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고냐 일행은 좋은 무화과, 시드기야 괴뢰정권은 나쁜 무화과라는 여호와의 말씀과 거짓선지자 하나냐에 관한 예레미야의 기록”(렘24:1-10, 28:1-17)
설교일; 주후 2027년 8월 2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12월 16일 화요일 작성)

본문 제24장은 단지 10절로 되어 있으며 그 제목이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제국의 침입을 맞이한 여호야긴 왕이 중과부적으로 항복하고 왕족 및 대신들과 함께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극히 좋은 무화과로 여기고 잘 돌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반면에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 왕으로 책봉된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극히 나쁜 무화과이므로 장차 신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멸망당하고 적국에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진다는 것입니다.
설혹 그 가운데 일부가 전란 가운데 살아남아 이웃 강대국으로 피신하여 난민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진노로 현지인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더구나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게 쫓기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가지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하나는, 먼저 인질로 끌려가게 되는 여고냐 일행이 어째서 여호와에 의하여 극히 좋은 무화과 취급을 받게 되며 그 반면에 시드기야 왕과 그의 신하들은 어째서 극히 나쁜 무화과로 여김을 받게 되는가? 하는 그 이유입니다.
(2) 또 하나는,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11년에 예루살렘성이 함락됨으로 말미암아 많은 선민 유대인들이 죽거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일부가 이웃나라에 피신하여 살다가 느부갓네살 황제가 임명한 유대총독 그다랴의 호의로 고토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들이 나중에 애굽으로 들어가서 피난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가나안 땅에 남아 있게 되면 살길이 열리겠지만 애굽의 군사력을 믿고 그곳으로 피난하게 되면 여호와가 보내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렘42:16-17).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본문 제28장에 기록되어 있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기록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두가지 질문에 대하여 여기서는 우선 짧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여호야김 왕의 아들 여고냐는 부친이 갑자기 별세함에 따라 여호야긴 왕이 되어 즉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즉위하는 그때 주전 597년은 참으로 그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왕하24:8-10). 여호야긴 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력을 다하여 전투에 임하고 있지만 3개월만에 패전하여 무조건 항복하게 됩니다. 그때 느부갓네살 황제는 다시는 유대왕국이 전쟁에 나설 수 없도록 조치합니다. 여호야긴 왕과 왕족들 그리고 대신들은 물론 유능한 유대인들을 모조리 바벨론으로 끌고가고 많은 재물을 약탈하여 갑니다(왕하24:10-16). 그로 말미암아 유대왕국은 허접쓰레기로 남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명목뿐인 그러한 왕국을 다스리도록 여고냐의 막내 숙부 맛다니아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어 허수아비왕으로 삼고 있습니다(왕하24:17).
(2) 여고냐는 참으로 억울합니다. 막강한 신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는 시점에 부왕이 서거함으로 인하여 자신이 왕이 되고 그 군대를 막아내야 하는 중책을 지게 된 것입니다. 3개월간 결사적으로 적을 막았지만 중과부적입니다. 그 결과 항복하고 적국에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역사서에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24:9)고 기록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전쟁에 임함에 있어서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을 겸손하게 구한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창17:1).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옛날 히스기야 왕의 행동보다 못한 것입니다(왕하19:14-19). 그 결과 세상적인 군사력의 차이에 의하여 약소국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참패를 당하고 완전히 거덜이 나고 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바벨론에 잡혀간 여고냐 일행에 대하여 극히 좋은 무화과라고 칭찬하시면서 잘 돌보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여호야긴 왕이 짧게 석달 왕위에 있었으므로 그 기간은 길어야 90일입니다. 그 기간 동안 전혀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회개하고 신위적인 도움을 구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옛날 모세시대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의 선례를 참조하면 90일을 90년으로 계산하여 죽기까지 바벨론에서 감옥살이를 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정당합니다(민14:34-35).
(4)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를 잘 돌보실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렘24:5-7). 실제로 36년이 지나자 느부갓네살 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면서 여고냐를 감옥에서 불러내어 신원을 회복하여 줍니다(왕하25:27-30). 비록 유대왕국을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다윗의 가문을 재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죽기전에 손자 스룹바벨에게 다윗가문을 물려줍니다.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에서 북송 중에 죽게 되는 대제사장 스라야(왕하25:18-21)의 손자 예수아와 함께 주전 537년경 동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주전 516년에 제2성전을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스6:14-18).
