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이방 강대국을 동원하여 선민의 나라를 징벌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절대적인 기준에 의한 것임을 예레미야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다”(렘21:1-22: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12. 10. 13:32

제목; “이방 강대국을 동원하여 선민의 나라를 징벌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절대적인 기준에 의한 것임을 예레미야가 구체적으로 설명하다”(21:1-22:30)

설교일; 주후 2027 8 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12 10일 수요일 작성)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 제21장 앞부분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통치 말기에 두명의 신하를 보내어 자신에게 유대왕국의 미래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21:1-2). 당시 애굽의 바로가 가나안 일대의 왕국에 사절을 보내어 ()바벨론 동맹을 맺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27:3).

유대왕국의 신하들은 그 동맹에 참여하여 신바벨론제국의 침입에 대항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말에 현혹되어 매우 사기가 고무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왕국의 최종정책결정자인 시드기야 왕의 입장에서는 그와 달리 주장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시드기야 왕의 신하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에게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해주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은 참혹한 것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가 침입하면 그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시드기야 왕과 대신들은 모든 정예병을 도성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결사적으로 수성작전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극적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루살렘성이 철옹성이기는 하지만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여 갈대아군대를 끌어들인 것이기에 적군에게 함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성이 성전과 함께 불타버리고 말 것입니다”(21:4-14).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신 이유를 본문 제22장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성군 요시야가 급서하고 나자 그 뒤를 잇고 있는 3아들과 손자 1명이 모두 요시야와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바로 세우는 데는 뜻이 없고 강대국의 힘을 빌려서 유대왕국의 존립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고 현세적인 탐욕과 정욕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 결과 국내적으로는 정의가 사라지고 이웃나라에 대해서는 일체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22장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살룸으로 불리는 여호아하스 왕이 애굽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으나 실패하여 애굽제국에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10-12).

(2)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하여 살룸의 이복형 엘리아김이 여호야김 왕이 되어 유대왕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11년간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지 아니한 교만한 왕입니다(13-19).

(3)  여호야김 왕이 급서하자 왕자 여고냐가 여호야긴 왕이 되어 신바벨론의 침입을 저지하다가 3개월만에 실패하여 적국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때 여고냐 뿐만 아니라 모친과 아내들이 전부 볼모로 끌려가고 맙니다(24-28).

(4)  성군 요시야의 막내아들 맛다니야가 신바벨론 황제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시드기야 왕이 되어 11년간 망조가 든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세력의 우세만 쫓아서 행동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이 임박하게 되는 것입니다(20-23, 29-30).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통치말기에 신바벨론제국의 침입이 예상되고 있으므로)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박해한 성전의 총감독인데 여기의 바스훌은 그와 다른 인물임, 20:1-2)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스바냐 역시 제사장이며 유대왕국 말기의 부제사장인데 그는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과 여호야다의 뒤를 이어 성전의 총감독이 되고 있음, 29:26, 왕하25:18)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 2. (이하는 시드기야 왕이 두 신하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시드기야왕 9년에 들어서기 전임을 알 수 있음, 39:1)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히스기야 왕이 선지자 이사야에게 신하를 보내어 요청하여 여호와가 신위적인 능력으로 앗수르 군대를 격파한 일이 있음, 왕하19:2-7, 34-35. 그와 같은 은혜를 얻고자 하는 것임),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들이리라!(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가 쳐들어오기 전에 시드기야 왕과 대신들이 모든 정예병과 강력한 무기를 예루살렘성에 집합하여 오로지 도성만 방어하고자 할 것임. 그러나 그 작전은 실패할 것임.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음)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아무리 좋은 무기와 정예병으로 갈대아군대를 상대하더라도 수성작전에 실패할 것임. 그 이유는 여호와가 친히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치고자 갈대아군대를 동원한 것이기 때문임), 6. 내가 또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성에 있는 것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예루살렘성이 함락될 것인데 그 이유는 여호와가 칼의 재앙과 전염병의 재앙을 대대적으로 발생시킨 것이기 때문임)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갈대아 군대, 왕하25:7, 11)그들의 원수의 손(왕손 이스마엘의 부하들, 왕하25:25)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애굽의 난민촌까지 쳐들어오는 신바벨론의 군대, 42:16-17, 52:30)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여호와가 진노하여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으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멸망시키면 무자비하게 많은 자들이 죽고 포로로 적국에 끌려갈 것임. 그리고 고토에 남은 백성과 애굽으로 피난한 백성들에게도 무자비한 재앙이 닥친다는 것임) 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30:19,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선 것임)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라는 것임. 그것은 그 옛날 니느웨 왕과 백성들처럼 한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회개하는 것임, 18:7-8, 3:4-10) 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신바벨론 갈대아군대에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여 살길을 찾으라는 것임, 27:11)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시드기야 왕과 대신들의 선택이 주화론이 아니고 주전론이 될 것임을 벌써 예언하고 있는 대목임) 11. 유다 왕의 집(다윗왕조)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다윗왕조)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다윗왕조는 우선 유대왕국 내에서의 정의라도 구현하라는 것임.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아니하고 약자를 종으로 삼았기에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이 찾아오는 것임)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유대왕국의 철옹성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자신들을 함락할 적군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그것은 그 옛날 가나안 원주민 여부스 족속의 장담과 같이 허무한 것임, 삼하5:6-7. 여호와가 개입하시면 붕괴되고 말기 때문임).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진노로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모조리 멸망의 대상인 것임, 25:29)“(21:1-14);

(1)  본문 제1-6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신하들을 자신에게 보내오자 여호와의 예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파악해봅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2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21:1a); 대선지서인 예레미야의 특징은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1-3, 21:1a, 25:1-3, 30:1, 32:1, 6, 33:1, 42:7, 43:144:1, 46:1, 50:1). 당대에 유대왕국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와 우리야 두 사람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고 있지 않습니다(26:20). 20장에서는 제사장 바스훌이 그리고 제28장에서는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거짓 예언입니다(14:13-14, 20:6, 28:2, 9).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듣고서 그대로 동족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는 당대에 아나돗 출신인 예레미야와 기럇여아림 출신인 우리야 뿐입니다(1:1-3, 26:20). 참고로, 아나돗은 예루살렘 북쪽4km지점이며 기럇여아림은 서쪽 11km지점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도성(都城) 예루살렘 출신으로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나 제사장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5:31, 13:13-14, 14:13-14).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들 한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5:1). 그 한사람의 진실한 여호와의 종이 예루살렘 출신 가운데 없기 때문에 유대왕국이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2)    , 시드기야 왕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21:1b); 시드기야 왕 9년인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유대왕국에 다시 쳐들어옵니다(왕하25:1-2). 그 전에 전쟁이 임박한 것을 알고서 시드기야 왕이 그의 신하 두 사람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급파하고 있습니다(21:1b). 그 이유는 당시 유대왕국에서 유일하게 신바벨론과 전쟁하게 되면 패전하고 만다고 주장하고 있는 선지자가 예레미야이기 때문입니다(38:1-4). 물론 그 전에는 기럇여아림 출신 선지자 우리야도 그와 같이 주장했습니다(26:20).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여호야김 왕에 의하여 살해되고 말았습니다(26:21-23). 다행스럽게도 선지자 예레미야는 당시에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한 것입니다(26:24). 예레미야는 성군 요시야 13년인 주전 627년경 약관의 나이에 선지자가 되어 유대왕국이 망하는 주전 586년까지 무려 41년 동안이나 동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1:1-3).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 통치시기에 예레미야는 50대의 연령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평균 40세 정도가 생존 연령이므로 예레미야는 노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별로 귀하게 대접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옛날 히스기야 왕과 비교할 때(왕하19:2) 높은 신하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 왕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21:1b); 훗날 스바냐는 부제사장이 되고 있습니다(왕하25:18). 그리고 바스훌에 대해서는 직책의 표시가 없고 단지 유력한 장로인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라고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20장에서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과는 대조되는 문장입니다(20:1). 그와 같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소홀하게 대접하고 있는 교만한 왕이 바로 시드기야입니다.

(3)  둘째, 2-3절입니다;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21:2-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21:2a); 신바벨론제국의 영웅인 황제가 바로 느부갓네살입니다. 그가 교만한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끝장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대규모의 정벌군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러한 전운을 감지하게 된 유다 왕 시드기야가 급하여 신하 두 사람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파견하고 있습니다(21:2aa). 그 이유는 평소 예레미야가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과 전쟁하게 되면 패망하고 말 것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예레미야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전쟁하면 유대왕국이 승리한다고 하는데(14:13-14, 28:1-4) 오직 예레미야만 반대주장입니다(14:10-12, 15-18).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장변화가 있는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차제에 동족과 조국의 구원을 위하여 평소의 소신을 뒤로 미루고 여호와 하나님께 복을 빌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2ab).   

2)    ,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21:2b); 주전 701년 예루살렘성에 갇혀서 앗수르 대군과 전쟁하고 있던 히스기야 왕이 다급해지자 베옷을 입고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죄인으로 서서 간구하던 때와 비교하면 시드기야 왕은 아직도 자신이 만만합니다. 그 이유는 이번 전쟁에서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을 이길 것이라는 예언을 예레미야를 제외하고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이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만에 하나가 문제될 수도 있습니다. 그 만에 하나의 불안이 바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불안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신하를 보내어 저주의 예언이 아니라 축복의 예언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도록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의 생각으로는 애굽제국과 이미 동맹하고 있으므로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과 일전을 겨누더라도 군사력으로 적군을 물리칠 수가 있겠지만 혹시 여호와께서 도와 주시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바램입니다(2b). 그것은 100여년 전에 여호와의 도우심이 아니면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말 것이라고 하는 정세판단을 하고 있던 히스기야 왕이 눈물로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중신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어 함께 간구하여 달라고 요청하던 때와는 판이한 것입니다.

