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의미(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1. 08:25

제목;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난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의미”(3:13-22)

설교일; 주후 202332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321일 화요일 작성)

 

창세기에 상세하게 기록되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선지자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비교할 때 출애굽기에 등장하고 있는 모세의 사명은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을 위시하여 이삭과 야곱은 족장시대에 이방민족의 땅에서 자신들이 파수하고 있는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선지자로서의 삶을 통하여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보여주면 되지만 모세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는 자신의 동족 히브리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가 어떠하신 분이신지 그리고 그 분이 어째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해내고자 하시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또한 그 신위적인 방법을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미디안 땅 서쪽 변경에 자리잡고 있는 호렙산 중턱으로 모세를 불러 올리신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 자리에서 우선 자신의 정체성부터 정확하게 모세에게 설명하여 주십니다(3:13-15). 그 다음에는 모세를 불러서 민족해방의 사명자로 세우신 이유와 목적을 확실하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3:16-22);

자세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피조물은 마디로, 타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태생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반대개념은 스스로 존재하는 입니다. 그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창조주입니다.

모세가 자신을 애굽으로 들여보내고 있는 조상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성격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스라엘의 자손들)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3:13).

모세의 질문은 애굽에서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애굽의 황궁에서 40년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애굽제국을 움직이고 있는 범신론(汎神論)적인 사고와 제사법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애굽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주신은 멤피스의 태양신인 더불어 테베의 공기와 바람의 신인 아몬입니다. 그리고 현인신인 바로(Parao) 주신인 태양과 바람의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바로의 눈은 특별히 태양과 달과 매의 정기를 받고 있는 신의 눈이라고 백성들이 믿고 있습니다.

밖에도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는 나일 강의 소유주이며 악어라고 선지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29:3, 32:2). 그리고 나일 삼각주 농경지대에서는 농사일을 크게 도와주고 있는 소의 형상으로 신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내고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제 애굽 고센 땅에서 430년째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이 어떠한 신인지를 설명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미 400 이상을 애굽제국에서 살아왔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념과 의식은 애굽화가 오래됩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사고방식은 애굽식입니다.

그러한 관념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 이제는 모세에게 조상신에 대하여 신격과 권능이 어떻게 되는지를 묻고자 것입니다. 과연 어떠한 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대답을 들어야 모세가 바로 앞에서나 동족들 앞에서 하나님의 정체를 설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족장시대에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고수하며 살았던 아브라함 집안에서는 크게 필요하지 아니했던 그러한 질문이 시대와 장소가 달라지자 이제는 모세의 입을 통해서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질문에 대하여 조상들의 하나님은 마디로, 자신의 정체는 세상과 우주의 창조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3:14a). 자신 이외에는 모든 신들이 피조된 것들이라고 천명하고 계시는 내용입니다(44:6-1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자신만이 유일한 창조주이므로 점을 애굽에 가서 동족들과 바로 앞에서 시원하게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3:14b).

만약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아니하게 되면 창조신인 하나님과 피조신인 애굽의 신들 사이에 한판 승부가 있게 것이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승리를 할까요?

당연히 스스로 존재할 있는 하나님께서 승자가 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된 우상들은 부수어질 있는 대상에 불과하지만 창조주는 피조물이 어찌할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스스로 있는 조상들의 하나님과의 차이가 출애굽기 3 14절과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I am who I am)이며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세에게 밝히고 있습니다(3:14). 마디로, 애굽에 있는 여러 신들은 모두가 우상이며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라는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역시 피조물에 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육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축복과 진노가 모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인식하게 되는 자리입니다(30: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 앞에 자신의 진면목을 공개하시게 되면 자리에 당당하게 서서 버틸 있는 존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앞에서 일순간에 쓰러지고 것입니다(18:1-2, 27, 5:8, 9:4).

(2)   훗날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성육신을 하게 됩니다(1:14). 보통 사람과 똑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부탁 받은 만민과 만물에 대한 구원사업을 하시고 계십니다(3:16).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을 잡으러 로마의 병정과 전임 대제사장의 하인들 앞에서 내가 그니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면서 동시에 신적인 권위를 공개하신 적이 있습니다(18:6a);

독생자의 영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체포요원들은 땅에 쓰러지게 됩니다(18:6b). 하늘에 있는 12군단의 천사라도 순식간에 동원할 있는 능력자 창조주의 권능이 진면목으로 드러내고 있는 순간이므로 감히 자리에 있을 있는 자는 없는 것입니다(26:52-54).

