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지막 기록 곧 조국의 멸망과 애굽에 피신한 난민들의 종말 그리고 바벨론에서 재건되는 다윗의 가문 이야기”(렘52:1-34)
설교일; 주후 2028년 2월 2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6년 2월 26일 목요일 작성)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전 627년경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아 약관의 나이에 선지자활동을 시작하여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3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렘1:1-3). 이제 자신의 선지서 내용을 마감하면서 본문 제52장에서 그 점을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이 요약정리하고 있습니다;
(1) 주전 586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왕궁의 뜰에 있는 옥사에 갇혀 있습니다. 그해 여름 철옹성 예루살렘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함락되는 것을 그곳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조국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입니다;
1) 예레미야는 성군 요시야가 주전 609년에 므깃도 요새에서 애굽 군사의 화살을 맞고 예루살렘으로 후송 도중에 절명하게 되자 그때부터 국운이 기울고 조국 유대왕국이 말기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찍이 주전 700년경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예언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의 예언이 예루살렘에 임하기 시작하고 있음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직감하고 있는 것입니다(사39:5-8, 렘1:14-19). 따라서 주전 609년에 애굽의 바로가 세운 여호야김 왕이 집권하자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더욱 크게 외치기 시작합니다(렘25:1-11).
2) 주전 597년이 되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의 막강한 갈대아군대의 침입을 받아 여호야긴 왕이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항복합니다. 그때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대왕국이 다시는 반란을 일으킬 수 없도록 조치합니다. 왕과 귀족들 그리고 군사와 장정들을 모조리 바벨론으로 끌어가고 유대왕국의 금은보화는 물론 장인들까지 전부 끌어 모아 북송하고 맙니다(왕하24:13-16). 그 결과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명목뿐인 유대왕국을 다스리도록 느부갓네살 황제는 시드기야 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책봉하고 있습니다(왕하24:17).
3) 그런데 주전 593년이 되자 애굽의 바로가 은밀하게 가나안 일대의 왕국에 반(反)바벨론 동맹을 제안합니다(렘27:3-4). 느부갓네살 황제의 횡포와 가렴주구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왕국 등이 크게 호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워낙 국력이 약하고 군사력이 약세이므로 주전론과 주화론 가운데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화론이 여호와의 뜻에 합당한 것이라고 진언하며 백성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렘27:5-15). 그러나 선민사상과 반골사상이 깊은 유대인 대신들과 종교지도자들이 거짓선지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대세를 이루자 마침내 시드기야 왕이 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하여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상태에 들어갑니다(렘38:1-6). 개전 첫해에는 애굽의 바로 호브라가 군대를 끌고 와서 갈대아군대의 후미를 공격합니다(렘37:5a). 그 결과 느부갓네살 황제가 작전상 후퇴합니다(렘37:5b). 그것을 보고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마치 완전한 승리를 얻은 듯이 기뻐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로부터 얻은 예언의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계속하면 반드시 나라가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렘37:6-10).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외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국론을 분열하는 이적행위자로 분류되어 왕궁의 뜰에 있는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렘38:6, 13, 28). 그 결과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는 것을 예레미야가 옥중에서 지켜보게 되는 것입니다(렘38:28, 39:14);

(2) 철옹성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기 위하여 갈대아군대는 주전 587년부터 그 다음해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예루살렘성에 기근과 전염병을 발생하도록 역사하지 아니했다고 하면 더 많은 희생이 발생했을 것입니다(왕하25:3, 렘24:10, 27:8). 그에 따라 갈대아군대는 그 앙갚음으로 예루살렘성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파괴합니다. 왕궁과 성전을 불태우고 성벽을 헐어버립니다(렘52:13-14). 주택마저 파괴하였기에 이듬해 총독부를 개설할 때에 예루살렘이 아니라 30리 북쪽의 미스바에 설치합니다(렘40:6);

유대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백성을 포로로 끌어가고 모든 놋제품마저 깡그리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맙니다(렘52:15, 17-19). 그에 따라 유대왕국의 고토에는 재산이 없는 힘없는 백성들과 유목민만이 남아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여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렘52:16). 그 일을 주관하는 기관이 미스바의 총독부인 것입니다(렘40:6-12).
(3) 주전 585년에 왕족 이스마엘 일당이 총독 그다랴를 암살하고 미스바의 총독부를 장악합니다(렘41:1-3). 그들은 유대인 유민들을 끌고서 북부 아라비아에 있는 아람의 망명정부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망명정부를 그 곁에 세우고자 합니다(렘41:10). 그러나 친(親)애굽 유대인 귀족과 유대인 무장세력에 의하여 토벌이 되고 아라비아로 도망하고 맙니다(렘41:11-15). 가나안 땅에서 무장세력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으므로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군대를 보내어 소탕작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에 따라 유대인 유민들과 그 지도자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예언을 신탁으로 받아 달라고 요청합니다(렘42:1-6). 열흘이 지나자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신탁으로 받아 그들에게 전달합니다; “만약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나안에 머무르게 되면 여호와께서 안전을 보장하겠지만 그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들어간다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뒤따라가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42:11-17). 친 애굽 지도자들 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무장세력들이 여호와의 말씀보다는 세상제국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고자 유민들을 데리고 애굽 땅으로 들어갑니다(렘43:4-7).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와 수제자 바룩을 강제로 끌고 갑니다(렘43:6b). 4년이 지나자 주전 582-1년에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애굽제국을 침입합니다. 애굽의 제26왕조의 두사람의 바로와 군사들이 사력을 다하지만 하(下)이집트와 상(上)이집트를 차례로 상실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애굽의 국경지대 홍해가 믹돌, 고센 땅의 중심인 다바네스 등에 형성되어 있던 유대인 난민촌이 차례대로 망하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멀리 남쪽의 오지 바드로스에 들어가서 마지막 난민촌을 구축합니다(렘44:1-15). 그것을 보고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상(上)이집트의 중심 테베가 무너지게 되면 갈대아군대가 바드로스까지 쳐들어올 것이므로 가나안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합니다. 그러나 극소수만이 선지자 예레미야와 바룩과 행동을 같이하고 대다수는 그곳에 남아 마지막 전란에 시달리게 됩니다(렘44:20). 참고로, 당시에 포로로 잡힌 유대인의 수가 본문 제52장 제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전 562년말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서거하고 이듬해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황제가 됩니다. 그때 에윌므로닥 황제가 바벨론 감옥에서 주전 597년부터 37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 왕 여호야긴 곧 여고냐를 석방합니다(렘52:31). 그리고 귀족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입니다(렘52:33-34).
지금까지 상세하게 설명하였지만 그 요점은 다음 3가지입니다;
(1)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대인 왕과 신민들의 영적인 타락과 우상 섬김 그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행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선민의 나라가 멸망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바벨론 포로에서 석방되는 유대인들은 장차 어떠한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미 타락한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재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것일까요?