3)    ,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21:3); 선지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의 요청에 따라 여호와께 다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평소의 예언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즉시 두 사람의 신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에게서 함께 들은 정확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대로 시드기야 왕에게 전달하라는 것입니다(21:3).

(4)  셋째, 4절입니다;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 들이리라”(21:4);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우선 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한 것입니다(21:4a).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성밖에서 쌍방의 야전군들이 서로 전투하게 됩니다. 그때 유대왕국의 병사들이 신바벨론제국의 원정군인 갈대아군대와의 전투에 있어서 공세를 펴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21:4ba).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유대왕국의 군대가 갈대아군대와의 전투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으로 전쟁을 몰고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21:4bb). ②전투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유대왕국의 병사들이 마지막으로 모여 드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성이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21:4c). 실제로 시드기야 왕은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 적군을 맞이하여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에서 끝까지 항전하게 됩니다. 무려 3년간이나 버티게 되는데(왕하25:1-2) 그때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 인근의 두 요새지인 라기스와 아세가가 끝까지 남아서 후방에서 갈대아군대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34:7).

(5)  넷째, 5-6절입니다;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분노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6. 내가 또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성에 있는 것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21:5-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분노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21:5); 전쟁의 승패는 군사력의 차이나 정신전력의 차이에 따라 결론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호와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출애굽기 제17장에서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7:11),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17:15-16). 그런데 시드기야 왕의 유다의 군대와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가 전쟁을 벌이는데 있어서 여호와께서는 침략군 갈대아군대를 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유다의 군대를 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21:5b). 그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보다도 더 타락한 백성들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으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21:5a). 그 방편의 하나로 갈대아군대가 동원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2)    , 6. 내가 또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성에 있는 것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21:6);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의 부정과 부패가 영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심한 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성군 요시야의 시대를 제외하면 말기의 왕들이 모두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전철을 따르고 있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왕하23:25-27). 므낫세 왕의 치하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아모리 족속의 죄악보다 더 악한 나라가 되고 만 것입니다(왕하21:11-16).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대단하십니다. 그 결과 침략군의 칼날에 의하여 죽게 되는 백성의 수보다 여호와께서 큰 전염병으로 예루살렘성과 유다의 성읍에 있는 백성들과 가축을 몰살시킨 수가 더 많게 된다는 것입니다(21:6). 그와 같은 끔찍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두 신하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21:3a). 이제 그들은 그 내용을 시드기야 왕에게 보고할 것입니다(21:3b).

(6)  본문 제7-1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주전파(主戰派, 전쟁을 하자는 사람들)와 주화파(主和派, 화친을 하자는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7)  첫째, 7절입니다;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2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21:7a);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를 찾아온 신하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추가로 시드기야 왕에게 전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먼저 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7aa)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가로 왕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와 전투를 벌이면서 유대왕국의 병사들이 야전(野戰)에서 많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②예루살렘성과 요새지로 후퇴하여 적에게 대항하고 있지만 여호와께서 진노와 재앙을 일으켜서 기근과 전염병으로 많은 백성들과 군사들이 또한 성내에서 희생되고 맙니다. ③그 후에 살아남은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적군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21:7ab). 그런데, 전쟁포로의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바벨론제국에는 그들을 적대시하는 3부류가 있기 때문입니다(21:7ac); ①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 시드기야를 미워하고 있습니다(왕하25:7). ②신바벨론의 귀족들이 오만한 선민 유대인들을 싫어합니다. 원수같이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왕하25:11). ③전장(戰場, 전투의 마당)에서 동료를 잃어버린 갈대아 병사들이 그 보복을 하고자 포로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여기서는 생명을 찾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21:7ac).

2)    ,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21:7b); 유대왕국의 왕과 귀족들과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면서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과 신하들 그리고 갈대아 병사들이 앙갚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유다의 포로들이 많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①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시드기야 왕이 처참한 몰골이 되고 맙니다. 그의 눈 앞에서 왕자들이 살해되고 그는 두 눈이 뽑히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25:7). ② 느부갓네살의 신하들이 포로된 유대인 귀족들을 학살합니다. 대제사장 스라야와 귀족들이 느부갓네살의 허락을 받은 그의 신하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왕하25:18-21). ③전란 가운데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거의 적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5:11-12). 그들 가운데 많은 수가 북송과정에서 갈대아군사들에게 희생되고 만 것입니다. 그와 같은 3단계의 죽임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그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7b).

(8)  둘째, 8-9절입니다;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같이 되리라”(21:8-9);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21:8); 다음과 같은 신명기 제30장의 말씀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사망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리라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선민 유대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지 아니하고 자손대대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우상과 거짓 예언을 의지하여 신바벨론과 전쟁하고자 나섭니다(28:1-4, 38:5-6, 27-28). 그와 같은 잘못된 길을 빨리 벗어나서 다시 생명의 길로 나아오라고 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두 신하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21:8).

2)    , 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같이 되리라”(21:9); 장차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유대왕국으로 쳐들어와서 전국을 유린하고 3년간이나 도성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왕하25:1-2). 유다 왕 시드기야와 주전파 신하들이 끝까지 항복하지 아니하고 버티게 되면 백성들의 피해가 엄청날 것입니다. 항전 중에 적의 공격으로 많이 희생되고 또한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피해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한 미래를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빨리 항복하고 살길을 찾도록 하라고 시드기야 왕과 백성들에게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21:9a). 그러나 시드기야 왕과 권력자들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맙니다. 그 결과 전란 중에 늦게 항복함에 따라 포로들의 목숨이 전리품으로 여겨지고 북송과정에서 많이 희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21:9b).

(9)  셋째, 10절입니다;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21:1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21:10a); 여호와께서는 기한을 정하여 생명과 사망 가운데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그 귀한 시한을 주전파의 말을 듣고 있는 유다 왕 시드기야가 그만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의 선택의 결과에 따라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에 복을 내리지 아니하고 화를 내리기 위하여 조치를 취하시는 것입니다(21:10a). 이미 예언한 대로, 유대왕국의 군대는 야전(野戰)에서 신바벨론의 갈대아군대에게 밀려서 후퇴를 거듭하게 됩니다(21:4). 급기야 예루살렘과 라기스 그리고 아세가 성에 틀어박혀서 수성(守城)에만 전념하게 됩니다(34:7). 물과 양식이 부족한 요새인지라 적의 포위가 오래 되자 기근과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21:6, 9). 그 때문에 성안의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고 마는 것입니다.

2)    , 이 성읍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21:10b);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이 3년간이나 갈대아군대의 집중적인 포위공격을 막아내면서 예루살렘성에서 버티었지만 끝내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나타나지 않습니다(왕하25:1-6). 100여년 전 히스기야 왕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왕하19:34-35). 끝까지 회개할 줄 모르는 오만한 시드기야 왕과 주전파 신하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성이 무너지고 그들은 적들에게 포로가 되고 맙니다(21:10ba, 왕하25:6-11, 18-19). 또한 예루살렘성은 물론 전국의 성읍들이 모조리 적들의 방화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되고 있습니다(21:10bb). 선민 유대인들이 그토록 국내외적으로 자랑하던 솔로몬의 화려한 예루살렘성전마저 완전히 전소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9). 그와 같은 구체적인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이제는 두 신하가 시드기야 왕에게 보고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21:1-2).

(10)               21장의 말미인 본문 제11-1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내린 벌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11)               첫째, 11-12절입니다;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21:11-1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21:11-12a);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에게서 받은 말씀을 유대왕국의 왕과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유다의 왕은 예레미야가 선지자 활동을 하고 있는 당시의 유대왕국의 왕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군 요시야 통치 13년인 주전 627년부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에 의하여 멸망 당하는 주전 586년까지 가나안 땅에서 선지자로 일하고 있습니다(1:1-3). 그런데 당시의 유다의 왕들은 성군 요시야를 제외하면 모두가 유대왕국 말기의 악한 왕들입니다(왕하23:25-27).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들이 차례로 그러합니다.

2)   그 가운데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은 각각 3개월간 짧게 통치하다가 애굽과 신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3:31-34, 24:8-15). 그리고 애굽의 바로에 의하여 왕이 된 여호야김과 신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왕이 된 시드기야가 각각 11년간 유대왕국을 통치하게 됩니다(왕하23:36-37, 24:17-20). 그들은 모두가 다윗왕조의 왕들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유다 왕의 집“과 다윗의 집은 모두 다윗왕조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21:11-12a). 그 다윗왕조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하의 예언의 말씀은 엄청 중요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므로 부디 다윗왕조의 왕들은 각별히 명심하여 시행하라고 하는 의미를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21:11-12a).

3)   ,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21:12b);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에 비해서 본문의 내용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다윗왕조의 왕들은 매일 백성들의 송사를 판결함에 있어서 정의’(正義, justice)를 실천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1:12ba). 여기서의 정의는 억울하게 압박 당하여 자신의 재물과 권리를 강자에게 탈취당한 백성이 있으면 그것을 반드시 올바르게 구제하여 주라는 것입니다(21:12bb).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당시의 유대왕국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정의가 잘 실현되지 아니하는 악한 사회입니다. 강자는 약자를 압박하며 가난한 자의 재물과 권리를 탈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자꾸만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러므로 약자와 가난한 자는 발 붙일 곳이 없으며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강자만이 삶의 보람을 누리고 있으며 반면에 약자와 빈자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가 천대받으며 삶을 끝내고 마는 비극적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②다윗왕조가 국내적으로 정의사회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제적으로 창조주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의 정신을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나누어 주고 회개하는 이방인들의 죄사함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살아가야만 하는 선민들인데 전혀 그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19:4-6, 12:39). 그러한 공의의 실천은 훗날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인 성도들에게 맡겨지는 새 언약의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31:31-34, 8:10-13, 24:14, 28:18-20, 24:44-49, 1:8, 2:1-4). 여기서는 우선 급한 정의사회의 구현이라도 다윗왕조의 왕들이 실천하라고 하는데 그것마저 이루어지지 못하여 유대왕국이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21:12c). 