(3)   따라서 스스로 있는 라는 개념으로 풀이가 되고 있는 창조주의 존재는 마디로, 영생하는 하나님으로서 두려움의 대상이며 한없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21:33, 22:12). 시공간에 갇혀서 유한한 목숨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의 입장에서는 마치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처럼 그저 창조주로부터 진노를 사지 아니하고 화를 입지 아니하면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20:14-18, 21:22-23, 26:28-29). 그와 같은 엄청난 영적인 능력을 가지시고 세상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스스로 있는 여호와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4)   반면에 조상들의 하나님 다른 모습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승이 되고 있습니다. 이방 땅과 이방인들에 대한 심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나그네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갔던 믿음의 조상들에게는 언제나 구원을 베푸시던 하나님이 바로 조상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역사를 앞두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떠한 하나님으로 기억이 되고 싶어하시는 것일까요? 해답이 다음과 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15.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3:15);

(5)   하나님께서는 두려우신 창조주이시며 심판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기억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진노의 자식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개함으로 돌아오기를 인내로써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인식이 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33:19, 9:22-26). 그렇게 친밀하고 개인적인 이해와 동행이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이제 애굽으로 들어가고자 하시는 것입니다(3:12).

셋째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돌보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출애굽을 결심하시고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3:16-22);

(1)  애굽으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장로들의 모임 주선하라고 말씀하십니다(3:16a). 그리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첫째, 고센 땅에서의 민족적인 고난을 하나님께서 감찰하시었다(3:16c). 둘째, 고난 가운데에서도 민족의 수가 줄지 아니하도록 동안 돌보아 주셨다(3:16b). 셋째, 이제는 때가 되었으므로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도록 하겠다(3:17)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모세가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만나는 것입니다.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합니다;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3:18).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동의하지 아니할 것임을 예언해주고 있습니다(3:19b). 따라서 바로가 허락을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강력한 징계를 행하실 예정이라고 밝히고 계십니다(3:19a). 소위 애굽에 내리는 가지 재앙을 미리 보는 것과 같습니다.

(3)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이적으로 애굽을 치십니다. 결과 견디지 못하게 바로와 애굽의 신하와 백성들이 항복하고 있습니다(3:20). 훗날 모세에게 애원하게 됩니다; “부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애굽을 떠나주십시오”(12:31-33). 고자세였던 그들이 이제는 호소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즉시 떠나는 대신에 광야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과 금붙이를 요구하게 됩니다(12:35-36). 다소 무리한 요구까지 바로와 애굽사람들이 전부 수용하게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3:21),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3:22);

과연 그와 같은 꿈과 같은 미래가 현실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눈앞에 도래할 수가 있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을 상세하게 전해 들으면서도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4:1).

이상과 같은 설명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의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귀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스라엘의 자손들)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3:13-15); 다음과 같이 3대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스라엘의 자손들)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3); 모세는 단지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이 호렙산에서 만나고 있는 신을 자손들인 동족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창세기 12 이하에서 있는 것은 이방 땅에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3대의 인물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선지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섬기고 있는 대상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째서 정도의 인식으로는 미흡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2)      이유가 무엇일까요? 점은 모세가 40세가 때까지 바로의 황궁에서 통치자로서의 수업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다민족국가 애굽에는 참으로 신이 많습니다. 많은 민족과 족속이 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러합니다. 가운데 주신만 하더라도 태양의 바람의 아몬 있습니다. 그리고 통치자 바로도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태양의 아들이며 하늘을 나는 매의 호루스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밖에 수많은 신을 섬기고 있는 범신론 사회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벌써 400 이상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나고 있는 조상들의 신에 대하여 특징을 무엇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요? 구체적으로, 신의 위력은 어느 정도이며 신적인 품계가 무엇일까요? 권능은 어느 수준일까요? 모세는 자신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점을 간접적으로 영리하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아니하고 대답을 정확하게 듣는 방법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인 동족들이 내게 물으면 제가 정확하게 대답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친절하게 당신의 신격과 권능을 정체성과 함께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2)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3:14);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이 자신의 정체를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I am who I am)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우주만물은 전부 피조물입니다. 오로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자입니다. 유일한 창조주임을 그와 같이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1:1).