(2) 그 해답의 실마리를 선지자 예레미야가 벌써 제31장 제31-34절에서 여호와가 원하시는 새 언약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속의 그리스도의 오심과 보혜사 성령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장차 여호와를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성전이 건설되고 여호와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행1:8). 그와 같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므로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더라도 다시 붕괴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신위적인 능력을 행사하는 메시아에 의하여 다윗왕조가 다시 선민 이스라엘의 제국을 건설하기를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 대속의 희생과 무덤 속 부활을 통하여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십니다. 그 일에 자신이 속한 다윗가문과 레위인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선지서는 본문 제52장 제31-34절에서 다윗가문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책봉으로, 왕하24:17) 시드기야가 (유대왕국의)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1세라(같은 해 3개월전에 18세의 나이로 즉위한 여호야긴 왕보다 단지 3살 연상인 막내 숙부임, 왕하24:8).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여호아하스 왕과 모친이 같음, 왕하23:31. 그러므로 성군 요시야의 또 다른 왕비 스비다의 소생인 여호야김 왕과는 이복형제임, 왕하23:36).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 그가 (유대왕국을 11년간 다스린 바 있는)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방 강대국을 의지하여 유대왕국을 통치하며 우상을 섬기는 것을 금하지 아니한 것임)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므낫세왕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임, 왕하21:1-16)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느부갓네살 황제 갈대아군대의 약탈로 쓸만한 백성과 금은보화를 모조리 바벨론에 빼앗겨버린 빈껍데기와 같은 시드기야 시대의 유대왕국임, 왕하24:1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 왕과 대신들이 느부갓네살 황제를 더이상 섬기지 아니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주전 593년에 애굽의 바로가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을 끌어 모아 반 바벨론 동맹을 결성하고 있기 때문임, 렘27:3-4) 4. 시드기야 제9년(주전 588년임. 시드기야 왕은 주전 597년에 즉위했음)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평균 해발 790미터의 고지대이며 삼면이 높은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예루살렘성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작전상 그 주위에 높은 토성을 쌓을 수밖에 없는 것임), 5. 그 성이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3년간) 포위되었더라!(시드기야왕과 신하들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것임) 6. 그 해(주전 586년임) 넷째 달 구일(유대인 종교 달력으로 4월 9일은 태양력으로 7월경이므로 무더운 여름임, 출12:2)에 (예루살렘)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기근의 재앙은 여호와의 예언에 따른 것임, 렘24:10, 27:13) 7. 그 성벽이 파괴되매(기아상태의 유대인 병사들이 예루살렘성을 더 이상 지킬 수가 없어진 것임), 모든 (유대인) 군사가 (시드기야 왕을 모시고)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내벽과 외벽) 사이 왕의 동산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있는) 곁문 길로 (몰래)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멀리 마른 골짜기) 아라바 길로 가더니, 8.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지고 있는 유대인 병사들 가운데 북쪽으로 가고 있는 자들이 시드기야 왕의 무리인 줄 알고)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국왕을 버려두고 제 살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진지라!(막14:50. 그들 가운데 훗날 의병장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렘40:8, 스라야와 에배의 아들들) 9. 그들(갈대아 병사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느부갓네살 황제가 가나안 북동쪽 하맛 땅에 본영을 두고 있는 것은 당시 반 바벨론 동맹에 참여한 가나안 일대의 왕국을 모조리 정벌하고 있기 때문임, 렘27:3)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황제가 친국, 親鞫,을 행함) 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왕자)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그 대신 공주들은 살려서 미스바 총독부로 보낸 것임, 렘41:10)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왕자와 주전파 대신들의 처형은 시드기야 왕에게 엄청난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고 있는 실로 잔혹한 처사이며 일종의 보복행위임), 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그 옛날 삼손의 경우와 같음, 삿16:21)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렘52:1-11);

(1) 본문 제1-6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 황제를 배반한 이유가 무엇이며 그의 정책결정이 어떻게 잘못 되었기에 여호와의 버림을 받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구절풀이에서 살펴봅니다;
(2) 첫째, 제1-3절입니다; “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렘52:1-3); 다음과 같이 4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다스리니라”(렘52:1a);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과의 전쟁을 앞두고 갑자기 여호야김 왕이 죽자 세자인 여고냐가 그 뒤를 잇게 됩니다(대상3:16). 그가 여호야긴 왕이며 당시 18세입니다(왕하24:8). 여호야긴 왕은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신하들과 함께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3개월만에 예루살렘성에서 나와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합니다(왕하24:12). 갈대아군대는 유대왕국이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수탈합니다. 예루살렘성과 유다 성읍에서 모든 보화와 재물을 약탈하고 1만 7천의 장정과 1천명 이상의 기술자를 바벨론 포로로 끌고 갑니다(왕하24:13-16). 느부갓네살 황제는 피폐해진 유대왕국에 친(親)바벨론 괴뢰정권을 세우고 그 왕으로 요시야 왕의 막내 아들인 맛다니아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쳐서 즉위하게 합니다(왕하24:17). 당시 시드기야 왕은 전임인 장조카 여호야긴 왕보다는 불과 3세 위인 21세입니다(왕하24:8, 18). 그는 성군 요시야의 막내 아들이었으므로 생전에 다윗왕조의 왕이 될 것으로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왕자입니다(대상3:15, 왕하24:17, 렘22:11). 더구나 껍데기만 남아 있는 유대왕국의 왕으로 책봉되었으므로 도무지 제대로 정책을 펼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재위 11년 동안 친(親)애굽 파(派)와 친(親)바벨론 파로 갈라진 신하들의 눈치만 보다가 주전 586년 여름에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자신의 왕국이 완전히 멸망하는 비극을 맛보게 됩니다;

2) 둘,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렘52:1b); 예루살렘 북쪽 4km에 위치하고 있는 제사장 성읍 ‘아나돗’ 출신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렘1:1-3). 당시 “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는 좋은 뜻을 가진 ‘예레미야’라고 하는 이름은 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립나’ 사람 예레미야도 있으며 그의 딸이 성군 요시야의 제2부인인 ‘하무달’입니다. 그녀가 낳은 아들 살룸과 맛다니아가 모두 다윗왕조의 왕이 됩니다(왕하23:31, 24:17-18, 렘22:11-12). 그 가운데 유대왕국의 마지막 왕이 맛다니아인 시드기야입니다. 여기서의 ‘립나’는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이 갈대아 군대의 총본영을 설치하고 있는 하맛 땅의 ‘립나’ 또는 ‘리블라’가 아닙니다(왕하25:6, 렘52:9, 민34:11). 왕비 하무달의 고향은 블레셋의 도시국가인 에글론과 가드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립나’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바알세불을 섬기고 있는 ‘에글론’ 사람과 힘을 숭상하는 ‘가드’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여인입니다(삼상17:4, 눅11:15). 그녀의 소생인 시드기야 왕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는 다윗왕조의 왕이 되었지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보다는 거짓선지자들이 전하고 있는 달콤한 말을 더 잘 듣고 힘이 더 센 파벌(派閥)의 주장을 따르는 버릇을 지니고 있는 악한 왕입니다(렘28:14, 38:5, 19).
3) 셋, “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3.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렘52:2-3a); 성군 요시야가 갑자기 죽고 나자 그 뒤를 그의 3아들과 1명의 손자가 잇게 됩니다(왕하23:29-30). 그런데 그의 후계왕들이 하나같이 성군 요시야를 닮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들입니다(왕하23:25-27, 32, 37, 24:9, 19). 그 가운데 여호아하스 왕과 여호야긴 왕은 그 치세가 각각 3개월에 불과합니다(왕하23:31, 24:8). 그것도 애굽군대 및 갈대아군대와의 전쟁에 패하여 곧 폐위되고 말았기에 그들의 정책적인 잘못을 크게 따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은 다릅니다. 그들의 통치기간은 각각 11년이나 됩니다(왕하23:36, 24:18). 그리고 그들의 외교노선이 배반으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야김 왕은 주전 609년에 애굽의 바로에 의하여 유다 왕으로 책봉됩니다(왕하23:34). 그러나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침공하자 곧바로 항복하고 신바벨론제국의 신하국이 됩니다(왕하24:1a). 주전 601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애굽 원정에 실패하자 다시 친(親)애굽으로 돌아섭니다(왕하24:1b). 그러므로 여호야김 왕은 역사적으로 주전 597년에 갈대아군대의 재침을 끌어들이고 유대왕국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4:1-2, 6, 10-16). 그와 같은 실수를 시드기야 왕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전 597년에 그는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의 왕으로 세움을 받습니다(왕하24:17). 그러나 4년후에 그를 배신하고 애굽의 바로가 제안한 반(反)바벨론 동맹에 가입합니다(왕하24:20, 렘27:3, 28:1, 52:3).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물리치고 친(親)애굽 파(派) 신하들의 말만 듣고서 느부갓네살 황제를 배신함으로써 마침내 주전 586년에 갈대아군대의 공격으로 나라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렘38:1-6, 17-24, 39:1-10, 52:1-11).