(5) 한편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그 막내 숙부 맛다니아가 유대왕국의 왕이 되었지만 그의 왕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형편없습니다. 신바벨론 느부갓네살 황제가 쓸만한 백성과 보물을 몽땅 북송하고 말았기에 무늬만 다윗왕조 유대왕국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나자 애굽의 바로가 반(反)바벨론 동맹을 형성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 처지가 유대왕국과 비슷한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습니다(렘27:3).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적극 반대하고 나섭니다.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신바벨론 갈대아군대를 동원하여 멸망하도록 만들고 있으므로 속히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길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렘27:4-8). 그것을 보고서 예루살렘의 모든 거짓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예레미야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렘28:2-11). 그 대표적인 인물이 본문 제28장에 등장하고 있는 거짓선지자 하나냐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주후 597년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왕하24:12-17), 여호와께서 (환상 가운데)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예레미야)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매우 대비되는 품질의 무화과임)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예레미야가 환상 가운데 본 그대로 정직하게 대답하고 있음),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적국으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을 여호와께서 잘 돌보아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임. 실제로 포로가 된지 37년만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죽고 그의 아들이 새 황제가 됨에 따라 여고냐가 감옥에서 풀려나 신원을 회복하고 바벨론에서 다윗가문을 재건하게 됨, 왕하25:27-30)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선민 유대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하여 고토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예루살렘성전을 다시) 세우고 (메시아가 그 땅에 올때까지)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선민 유대인사회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 땅에서 계속되게 할 것임, 창49:10),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메시아와 성령님이 유대인사회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새언약이 이루어질 것임, 렘31:31-34)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신바벨론 갈대아군대가 알짜를 전부 약탈해가고 남은 명목뿐인 유대 땅을 괴뢰정권의 수반인 시드기야 왕이 다스리고 있음. 그런데 그들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또한 회개하지도 아니한 채 대국 애굽제국을 의지하여 신바벨론제국과 전쟁을 벌이려고 하므로 여호와께서는 마치 먹을 수 없는 무화과를 버리듯이 그들을 버려버리고 말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임),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선민 유대인들은 나라 잃은 백성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거나 애굽과 여러 나라에 피난하여 난민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데 모두 원주민들의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임)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하고 말 것임.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패역한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으로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고자 결정하셨기 때문임)“(렘24:1-10);

(1) 본문 제1-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무화과 두 광주리의 비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다의 백성들을 잘 돌보셔서 장차 어떻게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파악해봅니다;
(2) 첫째, 제1-2절입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롐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렘24: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롐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렘24:1a); 다음 두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문장입니다; 하나는, 주전 597년 유다 왕 여호야긴이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가 이끄는 갈대아군대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폐위당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음에 발생하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건은 여호야긴 다음에 즉위한 시드기야 왕 때에 발생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전 10세기에 솔로몬 대왕이 예루살렘성전과 자신의 궁궐을 지을 때에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건축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목공술과 석공술에 뛰어난 페니키아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왕상5:18, 6:1, 7:13-14, 40). 그런데 솔로몬 대왕이 7년간 성전을 짓고 또 13년간 궁궐을 건축한 후에 전국적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다 보니까 이스라엘 자손들도 상당한 목공예와 석공술을 지니게 됩니다. 그에 따라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유대왕국에서 쓸 만한 목공들과 철공들을 포로로 삼아 전부 바벨론으로 끌고가고 있는 것입니다.
2) 둘,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렘24:1b-2); 여호와의 성전에는 성막이 그 중앙에서 서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뜰에는 그 중앙에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올려드리는 제물과 예물은 번제단의 주위에 두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무화과 두 광주리가 특이하게도 성전 앞에 놓여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 안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성전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제사장들이 속죄의 제사를 드릴 때에 성전의 뜰이나 그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두 부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여호와께 바칠 수 있는 처음 익은 무화과 열매입니다. 그것은 좋은 예물입니다. 또 하나는, 흠이 있는 무화과 열매입니다. 그것은 극히 나쁜 상태이며 무늬만 무화과 열매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바쳐서는 안되는 나쁜 열매일 뿐만 아니라 선민 유대인들이 먹어서도 아니되는 악한 열매입니다. 여기서 좋은 무화과 열매와 나쁜 무화과 열매가 각각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무화과 열매는 젖과 같이 흰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으므로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라고 말할 때에 그 ‘젖’에 해당되는 과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젖’은 그것을 먹으면 동물이 자랄 수가 있는 완전식품을 의미합니다. 그 무화과 열매와 같이 선민 유대인들은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거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사명과 기대를 지니고 있는 민족이 바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인 선민 유대인들입니다(창12:2-3, 출19:4-6). 그런데 역사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혀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마12:39). 주변의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며 저주하고 있습니다(마5:43).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을 미워하면서 동시에 선민들이 이방인들의 악한 풍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인들의 신상과 우상을 도입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보다 더 악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무화과 열매를 기대하셨던 여호와께서는 너무나 실망하시고 이제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셔서 시드기야의 유대왕국을 없애 버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렘23:39-40).
(3) 둘째, 제3-5절입니다;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렘24:3-5);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렘24:3); 여호와께서 환상 가운데 성전 앞에 있는 두 광주리의 무화과 열매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보기에 어떠하냐는 것입니다(렘24:3a). 예레미야가 정직하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좋은 무화과는 최상품이고 나쁜 무화과는 사람이 먹으면 탈이 나는 그렇게 변질된 악한 것이라는 답변입니다(렘24:3b). 그렇게 답변하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심 자신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극히 나쁜 무화과 열매에 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시드기야 왕 때에 곧 망할 것이며 동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5:19, 26-31, 6:8, 15, 7:15, 32-34, 8:1-3).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지금까지 누차 예언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렘23:39-40).
2) 둘,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렘24:4-5);

선지자 예레미야의 지레짐작이 완전히 틀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39.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40.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렘23:39-40)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수없이 선포하신 그 내용을 스스로 뒤집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할까요? 한마디로, 먼 훗날 사도 베드로가 광주리에 담겨 있는 벌레가 부정하여 먹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이미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걱정 말고 잡아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행10:10-20).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하여 벌레 같은 죄인을 깨끗하게 만드시는 역사를 이루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입니다.
3) 일개 왕국에 있어서도 기존의 왕명을 뒤집자면 그 책임을 지고서 재상이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명을 스스로 뒤집게 되면 국왕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고 맙니다. 백성들이 왕을 우습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명예의 실추를 어떻게 감당하며 누가 국왕을 대신하여 그 책임을 지면 될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가 그곳에서 번쩍이고 있습니다. 미리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따라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선민의 특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잘못에 대해서는 훗날 여호와께서 보응하실 때에 영원한 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출32:33-35). 그러한 사실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②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살 수 있는 운명으로 바뀌고 영원한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심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렘24:5-7, 요3:13-17, 5:24). 도대체 영적으로 어떠한 일이 역사 가운데 발생하면 그러한 변화가 찾아오게 되는 것일까요?
4) 그 해답이 여호와의 지혜이며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구원의 비결인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도들에 대한 성령님의 임재입니다. ③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영원한 속죄의 제물로 여호와께 바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영원한 속죄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 은혜를 입자면 성도들이 자신의 죄악을 여호와께 고백하고 진심으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④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여 성도들에게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곧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입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자신의 탐욕과 정욕을 영적으로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소원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어 주십니다(눅24:49, 요14:16-20, 행1:8, 2:1-4).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도우심으로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침내 두 광주리의 무화과 열매 가운데 극히 좋은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렘24:2). 요컨대, 고넬료의 가정에 사도 베드로를 보내시기 전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하신 말씀과 흡사합니다(행10:10-20).
