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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정신을 민주적 생활철학으로 살아내야(씨알연 박재순 소장의 글)

손진길 2023. 1. 16. 02:44

신학자 시리즈20-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님 - 삼일정신을 민주적 생활철학으로 살아내야

 현래  2021. 6. 18. 14:13

 

21세기는 자치와 협동을 통해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 국경을 넘어서 세계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할 시대다. 민주, 민족독립, 세계평화의 이념과 열망에 사무쳤던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은 오늘 더욱 빛이 나고 간절하게 요청된다.(박재순,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9p.)

봄이 이미 온 듯 아직 오지 않은 듯, 날씨가 따뜻하다가도 살이 에일만큼 쌀쌀 맞기도 하다. 하지만 봄은 곧 온다. 한껏 풀어진 흙에 씨앗을 심기운다. 우리의 몸 그리고 흙은 이렇게나 봄을 느끼는데, 정신의 봄은 왔는지 물어 보게 된다. 봄이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3, 정신의 씨앗을 심어본다. 우리의 정신의 근간이 되었던 삼일운동의 정신을 심기 위해 기자는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책의 저자인 박재순 목사를 만났다. 박재순 목사는 “삼일운동 선언서에는 동학의 하늘을 우러러보고 숭상하는 정신,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의 뿌리인 하늘을 우러르고 그리워하는 염원이 들어 있다.”며, 삼일운동의 의의를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종교적, 철학적인 깊이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삼일운동이 시작되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는 삼일운동이 있지요. 씨알 사상의 역사적 배경은 삼일운동입니다. 삼일운동은 동학혁명으로 시작됐고, 민民의 주체적 자각이 일어난 운동이죠. 동학혁명은 최초로 민중의 주체적 자각을 일으킵니다. 동학혁명이 한국근현대의 시작이었지만, 아무 교육이 없어서 참담하게 실패했지요.

동학 이후에 독립운동을 주도한 운동은 교육운동입니다. 동학혁명이 실패한 이후에 독립협회 만민공동회가 만들어져 교육운동이 시작됩니다. 독립협회만민공동회는 민중을 나라의 주체로 키운 민중계몽교육운동이었어요. 나라가 망하니까 나라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민중을 깨워 일으키는 교육운동으로 일어났는데,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어요. 이 교육 운동의 핵심은 민중을 나라와 역사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종황제가 이를 감당 못하니까 해산시켰어요. 이 운동을 관료들이 처음에 주도했지만 시민들이나 민중들이 발언하기 시작하니 감당할 수 없었던 겁니다.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핵심 인물인 안창호는 기독교에 심취해 있었고, 해산되고 나서 유학을 떠났지만, 조선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다시 돌아와서 신민회를 만들어요. 신민회는 민주공화정을 이념으로 제시한 집단이었고, 신민회의 설립 목적은 애국독립운동이지만 핵심은 역시 교육계몽운동에 있었어요. 안창호와 이승훈을 통해서, 전국적으로 교육해야 산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키면 나라를 되찾고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10여 년을 그렇게 한 끝에 삼일운동이 일어났어요. 삼일 운동을 기획하고 진행한 것은 천도교였지만, 이후에는 기독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요. 구속된 사람의 수를 비교해도 기독교인이 많았어요.

그 당시 사회에는 교육기관이 없었을 뿐 아니라, 사회기관과 시설도 없었잖아요. 사람들이 자주 모일 수 있고 새로운 소식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교회였어요. 교회는 사람들이 자주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성경공부하고, 설교 듣고, 담론을 나누었습니다. 선교사들을 통해 외국의 정보도 들어왔어요. 교회에 활발히 참여하던 이들은 당시 최고 엘리트 지식인들이었지요. 교회는 작은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했지요. 이 교회가 삼일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삼일운동에서 한국 기독교의 도덕성과 지성과 신앙적 순수성이 가장 깊고 높은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삼일운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어요. 몸과 얼이 삼일운동에 총체적으로 투입되면서, 사회를 새롭게 하고 역사를 바꿨잖아요. 삼일운동에서의 안창호와 이승훈 그리고 유관순이 가진 기독교 신앙의 뿌리와 깊이와 높이는 거룩했어요.

삼일운동과 씨알 사상

삼일운동의 핵심은 민이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서 대한민국 만세 불렀다는 데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 일으키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천도교의 손병희가 학교를 사들여서 잡지사 인쇄소를 세웁니다. 천도교가 출판 문화운동을 펼치고, 독립협회에 참석했던 인사들도 끌어들였죠. 천도교와 더불어 기독교가 합세하며 교육운동도 같이 일어납니다. 삼일운동 기독교 쪽의 대표가 이승훈 선생과 안창호 선생이었습니다. 교육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승훈 선생이 오산학교를 만들었어요. 이곳에서 씨알 사상의 주창자인 류영모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만나게 되지요.