5)   ,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21:12c); 일반적으로 선민의 나라가 멸망 당한 이유는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에 비추어보면 분명히 그러합니다(20:1-5). 그렇다면, 여호와를 섬기는 것하고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신으로 섬기는 것은 어떠한 중요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과 같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①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창조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를 사랑하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12:30-31). 그것은 국내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며 국제적으로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②그와 달리 피조물의 형상으로 신상이나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자신의 신으로 편리하게 섬기는 경우에는 그러한 생명사랑의 정신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일방적인 현세적 소원성취만을 탐욕스럽게 이루고자 합니다.

6)   그러한 소원을 덮어 놓고 마치 능력 많은 램프의 요정과 같이 이루어 준다고 하는 것이 바로 우상문화의 본질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문화에 젖어 있는 사회는 현세적인 기복신앙과 이기적인 악행이 만연한 사회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악한 사회에 대하여 여호와의 진노가 재앙으로 임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먼저 선민의 나라를 태워버립니다(21:12ca). 그 순서가 차례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이며 그 뒤가 남조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입니다(7:15). 그 다음에는 주변의 이방인 나라입니다(25:29a). 그 분노의 불길이 자꾸만 번져 나가게 됩니다. 결국에는 먼 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방인의 나라들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의 심판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25:29b). 피조물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을 끌 수가 없습니다(21:12cb). 오로지 대속자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제사만이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유월절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을 뿐입니다(1:29, 6:4). 

(12)               둘째, 13-14절입니다;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13-14); 역시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21:13a);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인간의 역사와 그 속사정까지 모두 통찰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자랑하고 있는 철옹성과 천혜의 요새지 그리고 깊은 계곡에 대해서도 모두 그 지리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을 일일이 꿰뚫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그 옛날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시온산성이 그러합니다(삼하5:6-9). 주전 1,003년경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서 북진합니다(삼하5:5-6).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시온 산성과 그 북쪽에 있는 예루살렘 고지가 마음에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부스 족속은 주전 14세기 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의 침략도 받지 아니하고 건재합니다. 그 이유는 해발 790m에 위치하고 있는 예루살렘이 깎아 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요새지이기 때문입니다.

2)    그 고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깊은 계곡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계곡 위에는 양쪽으로 절벽과 산성이 있어서 협공을 받아 전멸당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 옛날 여부스 족속은 유다 왕 다윗을 놀렸습니다;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5:6b). 하지만 여호와의 은혜로 다윗왕은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샛길을 발견하여 은밀하게 침투했습니다. 그 결과 철옹성 시온산성과 예루살렘고지가 함락된 것입니다(삼하5:7-10).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들이,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21:13ab)라고 자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면 언제라도 그 옛날 다윗을 시켜서 시온산성을 점령하게 한 것처럼 이번에는 이방 강대국을 동원하여 예루살렘성을 정복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3)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21:13b-14a);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약소국 유대왕국이 중동의 새로운 패권국이 된 신바벨론제국의 공격으로 비참하게 멸망 당하게 됩니다(왕하25:1-7). 그러나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다윗왕조의 악행을 여호와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왕하23:25-27). 100여년 전 히스기야 왕 때에는 앗수르제국의 공격을 여호와께서 천사를 보내어 신위적으로 물리치시고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왕하19:34-35). 그러므로 앗수르제국은 한번도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온갖 죄악을 범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자 결심하십니다(7:15-16). 정의가 사라져버린 다윗왕조를 더이상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21:11-12).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신바벨론의 갈대아군대를 동원하여 치십니다. 그 때문에 선민의 나라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너희를 벌할 것이요”(21:13b-14a).

4)    ,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14b);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수도인 예루살렘성의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까마득한 절벽 위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넓은 고지에 예루살렘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계곡을 통과하여 그곳으로 기어올라와야만 하는데 그 계곡은 참으로 통과하기 힘이 듭니다. 양편의 높은 산성에서 계곡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돌을 굴리면 적군들은 꼼짝 없이 그 계곡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하나의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계곡과 건너편 산에 불을 지르고 멀찍이 예루살렘의 통로를 포위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모든 주위를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14b). 그렇게 몇 년을 지내게 되면 양식과 물이 떨어진 주민들이 항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21:5-6). 실제로 그렇게 시드기야 왕이 정예병을 이끌고 예루살렘성에서 3년을 버티다가 마침내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7, 21:7). 

둘째로,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다윗왕조의) 유다 왕의 집(예루살렘 왕궁)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다윗왕조의)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모든 예루살렘의 주민들)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선지자 예레미야는 두 신하를 통하여 시드기야 왕에게 전해준 여호와의 예언을 더 쉽게 풀이하여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지도자들과 부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성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여호와의 명령으로 이제 전달하고 있는 것임)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유대왕국 내에서의 정의구현) 공의(창조주의 모든 피조물사랑을 말하며 그것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말하고 있음, 19:4-6, 12:1-5, 11:4-5, 5:44-48, 12:30-31)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예루살렘)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58:6-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 말씀의 핵심이며 그것은 왕하21:16절에 기록되어 있는 므낫세 시대의 포악을 경계하고 있는 것임)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예루살렘성의 영광이 영원할 것임, 58:10-12. 그것은 새 예루살렘성의 영광과 같은 것임, 21:24) 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9:7-15,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제멋대로 살면 반드시 멸망할 것임. 그것이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원칙임. 59:16-21,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보내어 만민구원 영생구원의 길을 신위적으로 마련하고 계시는 것임. 그것이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영원한 언약이며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새언약인 것임, 55:1-7, 11:1-12, 31:31-34.)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다윗왕조 유대왕국)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왕조) (여호와) 길르앗(에서 라반의 추격군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을 구원하여 주듯이 여호와가 다윗왕조를 그렇게 돌보았다는 것임. 그 이유는 다윗이 행한 정의와 공의 때문임, 삼하8:15, 31:23-24) 같고 레바논의 머리(두로 왕 히람이 다윗제국에 조공하였음, 왕상4:21, 5:5-12)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유대인의 선민지위를 박탈하고 이방 강대국을 동원하여 멸망시키고 말 것임, 8:19-20)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메소포타미아의 신흥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 39:4-7)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은 성전과 왕궁, 왕상5:5-6, 7:1-3)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39:8, 52:13)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29:24),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29:25-28)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이 슬픈 일이지만 그것보다 남은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고난의 세월이 더욱 고통스럽다는 예언의 말씀임, 23:27-29) 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예루살렘)에서 (왕하23:33, 대하36:4, 애굽의 바로 느고에 의하여 애굽으로 잡혀) 나간 살룸(요시야의 제2부인 하무달이 낳은 차남 살룸이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 왕임, 왕하23:30-31)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여호아하스 왕의 신세와 같이 되는 자들이 바로 바벨론 포로가 된 당시의 선민 유대인들임. 그들은 타향에서 죽고 그들의 손자들이 비로소 고토로 돌아오게 되는 것임, 3:2, 대상3:17-19, 6:14-15, 왕하25:18-21)“(22:1-12);

(1)  본문 제1-5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다윗왕조의 번영과 멸망은 무엇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시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2)  첫째, 1-2절입니다;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네 신하와 이 문으로 들어오는 네 백성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니라”(22: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22:1-2a);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당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사라진 이후 선민의 정통성은 남조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왕국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 영광을 다윗왕조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제국이 선민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쳤으며 그 찬란한 선민의 유업을 다윗왕조가 계승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선민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치는 메시아가 온다고 하면 당연히 다윗의 가문에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비록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멸망으로 이스라엘 10지파가 사라지고 없지만 다윗왕조가 살아 있는 한 선민의 정통성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다윗왕조 중심의 정통성이라는 사상을 선민 유대인들이 고수하고 있기에 주전 142년에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레위인들의 하스모니안 왕조를 정통성을 가진 유대인들의 정식 왕조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다윗의 가문에서 정치적인 메시아가 나타나서 선민 이스라엘의 영광을 다시 온 세상에 떨쳐 주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왕국의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특히 선민들의 정통성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본문의 말씀을 외치도록 지시하십니다(1-2a). 그 다윗왕조의 유다 왕들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잊지 말고 반드시 명심해야만 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엉뚱한 길로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한 명쾌한 여호와의 지적이 이제부터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네 신하와 이 문으로 들어오는 네 백성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니라”(22:2b);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과 생각이 다르십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다윗왕조가 그들의 선민의 정통성의 중심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유대왕국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예루살렘 성문을 출입하고 있는 백성들 모두가 여호와의 종들이라는 것입니다(22:2b). 그들 모두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나같이 실천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들인 그들은 더이상 다윗의 후계자인 왕들만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선민의 정통성을 다윗왕조에 떠넘기고 또한 여호와의 율법을 실천하는 일을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넘기고 백성들이 세상 편하게 제멋대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와 같이 믿음과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그 어떠한 신분상의 차별이나 상하관계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의미가 본문 가운데 깊숙이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2b). 역사적으로,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형성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일을 모두 최고지도자 모세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은 모세가 전해주는 율법만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0:18-21, 5:24-27). 백성들이 여호와의 강림을 두려워하여 그렇게 행동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 요구를 수용하고 있지만 모세의 기본생각은 다릅니다. 백성들 모두가 여호와의 영을 받아 선지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실천하는 그때를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11:29, 30:1-20). 요컨대, 믿음과 구원은 개인적인 결단에 달린 것이지 세상적인 신분이나 집단적인 소속에 의하여 그냥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3)  둘째, 3-4절입니다;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신하들백성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22:3-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22:3a);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국내적으로 정의를 구현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벌써 제 21장에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21:12). 그런데 제 22장 본문에 들어오게 되면 국제적으로는 여호와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22:3a).