(4) 셋째, 제6-7절입니다;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24:6-7);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렘24:6); 언뜻 보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지나면 여호와께서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을 자유민으로 만들고 예루살렘귀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렘25:11-12, 스1:1-4).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이 아닙니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성전이 불에 타고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주전 516년에는 페르시아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감격스럽게도 예루살렘 제2성전을 건립하게 됩니다(스6:15-16). 하지만 주후 70년이 되면 그 성전이 다시 붕괴되고 맙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로마의 병정에 의하여 가나안 땅에서 다시 쫓겨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보면 본문의 말씀은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말씀일까요? 그것은 선지자 다니엘이 기록하고 있는 바 그대로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와 성도들의 나라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단7:14, 18, 22). 요컨대, ‘새 언약’과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 그리고 영원한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벌써 의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렘31:34, 히11:16).
2) 둘,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렘24:7a);

여호와께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온전히 믿는 것이 여호와신앙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렘24:7aa)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그것들을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창조로 역사 가운데 펼쳐 보이십니다.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창조를 두가지 하십니다; 하나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대속자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신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발현입니다. 그때문에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 곧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또 하나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남은 인생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시여 내주 역사하게 하십니다. 그때부터 성도들은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롬8:1-6). 그와 같은 의미를 “7.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렘24:7ab)에서 엿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사도 바울의 지적과 같이 창세기 제15장에서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는 말은 ‘믿음의 의’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롬4:18).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의 생각과 사람들의 상식에 의지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자신의 형편과 인간의 생각에 비추어보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여호와의 예언입니다. ②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그 이행이 틀림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믿지 아니하면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믿고서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이 피조세계에서 없다는 사실을 겸손하고도 정직하게 고백할 때에 사람들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의’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호와께서 창조하시는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믿을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셋,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24:7b); 다음과 같이 4가지의 경우에 사용되고 있는 표현입니다; ①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5-6). 선민은 여호와의 언약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 뜻은 이방인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시내 산 언약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의 나라 곧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②레위기 제26장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11.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11-12).
5) 요컨대,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그 심령속에 성전을 짓는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요2:21-22, 고전6:19). ③선지자 예레미야가 벌써 제11장에서 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4.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렘11:4). 여호와의 언약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④선지자 에스겔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비결입니다.
(5) 본문 제8-1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가 보낸 선지자를 배척하고 죽인 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어떠하며 또한 나쁜 무화과를 좋은 무화과로 변화시키는 여호와의 역사가 어떠한 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6) 첫째, 제8절입니다; “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렘24:8);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침략군에 의하여 멸망 당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선지서 제39장 제1-10절에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하 제25장 제1-12절 그리고 역대하 제36장 제11-19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대선지서에 다시 적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역사가 여호와의 예언의 성취임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 당하게 된다는 것은 다윗왕조의 수호신인 여호와께서 그들을 더이상 자신의 백성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버리셨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렘24:8). 그러므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①어째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버리기로 결심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 이유를 들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인 다윗왕조의 유대왕국마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을 버린 그들을 여호와께서 계속 보호할 필요가 사라진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수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게 하였지만 그들이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렘7:13, 25-26). 나중에는 거짓 예언으로 대항하면서 여호와께서 보낸 선지자를 탄압하고 살해하기도 합니다(렘11:18-21, 20:1-6, 26:20-24, 28:1-4, 38:6, 28).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이방 땅에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겠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을 확정하고 마시는 것입니다(렘24:8-10).
3) ②유대왕국의 지도자들과 일반백성들을 모두 버리시는데 어째서 여기서는 지도자급에 대한 말씀만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일반백성들보다는 지도자급 인사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처벌이 더 무겁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렘24:8). 여호와께서는 그들 다윗왕조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수도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과 부자들이 예루살렘성전 앞에 놓여 있는 두 광주리의 무화과 가운데 극히 나쁜 무화과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렘24:1-2, 8). 그들은 악한 누룩과 같습니다. 자신들만 썩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백성들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지도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처벌이 더 엄중하신 것입니다.
4) ③이스라엘 자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훗날 ‘새 언약’에 따라 그들을 구원하는 역사가 있게 된다고 벌써 제5-7절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 점은 여기서 어떻게 설명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문 제9절과 제10절은 시간적으로 그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그러한 특이한 역순의 배열은 훗날 시간을 소급하는 여호와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환상 가운데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 광주리의 무화과입니다(렘24:1-3). 한 광주리는 극히 나쁜 것입니다. 다른 광주리는 극히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극히 나쁜 것을 극히 좋은 것으로 바꾸시기 위하여 ‘새 언약’을 발동하실 것임을 말씀하십니다(렘24:5-7).
5) ④다윗왕조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와 유대왕국의 귀족들 그리고 수도인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과 부자들이 전란 가운데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제39장과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부자들과 특권층은 전란에 대비하여 두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미리 대국인 애굽 땅에 가서 살고 있거나(렘24:8d) 아니면 전쟁이 끝난 후에는 유대 땅 미스바에 세워진 총독부에 돌아와서 생활하고 있습니다(렘24:8c). 또 하나는, 예루살렘성이 함락당할 때에 시드기야 왕이 친위대를 이끌고 탈출합니다(렘39:4). 그러나 여리고 평원에서 추격군에게 체포되고 맙니다(렘39:5). 그리고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왕자들과 귀족들이 비참하게 적군에게 살해되고 마는 것입니다(렘39:6).