4) 넷,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렘52:3b); 국가를 경영하다가 보면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종주국으로 행세하고 있는 제국이나 주변의 강대국과도 다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의 제국과 강대국 그리고 모든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일체 섭리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본래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입니다(출19:4-6).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자신들의 주군이며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언약을 파기하고 전혀 따르지 않습니다(렘31:32). 그 대신에 그들은 세상제국들의 힘의 우열을 따지고 양대 진영 곧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의 군사력과 반(反)바벨론 동맹에 참여한 왕국들의 힘의 크기를 비교합니다. 그 결과 강한 쪽에 붙는 것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맙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뜻에 어긋나는 한편 세상적으로도 언제나 말을 갈아타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세상적으로 배신행위를 일삼고 영적으로 여호와 앞에 언약을 멋대로 버리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므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을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요컨대, 세상적으로 신의가 없는 자들은 여호와의 언약도 헌신짝같이 버리는 패역한 백성들입니다. 참고로, 그와 같은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 때에 나이가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 동안 다스리며, 12.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13.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14.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대하36:11-14).
(3) 둘째, 제4절입니다; “4. 시드기야 제9년 10월 10일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렘52:4); 시드기야 왕 9년이면 주전 588년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유대왕국을 침략하고 예루살렘성을 포위한 것이 당시 유대인 달력으로 10월 10일입니다(렘52:4a). 그것은 태양력으로 따지면, 그 다음해 곧 주전 587년 1월 10일입니다. 그때 갈대아군대는 유다 왕국만 침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반(反)바벨론 동맹에 참여한 가나안 주변의 나라들 곧 시돈과 두로,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왕국을 전부 공격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대대적인 전면전에 대하여 동맹의 수장인 애굽의 바로 아프리에스가 구원군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신속하게 해군을 시돈으로 상륙시키고 공동 바로인 호브라는 직접 애굽의 육군을 이끌고 해변길로 북상합니다.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습니다. 그는 즉시 갈대아군대를 시리아 쪽으로 후퇴시키고 맙니다. 그러한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떠났더라”(렘37: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동맹에 참여한 왕국들은 승리를 자축하고 있습니다. 유대왕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것은 여호와의 진노와 역사섭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무지몽매한 판단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애굽의 군대가 물러가고 일시 후퇴한 갈대아군대가 재침할 것이며 마침내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위시하여 모든 동맹국들이 패망하고 말 것이라는 준엄한 여호와의 심판의 내용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렘37:6-10). 사실은 그와 같은 일련의 사건의 전개가 본문 제4절과 제5절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주장과 같이 애굽의 바로인 호브라가 애굽제국의 안보문제로 구원병을 데리고 돌아가고 나자 잠시 물러간 갈대아군대가 그해 말에 기어코 재침하고 맙니다. 유대왕국의 전역이 갈대아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을 개시합니다. 시드기야 왕은 주전파(主戰派) 신하들과 함께 유다의 정예병을 지휘하여 필사적으로 낭떠러지를 기어올라오고 있는 적병들을 격퇴하고 있습니다. 화살과 돌, 기름과 통나무 등을 사정없이 절벽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습니다. 갈대아군대는 희생을 줄이기 위하여 경사면에 토성을 쌓아 엄폐물을 만들고 또한 참호를 파가면서 서서히 접근하고 있습니다(렘52:4b).
(4) 셋째, 제5-6절입니다; “5.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11년까지 포위되었더라. 6. 그해 4월 9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렘52:5-6); 여호와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이 스스로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갈대아군대가 해발평균790미터 높이에 있는 예루살렘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기를 쓰고 비탈에 토성을 쌓아 엄폐물을 만들면서 아주 조금씩 기어오르고 있지만 그것은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주전 587년말에 예루살렘성을 그렇게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다음해 봄이 되어도 유다의 군대는 건재합니다. 그것은 마치 육지에서 800미터 바다로 떨어져 있는 바위섬 두로 만큼이나 점령하기가 힘든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느부갓네살의 갈대아군대가 두로 성을 점령하는데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의 경우에는 주전 586년 여름에 함락되고 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훗날에 집필한 역사서 열왕기하 제25장에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글자 한자 고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옮겨 적고 있습니다(렘52:5-6, 왕하25:2-3). 여호와의 예언과 같이 적병이 예루살렘성으로 넘어오기 전에 기근과 전염병이라는 여호와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유대왕국이 저항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14:12, 24:10, 27:8, 38:2);

한마디로, 본문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틀림없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재삼 강조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5) 본문 제7-11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과 함께 어떠한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6) 첫째, 제7-8절입니다; “7.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8. 갈대아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렘52:7-8);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7.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렘52:7a); 주전 586년 여름에 예루살렘성이 여호와의 재앙으로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려서 더이상 유다의 군대가 성을 방어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하고 맙니다. 방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갈대아군대가 예루살렘의 바깥 성벽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유다의 모든 군사들이 예루살렘성을 버리고 밤중에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은밀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코스가 다윗성의 성벽과 예루살렘성의 성벽이 만나고 있는 그곳 왕의 동산입니다. 그곳은 수풀이 우거져 있으며 작은 쪽문이 있어서 어두운 밤중이면 은밀하게 탈출이 가능합니다. 그 장소는 예루살렘성의 동쪽과 남쪽이 만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곳 비탈을 내려가게 되면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만나고 있는 동남쪽으로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면 사해로 통하는 아라바 계곡 길입니다. 그리고 북상하면 여리고로 가는 길입니다.
2) 둘,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8. 갈대아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렘52:7b-8a); 그동안 예루살렘성을 지키던 유다의 군사들이 은밀하게 야음(夜陰)을 틈타 남동쪽 비탈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장소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시드기야 왕과 그의 근위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그 주변의 성읍에 주둔하고 있는 갈대아군대에게 그만 유다의 병사들의 움직임이 발각됩니다. 유다의 군사는 정신 없이 아라바로 가는 길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시드기야 왕과 그의 근위대는 적들의 의표를 찔러 그 반대로 북쪽으로 돌아 여리고로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적들이 속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시드기야 왕을 찾아냅니다. 왜냐하면, 많은 유다의 근위병들이 적극 호위하고 있는 그 자가 바로 유다 왕 시드기야이기 때문입니다.
3) 셋,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렘52:8b); 도저히 갈대아군대의 추격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여리고가 나타나지도 아니하고 있는데 그 길에서 시드기야 왕의 꼬리가 적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것을 보고서 근위대가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그 광경은 훗날 두가지의 사실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그 길에서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탄생하고 있습니다(눅10:30-36). 또 하나는, 왕을 잡게 되면 그 부하들은 제 살길을 찾아 도망치고 맙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 당하시자 인간적으로 큰소리를 치던 그 제자들이 별수 없이 뿔뿔이 흩어진 것과 같습니다(막14:27, 50).
(7) 둘째, 제9절입니다; “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렘52: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9.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렘52:9a); 주전 588년부터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반(反)바벨론 동맹에 참여하고 있는 유대왕국은 물론 그 주변의 여러 왕국들을 일시에 공격하고 있습니다(렘52:4, 39:1, 왕하25:1). 애굽의 바로가 육군과 해군을 동원하여 배후를 공격하자 느부갓네살 황제는 세(勢) 불리를 깨닫고 작전상 일년간 시리아로 후퇴합니다(렘37:5, 11). 따라서 바로가 애굽의 국내문제해결이 급하여 군대를 몰고 돌아가자 그때서야 재침합니다(렘37:7-10, 52:5, 39:2). 역시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 에돔과 유대왕국을 한꺼번에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군대의 ‘총본영’(總本營)을 하맛 땅에 있는 ‘리블라’(또는 ‘립나’, 왕하25:6)에 두고 있습니다(렘52:9a). 그곳이 페니키아와 요르단 그리고 유대왕국의 전황을 동시에 꿰뚫어볼 수 있는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부근에서 시드기야 왕을 체포한 갈대아군대가 그를 압송하여 황제가 있는 ‘리블라’로 끌고 간 것입니다(렘52:9a).