2)      둘째, 피조세계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선재성(先在性)입니다(1:15).

3)      셋째, 위에 명령자나 상급자가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존재하면서 스스로 결정하는 자입니다. 요컨대, 최고의 (God of gods)이며 천사의 주군(1:7)이라는 의미입니다.  

(3)   15.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3:15);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어디에서 찾아보면 가장 정확하게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주 쉽게 알려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인생 가운데 여호와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게 되면 금방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들 3대에게 정확하게 자신을 계시하셨기에 오늘날에도 그렇게 알고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찾으면(‘나의 칭호’) 조상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자손들에게도 그들의 인생 가운데 만나서 동일하게 역사하여 주시겠다(‘영원한 이름’) 것입니다.

둘째로,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3:16-18); 역시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3:16);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장정만 60만명입니다(12:37). 그러므로 남자의 경우 미성년자와 노인을 전부 합하면 장정의 수만큼 될 것입니다. 남자가 120만명이라고 하면 여자를 합하면 전체는 240만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많은 수를 한 장소에 모을 수도 없겠지만 그들에게 한꺼번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일시에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별로 6명 정도의 장로를 선택하여 약 70인의 장로들이 대표자회의를 구성하고 있습니다(24: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모세가 호렙산에서 만난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16).

(2)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3:17); 세상의 제국인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는 것만으로는 여호와신앙인을 온전히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몸은 애굽을 떠나왔지만 여전히 그들의 경험과 사상은 애굽의 범신론적인 세상문화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거주하면서 여호와신앙을 파수할 수 있는 약속의 땅이 필요합니다. 그 땅의 묘사가 그 옛날 조상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그대로입니다(15:18-21, 3:17). 참고로, 10족속의 이름이 6족속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는 것은 주전 21세기 아브라함의 시대가 이제는 주전 15세기 모세의 시대로 바뀌어 있기 때문입니다.

(3)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3:18); 24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국경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장로들을 데리고 바로를 방문하여 구체적으로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실제로 출애굽의 역사는 애굽을 완전히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지 애굽의 국경 바깥으로 나가서 3일 거리에 있는 광야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만 바로의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와 같이 경미한 요청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19). 어차피 거절할 것이기에 가장 경미한 요청부터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18).

셋째로,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3:19-2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3:19-20); 모세와 아론 그리고 장로들을 보내어 바로에게 출애굽의 허락을 구해보라고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벌써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힘과 지혜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의 권능으로 실행하십니다. 완강하게 출애굽을 거절하고 있는 바로와 그의 신하들을 여호와께서 강력하게 징계하시면 그들이 항복하고서 그 뜻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하나님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두가지입니다; 첫째,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애굽에 임하는 것입니다(19). 둘째, 애굽인과 이스라엘 족속을 구별하여 신위적인 방법으로 애굽인에게만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20);

(2)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3:21-22);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거주한 세월이 430년입니다(12:40-41). 그 가운데 최근 120년 남짓의 세월은 중노동에 시달린 고통의 세월입니다;

 그 고난의 보상을 받게 해주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21).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을 노예로 삼아 부리고 있는 그 주인집 아니면 그 이웃 애굽사람에게 요구하여 금은 패물과 의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타 광야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청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단지 그러한 좋은 옷으로 자녀들을 치장하여 모양 좋게 출애굽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22). 그러나 나중에 더욱 확실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품목이 사실은 여호와를 섬기는 성막을 짓는 재료들이기 때문입니다(25:1-9).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은혜로 얻게 되는 것들 가운데에는 여호와께 바쳐야만 하는 몫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차제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22, 14:20).  

결론적으로, 3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라는 사실을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첫째,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이 아니고 둘째, 피조세계보다 먼저 계신 분이며 셋째, 홀로 역사를 창조하시고 또한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인생과 역사를 섭리하시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조상들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대한 기록을 참조하라는 것입니다. 그 방법 그대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믿음의 조상들에 관한 기록을 깊이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세상에서 노예와 같은 고통을 당한 세월에 대해서는 신위적인 방법으로 여호와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세상적인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간구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믿고서 아무쪼록 끝까지 믿음생활에 정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