(2) “땅끝(the ends of the earth)이 무서워 떨며”(사41:5b); 세계복음화는 어디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땅끝까지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서에 다음과 같이 적혀져 있습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사도행전에서 한번 더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땅끝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복음사상 때문에 멀리 외떨어져서 살고 있던 민족과 나라들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원시부족들까지 자기들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지키고자 두려움 가운데 그 대처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3) “함께 모여 와서”(사41:5c); 그래서 갑자기 국제관계가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 아들 구주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무덤 속 부활사상을 전파하고 있는 천국복음의 침투를 함께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가 그들의 공동이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이사야의 이 대목의 예언에서 미리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성종교와 문화권들이 나름대로 똘똘 뭉쳐서 장차 하나님신앙과 메시아사상이 전파되어 오면 그 침투에 크게 두려움을 느끼고서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이사야의 예언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훗날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나사렛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둘째로, “(a) 각기 이웃(his neighbour)을 도우며, (b) 그 형제(his brother)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사41:6); 지역사회의 이익집단뿐만 아니라 자연부락까지 본능적으로 복음을 싫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각기 이웃(his neighbour)을 도우며”(사41:6a); 학자들의 용어 그대로 ‘제2차 사회’는 이익집단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계약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계약관계와 이익의 배분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이익관계를 누군가가 변형하고자 한다면 크게 반발합니다. 그런데 그 이익을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재분배하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익집단과 계약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이웃임을 강조하면서 공동으로 대처를 하고자 합니다.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는 하나님신앙과 재물의 재분배를 의미하고 있는 메시아사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기에 사회적으로 그들끼리 똘똘 뭉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7세기 일본정부의 기독교탄압, 그리고 19세기 조선정부의 조직적인 기독교탄압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2) “그 형제(his brother)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사41:6b); 자연부락적인 제1차 사회는 서로 같은 혈통이며 형제라는 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원시종교와 문화는 유일신을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신앙과 메시아의 천국복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단결하여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a) 목공(木工, carpenter)은 금장색(金匠色, goldsmith)을 격려하며, (b) 망치(hammer)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he who strikes the anvil, 모루)을 격려하며 이르되, (c) 땜질(welding)이 잘된다 하니, (d)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을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 도다”(사41:7); 이사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담아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목공(木工, carpenter)은 금장색(金匠色, goldsmith)을 격려하며”(사41:7a); 큰 나무를 깎아서 목공이 신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1) 그 자체로서는 목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고귀한 신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금칠을 하고 있습니다. 목공이 자신이 깎아서 만든 신상에 금박을 잘 입혀달라고 장인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2) 이 대목을 일부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이유는 장차 외모를 중시하는 우상문화가 만연할 것임을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무엘 선지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2) “망치(hammer)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he who strikes the anvil, 모루)을 격려하며 이르되”(사41:7b); 여기서 망치로 고르게 하는 자와 메질꾼은 사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의 예언에 있어서 구태여 분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망치를 쥐고서 전체적으로 우상 만드는 일을 감독하는 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세상의 지배자입니다.
2) 지배자의 명령을 따라서 움직이는 자가 모루에 금속을 연단하고 있는 메질꾼입니다. 메질꾼 역시 망치를 쥐고서 모루 위에 있는 금속을 두드려서 펴고 있습니다. 금박을 얇게 펴서 우상에게 입히거나 아니면 금속연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3)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가 그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부르고 있는 전투의 방법입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부왕인 필립 왕이 즐겨 사용하였다고 하는 그 전술은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적들을 보병들이 마치 모루와 같이 강경하게 밀어 부치고 있는 사이에 날샌 기마대를 우회시켜서 적들의 후방과 측면을 갑자기 망치처럼 공격하는 전술입니다. 모루와 망치 사이에 끼이게 된 적들은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 전술을 잘 구사하여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수가 많은 페르시아 군대를 상대하여 크게 무찔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3) “땜질(welding)이 잘된다 하니”(사41:7c); 오늘날의 땜질은 서로 다른 금속을 접합시키는 용접입니다. 하지만 고대사회의 땜질은 같은 금속을 녹여서 서로 붙이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땜질이 잘된다고 서로 격려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루와 망치 전술’과 같이 여러 나라와 민족들이 서로 공조하여 효과적으로 하나님신앙과 메시아사상을 방어하게 될 것이다”.
(4)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을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 도다”(사41:7d); 세상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효과적으로 하나님신앙과 메시아사상을 물리치고자 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들의 우상문화를 견고하게 지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왜 그렇게 우상문화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세상사람들이 현세적인 이익과 성공에 누구나 목말라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무병장수하며 한 평생 이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이사야 시대 유다 왕국 히스기야 왕의 소원과 같은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소원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긍정적으로 두 차례 들어주셨기에 그만 히스기야의 하나님신앙이 잘못되고 맙니다. 그가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자신의 우상으로 여기고 만 것입니다. 언제라도 여호와께 나아가서 소원을 아뢰게 되면 적군도 물러가고 불치의 병도 말끔하게 치유를 받을 수가 있으므로 한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도구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히스기야 왕이 진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는 훌륭한 성도로 살다가 영생을 얻는 믿음의 열조가 넉넉히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현세적인 영화에 그만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사39:8). 그저 한 세상 잘 살고 가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이 그에게 필요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을 목격하게 된 선지자 이사야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신앙을 바로 세우고 장차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건설하고자 하는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라고 그의 동족들과 후세대에게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글 가운데 오늘의 본문은 특히 세상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신앙과 메시아의 사상에 크게 반발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현세적인 이익을 기득권으로 공유하고 있으므로 그것에 변혁을 가하고자 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에 크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와 마찬가지로 그의 제자들도 천국복음을 전하는 앞길에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700년 후를 미리 내다보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기록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오늘날 세계복음화의 길에도 사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침투를 막겠다고 여러 종교권과 문화권이 서로 조직적으로 공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극단적인 행동을 불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승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저희들에게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이미 주심을 감사합니다(롬8:37-39). 이제 현실적으로 다시 한번 그 은혜가 이 자리에서 풍성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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