2) 둘,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렘52:9b);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패망한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직접 심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친국(親鞫)입니다. 황제가 친히 패전국의 왕을 문초하고 있는 자리이므로 그 고문과 신문(訊問)이 극악합니다(렘52:9b). 그것은 깨끗하게 죽는 것보다 못한 모욕이며 절망적인 자리입니다. 그와 같은 비참한 국면에 시드기야 왕이 처하게 되는 이유는 끝까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힘의 논리에 따라서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광경은 훗날 부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와 같습니다(요5:27-29).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판가름하는 그 자리는 시드기야 왕이 당한 그 심문의 자리보다 더욱 준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마10:28, 25:45-46, 요5:29).
(8) 셋째, 제10-11절입니다; “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렘52:10-11);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0.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렘52:10a); 신바벨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지상에서 소멸시키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다윗의 왕가를 끝장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왕국을 재건하는 부흥운동을 아예 할 수 없도록 그 자리에서 처형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왕가의 혈통이 끊어지는 광경을 시드기야 왕이 지켜보게 됩니다(렘52:10a). 그것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욱 절통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고통의 날이 여호와의 보응으로 임하게 될 것이라고 진작부터 여호와께서 예언하십니다; “26.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렘33:26). 그와 달리 유다의 공주들은 죽이지 아니하고 미스바에 있는 총독부에서 살도록 황제가 조치하고 있습니다(렘41:10).
2) 둘,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렘52:10b); 유대왕국의 신하들은 다수파가 친(親)애굽이며 바벨론과 전쟁하자는 소위 ‘주전파’(主戰派)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자 체포되어 리블라에서 처형당합니다(렘52:10b). 반면에 유대왕국의 신하 가운데 비록 소수이지만 친(親)바벨론 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주화파’(主和派)이므로 처형을 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을 점령한 갈대아군대가 주화파를 지지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황명으로 석방조치한 것과 같습니다(렘39:11-14). 그리고 역시 주화파의 지도자인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받고 있는 것입니다(렘39:14, 40:5, 26:24).
3) 셋, “11.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렘52:11); 시드기야 왕은 참형보다 더 못한 참으로 고통스러운 악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극악한 평생 고문의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렘52:11); ①생으로 두 눈을 뽑히어 이 세상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되고 맙니다. ②두 눈이 뽑힌 고통을 치유하여 주지 아니한 채 온 몸을 놋으로 만들 사슬로 칭칭 결박합니다. ③그 먼 제국의 수도 바벨론까지 끌려가서 평생 감옥살이를 하다가 죽고 맙니다. 참으로 잔인한 느부갓네살 황제의 조치입니다. 그것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철옹성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갈대아 군사가 희생되었으므로 그 원한을 정치적으로 풀어 주기 위하여 취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일종의 통치술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왕국을 경영하게 되면 그러한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둘째로,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주전 586년을 말함. 왜냐하면 주전 605년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원년이기 때문임, 렘25:1) 다섯째 달 열째 날(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한달이 지난 시점임, 6절)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렘37:8절에 기록된 여호와의 예언이 임한 것임),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렘39:8절과 동일함)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렘39:9, 고대사회에서는 노동인력이 곧 국력인 것임),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렘39:10, 조공을 받기 위한 것임).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왕하24:13, 금과 은은 이미 주전 597년에 모조리 바벨론으로 가져갔으며 이제는 기타 금속제품을 약탈하고 있는 것임)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시드기야 시대에 다시 만든 금그릇과 은그릇을 찾아내어 그것도 약탈하여 간 것임, 단5:2-3)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이하 제20-23절의 기록은 출애굽기 제25-27장에 기록되어 있는 규모의 성막이면 충분한데 그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군더더기로 이방인의 신전처럼 호화사치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솔로몬 성전의 모습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것은 실로 출20:22-26절에 기록되어 있는 참된 제사의 규정에서 먼 것임)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렘52:12-23);

(1) 본문 제12-16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자 대부분의 갈대아군대는 멀리 이동해 가고 어전(御前)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일부 갈대아군대를 지휘하여 가나안 땅에서 사후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2) 첫째, 제12-14절입니다;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19년 5월 10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御前)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렘52:12-1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19년 5월 10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御前)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렘52:12); 유대왕국의 지방을 전부 점령한 신바벨론의 갈대아군대가 예루살렘성을 겨우 함락한 것은 당시 유대인 달력으로 주전 586년 4월 9일입니다(렘52:6-7). 갈대아군대의 지휘관들은 도망하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고관들을 체포하여 하맛 땅 리블라로 데리고 갑니다(렘39:5, 52:9). 그곳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지휘관들의 이름이 황제의 큰 사위이며 궁중장관을 겸하고 있는 총사령관 네르갈사레셀, 사령관을 보좌하고 있는 부사령관 삼갈네부, 그리고 지휘관들을 감찰하고 있는 내시장 살스김 등입니다(렘39:3). 느부갓네살 황제는 그들의 공을 치하하면서 총사령관 네르갈사레셀을 공신(功臣)에 봉하고 북부 아라비아의 반란군을 진압하도록 조치합니다. 그리고 부사령관 삼갈네부를 어전 사령관으로 승진시켜 근위대장으로서 황제의 사람이 되게 한 후 5월 10일자로 예루살렘으로 파견합니다(렘52:12). 그곳에서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패전한 유대왕국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작업입니다. 그것은 두가지의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근동에 있어서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메소포타미아의 바벨론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패전국의 땅에서는 농업이나 목축만 경영하지 문화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둘,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렘52:13); 전란 가운데 우연히 예루살렘성이 소실(燒失)이 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성이 함락된 지 한달 후에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성을 불태워 버렸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렘52:13). 어째서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과 왕궁을 전부 불태워버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예루살렘에 그득한 고관들의 저택과 부자들의 집을 모조리 불살라버리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요컨대, 그들의 문명파괴라는 만행의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지휘하고 있는 갈대아군대가 여호와의 칼로 쓰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렘21:7, 25:9, 27:8, 28:14, 32:28, 43:10, 49:28). 그들 갈대아인들은 자신들의 토착신인 ‘말둑’을 자신들의 설화와 신화에 따라 창조신이며 최고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이교도인 유대인들의 성전을 불태워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건설하는 대제국 ‘신바벨론’의 신민들은 장차 지배 족속인 갈대아인들의 주신인 ‘말둑’을 모두가 섬겨야만 한다는 우상숭배정책을 벌써 시사하고 있는 대목입니다(렘50:2). ②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의 왕궁과 고관들의 저택들 그리고 부유한 자들의 집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아끼고 보전하지 아니하며 하나같이 불태워버리라고 느부갓네살 황제가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이미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약탈이 끝난 상태이므로 이제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②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인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중근동지역에 대제국을 세우고 모든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는 자신들의 도성인 바벨론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찬란한 문화는 모조리 없애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③예루살렘에 저택들이 남아 있게 되면 그곳에 발을 붙이고 살고자 하는 무리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들이 훗날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기초를 전부 없애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셋,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렘52:14); 유대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기 위하여 갈대아 군사가 많이 희생됩니다. 그 이유는 해발 790미터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이 가파른 언덕을 가진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때맞추어 예루살렘성에 기근과 전염병이 발생하였기에 갈대아군대가 반년만에 점령한 것입니다(렘52:6-7). 이제 다시 난공불락의 요새인 예루살렘성을 의지하여 유대인들이 부흥운동을 시작한다면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더라도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붕괴시켜버리는 것이 상책인 것입니다(렘52:14). 느부갓네살 황제의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성이 온전히 남아 있어 다시 그곳에서 부흥운동과 반란이 발생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3) 둘째, 제15-16절입니다;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렘52:15-1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렘52:15); 예루살렘성을 함락하는데 있어서 갈대아군대를 이끈 최고사령관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큰 사위인 네르갈사레셀입니다(렘39:3a). 그는 반년 남짓 예루살렘성을 완전 포위하고 총공격을 감행한 결과 마침내 유대인 달력으로 주전 586년 4월 9일에 그곳을 정복하게 됩니다. 도망하는 유다 왕 시드기야와 고관들을 모두 체포하여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포로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부사령관인 삼갈네부가 예루살렘성의 부자와 장정들을 많이 포로로 삼아 황제의 총본영으로 끌고 간 것으로 보입니다(렘39:3b). 따라서 한달 후인 5월 10일에 현지 사령관이 되어 부임한 삼갈네부 곧 느부사라단은 이제 그곳에 남아 있는 가난한 유대인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신바벨론제국에 대항하지 아니한 온순한 백성들과 그곳의 유목민들을 전부 사로잡아 그들의 성분을 철저하게 심사합니다. 그 목적은 그들 가운데 바벨론에서 쓸모가 있는 자와 유대 땅에 남겨서 농사와 목축을 할 수 있는 자들을 구별해내기 위한 것입니다(렘52:15);

2) 둘,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렘52:16);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과 유목민들을 전부 사로잡아 심사한 다음 그들 가운데 유대 땅에 남기고자 하는 자들의 신병을 새로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 받은 그다랴에게 넘겨줍니다(렘39:14, 40:5-6, 41:10). 그 이유는 3가지입니다; ①유다의 공주와 부녀자들 그리고 빈민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고 가보아야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스바에 설치되고 있는 총독부에 넘겨서 유대 땅을 경작하는 일꾼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②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떠돌면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레갑 사람들은 목축의 달인들입니다(렘35:9-11). 그러므로 황폐화된 유다의 땅에서 목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렘35:19). ③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비옥하다고는 하지만 중근동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신바벨론이므로 많은 농산물과 축산물이 필요합니다. 변방의 백성들을 모두 먹여 살리자면 더 많은 소출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황실에서 필요로 하는 최상품의 포도주를 유대 땅과 모압 땅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민13:23-24, 렘39:10, 48:32-33). 그러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일꾼들에게 유다의 총독이 땅을 배분해주고 매년 공물을 받아 황제에게 조공으로 바쳐야만 합니다.