씨알 사상은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이 씨알사상으로 바뀐 거예요. 삼일운동은 동학혁명에서부터 시작해서, 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교육운동에서 삼일운동으로 이어지는데요. 한국 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이 삼일운동에서 완전히 표출된 겁니다.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은 한국근현대의 정신과 철학이라 할 수 있어요. 종교적이고 철학적 신학적 깊이를 가지고 씨알 사상으로 일궈낸 것이 류영모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었어요.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은 한국 근현대사 즉, 삼일운동에서 형성되었어요. 씨알 사상의 역사적 뿌리와 중심으로서 삼일운동은 한국 근현대사의 절정이고 헌법 전문의 대한민국의 역사와 전통이라고 말했어요. 한국의 근현대는 종교적인 열정과 깊이가 있었지요.

삼일운동은 헌법의 근간

삼일운동은 씨알 사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뿌리와 배경이 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삼일운동이 갖고 있는 위치가 매우 중요해요. 한국근현대사의 최고봉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정신과 사상의 나침반입니다. 삼일운동은 국민주권을 운동으로 표현한 겁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 나라가 독립된 거다. 우리가 나라다 라고 선언한 거에요.” 일본의 지배가 아니라 독립만세를 부르면 독립이 이뤄진 것입니다. 삼일운동의 참여 주체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인거죠.

우리나라 헌법에는 주권재민의 민주정신과 의식이 표현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어느 헌법보다도 뛰어날 정도로 국민이 권력의 근원이고 주체라고 하는 것, 주권재민 사상을 명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풀이하면서 표현되고 있구요. 삼일운동의 주권재민은 민주정신을 표현한 헌법 정신과 일치하는 거죠. 삼일운동이 일어난 이후에, 4월 초 임시정부가 세워져요. 헌법은 삼일운동-임시정부-대한민국의 연결성을 강조합니다.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것은 민의 구체적 ‘나’가 민족국가 전체의 나임을 선언한 것이고, 사적인 나와 공적인 내가 일치하는 것을 선언한 겁니다. 사적인 주체가 공적인 정치 주체가 되는 문제입니다. 삼일 운동은 생사를 뛰어넘어서 공적인 주체와 사적인 주체가 일치된 사례입니다.

삼일운동과 촛불집회

삼일운동에서부터는 민족 대표 33인이라는 사람들이 뒤에 물러서고, 겸허하게 민중을 향해서 호소했어요. “여러분이 나라의 주인이니 여러분이 나서서 독립 만세를 외쳐주십시오. 그러면 독립될 수 있을 겁니다.”라구요. 그리고 삼일운동을 비폭력적으로 평화적으로 하기 위해, 대표들이 시위현장에 나가지도 않았어요. 소극적으로 음식점에 모여 선언문 읽고 만세 부르고 경찰을 불러서 잡혀간 겁니다. 그들은 목숨이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폭력적 사태가 일어나면 일본군에게 빌미가 되서 운동을 지속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해야,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외국에서 우리의 운동을 보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천도교에서 발행한 독립신문 1호에서도 “절대로 폭력사태를 일으키지 말라, 일으키면 영원히 우리 민족은 독립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고 말해요. 삼일운동은 “공명정대, 질서정연”이라는 원칙이 있었지만, 구체적 지시는 지역에서 기획하고 조직하고 진행하고 모든 것을 자발적-자치적으로 하라고 했지요.

현대의 촛불 집회도 일맥상통해요. 1970~80년대부터 시위가 있어왔지만, 촛불 집회가 제일 그래도 평화적이고 조직적이고 질서있게 이뤄졌죠. 현대 촛불 시위는 삼일운동 시위의 이상을 담아냈어요. 촛불 시위의 의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내가 주권재민의 나로 깨닫는 데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평생 삼일운동을 생각했던 사람이었어요. 선생은 60년대 초에 민이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주체라고 말씀하셨어요. 민중이 전략을 짜고 민중이 이끌어가는 정치 시대가 이제야 온 거죠. 그게 ‘직접’ 민주주의잖아요. 그런데 촛불 집회도 집회로만 끝나면 의미가 없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동학혁명부터 시작해서 삼일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거국적 집회를 이어가고 있지요. 그런데 사회가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빨랐어요. 시위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촛불 시위 이후가 중요합니다. 촛불 시위가 자치와 협동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민중의 의식이 바뀌고 국가 사회가 바뀝니다. 촛불 시위의 에너지에 삼일운동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신과 철학, 한국 근현대의 사무쳐있는 정신과 철학을 담아내서 민주적인 생활 철학으로 정립하고 공부하고 실천해야죠. 이 정신을 정치하는 이들과 공무원들, 장관들, 종교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맑아지고 기업도 제자리를 찾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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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독교 2017. 3. 12. 2098호 책과 사람란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재순 소장님의 특기 분야입니다!

[출처] 신학자 시리즈20-박재순(씨알사상연구소) 소장님 - “삼일정신을 민주적 생활철학으로 살아내야”|작성자 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