(7) 둘째, 제9절입니다;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렘24: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9.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렘24:9a);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가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백성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의 기습공격으로 수도를 빼앗기고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단5:30-31). 바사의 고레스 왕은 신바벨론의 남은 세력과 메대의 다리오 왕을 치고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합니다. 고레스 황제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가 천하통일을 하게 되자 여호와의 뜻을 따라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예루살렘 귀환을 허용합니다(스1:1-4). 그러나 십중팔구의 유대인들이 고토(故土)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페르시아 전 지역으로 흩어져서 살게 됩니다(렘24:9aa). 그들 교포 유대인들은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에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전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운 현지의 회당(會堂, synagogue)에서 예배 드리고 히브리경전을 공부하면서 민족의 종교적 혈통적 정통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의 독특성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선민우월사상 때문에 현지의 많은 족속으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렘24:9ab).
2) 둘,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렘24:9b); 이방 땅 페르시아제국에서 살아가게 되는 유대인들에 대한 기록이 성문서 ‘에스더’에 잘 실려 있습니다. 제국의 사람들이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며 율법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두가지의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반(反, anti-) 유대주의 시각입니다. 또 하나는, 친(親, pro-) 유대주의 시각입니다. ‘에스더’의 기록은 반 유대주의가 먼저이며 다수세력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에3:1-15). 다만 여호와께서 베냐민 자손 모르드개와 왕비 에스더의 눈물의 기도와 결단을 보고서 유대인들을 신위적인 역사개입으로 구원하여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에2:5, 4:1-17, 8:1-2, 9:1-19). 그것이 ‘부림절’의 기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 가운데 모르드개나 에스더와 같이 눈물로 회개하고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닙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세계에서 살아가면서 현지의 이방인들을 멸시하여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삐뚤어진 선민의식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렘24:9b)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8) 셋째, 제10절입니다; “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렘24:10); 여호와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선민 유대인들이 더 이상 살 수가 없도록 3가지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발생입니다(렘24:10, 14:12). 다시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칼은 신바벨론 병사들의 칼에 의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살해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왕국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많은 민간인들이 적의 칼날에 희생되고 마는 것입니다. ②유대왕국의 병사들은 야전에서 적을 막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하여 3개의 요새지에 집결하여 최후의 저항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과 라기스와 아세가입니다(렘34:7). 그런데 신바벨론 원정군이 3성을 에워싸고서 3년간 끈질기게 공격하는 바람에 성안에서는 양식이 바닥나고 맙니다(렘39:1-2). 때마침 가뭄이 들어 성안의 병사들과 백성들이 기근으로 수없이 굶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③아사(餓死, 굶어서 죽는 것)의 위기에 처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아무 것이나 먹게 됩니다. 따라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맙니다. 성이 함락당하기 전에 전염병의 발생으로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로,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선민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기 이전 시대이므로 출12:2절 말씀에 따라 그때는 태양력으로 주전 593년 8월경으로 보임) 기브온앗술(예루살렘 북쪽 25리 지점의 제사장 성읍 기브온의 명망가 앗술 가문)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예레미야를 핍박하고자) 내게 말하여 이르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신바벨론과 전쟁하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속국의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임)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그로 말미암아 그동안 약탈당한 성전의 보물을 2년내에 모두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임)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그동안 바벨론으로 끌려간 인질과 포로들도 전부 되찾아 올 수 있다는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임),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를 물리침으로 말미암아 속국의 신세를 면하게 된다는 것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니라!(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하나냐의 거짓말임, 15절 참조)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이상의 하나냐의 말은 그가 성전에서 모여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있는 것임. 그러자 예레미야가 반박에 나서고 있음).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선지자 하나냐가 세력을 믿고 함부로 거짓 예언을 말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론임)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예레미야 자신도 만약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에서 선민 유대인들이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는 것임. 그동안 빼앗긴 성전의 보물과 사람들을 되찾아오면 얼마나 좋겠는가?하는 것임.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소망일 뿐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방향은 아니라는 지적이 내포되어 있음) 7.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이제부터 진짜 여호와의 예언을 전달할 것이니 하나냐와 백성들은 귀담아 들으라는 것임) 8.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지금까지 많은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선민 유대인사회에 대대로 전한 여호와의 말씀은 선민과 이방인들의 나라가 모두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임)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그런데 선지자 하나냐가 거짓 예언을 백성들이 듣기 좋게 전파하고 있으니 그것은 반드시 그와 같은 역사섭리가 있은 다음에 가서야 증명될 내용이므로 당장 지금 그가 옳고 내가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예레미야의 원론적인 반론임)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애굽이 주도하고 있는 반 바벨론 동맹이 패배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가나안 일대의 여러 왕국이 속국신세가 된다는 예언의 상징인, 렘27:2-8) 멍에를 빼앗아 꺾고(그와 같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은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차제에 그 멍에를 꺾어버리는 하나냐 일행의 무도한 처사임), 11.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제멋대로 여호와의 말씀임을 주장하고 있음. 그것은 망령되이 여호와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것임, 15절 및 출20:7)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2-3절)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대꾸할 가치가 없어서 예레미야가 거짓선지자 하나냐를 떠나고 있음)“(렘28:1-11);

(1) 본문 제1-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전 593년 시드기야 왕 4년에 선지자 하나냐가 어떠한 거짓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2) 첫째, 제1절입니다; “1. 그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4년 5째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렘28: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그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4년 5째달”(렘28:1a); 주전 605년에 신바벨론제국의 황제가 된 느부갓네살은(렘25:1)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앗수르의 잔당을 완전히 소탕합니다. 그리고 시리아 땅을 차지하고 있는 애굽의 주둔군의 본거지인 갈그미스를 점령합니다. 내친 김에 본국으로 퇴각하는 애굽군을 추격하여 유대왕국까지 들어옵니다. 그때 유다 왕 여호야김은 애굽의 바로 느고를 버리고 신바벨론 황제 느부갓네살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나자 그는 바벨론으로 보내는 조공을 끊고 맙니다(왕하24:1). 그 이유는 주전 601년에 애굽을 정벌하고자 나선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별소득 없이 퇴각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군비를 재정비하여 유대왕국을 치고자 합니다. 주전 597년에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이 예루살렘까지 쳐들어옵니다. 때마침 유대왕국에서는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 장남인 여고냐가 여호야긴 왕으로 즉위합니다(왕하24:6). 그는 신하들과 함께 느부갓네살의 갈대아군대를 막고자 애를 쓰지만 역부족입니다.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어 왕자때의 이름 여고냐로 다시 불리게 됩니다(대상3:16, 렘28:4). 그는 신하들과 함께 적국으로 끌려갑니다(왕하24:15). 예루살렘과 유대왕국의 보물들이 쓸 만한 장정들과 함께 북송당하고 맙니다(왕하24:13, 16). 느부갓네살 황제는 피폐해진 유대왕국에 친 바벨론 괴뢰정권을 세웁니다. 그리고 여호야긴 왕의 삼촌인 맛다니아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어 유다 왕으로 삼습니다(왕하24:17).