(4) 본문 제17-23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자 현지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지휘하는 갈대아군대가 예루살렘성전에서 무엇을 약탈한 후에 성전을 불태우고 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하면서 자세하게 알아봅니다;
(5) 첫째, 제17-19절입니다;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2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렘52:17-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2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렘52:17-18); 역사적으로 외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성전에 침입하여 그곳의 금과 은과 놋을 전부 약탈해간 것은 주전 597년과 586년 두차례에 걸친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 뿐입니다(왕하24:12-13, 25:13-17). 그 이전 앗수르제국의 시대에 있어서는 산헤립 황제가 주전 701년에 유대왕국을 침입하여 과도한 전쟁배상금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강요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유다대국의 패망을 막기 위하여 히스기야 왕은 자발적으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은그릇은 물론이고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힌 금박까지 벗겨서 산헤립 황제에게 바친 적이 있습니다(왕하18:13-16).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입니다. 그해 산헤립 황제는 다시 유대왕국을 재침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에 의하여 하룻밤에 18만 5천명의 군사를 잃어버리고 도망을 치고 맙니다(왕하19:34-36).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미운 털이 박힌 여호야김 왕의 유대왕국을 혼내기 위하여 대군을 이끌고 침입합니다(왕하24:1-2, 10-11). 때마침 유다 왕 여호야김이 서거하고 세자인 여고냐가 신왕(新王) 여호야긴이 되어 적을 막게 되지만 중과부적입니다(왕하24:6). 어쩔 수 없이 여호야긴 왕과 신하들이 예루살렘성에서 나와 황제에게 3개월만에 항복하게 됩니다(왕하24:8, 12). 그때 느부갓네살 황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모든 금은보화와 재물과 인력을 약탈하여 바벨론으로 가지고 갑니다(왕하24:13-16). 특히 예루살렘성전의 금그릇까지 전부 가지고 간 것입니다(왕하24:13).
2) 주전 586년 여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함락됩니다(왕하25:2-7). 끝까지 성을 지키던 유다 왕 시드기야와 고관들이 모두 도망하다가 적에게 잡히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예루살렘성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그 성을 불태워버리라고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지시합니다. 그 명령에 따라 느부사라단은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성전을 침범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거대한 놋으로 만든 2개의 기둥과 1개의 바다와 12마리의 소를 보고 그것을 부수어 가져갑니다(렘52:17a). 그 다음에는 성막과 그 뜰에 있는 모든 놋제품들을 약탈합니다(렘52:17b-18). 참고로 성막을 만들 때에 모세가 사용한 금과 은과 놋의 양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금이 성소의 세겔로 29달란트 730세겔입니다(출38:24). 그것은 약 1톤의 무게입니다. ②은이 성소의 세겔로 100달란트 1,775세겔입니다(출38:25). 그것은 약 3.5톤의 무게입니다. ③놋이 70달란트와 2,400세겔입니다(출38:29). 그것은 약2.4톤의 무게입니다. 특히 놋으로 만든 성막의 기물들에 대해서는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0. 이것으로 회막 문 기둥받침과 놋 제단과 놋 그물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며, 31. 뜰 주위의 기둥받침과 그 휘장문의 기둥받침이며, 성막의 모든 말뚝과 뜰 주위의 모든 말뚝을 만들었더라”(출38:30-31). 그것을 본문에서는 제17절 후반에서 물두멍인 놋대야와 기타 제18절의 여러 기물로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렘52:19); 유다 왕 시드기야가 11년 동안 유대왕국을 다스리는 동안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약탈당한 예루살렘성전내의 금 그릇을 일부 다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주전 586년에 유대왕국이 멸망하자 갈대아군대는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지시에 따라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모든 금그릇과 은그릇을 거두어 전리품으로 바벨론으로 보내고 맙니다(렘52:19, 단5:1-3). 그 다음에 예루살렘성전이 궁궐과 함께 갈대아군대의 방화로 전부 불에 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렘52:13).
(6) 둘째, 제20-23절입니다;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2기둥과 1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12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18규빗이요, 그 둘레는 12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4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5규빗이요, 머리 4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머리의) 4면에 있는 석류는 96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100개이었더라”(렘52:20-2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2기둥과 1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12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렘52:20); 솔로몬 왕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놋으로 2개의 기둥과 1개의 바다(the sea of cast metal, NIV & NRSV)와 12개의 소를 만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렘52:20a). 그것은 솔로몬 왕의 생각에 따라 만든 것이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양식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하게 하고 모세에게 명령하여 시내 산에서 만들도록 한 것은 성막입니다(출25:1-9).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양식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성막을 만든 것입니다(출25:9, 39:7, 21, 31, 4340:16, 19, 21, 23, 25, 27, 29, 32). 그런데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솔로몬 왕의 생각은 다릅니다. 부왕인 다윗이 거대한 이스라엘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자신의 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예루살렘의 여호와 성전도 크고 화려하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중근동의 그 어떠한 왕국이나 제국의 신전보다 거대해야 합니다. 모세의 성막만으로는 그 규모가 작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전 안에 성막을 설치하지만 그 앞에 놋으로 거대한 2개의 기둥과 1개의 바다를 본뜬 조형물과 12개의 큰 동물 소의 조형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렘52:20b).