2)    따라서 여호와의 백성들은 대내적으로는 정의를 실천하며 대외적으로는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그렇게 두 바퀴가 온전해야 여호와신앙이 올바르게 전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자신들의 사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집단 이기적인 성격의 정의의 개념을 국제적으로 강요하게 되면 그것은 패권국의 만행이 되고 맙니다. 또한 국내적인 문제라고 하더라도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는 여전히 서로의 정의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조주의 공의의 개념 곧 생명을 돌보고 살리라는 여호와의 뜻이(6:9) 정의의 충돌을 해결하는 관건이 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좁은 개념의 정의보다는 넓은 개념의 공의 곧 모든 피조물에 대한 생명사랑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 취지라고 하겠습니다(3:4, 12:30-31).

3)    , 이방인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22:3b); 널리 국제적으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또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부터 정의사회를 구현하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피조물인 사람들은 누구나 공의에 입각하여 이방인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는  살길이 막막한 고아와 과부의 생계를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의 구현이며 복지의 실현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말씀은 벌써 모세의 율법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22:21-24).

4)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죄한 자의 피는 여호와 하나님께 그 억울함을 직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형 가인에 의하여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가 여호와께 자신의 무죄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4:10). 그 무죄한 피를 어쩔 수 없이 마시게 된 땅도 그로 말미암아 그 땅에 여호와의 저주가 임하는 것이 두려워서 하소연하고 있습니다(4:11). 더구나 노아의 홍수 후에는 육식이 허용되고 약육강식의 자연계와 인간사회가 도래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무죄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피를 땅에 흘리게 한 자에게는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9:5-6). 그에 따라 어느 족속이든지 그 땅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과도하게 흘리게 되면 여호와의 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제15장에서는 가나안의 아모리 족속이 그러합니다(15:16). 또 열왕기하 제21장에서는 므낫세의 유대왕국이 그러합니다(왕하21:11-16).

5)    ,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신하들백성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22:4); 주변국의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의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고 여호와께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사명이며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의 실천입니다(19:4-6).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는 같은 피조물인 이웃을 사랑하며 생계가 어려운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는 것이 정의사회의 구현입니다(10:18-19). 그러한 선민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다윗왕조를 축복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인 공의의 정신을 국제적으로 실천하고 국내적으로 정의를 구현한다면 다윗왕조의 왕들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이 세상을 지배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22:4).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개선문으로 사용되는 예루살렘성의 황금문이 차폐되고 그 앞에 무덤만이 즐비할 것입니다.

(4)  셋째, 5절입니다;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22:5a);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가 명령하시는 바 국제적인 공의의 실천과 국내적인 정의의 실현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맙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약자의 재물을 탈취하며 힘으로 압제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웃 약소국을 침략하여 전리품을 획득하고 포로를 많이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이방인처럼 살아가면서 유대왕국의 번영을 누리고자 시도하고 있는 다윗왕조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 나라에 분노를 부으십니다(21:12).

2)   ,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5b); 포악하게 세상을 다스리게 되면 약자의 피가 그 땅에 흘러 넘치게 됩니다(6:11-13). 그 옛날 노아의 시대에 세상사람들이 약자를 해치고 횡포를 일삼았기에 그 무죄한 자의 피를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홍수심판을 내리십니다(6:1-7, 13).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에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5:26-27). 그 결과 이방 나그네를 탄압하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습니다(5:28). 포악한 군주 므낫세의 뒤를 따라 유대왕국 말기의 왕들이 하나같이 사회적인 약자를 해치고 무죄한 자의 피를 계속 흘리고 있습니다(왕하21:14-16, 23:25-27). 국내적으로는 정의가 사라지고 국제적으로는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는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입니다(5:31).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진노하시고 그 나라를 멸망으로 심판하고 마시는 것입니다(5:29-30). 무척 아끼는 선민의 나라를 그렇게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방나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25:29).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면 반드시 멸망시키고 말겠다는 것입니다(22:5ba). 그 점을 알고서 부디 여호와의 공의의 실천과 정의의 구현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5bb).

(5)  본문 제6-9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망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 봅니다;

(6)  첫째, 6절입니다;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22:6);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22:6a);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유다의 왕에게 보내어 먼저 하나님이 다윗왕조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22:6aa). 그 표현이 바로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22:6ab)라는 언급입니다. 그 구체적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길르앗레바논의 머리는 전부 좋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좋은 목초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멀리 북쪽의 헬몬 산과 골란고원에서 물이 남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 물이 요단 강 유역을 좋은 목초지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바논의 머리는 그 지역을 장악하게 되면 레바논 산지에서 자라고 있는 좋은 목재인 백향목을 얻을 수가 있고 또한 해상왕국인 페니키아의 부를 조공으로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레바논의 머리에 대하여 좀더 살펴봅니다; 먼저 레바논의 머리는 두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형적으로 레바논 산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매우 좋은 목재인 백향목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백향목을 사용하여 솔로몬 대왕이 예루살렘성전과 화려한 자신의 궁전을 짓고 있습니다(왕상5:6-10, 7:1-12).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페니키아의 종주국인 이스라엘제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는 해상무역을 석권하고 있는 페니키아가 이스라엘제국에 엄청난 무역의 이익을 조공으로 바쳤습니다(왕상9:26-28, 10:21-22).

2)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십니다. 그때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의 크기가 북쪽으로는 레바논 산지와 헬몬 산까지이며 동쪽으로는 길르앗 땅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점령한 지역에는 레바논 산지와 헬몬 산 지역이 빠져 있습니다(11:16-17). 그들의 힘으로는 정복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훗날 다윗 왕이 그 지역을 전부 점령하게 됩니다(삼하8:3-12, 왕상5: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윗왕조를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길르앗에 대하여 좀더 살펴봅니다; 창세기 제31장을 보면, 북부 시리아 하란에서 장인인 라반의 감시를 피하여 야반도주한 야곱일행이 길르앗 산지에서 꼬리를 잡히고 맙니다(31:23). 그곳에서 여호와의 개입하심으로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자 야곱은 길르앗 목초지역에서 한동안 방목을 합니다(31:24, 43-55). 도망치기에 바빴던 가축들이 생기를 그곳에서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21장에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요단 강 동편에서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을 정벌합니다(21:21-35). 그러자 민수기 제32장에서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족장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목축하기에 좋은 그 땅을 자신들에게 먼저 분배하여 달라고 요구합니다(32:1-5). 그 결과 모세는 두 지파의 군대가 요단 강을 건너가서 이스라엘 기타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도록 돕는다는 조건으로 길르앗 등지의 좋은 목초지를 그들에게 배분하도록 합의하고 있습니다(32:25-29).

3)    ,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22:6b); 그와 같이 좋은 목초지인 길르앗 땅을 사사기 시대에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원정에 나서서 모두 수복하게 됩니다(삼하8:1-14). 그 결과 이스라엘제국이 성립되고 시온의 영광이 중동 땅에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중심에서부터 여호와를 의지하고 섬긴 다윗대왕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삼상16:7, 삼하8:14-15, 13:22). 그러나 주전 930년경 솔로몬의 장남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이스라엘제국은 둘로 갈라지고 맙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그동안 솔로몬의 압제 곧 지나친 과세 및 부역에 시달리다가 르호보암 왕이 그 정책을 지속하자 그만 다윗왕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만 것입니다(왕상12:12-16). 세겜에서 여로보암1세를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초대왕으로 세우고 남조 유대왕국과 단절을 선언합니다(삼상12:19-20, 25). 그리고 백성들이 절기 때에 예루살렘으로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선포하고서 섬기라고 강요합니다(왕상12:27-33).

4)    그때부터 북조 이스라엘왕국은 여호와의 눈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결국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이스라엘 10지파의 흔적이 사라지게 됩니다(왕하17:5-6, 21-23). 그후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100년 이상 존속하지만 그 힘이 미약합니다. 특히 몇 차례의 종교개혁이 있었지만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를 더 좋아합니다(왕하23:25-27). 세상적인 탐욕과 육체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맙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다윗왕조 유대왕국마저 이방강대국의 손에 망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유대왕국 말기에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전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6.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22:6)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①풍성한 목초지 길르앗이 광야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22:6ba). ②그리고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만든 예루살렘성전과 왕궁이 버림받아 주민이 없는 폐허로 변하고 만다는 것입니다(22:6bb).

(7)  둘째, 7절입니다;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22:7);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22:7a);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배신하고 패역을 일삼고 있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지상에서 없애 버리고자 하십니다(6:15). 그 방법이 이방 강대국을 동원하여 유대왕국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5:6). 그 도구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 된 신바벨론제국을 동원하고자 하십니다; “7.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22:7a). 느부갓네살 황제가 강력한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다시 침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4:17, 21:4-7). 그렇게 전운이 감돌고 있는 도중이지만 유다 왕 시드기야와 중신들이 크게 정세를 오판하고 맙니다. 그들은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믿고서 신바벨론과 전쟁하더라도 자신들이 히스기야 왕 때처럼 승리를 거둔다고 여기고 있습니다(28:1-4, 5:12). 그것이 불행의 씨앗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기복신앙에 매달린 그들의 영적인 타락이 그와 같은 비극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7:18-19).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은 정세판단을 하고서 기어코 멸망으로 기어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2)    ,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22:7b); 예루살렘성에는 레바논의 아름다운 백향목으로 지은 웅장한 집들이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전과 솔로몬의 궁궐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아니하는 것이기에 그곳이 적에게 점령되고 맙니다. 이방 강대국은 자칭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선택한 유일한 선민이라고 자랑하면서 주변국에 대하여 너무나 오만했던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이 자랑하고 있는 그 아름다운 성전과 궁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불에 태워버리고 마는 것입니다(22:7b, 왕하25:9). 