2)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는 한편 국력을 키우고자 애를 씁니다. 그렇게 3년 이상이 지났을 때 주전 593년경 애굽의 바로로부터 함께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를 몰아내자고 하는 제의를 받습니다. 그리고 주변 5개국의 사절들이 일제히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반(反)바벨론 연합전선을 형성하자고 제안합니다(렘27:3).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운명을 걸고서 이제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을 섬기고 계속 조공할 것인지? 아니면 전쟁의 위험을 불사하더라도 애굽 및 주변의 왕국들과 연합하여 바벨론의 세력과 맞설 것인지? 양자 간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때를 본문에서는 “1. 그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4년 5째달”(렘28:1a)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때 주전파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거짓 예언이 선지자 하나냐로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렘28:1-4). 유대왕국에서는 주전론(主戰論)과 주화론(主和論)이라는 두가지의 견해가 대두하여 있습니다; ①대부분의 신하들과 영적인 지도자들이 반 바벨론 동맹에 참여하자고 주장합니다. 7개국의 힘을 합치면 신바벨론제국의 군사력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대왕국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말하면서 주전론을 주장하는 권력자들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렘38:1-6). ②반면에 비록 소수이지만 선지자 예레미야와 일부 신하들이 주화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렘26:24). 전쟁하면 바벨론에게 패망할 것이므로 항복하고 화친을 청하여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살길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둘,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렘28:1b); 선지자 하나냐의 고향인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쪽 10km지점이며 그 옛날 제사장 성읍입니다. 하나냐는 기브온 성읍의 명망가인 앗술의 아들입니다(렘28:1ba);

솔로몬 대왕이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하기 전에는 기브온에 가장 큰 산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을 찾아가서 1,000 번제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왕상3:4). 그것은 1,000일 동안 번제를 드렸다는 뜻이 아니라 1,000마리의 가축을 희생하여 번제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 제4년 5째달은 주전 597년에 즉위한 시드기야 왕에 대하여 첫해를 원년으로 하여 만(滿)으로 따지면 주전 593년 양력으로 8월달입니다. 물론 즉위한 첫해를 제1년으로 볼 경우에는 주전 594년 8월달이 됩니다. 그때 선지자 예레미야가 성전의 뜰에서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렘27:16). 그 내용은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와 전쟁하게 되면 유대왕국이 멸망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7:6-8). 그것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므로 주전파의 의견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4) 그 성막의 뜰에서 예레미야의 말씀선포를 듣고 있던 선지자 하나냐가 반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렘28:1bb).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의견과 전혀 다릅니다. 한마디로, 유대왕국이 애굽, 에돔, 모압, 암몬, 시돈, 두로 등과 연합하여 신바벨론을 공격하면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7:39-10).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주장을 듣지 말고 용기를 내어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와 용감하게 싸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이 여호와의 뜻이며 명령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근거가 확실한 것일까요? 그 근거는 선지자 하나냐가 주장하고 있는 그대로 매우 주관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스스로 강변하고 있는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렘28:2). 그러므로 그것은 예레미야의 말과 같이 역사 가운데 현실로 증명될 때까지는 불확실한 것입니다(렘28:9). 유일한 사전 입증의 방법은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사례를 기록해 놓은 히브리경전의 내용과 체계적으로 대조하는 것입니다(렘7:11-16, 23-34).
(3) 둘째, 제2-3절입니다;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2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렘28:2-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렘28:2); 선지자 하나냐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신이 납니다. 왜냐하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과 전쟁하더라도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의 군대가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4년 전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에서 져서 여호야긴 왕이 폐위당하고 신하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극이 발생했는데(왕하24:12) 이제는 그 원한을 갚을 때가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고 조공을 바쳐야만 하는 다윗왕조의 멍에가 이제는 사라지게 됩니다(렘28:2). 얼마나 좋은 예언인지 모릅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고마운 예언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아니라 선지자 하나냐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사상에 젖어 있는 다윗왕조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볼 때에는 선지자 하나냐가 애국자이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반역자인 셈입니다.
2) 둘,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2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렘28:3);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선지자 하나냐가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계속하여 선포하고 있습니다. 4년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전쟁배상금으로 성전의 금그릇과 은그릇을 몽땅 가져가고 말았습니다(왕하24:13). 감히 여호와의 집의 귀한 그릇들을 파괴하고 강탈하여 갔으므로 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임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본문 제3절과 같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4) 셋째, 제4절입니다;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28: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렘28:4a);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성전의 기물만 회복하는 것이 아니십니다. 다윗왕조를 섬기는 왕과 신하들에 대해서도 회복의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따라서 이번에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승리하고 그동안 불명예스럽게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왕 여호야긴과 그의 신하들을 석방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기적을 선물하신다는 것입니다(렘28:4a).
2) 둘,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28:4b); 선지자 하나냐가 다시 한번 여호와의 결심이 다음과 같이 확실한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는 대목입니다(4b).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에게 전쟁에서의 승리를 가져다 주고 다윗왕조의 명예를 되찾아 주는 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전쟁에서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반드시 패하도록 되어 있다는 하나냐의 언급입니다. 선지자 하나냐의 그러한 격려의 말씀을 여호와의 예언으로 알아 들은 유대왕국의 권력자들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성전의 제사장들과 선민 유대인들은 전부 힘이 납니다.
