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18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13. 22:02

이사야 강해 제181(4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128()

 

세상의 모든 민족과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의 증언(41:1-4)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제40장 마지막 절인 제31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본문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말씀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고 있는 40:31절 말씀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여기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40:31)는 창조주 여호와를 믿고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새 세상 건설에 동참하고 있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세상적인 지혜와 방법을 내려놓고(But they that wait upon the Lord”, 40:31, 풀이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을 기다릴 줄 아는 자들)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또한 모르는 것은 정직하게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와 같은 모습의 성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혼을 강건하게 하시고 새 힘을 부어주어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선지자로 힘있게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서 오늘 본문말씀을 묵상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로, “(a) 섬들아 내(여호와)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b)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말하라. (c) 우리가 서로 재판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41:1); 여기서 섬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여러 땅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들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종족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힘과 집단적인 힘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41:1a).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힘을 새롭게 할 수가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이사야가 진술하고 있습니다;

(1)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고 말하라”(41:1b); 사람들이 자신이나 민족의 힘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들을 창조했으며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living soul) 곧 영과 육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2:7).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다음과 같이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한 세상을 제멋대로 살다가 보니 그만 영적인 타락으로 생명의 에너지가 상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두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다시 불어넣어 주십시오. 구원을, 곧 영생하는 힘을 얻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우리가 서로 재판자리에 가까이 나아가자”(41:1c);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무조건 영생을 얻는 구원을 달라고 하면 그냥 주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종말론적인 재판의 절차가 있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심판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 속에 들어가 있는 자들에게도 반드시 부활과 더불어 그 종말심판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6-29).

둘째로, “(a)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 (b)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하되, (c) 그들이 그의 에 티끌 같게, 그의 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41:2); 언뜻 보면, 동방의 바사 왕 고레스에 대한 예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구절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보면 고레스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임을 다음과 같이 알게 됩니다;

(1)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깨워서 공의를 불러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냐?”(41:2a); 동방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달려온 자가 누구일까요?

1)    쉽게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고레스 황제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주전 538년경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중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레스 황제는 그 일이 감사하여 당시 바벨론에 전쟁포로로 끌려와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자유민으로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고레스 황제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크게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서 제44장 제26절부터 제45장 제6절까지의 말씀을 믿고서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고레스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공의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0:2a). 장차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사실을 이사야가 벌써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한 바가 있습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11:4-5).

3)    이사야는 고레스에 관한 예언 다음에 곧바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제45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45:8).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는 신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고레스 황제를 세워서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는 정도의 세속적인 구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모두 영생의 구원의 기회를 그들의 인생 가운데 맞이할 수 있도록 창조주의 공의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어울리는 진정한 공의의 실천이라고 하겠습니다.

(2)  열국을 그의 앞에 넘겨주며 그가 왕들을 다스리게 하되”(41:2b); 이 세상에 진정한 왕중왕으로 오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1)    제국의 통치자로 오는 자는 페르시아의 황제 고레스와 같은 정복자일 수 있습니다. 고레스는 당대에 신바벨론 제국이 다스리고 있던 120개 종족의 땅을 모두 차지했으며(6:1) 그의 후계자는 인도와 애굽까지 차지하여 모두 127개 종족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1:1).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보자면, 고레스와 같은 불세출의 영웅인 정복자가 무력으로 수많은 왕들을 굴복시킨 왕중왕입니다.

2)    하지만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그리고 공의로 그 일을 이루는 왕중왕은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유를 훗날 그리스도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26:52-54).

(3)  그들이 그의 에 티끌 같게, 그의 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41:2c); 티끌을 심판하는 칼, 그리고 마른 풀을 심판하는 활에 관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무력으로 역사적인 심판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1)    티끌과 같은 인생을 심판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칼처럼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

2)    피조물을 초개와 같이 날려버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도구가 활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선지자 하박국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3:9),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3:11).