2) 그런데 불행한 것은 솔로몬이 생각하고 있는 화려하며 거대한 것들이 이방인의 신화에 따른 것이며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소원을 빌고 있는 대상인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거대한 2개의 기둥은 국가의 수호신을 모신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수호신이란 국가의 건설자이므로 자신이 만든 국가를 언제나 보호하고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기둥은 그 나라를 건설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야긴’의 뜻입니다(왕상7:21a). 또 하나의 기둥은 그 나라를 언제나 지켜준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보아스’의 뜻입니다(왕상7:21b). 어느 나라의 수호신이나 모두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도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선민만의 수호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솔로몬의 제국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②황소와 바다는 페니키아인들의 신화에 따른 것입니다. 페니키아에 유로파라고 이름하는 공주가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따라서 제우스신이 공주가 마음에 들어서 빛나는 황소가 되어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유로파 공주가 그 빛이 나는 황소를 한번 타보고자 합니다. 황소는 공주를 태운 채 큰 바다 지중해로 헤엄을 쳐서 갑돌 섬에 도착합니다. 그 섬에서 제우스신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고 청혼합니다. 유로파 공주와 제우스신이 지중해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살게 됩니다. 그 땅의 이름이 유로파 공주의 이름을 따서 유럽 대륙이 된 것입니다.
3) ③그 신화를 믿고 있는 페니키아 사람들은 그 바다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곳에 식민도시를 개척합니다. 페니키아 두로 사람 히람이 솔로몬 왕의 요청에 응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의 신관을 예루살렘성전 안에 교묘하게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이 놋으로 거대하게 2개의 기둥과 1개의 바다와 12개의 황소를 조각하여 세운 것입니다(왕상7:13-47).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의 정성을 가납하였는지 몰라도 마치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듯이 그렇게 놋으로 12마리의 황소를 만들어 성막 앞에 세우고 있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2개의 거대한 놋기둥을 만들어 세움으로써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 자손만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격하하는 선민들의 사고방식을 타파하고자 하십니다. 그 방법이 예루살렘성전을 불태우고 그 물건을 모두 부수어 버리며 갈대아군대에게 전부 약탈당하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렘52:20c). ④나아가서 주전 516년에 제2성전을 건설하고 주전 17년부터 그 성전을 그 옛날 솔로몬성전만큼 크고 화려하게 헤롯 왕가가 46년간이나 증축하고 있는 것도 역시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예수님은 그 옛날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서 제31장 제31-34절, ‘새 언약’의 의미를 반영하여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3일후 부활로 말미암이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의 마음속에 임재하고 내주 역사하게 하는 새로운 성전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요2:19-22, 14:16-20, 눅24:44-49).
4) 둘,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18규빗이요, 그 둘레는 12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4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5규빗이요, 머리 4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렘52:21-22); 2개의 놋으로 만든 기둥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기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훗날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상 제7장 제15-20절에서 본문 내용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본문의 내용을 다시 음미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 기둥의 뜻이 ‘야긴’과 ‘보아스’라는 수호신의 의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애굽제국이 태양신 ‘라’를 숭배하면서 그 신전 앞에 언제나 ‘오벨리스크’ 기둥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인간의 뜻을 그 기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창11:4, 3:5-6, 사14:13-14). 여기 놋 기둥 위에 놋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의미입니다. 창세기 제11장에 따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벨탑이 붕괴되듯이 그렇게 나일 강 유역의 그 오벨리스크 기둥도 붕괴될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에게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의 패역한 탑과 기둥을 부수어 버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이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붕괴되고 그곳의 놋제품이 전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5) 셋, “23. 그(머리의) 4면에 있는 석류는 96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100개이었더라”(렘52:23); 석류가 기둥과 그 머리에 많이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풍요와 번영을 하늘에 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기둥에 놋으로 만든 석류가 그 머리의 것까지 합하여 196개입니다. 그러므로 두개의 기둥에는 도합 392개의 석류가 매달려 있습니다. 놋으로 거대한 기둥과 머리를 만들고 그 정도로 많은 수의 석류를 만들어 매달고 있으니 그 놋의 양을 계산하기가 힘이 듭니다(왕상7:47, 렘52:20). 그 정도로 많은 놋을 허망한 기둥과 쓸데 없는 우상에게 바치고 있으니 솔로몬 왕도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왕상11:1-9). 그러한 솔로몬이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뜻 ‘참된 제사의 규정’을 다시 음미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당시의 대제사장 스라야와 성전의 총감독 스바냐 그리고 고라 자손인 문지기 3명이 북송 중 처형이 됨, 27a. 참고로 대제사장 스라야의 손자가 예수아임, 대상6:14-15, 스3:2),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시드기야 왕의 면전에서 대신들을 참살한 것임, 렘52:10)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살아 남은 기술인력과 병사들 그리고 장정들을 전부 포로로 삼아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신바벨론제국의 국력에 보탬이 되도록 노예로 부린 것임. 이하 제28-30절의 내용이 그러함)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7년(대체로 주전 597년임. 유대인 종교 달력으로 느부갓네살 제7년인데 그 해는 주전 598-597년에 걸치고 있음)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왕하24:14-16절에 기록된 숫자만 세어도 1만 8천명이 넘는데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음),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대체로 주전 586년임. 실제로 느부갓네살 제18년은 주전 587년임. 그러므로 1년의 오차를 보이고 있는 것임, 12절 참조)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실제로 도성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바벨론에 사로잡아간 유대인의 수는20만명정도라고 하더라도 유대전국에서 끌고 간 포로의 수는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이 됨. 참고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의 수 정도로 보고 있는 것임, 출12:37)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주전 582-1년임)에 (갈대아군대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애굽의 난민촌에서, 렘44:1, 26-28, 43:10)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느부갓네살 황제가 주전 562년경에 서거하고 그의 아들이 즉위함. 그 이름이 에윌므로닥임. 그때 곧 주전 597년에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야긴 왕이 옥중에서 석방된 것임.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자면 36년만에 풀려난 것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그런데 12월이므로 이듬해 주전 561년 3월에 해당함. 그러므로 37년만에 풀려난 것임)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황제의 아들인 왕들을 말함, 단5:1)의 자리보다 높이고(명목상 유다의 왕 여호야긴으로 대접한 것임. 일종의 선무공작임),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여고냐를 귀족대접하고 있음. 그에 따라 바벨론에서 다윗의 가문이 부활하고 있는 것임, 대상3:17-19, 스2:2, 3:2. 그러나 그것은 다윗왕조가 아니며 결코 유대왕국을 재건하지 못함. 다만 다윗가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임, 마1:1-17, 눅23:50-51, 24:18, 행1:14, 15:13-14, 약1:1, 유1:1)“(렘52:24-34);

(1) 본문 제24-2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자 한달 후에(렘52:12) 현지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성전과 성내에서 추가로 체포한 유대인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째서 하맛의 립나에서 처형당하게 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에서 살펴봅니다;
(2) 첫째, 제24-25절입니다;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문지기 3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1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7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1와 성안에서 만난 평민 60명이라”(렘52:24-2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문지기 3사람을 사로잡고”(렘52:24); 전란 가운데 예루살렘성전을 끝까지 지킨 성전의 책임자들의 이름이 본문에 명예스럽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대제사장 스라야, 성전의 총감독인(렘20:1, 29:26) 부제사장 스바냐, 그리고 익명이지만 고라 자손으로 보이는 성전문지기 3인입니다(대상9:19). 그들은 예루살렘성전을 끝까지 지키다가 갈대아군대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현지사령관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하맛 땅 립나로 이송됩니다. 그곳에서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친국(親鞫)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들 5명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①유대왕국의 마지막 대제사장 스라야는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사형을 받게 됩니다(렘52:27). 그러나 그의 아들 여호사닥은 바벨론 포로가 됩니다(대상6:14-15). 여호사닥의 아들 ‘예수아’(스3:2, 또는 ‘여호수아’, 학1:1)가 훗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제2성전을 짓고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스3:2, 6:14-15, 학1:1). ②예루살렘성전에서 레위인들을 총감독하는 제사장이 대제사장 바로 다음 서열이므로 여기서는 ‘부제사장’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렘52:24).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에는 초창기에 그 직책을 바스훌이 맡고 있는데 그는 주전파이며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하여 적대적입니다(렘20:1-3). 바스훌의 후임이 여호야다이며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 후반기에 그 직책을 수행합니다(렘29:26).