(8)  셋째, 8-9절입니다;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됨인고? 하겠고,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22:8-9);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됨인고? 하겠고”(22:8);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제국은 참으로 화려하고 웅장했습니다. 그 대단한 문화와 건축물이 수도인 예루살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제국이 남북으로 쪼개어진 후 다윗왕조의 유다 왕들이 다윗의 여호와신앙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왕과 신하들이 타락하자 유대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현세적인 이익을 탐하면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맙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를 버려 버리십니다. 역사적으로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가 다시 침략하여 3년동안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는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7). 그들은 전사한 동료들의 복수를 철저하게 시행합니다. 그에 따라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파괴되고 불에 타서 전소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비극이 임하게 된다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2:8). 훗날 예루살렘성의 주민들이 모두 포로로 북송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인적이 사라진 폐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훗날 그 지역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그 성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거처할 곳이 한 군데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곳을 외곽으로 지나가면서 폐허에 묻힌 고적을 멀리 보며 역사의 무상함을 노래할 것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서로들 이야기하게 됩니다. 참고로, 그러한 사실은 그 옛날 모세가 신명기 제29장에서 벌써 예언한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29:22-29).

2)    ,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22:9);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의 원인은 정확하게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축복의 언약을 무효화하는 저주의 언약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사실 축복의 언약의 내용은 3가지입니다; ①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그들을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19:4-5). ②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준다는 것입니다(3:8, 17, 8:1). ③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땅에서 대대로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6:1-3, 8:10). 그런데 만약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이방신상과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면 선민에게 준 두가지 특권이 사라지게 됩니다; ”9.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22:9).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저주의 언약이 이제는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①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②기업으로 준 땅에서 쫓겨나서 망국의 백성으로 고난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9)  본문 제10-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아하스 왕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가요?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0)    첫째, 10절입니다;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22:1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22:10a); 신명기에서 모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동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의 생사를 주장하시고 또한 축복과 저주를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 생명과 축복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는 선택의 기회가 사라지고 말씀의 실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살아 있는 동안에 올바른 선택과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22:10a)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란으로 죽게 되는 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미래가 더욱 문제이며 걱정거리라는 것입니다. 일단 죽고 나면 육신적인 고통이 사라지지만 죽지 못하고 적에게 포로가 되어 이방 땅에서 평생 노예로 살아가게 되면 그것이 더욱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윗의 말과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삼하12:22-23),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7-28).  

2)    ,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22:10b); 바벨론 포로기간이 얼마나 길까요?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장차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망국의 백성으로 포로 생활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25:11-12). 그러므로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그때 살아 남은 자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면 살아 생전에는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의 땅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22:10). 결국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그들을 천대하고 적대시하는 이방 땅에서 평생 고생만 하다가 고통 가운데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고는 하나 죽은 것보다 훨씬 못한 운명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미리 알고서 여호와 앞에 빨리 두 손을 들고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부디 살려 달라고 다윗왕조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부르짖을 때에 사망과 저주가 아니라 생명과 여호와의 축복이 구원으로 임하게 될 것입니다(18:7-8, 30:19-20). 그것은 일찍이 요나 선지자에 의하여 니느웨 성읍에서 발생한 선례가 있기에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에 있어서도 분명 그러한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3:1-10). 그러나 다윗왕조의 왕들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7:13, 24-26). 그들은 거짓선지자들의 달콤한 거짓 예언에 속아서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와 전쟁하더라도 자신들이 승리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28:1-4, 38:1-6). 요컨대, 여호와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지식과 안목이 없다는 것이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비극입니다.

(11)    둘째, 11-12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22:11-12); 유대왕국 말기 다윗왕조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는 왕이 성군 요시야의 뒤를 잇고 있는 여호아하스왕인데(왕하23:29-30) 그의 본명이 살룸입니다(대상3:15). 주전 609년 그는 애굽의 침략군에 의하여 폐위되고 애굽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왕하23:34);

1)   한때 다윗왕조의 왕이었던 살룸의 고난과 고통이 훗날 망국의 한을 품고 바벨론에서 살아가게 되는 선민 유대인들의 슬픈 운명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22:11b-12).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아하스 왕이 전쟁에 패하여 폐위되고 본명인 살룸으로 불리며 전쟁포로가 되어 애굽으로 끌려가서 고생만 하다가 그곳에서 죽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러한 역사가 이제 전체적으로 유대왕국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미리 알고서 빨리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 오기를 바란다”(22:11-12 의역).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의 침략으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망하고 맙니다(왕하25:1-7). 전란에서 살아 남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됩니다(왕하25:7, 11). 그들이 살아서 고토로 돌아올 수가 있을까요?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22:12). 그 이유는 그들이 그곳에서 바벨론 왕을 70년 동안 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25:11). 평균연령이 40세이므로 70년의 세월이란 모두가 바벨론에서 포로로 고생하다가 그곳에서 뼈를 묻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을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22:11b-12)는 구절이 의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언급하시는 여호아하스 왕의 일대기에 대하여(22:11a) 역사적으로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성군 요시야가 전정터에 나갔다가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갑자기 죽고 맙니다(왕하23:29). 중신들이 가장 똑똑한 왕자 살룸을 옹립하여 왕으로 삼습니다(대상3:15). 그가 요시야의 뒤를 잇고 있는 23세의 여호아하스 입니다(왕하23:30). 그는 신하들과 힘을 합하여 곧 남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애굽의 바로 느고의 원정군을 막기 위하여 군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왕하23:31). 그 소식이 애굽과 협력하고 있는 유대왕국 내부의 세력들에 의하여 갈그미스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애굽의 바로 느고의 귀에 신속하게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바로는 앗수르의 요새지 곧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군사요충지 갈그미스를 손에 넣게 되자 쉽게 북부 시리아 지역을 차지합니다. 그는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유대왕국으로 쳐들어 옵니다. 용맹한 장수들을 선봉장으로 먼저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여호아하스 왕을 압박하도록 하고 그는 유대왕국의 동북쪽인 하맛의 립나에서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성군 요시야가 갑자기 죽고 난 다음 유대왕국의 국내사정이 복잡합니다; 다수의 중신들은 똑똑한 왕자 살룸을 여호아하스 왕으로 옹립하고 ()애굽 정책을 추진하고자 합니다(왕하23:29-30). 그러나 보수적인 ()애굽 인사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유대왕국은 애굽의 바로와 동맹관계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 메소포타미아 강대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입니다. 친 애굽세력은 여호아하스의 이복형인 엘리아김을 신왕으로 옹립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남하하는 바로의 군대에게 성문을 열어주고 여호아하스 왕을 사로잡아 립나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로 느고에게 끌고 가도록 협조하고 맙니다(왕하23:31-33). 그 보답으로 바로 느고는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고 친 애굽정권의 유다 왕으로 삼습니다(왕하23:34a). 여호야김 왕과 친 애굽 신하들은 애굽의 바로인 느고에게 많은 은금으로 감사를 표시합니다(왕하23:33, 35). 그에 따라 느고는 여호아하스 왕을 포로로 삼아 애굽으로 끌고 갑니다. 여호아하스는 살룸이란 본명으로 애굽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결국 유배지에서 죽고 만 것입니다(왕하23:34b).

셋째로,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59:12-13,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세상 욕심을 쫓아 포악과 패역과 거짓말을 행한 사례임)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13년동안 왕궁을 화려하게 지은 솔로몬의 허물을 지적하고 있는 대목임, 왕상7:1-3)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삼하8:15, 11:1-12) 그 때에(부왕 다윗의 유훈을 명심하여 검소한 삶을 본받았을 때에) (솔로몬 왕)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그때에는 여호와의 지혜를 얻어 억울한 자를 돌보는 판결을 한 솔로몬 왕이었음, 왕상3:28) 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왕상11:1-13, 통치 후반기에 들어오자 솔로몬 왕이 여호와신앙을 떠나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고 호화사치를 즐기며 바닥난 국가 재정을 메꾸기 위하여 20년 동안 기타 10지파에게 돌아가면서 엄청난 노역과 세금을 매긴 것임)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왕하23:34-37, 애굽의 바로 느고와 내통하여 이복동생 여호아하스를 몰아내고 친 애굽 괴뢰정권의 왕이 된 엘리아김임)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여호야김 왕은 11년동안 유대왕국을 악하게 통치하다가 외환을 초래하고 공교롭게도 신바벨론의 침공 직전에 사망했음)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그러므로 죽은 다음에 무덤이 파헤쳐지고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다는 예언임) 20. (선민 유대인)(유대왕국의 북쪽 이웃) 레바논(산맥) (피신하여) 올라 외치며 (유대왕국의 동북쪽 우림 지역) 바산(피신하여) 네 소리를 높이며 (동남쪽 사해 인근) 아바림(산맥)(피신하여)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친지들)가 다 멸망하였음이라!(한때 중동의 지역패권국을 형성했던 다윗왕조의 멸망을 이웃나라에 피신한 자들이 조문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시드기야 왕 말기 유대왕국의 멸망에 대한 예언임) 21. (시드기야 왕)가 평안할 때에 (여호와가 선지자 예레미야와 히브리경전을 통하여) 네게 말하였으나(21:8, 30:19-20)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습관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한 악한 왕이 시드기야임, 왕하24:17-20) 22. 네 목자(성전의 지도자)들은 (전쟁)바람에 삼켜질(왕하25:18-21, 잡혀서 죽임을 당할)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처첩과 공주)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왕하25:7, 눈앞에서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혀서 포로로 끌려가는 고통)당하리라! 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시드기야 시대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 당하면 이웃 해상왕국 페니키아 역시   멸망의 위기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임)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신바벨론의 갈대아군대가 쳐들어오기 직전에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여고냐가 여호야긴 왕이 되어 즉위하게 됨, 왕하24:6)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젊은 여호야긴 왕이 3개월간 사력을 다하여 적의 침입을 막았으나 중과부적으로 무조건 항복하게 됨, 왕하24:10-12) 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왕하24:15)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37년후 느부갓네살 황제가 죽자 새 황제의 배려로 바벨론 감옥에서  여고냐가 풀려나 다윗가문을 회복하고 그곳에서 죽게 된 것임, 왕하25:27-30. 훗날 그의 손자 스룹바벨이  유민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제2성전을 짓게 됨, 2:1-2, 6:13-18) 27. 그들(바벨론으로 끌려간 여고냐와 모친과 처자식)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불귀의 객이 되고 말 것임) 28. (안타까운 조문이 이어지고 있음)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29. (이하는 시드기야 왕의 시대에 다윗왕조가 멸망하는 것을 애도하고 있는 글임)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3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다윗왕조가 다시는 왕국을 건설하지 못한다는 여호와의 예언임. 그 대신에 다윗의 혈통이 아닌 여호와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 있는 것임, 10:20, 11:20, 1:6-14)“(22:13-30);

