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95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6. 27. 18:02

이사야 강해 제95(21:11-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914()

 

두마와 아라비아에 대한 이사야의 경고(21:11-17)

 

창세기의 기록에 따르면,두마’(21:11)는 본래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중간에 있는 여섯 번째 아들의 이름입니다(25:14). 그리고 이스마엘 자손들의 거주지는 대체로 요르단 남쪽과 사우디 아라비아 북쪽입니다; “그 자손들은 하윌라(아라비아)에서부터 앗수르(수도가 티크리스 강 상류의 니느웨임)로 통하는 애굽 앞 술(수르 광야)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이스라엘 자손)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더라”(25:18).

두마로 대표가 되고 있는 이스마엘 자손들이 이사야 예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애굽 지역을 오가는 상단을 꾸리거나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37:25-28). 둘째, 가나안 땅을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으면서 약탈민족으로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위험한 장사를 하거나 잦은 전투를 치르면서 야성미가 넘치는 인생을 살아간 족속들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둘째인 시므온 지파의 행동을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34:25, 49:5-7, 1:23, 26:14, 너무 호전적이어서 잦은 전투로 말미암아 장정의 수가 59,300에서 22,200으로 줄어 들고 있음).

본문에서 이사야는 단 두 절로 두마에 대한 경고를 한 다음에 바로 이어서 5절을 할애하여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마와 아라비아가 함께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에게 가장 큰 골치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신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나보니더스는 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원정에 자주 나서야만 했습니다.

수 차례의 원정에도 끝까지 굴복을 하지 아니하자 어쩔 수가 없어서 아예 그곳에 별궁을 지어놓고서 십 년 이상 장기주둔을 했습니다. 정사를 모두 아들 벨사살 왕에게 맡겨놓고서 제국의 안위를 위하여 강력한 정예병으로 두마와 아라비아의 여러 족속을 제압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신바벨론 제국에 멸망이 찾아옵니다. 중앙이 허술해져서 그만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게 기습을 당하여 수도권이 함락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5:30-31). 주전 539년경의 일입니다.

이제부터 구절을 따라가면서 본문의 이사야 예언의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21:11); 여기서 두마는 이스마엘 자손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일은 에돔 족속의 거주지역입니다. 그 옛날 이스마엘과 조카 에서의 기질이 야인(野人, 들 사람)으로서 비슷했듯이(16:12, 21:20-21, 25:27) 그들 자손들도 사는 방식이 비슷합니다(25:18, 36:8). 그들은 하나같이 칼을 의지하고서 살아갑니다. 그만큼 위험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파수꾼과 같은 선지자에게 묻고 있습니다. 언제 그들에게도 희망의 아침이 찾아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밤이 언제나 끝나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신바벨론의 황제 나보니더스가 십 년 이상 제국의 정예병을 투입하여 그들 종족의 씨를 말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입니다.

둘째로,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21:12); 하나님의 파수꾼인 선지자 이사야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이 오겠지만 또 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면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을 합니다. 칼과 활로 살아가는 두마와 에돔 족속들이 또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면 또 다시 정벌의 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시대가 지나면 헬라 제국의 군대가 몰려올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더 막강한 로마의 군대가 진압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자손과 에서의 자손이 살기 위해서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약육강식의 철칙에 의존하고 있는 전투의 방식에서 용서와 화합을 실천하는 복음적인 방식으로 변화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찬란한 아침을 맞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의 삶의 방식을 내려놓고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사야가 대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셋째로, “(13)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14)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15)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21:13-15); 이사야가 아리비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면서 가장 먼저 드단 대상들과 데마 땅의 주민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1)  여기서 드단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의 자손입니다(25:1-2). 그두라의 차남 욕산의 차남이 드단이기 때문입니다(25:3). 그의 형이 스바인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가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유복했으며 대상들입니다(37:25, 21:13).

(2)  그런데 그들이 오아시스의 객점에 유숙하지를 못하고 아라비아 수풀에서 비박을 하고 있습니다. 대상들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항상 숙박시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보다는 편한 쉼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한 마디로, 쫓기고 있는 신세입니다(21:15). 따라서 객점을 찾아서 들어가서 쉴 수가 없습니다. 요컨대, 아라비아 땅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반군세력과 테러리스트들의 소굴과 은신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군을 소탕하기 위하여 제국의 군대가 출동하여 모든 객점을 수색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3)  그들을 돌보아주고 또한 숨겨주고 있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데마 땅의 주민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9째입니다(25:15). 그는 두마의 동생입니다. 그는 형 두마와 달리 성품이 온순한 거주민으로 보입니다(21:14a). 따라서 그 자손들이 대상들의 편의를 보아주고 있는 것입니다(21:14b).

넷째로, “(16)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같이 일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17)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16-17); 게달은 이스마엘의 차남입니다(25:13). 그의 후손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이며 대표적인 전사(戰士, warrior)들입니다(120:5). 마치 이스라엘의 차남인 시므온과 성향이 같습니다. 따라서 제국의 군대와 끊임없이 전투를 벌입니다. 그 때문에 이사야는 게달 족속의 수가 급감할 것이며(21:17) 일년 내에 그 족속의 이름이 미미해져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21:16).

그러므로 게달 족속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 곧 그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그 투쟁의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래서 복음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야만 합니다. 새로운 방식을 가지고 영적으로 전투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살고 자손들도 살아남으며 적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의 시대, 곧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바라보면서 이사야는 미래에 대한 예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의 경고는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세상 모든 족속들이여,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부디 하나님께 돌아와서 새로운 복음적인 삶의 방식을 배우십시오”. 예를 들면, 두마와 게달 족속과 같은 자들은 칼과 활을 내려놓고 새로운 영적인 투쟁의 방식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단과 같은 장사꾼들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쫓기는 삶을 버리고 부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새로운 안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데마와 같은 거주민들은 자신의 편만 도와주는 행위를 넘어서서 이제는 원수까지 돌보아줄 수 있는 복음적인 생명살림의 역사에 동참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는 그 때를 예비하라는 것이 이사야 예언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사야의 경고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너나없이 명심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