(5) 본문 제5-9절에서 예레미야는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6) 첫째, 제5-6절입니다;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렘28:5-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렘28:5); 선지자 하나냐가 성전의 뜰에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예언한 여호와의 말씀은 3가지입니다; ①유대왕국이 임박한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렘28:2). ②느부갓네살 황제는 전쟁배상금으로 그동안 유대왕국에서 끌고 간 인질과 약탈해간 모든 금은보화를 2년 내에 전부 반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8:3-4a). ③그 예언은 하나냐가 여호와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렘28:4b). 선지자 하나냐가 선포하고 있는 예언이 진짜 여호와의 말씀일까요? 그 내용은 정확하게 유대왕국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것과 정반대입니다(렘27:8, 28:4). 그러한 의문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주는 반론(反論)의 일환으로 이제부터 선민 유대인들에게 진짜 여호와의 예언과 가짜 예언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렘28:5). 그것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2) 둘,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렘28:6);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도 선민 유대인의 한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선지자 하나냐가 힘차게 주장하고 있는 그 거짓 예언을 믿고 싶다고 말합니다. 유대왕국의 군대가 침공해오는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를 물리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고생하고 있는 여호야긴 왕과 유다의 귀족과 동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 오고 약탈 당한 유다의 보물들이 전부 반환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솔직하게 본문 제6절과 같이 자신의 소원도 선지자 하나냐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레미야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할 수 있는 매우 인간적인 기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그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원칙은 한마디로, 공의와 보응의 법칙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이루고자 죄악된 삶을 살아간 자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멸망의 보응을 면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이 죄인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철저하게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며 우상문화를 청산하고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은 그러한 회개의 마음이 전혀 없기에 그들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남은 자들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입니다;

(7) 둘째, 제7-8절입니다; “7.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렘28:7-8);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진짜 예언의 말씀인지 아니면 거짓선지자가 여호와에게서 들은 말씀이라고 거짓말하면서 전파하고 있는 거짓 예언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설명하고자 합니다(렘28:7). 그것은 옛날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전하고 있는 여호와말씀의 공통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에 합치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살피면 된다는 것입니다(렘28:8). 예를 들면, 100여년 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 당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운명에 대해서 당시의 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한 내용이 있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금송아지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거짓말하면서 우상숭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전쟁과 재앙으로 그 나라를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렘28:7-8, 왕하17:21-23). 그러한 선례에 비추어보면 진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에 대하여 그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하나냐의 거짓 예언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과연 유대왕국의 미래가 선민 유대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질까요? 아니면 여호와의 뜻대로 실현될까요?
(8) 셋째, 제9절입니다;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렘28:9); 선지자 예레미야는 신바벨론과의 전쟁으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당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냐는 그 반대입니다. 유대왕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선민의 영광을 다시금 사해에 떨치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하나냐의 예언을 믿고서 선민 유대인들은 그 마음속에 평강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면적인 평화에 불과합니다. 전쟁을 치르고 유대왕국이 정말로 강대국 신바벨론제국을 이겨야만 완전한 평화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렘28:9). 그와 같은 미래가 진실로 도래하게 될까요? 그동안 이루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법칙과 말씀의 이치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선지자 하나냐는 자신이 직접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렘28:1-4). 그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말대로 미래의 역사가 전개되는지를 한번 지켜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유대왕국의 멸망과 망국의 백성이 겪게 되는 고난의 세월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미래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함부로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속이지 말라고 예레미야가 본문 제9절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9) 본문 제10-1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신의 목에 여호와의 명령으로 만들어서 메고 있는 그 멍에를 하나냐가 백성들 앞에서 꺾어버리면서 어떠한 예언을 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은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0) 첫째, 제10-11절입니다;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2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렘28:10-11);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렘28:10-11a); 다윗왕조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4년 선지자 예레미야와 선지자 하나냐 사이에 불꽃 튀는 설전(舌戰, 말로 하는 전쟁)이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렘27:16-28:9). 그 설전의 주안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와 유대왕국을 위시한 반(反)바벨론 동맹의 연합군이 전쟁하게 되면 어느 쪽이 이기게 된다고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전쟁에서 신바벨론이 승리할 것이며 패전한 모든 왕국들은 사라지고 망국의 백성들이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는 노예의 멍에를 메고서 살아가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렘27:16-22).
2) 선지자 하나냐는 정반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바벨론이 패배할 것이며 지금까지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는 그 멍에를 모든 왕국들이 벗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8:1-2). 특히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왕국의 모든 인질과 보물들이 2년 내에 전부 반환된다는 기쁜 소식을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예언의 말씀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렘28:3-4). 그 말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거짓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3가지입니다; ①여호와께서는 거짓선지자에게 예언을 주시지 아니하시며(렘28:15) ②수많은 선지자들의 예언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으며(렘28:8) ③훗날 역사가 신바벨론의 승리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28:9);

3) 그렇지만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두 선지자의 주장을 모두 들은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하나냐를 두둔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당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전부 이방나라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는 노예의 멍에를 메고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선민 유대인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지 어떻게 그 반대의 역사가 전개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선지자 하나냐의 달콤한 예언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한 분위기에 고무된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 멍에를 벗기고 그것을 부수어 버립니다(렘28:10). 그리고 과감하게 백성들을 선동하는 것입니다(렘28:11a).
4) 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2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렘28:11b); 하나냐는 백성들의 지지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성전의 뜰 곧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소 앞에서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의 예언이 진짜라고 지지를 보내고 있으니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냐는 다시 한번 자신의 주장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내용이라고 위와 같이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11b). 자신이 선민 유대인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예레미야의 목에 있는 나무 멍에를 벗겨서 꺾어버린 것과 같이 앞으로 유대왕국이 신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며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동맹국들이 2년 내에 느부갓네살의 속국의 멍에를 벗고 떳떳하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거짓말이었지만 이제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임이 틀림없다고 그렇게 하나냐가 스스로 믿고서 백성들에게 힘차게 외치고 있습니다(렘28:11b).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그러한 이상한 사건의 전개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어떻게 대응하면 될까요?