(1)  본문 제13-15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야김 왕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에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3절입니다;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22:13);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왕국 말기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1:3). 특히 본문은 제18절의 말씀을 참조하면, 여호야김 왕에 대한 경고입니다. 여호야김 왕은 애굽의 바로 느고가 책봉한 유다의 왕이므로 친 애굽 노선의 괴뢰정부의 왕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왕하23:34).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후계자들이 다윗왕조를 계승하고 선민의 나라를 이끌어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본문에서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그 요체는 불의와 부정과 착취로 왕권을 행사하지 말고 여호와의 공의와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고 백성들이 정당한 몫을 얻을 수 있도록 국가를 운영하라는 것입니다(22:13). 그런데 여호와의 공의와 사회적인 정의 그리고 과세 및 부역의 공평성들의 문제에 있어서 그 우선순위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1)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를 경영함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그 나라를 여호와 보시기에 불의하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움직여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22:13a). 여호와의 공의는 사람들이 창조주의 청기기로서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고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는 정신입니다(6:9).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은 그 옛날 그들의 언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주변의 이방인들을 적이나 원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5:43-48) 그들에게 여호와가 창조주이심을 알려주고 여호와를 올바로 섬길 수 있는 말씀과 율법을 전해주어야 합니다(12:1-5, 12:39). 그리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앞에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율법에 따른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어야 합니다(19:6). 그러한 여호와의 공의를 실천하라고 하는 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맡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이유이며 목적이라는 것입니다(19:4-6, 5:43-48, 12:39).

2)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이 선민의 나라를 세우는 1층이라면 그 2층인 다락방을 세우는 것은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22:13b). 그것은 선민사회에서 생계가 막막한 과부와 고아를 돕고 살 길을 모색하여 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율법으로 다음과 같이 벌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22:22-24).

3)    권력을 행사하여 돈을 주지 아니하고 제마음대로 약자를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하면 그러한 나라는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솔로몬 대왕의 후반기의 통치가 그러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성전과 자신의 궁전을 크게 짓는데 20년 동안 국고를 낭비하고 맙니다. 그 결과 국가재정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유다 지파와 빈약한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다른 10지파를 차례로 동원하여 한달 씩 국가재정을 책임지고 또한 전국에 건설하고 있는 공사를 진행하라고 강요합니다(왕상9:16-19). 그렇게 2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무거운 세금과 부역 때문에 이스라엘 10지파가 다윗왕조를 싫어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그 이듬해에 북쪽의 10지파가 독립하고 갈라져 나간 것입니다(왕상12:12-20). 그런데 유대왕국 말기의 왕들이 솔로몬의 그 악정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22:13c)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3)  둘째, 14절입니다;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22:14);

1)   솔로몬 대왕은 여호와를 위하여 7년 동안 예루살렘성전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건축합니다(왕상6:38). 두로 왕 히람에게 부탁하여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오고 목공과 석공을 불러서 예루살렘성전을 완성한 것입니다(왕상5:8-18).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제국의 황제인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13년 동안 황궁을 건축합니다(왕상7:1).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 지 모릅니다. 무려 1,000명의 처첩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궁궐이기 때문입니다(왕상11:3).

2)   예루살렘성전과 솔로몬의 궁궐 가운데 그 규모가 더 크고 화려한 것은 당연히 그의 황궁입니다. 대왕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궁궐의 붉은 빛이 화려합니다. 그리고 역시 아름드리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솔로몬의 황궁을 지은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성전보다는 왕이 자신의 궁궐을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권위보다 자신의 권위를 더 높이고자 하는 무언의 행동입니다. 그와 같은 잘못을 다윗왕조 말기의 왕들이 반복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그러한 따가운 여호와의 질책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14b). 

(4)  셋째, 15절입니다;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22:15);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튼튼하게 왕궁을 짓는다고 하여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강성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잘 먹고 잘 산다고 하여 형통한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사실을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이 바로 본문입니다(15). 그 말씀은 그 의미에 있어서 솔로몬과 다윗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제국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온 세상에 떨치기 위하여 화려하고도 웅장하게 황궁을 짓고 1,000명의 처첩을 거느리며 나라의 부강함을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크게 드러낸 왕입니다(왕상7:1-12, 10:5). 그에 비하여 사울 왕의 조그마한 이스라엘 왕국을 대제국 이스라엘로 건설한 다윗은 그렇게 행동한 왕이 아닙니다. 그는 백향목으로 화려한 궁궐을 지은 것이 아니라 돌로 튼튼한 시온산성을 건축합니다(삼하5:9).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을 부하들과 함께 검소하게 한 왕입니다(삼상21:3-6, 삼하17:27-29). 그렇게 살아간 다윗이 여호와 보시기에 형통한 왕입니다(22:15, 삼상16:7).

(5)  본문 제16-19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야김 왕이 다윗 대왕과 달리 어떻게 처신을 하였기에 여호와의 버림을 받고 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6)  첫째, 16-17절입니다;16. 가난한 자궁핍한 자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그러나 네 두 눈마음탐욕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22:16-1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6. 가난한 자궁핍한 자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16);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한 다윗왕조의 왕인 다윗과 요시야는 여호와의 보살핌으로 형통한 왕이 되고 성군으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러하지 못한 다윗의 후계자 솔로몬 왕과 요시야의 후계자인 여러 왕들은 여호와의 눈 밖에 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윗왕조의 나라가 둘로 쪼개어지거나 아예 멸망을 당하는데 그들이 크게 기여하고 맙니다. 여기서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22:16a)한다는 것은 본문 앞에 기록되고 있는 말씀,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22:13a)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만약 선민의 나라의 왕이 가난한 백성의 삶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신의 궁궐을 크게 짓고 조세와 공물을 많이 거두어 많은 처첩과 함께 궁중에서 탕진하게 되면 여호와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정들을 계속 동원하여 부역을 시킨다면 백성들이 농사를 제때에 짓지 못하여 그 삶이 궁핍해지고 맙니다. 그것 역시 궁핍한 자를 돌보라고 명령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왕들은 형통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지혜의 대왕으로 불리고 있는 솔로몬의 통치 후반기가 그러합니다. 따라서 그의 후계자 르호보암 왕 때에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맙니다. 또한 다윗왕조 말기의 왕인 여호야김이 그러합니다. 그에 따라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포로가 되어 적국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2)    , 17. 그러나 네 두 눈마음탐욕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22:17); 다윗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는 달밤에 목욕하고 있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서 탐하게 됩니다. 그리고 통간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그 남편 우리야를 흉계로 살해하고 맙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계획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십계명을 어겼으므로 선민의 나라의 왕으로는 이제 실격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다윗 왕에게 보내어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합니다.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이 회개하면서 여호와의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가 계속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여호와 앞에 회개하지 아니하는 왕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압박하고 포악한 통치를 계속합니다. 그러한 왕들이 다스리고 있는 시기가 다윗왕조의 말기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진노로 선민의 나라가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7)  둘째, 18절입니다;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22:1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22:18a);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다윗왕조의 말기의 왕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잘못을 질책하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 여호아하스 왕과 여호야긴 왕은 각각 3개월간 짧은 통치를 하다가 적국으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하23:30-34, 34:8-15). 그들이 즉위한 시기가 전운이 감도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준비만 하다가 적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폐위된 것입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정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여호아하스 왕은 애굽으로,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만 것이기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 비운의 두 왕들에게 대하여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한 것은 주로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1:3);

2)    두 왕의 운명은 비슷합니다; ①그들은 애굽의 황제 바로 느고에 의하여(왕하23:34), 또는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유다의 왕으로 책봉됩니다(왕하24:17). 그렇지만 다윗왕조의 범 같은 신하들이 여건만 성숙되면 자주 독립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가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내정간섭을 계속 받고 있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자존심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은 각각 11년간 유대왕국을 통치하는 동안에 어떻게 하면 외세인 애굽과 신바벨론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있는지를 계속 모색한 것입니다. ②그들 두 왕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성군 요시야가 아니라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입니다(왕하23:25-27). 역사서에서는 여호야김이 악한 왕 므낫세의 정책을 따르고 시드기야는 악한 왕 여호야김의 본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3:37, 24:3, 18-20). 따라서 본문에서 1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22:18a)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렇지만 두 왕의 최후의 모습은 상당히 다릅니다; 여호야김 왕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나중에는 신바벨론 황제의 미움을 단단히 사게 됩니다(왕하24:1-2). 따라서 느부갓네살 황제의 재침이 예견되고 있으며 전운이 짙어 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 공교롭게도 여호야김 왕이 승하하게 됩니다(왕하24:6). 여호야김 대신에 그의 아들인 여고냐가 뒤를 이어 여호야긴 왕이 되는데 그는 참으로 불운한 왕입니다. 부왕 여호야김을 대신하여 갈대아군대의 침입을 막았으나 역부족으로 그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24:15). 여호야긴과는 달리 시드기야 왕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에 끝까지 항전합니다. 시드기야 왕은 천혜의 요새지인 예루살렘성에 틀어 박혀서 3년간 버티다가 끝내 성이 함락되자 도망을 칩니다(왕하25:1-5). 그러나 붙잡혀서 왕자들이 참살 당하는 광경을 직접 보게 되고 자신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6-7).