셋째로, “(a) 그들을 쫓아가서, (b) 그의 발로 가보지 못한 길(c) 안전히 지났나니”(41:3);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을 검과 활로 사용하여 이방인들의 땅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나아가게 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 이사야가 다음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들을 쫓아가서”(41:3a); 이사야는 메시아와 성도들이 결코 패퇴하지 아니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을 쫓아가서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41:3a).

(2)  그의 발로 가보지 못한 길”(41:3b);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행하는 능력의 종으로 살아갈 때에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가게 되는 것일까요?

1)    이사야는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처가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대략적인 방향은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는 가나안으로 보내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어디인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 땅과 그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사전에 아는 바가 없습니다.

2)    그와 같은 입장을 모세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12:1)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히브리서 저자는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11:8).

(3)  안전히 지났나니”(41:3c);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말씀 들고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앞길에 어떠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결정이 벌써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표현이 5:24’ 절과 같이 여기서도 과거형입니다; “안전히 지났나니”(41:3c).

넷째로, “(a) 이 일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b)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c)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d)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니라”(41:4);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길은 선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차별하지 아니하고 만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이 땅에서의 한시적인 세상적 구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 나아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원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장차 이 땅에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을 여러 번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누가 그 영생의 구원을 계획하였는지 그리고 누가 이 땅에서 그것을 실천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1)  이 일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41:4a); 겉으로 보면, 인류의 역사 가운데 영혼구원사업이 선지자와 메시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으로 함께 하시며 동행하신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증언이 다음과 같이 분명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8:28-29).

(2)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41:4b); 사도 바울의 서신서 가운데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소위 예정론입니다(1:3-14).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을 참조하면 이해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메시아를 만나서 영생의 구원을 얻도록 그 이름을 불러내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설명은 훗날 예수님의 복음과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예수님의 복음은 죽은 자까지 모두 살려서 심판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5:25-29).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시대 믿음의 열조들이 모두 죽어서라도 메시아를 만나서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소원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11:13-16, 26).

(3)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41:4c); 모세는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이라는 전면심판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만두셨다는 내용을 창세기에서 소위 무지개언약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8:21, 9:8-17). 그 결과 역사적인 심판은 국지적인 심판으로 머물게 됩니다. 이른 바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이 그것입니다(19:24-25). 그리고 심판 대신에 구원을 베풀고자 구주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실 계획입니다. 이사야는 그 모든 구원계획의 시작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번 선언하고 있습니다(41:4c).

(4)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니라”(41:4d); 이사야는 하나님의 속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한한 인생을 살고 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영생하시는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은 다음과 같이 영원한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이사야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이 됩니다. 창조주의 공의의 법칙에 따라 만민구원의 방책을 실시하신다고 한다면 그 효력은 장차 이 세상에 살게 되는 모든 인류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41:4d). 그와 같은 의미의 말씀을 훗날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17:20).

2)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주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물을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3)   만약 피조물의 시간과 공간에 종속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주가 이미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기에 영이신 하나님이십니다(4:24).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 앞에 서 계시는 예수님이 그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4:16-19). 그와 같은 의미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시고 나와 너와 우리와 그들이라는 만민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여 지금 이 장소에서 나를 만나시고 계시는 그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결정과 뜻이 항상 옳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주로 히스기야 왕 시대에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한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입니다. 그는 지상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 왕국의 왕 히스기야의 처신을 바라보면서 깊은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며 그 하나님신앙이 현세적인 축복과 구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제41장 본문에서 열방과 모든 민족을 구원의 자리로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실 계획도 다시 비유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만민구원의 계획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로 세워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 일에 동참하지 못하고 늑장을 피우게 되면 티끌이나 초개와 같이 하나님의 바람 앞에 날려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은 히스기야 시대 예루살렘에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의 기득권만 주장하고 현세적인 이익에만 집착한다면 똑 같은 이사야의 경고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새 힘을 받아 영생의 구원을 온 세상에 전하며 그리스도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