5) 셋,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렘28:11c); 선지자 예레미야의 대응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바보같이 성전의 뜰을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28:11c). 그의 등뒤에서는 선지자 하나냐의 득의에 찬 웃음소리와 제사장들과 선민 유대인들의 환호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2년 내에 유대왕국을 위시한 동맹국들의 연합군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를 격파할 것이며 다윗왕조는 자주독립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 유대인들의 영광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왕국 내에서는 주전론자(主戰論者)들이 득세할 것입니다.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받은 여호와의 진짜 예언에 따르면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낭떠러지로 통하는 철길 위에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가는 제동장치가 없는 열차와 같습니다.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거짓 예언이 악한 누룩이 되어 선민 유대인사회에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되자 백성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여호와의 손에 귀추를 맡겨 드리고 조용하게 그 자리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렘28:11c). 그것은 훗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그 역사의 섭리만을 믿고서 예수 그리스도가 물리적인 일체의 저항을 포기하고 체포조에게 자신의 신변을 맡기는 그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겠습니다(마26:52-56).
셋째로,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나무멍에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 멍에를 벗을 수 있는 길이 있겠지만 쇠멍에는 그러하지 아니함. 그것은 대속의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기다려서 그 앞에 회개하고 그 제자로 살아갈 때에 비로소 운명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임, 렘31:31-34, 출32:34b, 눅24:44-49)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쇠멍에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확정되었음을 말하고 있음. 그러므로 가나안 일대의 모든 왕국이 전부 신바벨론제국의 속국이 되고 만다는 것임. 그 모든 산천이 신바벨론의 황제에게 속하게 되는 것임)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도다!(여호와의 말씀의 위임이 없는데 제멋대로 선지자 노릇하는 자가 거짓선지자임.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냐인 것임)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거짓선지자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은 빠른 죽음임),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1절을 참조하면 시드기야 왕 4년 5월에 그 예언이 있고 2달이 지나 7월에 운명한 것임)“(렘28:12-17);

(1) 첫째, 제12-13절입니다;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렘28:12-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기를,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렘28:12-13a); 선지자 예레미야가 성전의 뜰에서 거짓선지자 하나냐에게 어떠한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조용하게 물러나왔기에 이제는 여호와께서 직접 치리(治理,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에 맞게 다스리는 일)를 시작하십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주장을 받아 들이고 진짜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을 묵살한 선민 유대인들을 어떻게 조치할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렘28:12). 그 다음에는 악한 누룩을 퍼뜨린 장본인 하나냐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을 내리실지를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당사자인 하나냐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하십니다(렘28:13a).
2) 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렘28:13b); ‘나무 멍에’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으로 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쇠 멍에’는 사람들의 힘으로 결코 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렘28:13b). 여호와께서는 처음에 ‘나무 멍에’를 스스로 메고서 선민 유대인들이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렘27:11). 갈대아군대와 전투하지 말고 스스로 화친을 청하고 항복하게 되면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여호와께서 보전해주실 것이라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렘27:12). 그러한 뜻을 담아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스스로 ‘나무 멍에’를 만들어 그것을 목에 메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렘27:2). 그런데 그 멍에를 거짓선지자 하나냐와 그를 지지하는 선민 유대인들이 예레미야의 목에서 강제로 벗기어 그만 깨뜨려버리고 말았습니다(렘28:10).
3)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과 역사섭리를 거슬려서 자신들의 힘으로 신바벨론제국의 군대를 격퇴하고 속국의 멍에를 꺾어버릴 수가 있다고 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이제 유대왕국이 스스로 신바벨론에게 항복하고 살 길을 찾는 그 ‘나무 멍에’를 메는 방법을 포기하십니다. 그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거운 ‘쇠 멍에’를 그들의 목에 지우고자 하십니다(렘28:14a). 그것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벗을 수가 없는 징벌입니다. 여호와께서 제시하신 부드러운 경책인 ‘나무 멍에’의 처벌을 받지 아니하겠다고 저항하면서 ‘나무 멍에’를 벗겨서 다수의 힘으로 깨뜨려버린 결과가 비참한 이방인의 노예생활 곧 ‘쇠 멍에’를 메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입니다. 꼼짝 없이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이 패전하여 멸망당하고 살아 남은 자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의 쇠 멍에를 메고서 무겁고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 둘째, 제14절입니다;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렘28:1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렘28:14a); ‘나무 멍에’에 있어서는 아직 선택권이 남아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신바벨론제국과 전쟁하지 말고 속국의 ‘나무 멍에’를 메고서 그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하면 조공을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바치더라도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지킬 수가 있습니다(렘27:11-12). 그러나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지워 주신 ‘나무 멍에’를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꺾어버리고 이제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와 전쟁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전쟁에서 참패당하고 유대왕국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백성들은 인력으로는 도저히 벗을 수가 없는 ‘쇠 멍에’를 메고서 바벨론으로 끌려가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둘,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렘28:14b);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가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들짐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가축’은 사람들과 함께 이동할 수가 있는 재산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물입니다(출12:38). 그와 달리 ‘들짐승’은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자신들의 땅에서 살아가는 동물입니다(창1:24-25). 그러므로 ‘들짐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들짐승이 살고 있는 그 땅을 누구에서 속하게 하는지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선민들의 기업인 가나안 땅 그 산천이 전부 신바벨론제국의 영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본문의 말미인 제15-1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멋대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어 거짓 예언을 행한 하나냐가 받게 되는 여호와의 보응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4) 첫째, 제15절입니다;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 도다”(렘28:1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렘28:15a);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거짓선지자 하나냐에게 보내어 지적하고 계시는 하나냐의 잘못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하나냐를 선지자로 삼지도 아니했으며 그에게 예언의 말씀을 위탁하지도 아니하셨는데 하나냐가 스스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거짓 예언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28:15a). 또 하나는, 하나냐가 자신이 전하고 있는 예언의 말씀은 전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렘28:2a, 4b).