4)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22:18b); 므낫세의 전철을 밟고 있는 악한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3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왕하24:1-4). 한마디로, 므낫세 시대와 같이 여호야김의 시대가 17. 그러나 네 두 눈마음탐욕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22:17)는 것입니다.

5)    요컨대, 므낫세 왕처럼 여호야김 왕은 여호와의 버림을 받고 그의 왕국이 망하는 광경을 직접 그 눈으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가 짊어져야만 하는 죄짐을 그의 아들이 대신 지고서 적의 인질이 되어 끌려 가게 됩니다. 유대왕국의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우상을 섬기며 포악하게 통치한 여호야김 왕입니다. 그는 애굽과 신바벨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마침내 나라의 운명마저 풍전등화가 되도록 만든 왕입니다. 그는 운이 좋게도 신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3개월 전에 죽고 맙니다(왕하24:6, 8). 다윗왕조 유대왕국에 망조가 들도록 모든 악한 일을 도맡아 하다가 편히 전란 초기에 눈을 감게 되니 그것을 바라보는 신하들과 백성들이 분통이 터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22:18b)는 여호와의 예언이 여호야김 왕의 장례식에 그대로 응하고 마는 것입니다.

(8)  셋째, 19절입니다;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22:19); 두가지로 풀이됩니다; 하나는, 신바벨론 갈대아군대가 침입하여 여호야김 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고 힌놈의 골짜기에 매장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 왕이 폐위당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두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대 유대왕국에서 왕과 귀족들의 시신은 돌관에 넣고 바위 굴속에 안장합니다. 매장하는 경우는 무연고자나 죄인들의 시신 그리고 가축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성을 점령합니다. 여호야긴 왕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북송합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조공을 끊어버린 괘씸한 여호야김 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예루살렘성 분문’(糞門, the Dung Gate)을 통하여 힌놈의 골짜기에 버립니다. 그곳에 마치 가축의 주검처럼 매장되고 마는 것입니다(22:19).

(9)  본문 제20-23절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애가(哀歌, 슬픔의 노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0)    첫째, 20절입니다;20.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22:2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0.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22:20a); 여기서 이스라엘제국을 상징하고 있는 높은 산들이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①북서쪽에는 레바논 산맥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산은 3,086m나 되는 쿠르나 아사다입니다. ②북동쪽에는 골란고원이 있는데 그것은 안티 레바논 산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정상에는 헬몬 산이 있는데 백두산보다 약간 높은 2,816m입니다. ③남쪽 모압 평지 남쪽에는 아바림 산맥이 달리고 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710m의 느보 산 입니다. 그렇게 높은 산들이 그 옛날 이스라엘제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자손들은 훗날 그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다윗왕조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요?;

2)   ,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22:20b); 그 내용은 다윗왕조를 사랑하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조국의 멸망과 함께 온세상에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왕조를 보호하시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그들을 버리신 것일까요? 이제는 그 해답을 얻어야만 할 것입니다.

(11)    둘째, 21절입니다;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22:21);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22:21a);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경영하고 있던 다윗왕조의 왕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선민의 나라를 통치하였기에 발생한 결과입니다. 어째서 다윗왕조의 왕들이 그러한 잘못을 범한 것일까요? 한마디로, 그들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였지만, 좋은 땅을 차지하고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자신들이 잘난 줄 알고서 그만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평화의 시대가 길어지고 계속하여 번영을 누리게 되면 그만 왕과 백성들이 교만하게 되어 여호와신앙을 떠나기 십상이라고 하는 말씀이 벌써 모세의 신명기에 기록되고 있습니다(8:12-20). 그러한 사실은 다윗왕조의 개창자인 다윗의 경우에도 뚜렷합니다. 그가 주변의 이방 족속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마지막 암몬의 수도를 공략할 즈음에는 그만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2)    매년 초 원정에 스스로 나서는데 그해는 장조카 요압에게 전권을 맡겨버리고 그는 왕궁에서 편히 쉬고 있습니다(삼하11:1). 그때 달빛 아래에서 목욕하고 있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탐하게 되고 그는 실족하게 됩니다(삼하11:2-17). 다행히 그는 나단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책망을 듣고서 크게 회개하며 남은 인생을 칼날 위에서 살아갑니다(삼하12:6-15). 그 때문에 더이상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계 왕들은 성군 요시야를 제외하면 모두 실족하고 있습니다(왕하23:25-27). 특히 다윗왕조 말기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에 있어서는 여호야김 왕과 시드기야 왕의 악행이 역사상 가장 악한 왕 므낫세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왕하24:1-4, 19-20).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우리야 그리고 예레미야를 차례로 다윗왕조의 왕들에게 파견합니다.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과 왕국 멸망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강도 높게 외치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 유다의 왕들과 신하들 심지어 영적인 지도자들까지 모두 외면하고 맙니다(7:13, 23-26). 그들은 선지자를 박해하고 죽이기도 합니다(26:20-24, 38:1-6). 따라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기어코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3)    ,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22:21b); 인간의 마음속에 창조주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한세상 제멋대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떵떵거리고 살아보고자 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한 본성을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노아의 홍수심판을 전후하여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십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5-6),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8:21).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사람들의 육신적인 탐욕과 정욕을 충동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처벌하고자 하십니다(3: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진리의 성령님을 내주 역사하게 하여 죄와 사망의 법으로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의 세력을 쫓아내는 것입니다(8:1-2).

(12)    셋째, 22절입니다;22. 네 목자들이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22:22);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2. 네 목자들이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22:22a);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영적인 지도자들이 여기서는 목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바람에 휩쓸려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22:22aa). 어째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다윗왕조 말기에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예언을 태연하게 주장했기 때문입니다(5:31, 6:13). 대표적인 인물이 성전의 총감독인 제사장 바스훌과 거짓선지자 하나냐입니다(20:6, 28:1-4). 그들은 유대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과 전쟁하더라도 그 옛날 히스기야 왕 때처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그렇게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주전파와 호흡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전쟁하다가 나라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38:5, 24). 그 결과 다윗왕조를 사랑하는 선민 유대인들이 망국의 백성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39:9). 그 점을 여기서는 22.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22:22ab)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 그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22:22b); 다윗왕조 말기의 왕들이 너나없이 자신들의 악행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된다고 여기서 다시 예언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벌써 예레미야에 의하여 기록되고 있는 구체적인 다음 예언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어지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1-3).

(13)    넷째, 23절입니다;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22:2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22:23a); 이스라엘제국의 시대에는 레바논의 페니키아가 그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다윗왕조에 조공을 바치면서 지중해무역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역의 중심지 두로의 왕인 히람은 솔로몬의 요청에 따라 레바논 산지의 백향목은 물론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기술자 곧 목공과 석공을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왕상5:5:5-12, 18). 그렇게 화려하고도 웅장한 성전과 궁전을 짓는 기술을 가진 자들이 페니키아인들입니다. 그러한 기록은 오늘날에도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옛날 페니키야의 후예들이 서양에서 대성당을 짓는 노하우를 가지고 큰 돈을 벌었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그들이 Masonic Temple’을 만든 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중해무역을 장악하고 있는 페니키아는 신바벨론과 페르시아 치하에서도 중동의 패권국에게 계속 조공을 바치며 살아 남습니다.

2)    하지만 훗날 지중해의 반도에서 발흥한 헬라와 로마가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동을 지배하게 되자 페니키아는 쓸모가 없어져서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23.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22:23a)라는 구절은 아직 레바논이 지중해 무역을 관장하고 있던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예루살렘성전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불타버립니다(왕하25:9). 전란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 그러나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공격을 받고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몇 년 후 바벨론의 잔당을 소탕하고 메대의 늙은 왕 다리오를(5:31) 끌어내린 바사의 고레스 왕은 천하통일을 하고서 페르시아시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원하는 자에게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줍니다(1:1-4). 그러나 귀향한 자는 소수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제국에 흩어져서 살게 되면서 일부는 레바논으로 이주합니다(22:23aa). 그곳에서 백향목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아름다웠던 예루살렘성전을 추억하고 있는 것입니다(22:23ab).

3)    ,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22:23b); 레바논에 살고 있는 유대인 자손들은 그곳의 백향목으로 지은 그 옛날 화려했던 예루살렘성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제국의 시대에 역시 백향목으로 제조된 두로의 배를 타고서 지중해 무역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전 330년경 페르시아제국이 무너지고 헬라 시대가 시작되자 두로의 영광도 쇠퇴하고 맙니다. 모든 무역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00년의 세월이 지나자 로마제국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 긴 세월을 중동과 유럽에 흩어져서 회당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헬라 유대인들에게는 하나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왕조의 후계자로 메시아가 오시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헬라파 유대인들은 시온의 영광을 온세상에 알리는 첨병들이 될 것입니다.