2) 그리고 유다 왕 시드기야 시절에는 스바냐가 성전의 제2인자인데 그는 주화파(主和派)로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편을 들어주고 있습니다(렘29:29). 그러나 유대왕국이 망할 때에 스바냐가 그 직책을 끝까지 맡고 있었기에 망국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렘52:24, 27). ③예루살렘성전의 문지기는 문만 지키는 인물들이 아닙니다(렘52:24, 대상26:12). 그들은 레위인들의 대표자들이며 그 문지기의 반장이 실무 책임자들입니다. 그 반장의 자리는 모세와 아론의 사촌이었던 고라의 자손들이 맡고 있습니다(대상26:1). 일반 문지기는 고라 자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제비뽑기로 정하고 있습니다(렘26:19, 출6:16-21). 특히 찬양대의 경우를 참조하면, 문지기의 경우에도 주장이 있고 그를 보좌하는 좌우 보좌역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대상6:33, 39, 44). 그러므로 그들 3명이 체포를 당하고 립나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렘52:24). 그들은 성전의 문으로 들어오는 유대인들에게 찬양을 선창으로 인도하는 책임까지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는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제대로 못 가르친 그 책임을 물어 여호와께서는 전범(戰犯)으로 죽임을 당하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죽음에 이어 예루살렘성전이 전소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렘52:13).
3) 둘, “25. 또 성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1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7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1와”(렘52:25a);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수비대를 거느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휘관과 그의 부관인 서기관이 있습니다. 수비대장과 군무를 책임진 서기관으로 보입니다(렘52:25aa & ac). 그리고 예루살렘 왕궁에서는 각 내시부의 7명의 수장들이 궁궐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갈대아군대에게 스스로 오라를 받고 있습니다(렘52:25ab).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였으나 조국이 망하자 적군에게 끌려가서 마침내 황제에 의하여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맙니다. 조국의 멸망은 그와 같이 참으로 슬픈 것입니다.
4) 셋, “성안에서 만난 평민 60명이라”(렘52:25b); 예루살렘성은 깊은 골짜기를 가진 높은 산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수많은 적군이 물샐틈없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의 부호들이 쉽게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갈대아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함락하였을 때에 수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사로잡게 됩니다. 그 가운데 60명을 가려내어 리블라에 있는 황제에게로 보내고자 합니다. 그들은 비록 평민이지만 굉장한 부자로 보입니다(렘52:25b). 예루살렘과 유대왕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인물들이므로 처단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비상한 재능을 지닌 그들을 살려 두면 훗날 부흥운동에 재력을 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3) 둘째, 제26-27절입니다;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으로 떠났더라”(렘52:26-2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렘52:26-27a); 신바벨론제국에서 황제의 권한과 현지사령관의 권한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패망한 유대왕국의 전범(戰犯) 가운데 느부갓네살 황제가 직접 심문하고 처형해야만 하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지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성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즉결재판을 하고 현장에서 처형할 수 있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성에서 체포한 유대인들 가운데 반드시 하맛 땅 ‘립나’(또는 ‘리블라’, 렘52:9)에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총본영으로 이송해야만 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렘52:9-10, 24-26). 그곳에서 황제가 직접 친국(親鞫)을 하고서 처형하거나 바벨론으로 압송하는데 그 대상이 다음과 같습니다(렘52:9-11, 24-27); ①유다 왕과 고관들 그리고 왕자들입니다. ②예루살렘성전의 제사장들 가운데 최고책임자와 부책임자 그리고 레위인들의 최고책임자 3인입니다. ③예루살렘 왕궁의 경비대의 최고책임자와 그 부관인 서기관입니다. ④왕궁내시부의 책임자 7명입니다. ⑤유대인 가운데 재벌급인 60명입니다. 참고로, 그들 가운데 유다 왕 시드기야만이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의 감옥으로 이송되고(렘52:11), 나머지 인물들은 전부 전범으로 처리되어 리블라에서 처형당하고 맙니다(렘52:10, 26-27a);

2) 둘,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으로 떠났더라”(렘52:27b); 현지사령관 느부사라단은 황제의 특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가급적 모든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심문하고 분류하라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4가지 분류 및 조치입니다; ①왕과 왕자들 그리고 고관들은 즉시 황제가 있는 총본영으로 보낼 것이며(렘52:9-10), ②예루살렘성전과 왕궁을 지키고 있는 책임자들과 유대인 재벌들은 사로잡아 황제의 총본영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렘52:24-26). ③기타 유대인들 가운데 바벨론에서 쓸모가 있는 자들은 전부 포로로 삼아 본국으로 이송할 것이며(렘52:27b, 15, 39:9), ④바벨론에서 쓸모가 없는 무산자(無産者)와 부녀자 그리고 유목민들은 미스바의 총독부에 넘겨서 유대 땅에서 농업과 목축업을 경영하게 할 것(렘52:16, 39:10) 등입니다. 여기서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갈대아군대에 사로잡혀서 신바벨론제국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렘52:27b).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일부가 훗날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제2성전을 건설하기 때문입니다(렘16:15, 25:12, 스1:1-4).
(4) 본문 제28-3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주전 598-7년과 주전 587-6년에 유대왕국을 침범하여 포로로 잡아간 유대인들의 수와 주전 582-1년에 애굽에서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통하여 잡아간 유대인 난민의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구절풀이에서 알아봅니다;
(5) 첫째, 제28-29절입니다;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7년에 유다 인이3,023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18째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간 자가 832명이요”(렘52:28-2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7년에 유다 인이3,023명이요”(렘52:28); 느부갓네살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해는 예레미야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 왕 여호야김 4째해입니다(렘25:1). 유다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요시야가 므깃도 요새에서 해변길로 북상하고 있는 바로 느고의 대군을 막다가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서거한 때가 역사적으로 주전 609년입니다(왕하23:29). 왕자 살룸이 신하들에 의하여 여호아하스 왕으로 즉위하여 시리아를 점령하고 남하하는 바로 느고의 군대와 전쟁합니다(왕하23:30-33, 렘22:11-12). 그러나 패전하여 3개월만에 폐위되고 맙니다. 그러자 바로 느고는 예루살렘에 친(親)애굽 괴뢰정권을 세우고 신왕으로 여호야김을 책봉합니다. 그때가 주전 609년말이거나 608년초가 됩니다. 그에 따라 여호야김 왕 4째해는 주전 605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2) 느부갓네살 황제 제7년이라고 하면 주전 598년경입니다. 황제는 자신의 갈대아군대 뿐만 아니라 벌써 신하국으로 만든 바 있는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람의 군대까지 동원하여 유대왕국의 여호야긴 왕을 압박합니다(왕하24:1-2). 먼저 유다 지방의 성읍을 정벌하면서 포로3,023명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렘52:28). 그 다음에 유대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여호야긴 왕이 도저히 더 버티지 못하고 성문을 나와서 황제에게 항복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대왕국이 다시는 신바벨론제국에 대항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장정 1만 7천명, 기술자 1천명, 그리고 막대한 금은보화를 전부 약탈하는 것입니다(왕하24:13-16). 따라서 친(親)바벨론 괴뢰정권의 왕으로 책봉되는 유다 왕 시드기야는 나라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유대왕국을 맡게 된 것입니다(왕하24:17). 그때가 주전 597년입니다.