2) 여호와는 영이시기에 육체를 가진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께서 개인적으로 하나냐에게 말씀을 위탁하시는 광경도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맹점을 이용하여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제마음대로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 노릇을 하며 거짓말을 여호와에게서 직접 자신이 들은 예언의 말씀이라고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인 하나냐가 전하고 있는 말씀은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이므로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현세적인 이익과 역득을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얻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냐는 거짓말로 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으며 그것으로 탁월한 선지자라고 하는 일종의 영적인 권위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3) 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렘28:15b);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자와 그 거짓말을 진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싶어서 거짓선지자를 추종하는 자 사이에 누구의 잘못이 더 큰 것일까요? 여호와께서는 쌍벌죄(雙罰罪, 양쪽이 모두 죄가 있음)를 적용하여 양자 모두를 역사 가운데 처벌하십니다. 하지만 역시 죄질은 전자인 거짓선지자가 더 나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거짓선지자를 더 중하게 먼저 처벌하십니다(렘28:16-17). 그렇다고 하더라도 거짓선지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만드는 미래는 똑같이 여호와의 멸망의 심판이 임하는 그러한 비참한 세상입니다.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배척한 결과 신바벨론과 전쟁하여 조국이 망하고 적국에서 천대받으며 노예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나무 멍에를 물리치고 쇠 멍에를 선택한 그들의 미래상입니다(렘28:13-14).
(5) 둘째, 제16절입니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除, 빼거나 없이함)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렘28:1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除, 빼거나 없이함)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렘28:16a); 사람들의 생존과 활동은 지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거짓선지자 하나냐를 지면에서 없애 버리는 처벌을 시행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렘28:16aa). 그것은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다음 4가지 질문이 가능한데 그 점을 함께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①지면에서 하나냐를 제거해버리면 그의 영혼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요? 지면에서 없앤다고 하는 것은 땅에서의 그의 활동을 중지하도록 죽음의 처벌을 내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땅에 대한 종말이 임할 때에 그를 부활시켜 여호와의 심판대 앞에 세우게 됩니다(요5:27-28).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변론이 있은 다음 영생이냐? 영벌이냐?의 심판이 이루어집니다(요5:29). 하나냐의 경우에는 영벌의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가 어째서 그러한 준엄한 여호와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일가요? 한마디로, 여호와 하나님께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한 일을 자행하였기 때문입니다(렘28:16ab).
2) 그는 여호와의 주권을 무시하고 스스로 자신을 선지자로 임명한 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위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여호와로부터 개인적으로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거짓 예언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조직적으로 지지세력을 모아 진짜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배척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처벌을 면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③언제 그 일이 실시되는 것일까요? 금년 안에 죽임을 당할 것임이 선포되고 있습니다(렘28:16b). 그 점에 대해서는 항목을 달리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④당사자인 하나냐에게 어떻게 사전에 고지되고 있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개인적으로 하나냐에게 보내어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을 정확하게 사전에 전달하도록 조치하십니다(렘28:15-16). 그와 같이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은 당사자에게 사전고지(事前告知)가 된 다음에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법률 도달주의’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3) 둘,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렘28:16b); 장차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와 반 바벨론 동맹에 참여하고 있는 7개국의 연합군이 대전(大戰)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유대왕국도 동맹국이 되어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와 전투하게 됩니다. 그 전쟁의 시작이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시드기야 왕 9년 10째달입니다(왕하25:1). 지금이 시드기야 왕 4년 5째달이므로 아직 5년이나 남아 있습니다(렘28:1).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악한 누룩을 계속 선민 유대인들에게 퍼뜨리고 있는 당사자인 거짓선지자 하나냐를 먼저 제거하고자 하십니다. 몇 달이 남지 아니한 금년에 그를 죽이신다는 준엄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렘28:16b).
(6) 셋째, 제17절입니다;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해 일곱째달에 죽었더라”(렘28:17);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을 끔찍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거짓선지자 하나냐를 전쟁 발생하기 5년전에 미리 죽이는 심판의 역사를 그들의 목전에 보여줌으로써 더이상 하나냐의 거짓 예언을 믿지 말고 부디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진짜 예언의 말씀을 받아 들이라고 종용하십니다(렘28:16b). 하나냐의 죽음은 양력으로 말하자면, 주전 593년 10월인데 그때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은 지 2달후라고 하겠습니다(렘28:17). 시드기야 왕으로부터 신하들과 일반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죄인의 심정으로 용서를 구하면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가 그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렘26:3, 13, 욘3:1-10).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죽음 이후에 더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선민 유대인사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합, 시드기야, 스마야 등이 그러합니다(렘29:21-22, 24, 31). 그만큼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 서로 자신들은 유일한 선민들이며 예루살렘성전에서 율법의 제례의식에 따라 대(大)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으므로 의인들이라고 여기면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눅18:11-12, 레16:29-34). 그것이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비극이며 훗날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있을 때에도 제2성전 시대 유대인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외식적(外飾的)인 율법생활의 모습입니다(마23:1-33).
결론적으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여 있는 무화과 두 광주리의 비유는 실로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치욕과 영구한 수치를 당하도록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하시고 그 백성들을 이방나라에서 망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조치하시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시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살아간 선민 유대인들의 죄가 여호와의 용서를 받아야만 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죄짐을 대신 지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하고 다시 여호와께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요1:29).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24:7)고 기록함으로써 여호와의 영이 장차 전심으로 회개하고 성도로 살아가고자 하는 백성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으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실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요14:16-20).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새 언약’(렘31:31-34)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본문을 깊이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영적인 성취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