4)    그러나 그들 교포 유대인들과 본토 유대인들의 생각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처하고 있는 유대인 자손들이 아직도 선민중심의 구원과 시온의 영광을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데 비해서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메시아로 보내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 만민구원사상이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뀔 때까지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다;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22:23b). 여기서 해산하는 고통은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선민구원사상과 메시아사상이 만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며 유대교인이 기독교인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랍비 사울이 이방인 사도 바울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훗날 그와 같은 산고(産苦)를 치르고 나서 유대인들의 구원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예언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14)    본문 제24-3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나면 그의 자손 가운데 다시는 다윗의 왕위에 앉는 자가 없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    첫째, 24-25절입니다;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22:24-2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22:24a); 예레미야는 다윗왕조 말기 유대왕국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왕국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습니다(1:1-3). 물론 때로는 자신의 말을 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이 아니고 정확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임을 밝힐 때에는 먼저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24aa)고 전제하면서 위와 같이 이제부터 귀담아 들으라고 청중들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장차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방향과 그 단계를 미리 선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그 말씀의 선포는 이제 변경이 있을 수가 없는 확고한 여호와의 정책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예레미야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22:24ab)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하시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말씀하시는 내용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영원에 이르는 역사섭리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2)    ,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22:24b); 황제는 자신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릴 왕이나 총리에게 인장반지를 내어 줍니다. 그것은 다스리는 권한의 위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요셉을 신임총리로 임명하면서 자신의 인장반지를 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1:42). 그리고 성문서 에스더에서는 페르시아의 황제가 총리인 하만이나 모르드개에게 역시 왕의 인장반지를 빼어 주고 있습니다(3:10, 8:2). 그런데 본문의 표현은 좀 다릅니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야긴 왕에게 다윗왕조의 인장반지를 준 것이 아니라 그를 여호와의 오른 손의 인장반지로 삼고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22:24b).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째서 여호야긴 왕이 여호와의 인장반지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호야긴 왕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가는 그 행위가 바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통치권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에게 넘어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형식적인 인감도장의 인계인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국을 점령하고 그 왕을 포로로 끌고가는 것이면 벌써 그 나라의 주권과 왕권은 적국의 황제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3)    ,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22:24c-25); 여호와의 오른손에 다윗왕조의 왕들이 마치 인장반지처럼 끼워져 있습니다(22:24b). 그런데 유대왕국 말기에 여호야긴 왕이 신바벨론제국의 침입을 막지 못하여 적국의 황제에게 인질로 끌려가고 있습니다(왕하24:15). 그렇다면, 다윗왕조는 여호야긴 왕을 끝으로 하여 주권과 왕권이 신바벨론 황제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 황제는 직접 유대왕국을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선민들이라고 알려진 유대인들을 직접 다스리기가 싫은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야긴 왕의 숙부인 맛다니아를 시드기야라고 부르면서 친 바벨론 정권의 유다 왕으로 책봉합니다(왕하24:17). 그러므로 시드기야 왕의 치하에서의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사실상 신바벨론제국의 속국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내부적으로, 그 주권과 왕권은 벌써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이전되고 그의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 왕 시드기야가 유대왕국을 통치하고 있을 뿐입니다.

4)    그런데 본문의 표현은(24c-25)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다음과 같은 의미를 은근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유대왕국의 왕인 여호야긴의 목숨이 신바벨론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②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다윗왕조 유대왕국으로 쳐들어 왔는데 그 가운데 주력부대인 갈대아인들의 군대가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정벌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예병인 갈대아군대 뿐만 아니라 여러 속국의 군대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왕하24:2b). 참고로, 갈대아인들은 본래 아람민족의 한 갈래입니다. 그들이 일찍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남하하여 시날 평지를 점령하고 살았습니다(10:10). 그때부터 그곳을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부르면서 바벨론 문명을 일으킨 것입니다(11:28, 31). 갈대아 왕조는 한때 앗수르제국의 황제를 섬겼지만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 독립을 되찾았으며 마침내 앗수르제국을 멸망시키고 느부갓네살 황제가 신바벨론제국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의 정예부대인  갈대아군대는 그 위용이 실로 두려우며 무시무시한 위력을 온 중동 땅에 떨치고 있는 것입니다(6:22-23, 1:6-11).

(16)    둘째, 26-27절입니다;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 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27.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22:26-27);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 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22:26);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서장자 이스마엘과 그 모친 하갈의 이야기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21:10-14). 이스마엘이나 이삭이나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21:12-13). 그런데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이며 안방마님 사라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서자로 태어났습니다(16:15). 이스마엘은 이방인 여인의 소생이므로 어려서부터 여호와신앙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의 여인 안방마님 사라의 소생인 이삭은 어릴 때부터 여호와신앙으로 훈육이 됩니다. 13살이나 나이가 많은 이스마엘이 동생 이삭을 힘으로 괴롭히는 것을 보고 안방마님 사라가 남편에게 그들 모자를 내어 쫓으라고 요구합니다(21:9-10). 고민이 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 결과 그들 모자를 광야로 내어 보내라는 말씀을 얻게 됩니다(21:11-12). 브엘세바 남쪽 바란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고 장차 이스마엘을 광야를 호령하는 족장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21:13-21). 그것은 세상적인 성공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 대한 여호와의 보살핌은 그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칼과 활로써 족장이 되고 세상을 호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온세상에 전하고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이방인들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족장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삶의 모습과 이스마엘의 삶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들의 언약을 계승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삭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길을 다윗왕조의 왕들이 인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삶의 모습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왕조의 왕들이 우상을 섬기며 칼과 활로써 세상을 평정하고자 원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다윗왕조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이방 땅에서 살아가게 만들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에 이스마엘과 하갈을 이방인의 땅으로 쫓아낸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전에 다시 여호와신앙이 살아 있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그리고 구원의 언약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을까요? 당장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쫓겨난 그들 선민들이 이방 땅에서 모두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22:26). 그러나 먼 훗날 그들의 자손들에게는 다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소위 새 언약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31:31-34).

3)    ,27.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22:27); 이스마엘이나 이삭은 모두 아브라함의 집에서 태어난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신뢰하고 의지하여 한평생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생활이 있을 때에 언약의 계승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와의 언약은 이 세상에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고 그곳에 들어가게 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열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부부가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되어서 기다리고 있는 땅은 이 세상의 가나안이 아닙니다(49:29-33). 그곳은 영생하시는 여호와께서 계시는 그 영생의 처소인 천국입니다(11:16, 14:1-3).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믿음생활을 잘못 인도한 다윗왕조의 왕들은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고 있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방인의 땅에서 죽고 말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2:27).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10:28).

(17)    셋째, 28-30절입니다;28. 이 사람 고니야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3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22:28-30);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8. 이 사람 고니야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22:28); 여호야김 왕의 아들인 여고냐는 신바벨론제국의 군대가 내침하기 전에 부왕이 그만 승하하였기에 신하들에 의하여 즉위한 다윗왕조의 왕입니다(왕하24:6). 당시 18세인 여고냐는 여호야긴 왕으로 불리며 3개월간 침입한 신바벨론의 군대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왕하24:8). 그러나 역부족입니다. 예루살렘이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점령되고 그는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하24:10-15). 여고냐를 그러한 비참한 운명으로 몰아 넣은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였기에 그렇게 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정도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릇이기 때문에 그러한 운명으로 자리매김한 것일까요?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22:28a). 그렇다면 다윗왕조 유대왕국 말기의 선민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22:28b).

2)    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우상을 많이 섬기고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이 더 강해서 그렇게 망국의 백성이 되고 만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마찬가지이며 모두 영적으로 타락하고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3:9-10). 그러므로 모두가 진노의 자식이며 멸망의 운명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고난을 통하여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9:22-24).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가능하도록 언제 어떻게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그들에게 보내어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1:14, 29, 14:16-17). 그와 같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방향으로 도도하게 여호와의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멀리 바라보면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이 계속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3)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22:29-30a);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구절입니다;

하나는, 땅 땅 땅 세번 땅을 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이제 확정적인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마치 회의석상에서 의장이 의사봉을 세번 내리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으로 이 세상에서 선민이 사라졌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선민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그들이 이방인 땅으로 쫓겨났으며 그들의 기업이 황폐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이 세상에서는 선민의 땅이 없습니다. 모두가 이방인이 되어 이방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가지의 땅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습니다; ①사라지는 선민의 땅이며, ②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의 땅이고, ③영생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보내어 만민을 구원하여 들이는 그 새로운 땅입니다. 그 새로운 땅에 대해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65:17-18).

4)    ,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22:30b); 다윗왕조의 개창자인 다윗은 두가지 점에서 여호와의 마음에 크게 들고 있습니다(삼상16:7, 13:22); 하나는, 사울 왕에게 쫓기어 10년이상 도망자로 살아가면서도 그의 앞에 가져다 놓은 사울 왕의 목숨을 취하지 아니한 자가 다윗입니다(삼상24:4-12). 하도 신기하여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믿음을 한번 더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결과가 같습니다(삼상26:7-12).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그 주인께서 직접 조치하신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을 다윗이 보인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참된 종의 자세이며 하나님 경외사상입니다. 또 하나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고서도 왕자무치(王者無恥, 왕은 부끄러운 일을 맘대로 행해도 된다는 것) 사상에 빠져 있던 다윗 왕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야단치시는 여호와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고 있습니다(삼하12:6-15).

5)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생명을 똑같이 여기시고 하나같이 돌보고 계십니다(3:4, 12:30-31). 왕이라고 하여 그 생명이 귀하며 일반 백성이라고 하여 그 목숨이 하찮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계명과 율법은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어떠한 처벌이라고 달게 받겠다고 결심합니다(삼하12:13-14). 그의 깨달음과 결심이 다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남은 평생을 2번의 왕자의 난과 1번의 지파의 반란을 맞이하여 칼날 위에서 살아가게 되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호와의 보응이며 처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온전히 회개의 인생을 살아간 다윗에게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제국을 주시고 영원한 다윗왕조를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다윗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다윗의 왕좌를 주겠다는 약속입니다”(37:35). 그러므로 다윗과 같은 회개와 온전한 믿음의 인생을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다윗의 왕조가 망하고 선민의 나라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39:4-7). 그런데 선민이 사라진 땅에서는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더이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선민을 다스리는 다윗왕조도 이제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22:30b)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실 내적으로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다윗왕조가 끝나고 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다윗의 가문에서 다시는 선민의 왕이 탄생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 당하는 이유가 무엇보다도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에 젖어서 살아간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 의하여 죽는 백성의 수보다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큰 전염병으로 죽게 되는 백성의 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갈대아군대와의 전투에 있어서 선민 유대인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기를 뒤로 감추고 도망하기에 바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과 기타 요새지에 틀어 박혀서 수성작전에만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열패의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버리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국제관계에 있어서 나라와 백성들이 열패의식에 젖어 있다고 한다면 자신들이 창조주의 뜻을 따라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에 젖어서 서로들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교회의 종교생활과 자신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번 점검할 때입니다. 아무쪼록 깊은 성찰과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