3) 둘, “29. 느부갓네살의 18째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간 자가 832명이요”(렘52:29);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하는 때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수도인 예루살렘성이 함락되는 때인데 그 시점은 유대인 달력으로 유다 왕 시드기야 제11년 4월 9일입니다(렘39:2, 52:6-7, 왕하25:2-4). 시드기야 왕이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 왕으로 책봉되었으므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은 주전 586년 여름입니다. 그때는 느부갓네살 황제 통치 제19년입니다(렘52:12, 25:1, 8). 그런데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 황제 제18년인 주전 587년말에 갈대아군대가 예루살렘성을 에워싸면서(렘37:5-10) 수도권의 유대인 832명을 먼저 사로잡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렘52:29). 그 다음해에 예루살렘성을 함락한 다음에는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바벨론으로 압송하게 되는데 어째서 그 전(前)해에 예루살렘성을 출입하는 수도권의 유대인 832명을 먼저 잡아간 사건을 거론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미는 수도인 예루살렘성에 살고 있는 권력자들과 부자들만 중요한 자들이 아니라고 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6) 둘째, 제30절입니다; “30. 느부갓네살의 제23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간 유다 사람이 745명이니, 그 총수가 4,600명이더라”(렘52:3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30. 느부갓네살의 제23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간 유다 사람이 745명이니”(렘52:30a); 주전 586년에 유대왕국을 정복한 느부갓네살 황제입니다. 그는 반(反)바벨론 동맹의 수장 노릇을 한 애굽의 바로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갈대아군대를 정비하여 4년후인 주전 582-1년에 애굽을 공격합니다. 그때가 느부갓네살 황제 제23년입니다(렘52:30aa). 원정은 성공적입니다. 나일강 유역 비옥한 땅을 거의 점령하게 됩니다. 애굽의 제26왕조는 비옥한 땅을 빼앗기고 누비아 땅으로 도망하고 맙니다. 당시 애굽에는 망국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많이 피신하여 정착하고 있습니다(렘43:5-7, 44:1, 15). 그들 가운데 745명이 갈대아군대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에게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렘42:15-17);

2) 둘, “그 총수가 4,600명이더라”(렘52:30b);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으로 2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가운데 4,600명의 포로의 발생에 대해서 특기하고 있습니다(렘52:30b).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성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에게 항복하거나 함락되기 일년 전에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 주민이 아니라 지방 성읍의 백성들입니다. 다윗왕조는 예루살렘성만 지켜내면 유대왕국이 망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안스럽게 여기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나 부자들만 여호와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지방의 성읍에 살고 있는 힘없는 백성들도 똑같은 여호와께서 창조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전란의 초기에 가장 먼저 사로잡혀서 적국에서 노예로 살게 되는 그들에게 관심이 크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여호와의 그 마음을 이해하라고 하는 의미에서 본문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그 숫자에는 애굽으로 피신한 망국의 백성 유대인들이 현지에서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수까지 들어 있습니다(렘52:30a). 그 의미는 이 세상에서는 안전한 제국이나 외딴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피난처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안전한 거주지를 찾아서 방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버리고 세상의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사는 삶을 청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칼과 기근을 벗어나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7) 본문의 말미인 제31-3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으로 다윗왕조는 끝장이 나지만 바벨론에서 다윗가문은 어떻게 회복되고 있으며 그것은 훗날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 점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8) 첫째, 제31절에서 제33절 전반부입니다;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37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12째달 25째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 감옥에서 풀어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렘52:31-33a);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37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12째달 25째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 감옥에서 풀어주었더라”(렘52:31); 신바벨론을 중근동의 대제국으로 건설한 대 영웅 느부갓네살 황제가 44년간 오래 통치하고 주전 562년에 서거하게 됩니다. 그 뒤를 태자인 에윌므로닥이 잇게 됩니다. 그는 그해 12월 25일이 되자 곧 주전 561년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화해의 제스처를 널리 취하게 됩니다. 그는 여러 종족 대 화해정책의 일환으로 주전 597년부터 무려 37년간이나 제국의 도성인 바벨론에서 감옥살이하고 있는 유다 왕 여호야긴을 석방하게 됩니다(렘52:31, 왕하25:27). 여호야긴 왕의 신분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폐위를 당하고 바벨론 포로가 되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세자 당시의 이름인 ‘여고냐’입니다(대상3:16-17). 그것은 마치 폐위당한 조선의 왕을 ‘연산군’ 또는 ‘광해군’으로 부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유대인들이 기록한 왕들의 족보에서도 그렇게 ‘여고냐’로 기록되고 있지만 구태여 열왕기하 제25장 말미와 선지서 예레미야의 말미인 본문에서는 “유다의 여호야긴 왕”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렘52:31, 왕하25:27). 그 의미는 영토를 가진 왕국의 회복은 아닐지라도 그를 명목상 ‘유다의 왕’으로 대접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확장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것을 영적인 의미로 성도들의 신원회복을 위한 하나의 예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훗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나를 위한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깨닫고 진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회개한 성도들에게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명목상 왕과 같은 제사장의 지위가 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벧전2:9).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구태여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른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요19:19-22).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다윗제국을 재건하는 왕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는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31b)라는 표현은 시편 제110편에서 다음과 같이 이미 사용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시110:5-7). 그 옛날 황제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있는 자는 황제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황제의 허락이 있으므로 그 조아린 머리를 감히 그 앞에서 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주시고 그 앞에서 머리를 들게 하십니다(시110:5-7, 마28:18, 롬8:11). 그와 같이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승리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천국에서 그 머리를 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눅22:28-30);

3) 둘,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렘52:32-33a); 뒤로부터 풀이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쉬운 문장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조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렘52:32-33a); ①감옥살이를 끝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수의 복장을 벗고 신원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황제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예복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②신원회복을 축하하는 잔치자리가 황궁에서 있게 됩니다. 따라서 그날의 주인공인 여호야긴 왕의 자리는 황자들인 여러 왕들의 자리보다 상석입니다. ③그 축하의 자리에서 에윌므로닥 황제가 여호야긴 왕에게 친절하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여호야긴 왕의 신원회복의 절차와 과정을 성도들에게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죄와 사망의 종 노릇하고 있는 육신을 벗게 되는 날이 있게 됩니다. ②천국에서 입성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게 됩니다. 그때에는 주님 앞에서 상석에 앉게 되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③주님의 위로의 말씀과 축하의 말씀이 있게 됩니다.
(9) 둘째, 제33절 후반부와 제34절입니다; “그의 평생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렘52:33b-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그의 평생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렘52:33b);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장입니다; 하나는, 황제가 베푸는 잔치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황제가 평생동안 여호야긴 왕의 행동을 감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을 강성하게 만든 천하의 영웅 느부갓네살 황제가 죽고 말았습니다. 전쟁에 능한 강력한 황제가 사라지고 없으므로 이제는 그에게 망한 나라의 백성들이 서서히 다른 꿈을 꾸게 됩니다. 황자 에윌므로닥이 다음 황제가 되어 통치하고 있는 시대에 제국의 변방에서는 독립을 소망하는 여러 종족이 반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패망한 자신들의 왕국을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긴 왕과 같은 망국의 왕이 그들의 독립운동의 구심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에윌므로닥 황제는 여호야긴 왕을 석방하여 명목적으로 왕 대접을 해주면서 사실은 비밀감찰을 통하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렘52:34); 다윗의 가문이 재정적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에윌므로닥 황제가 여호야긴 왕에게 가문을 재건할 수 있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다의 땅을 다시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에서 그래도 귀족의 하나로 살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준 것입니다(렘52:34). 그렇게 황제의 특혜를 누리고 편하게 살게 되면 변방 유대 땅으로 탈출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자신의 인생이나 민족의 역사 가운데 반드시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예레미야가 그의 예언서 마지막 장 제52장에서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과 그 성취라는 측면에서 훗날 이스라엘의 역사서를 편집할 때에 본문의 내용이 대거 반영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예언대로 자신의 인생이 전개된다는 사실을 여호와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언제나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적으로 엄청난 비극을 당한 욥의 경우보다 유다 왕 시드기야의 경우가 더욱 비참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왕은 그 왕관의 무게만큼 그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그가 여호와 앞에 큰 죄악을 범하였기에 여호와의 징벌이 그만큼 엄중한 것입니다.
특히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의 왕과 고관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여야만 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경우에는 일벌백계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징계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망하고 본인들은 참혹한 죽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서 아무쪼록 여호와 앞에 똑바로 서서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전파의 역사적인 사명을 끝까지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