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40강(창42:17-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1. 23. 01:56

창세기 강해 제240(42:17-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322()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42:17)

 

애굽에 양식을 사려고 온 자인지 아니면 틈을 엿보고서 장차 침략을 하고자 하는 자인지 구별을 하겠다고 하는 요셉의 말은 국가안보상 타당한 발언입니다. 왜냐하면, 외국의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양식을 파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반면에, 커다란 안보상 취약점을 노출하게 됩니다. 양식을 사는 체하면서 애굽의 형편을 상세하게 정탐하고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안보상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달 후에 자신의 많은 부족원을 동원하여 다시 양식을 사려고 오는 것처럼 가장을 한다면 무사히 애굽의 수도에까지 진입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틈을 보아 야간에 기습을 감행한다면 안보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서 사전에 만전을 기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20세기 후반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 서독정부가 동독에 살고 있는 동족들에게 자유스러운 왕래를 허용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공산권이었던 동독에서는 많은 정탐꾼을 서독에 보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서독에서는 그 점을 염려하여 안보상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점에 신경을 쓰지 아니하기로 국론을 모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유진영인 서독이 지니고 있는 장점에 대하여 깊이 신뢰를 했기 때문입니다. 서독은 국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주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높은 임금으로 취업의 기회를 주고 있는 선진국입니다. 그리고 동구의 공산권 가운데 가장 잘 살고 있다고 하는 동독과 비교하더라도 서독은 경제적으로 월등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제도에 있어서도 더욱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입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동독에서 더 많은 정탐꾼을 보낼수록 좋다. 그들은 서독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가서 더 많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면 독일의 통일은 그만큼 앞당겨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서독이 분리가 된지 50년도 채 되지가 아니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고대 애굽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애굽 제국 자체가 다민족국가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살고 있는 여러 족속들은 대부분 미개하고 야만적입니다. 당시 중근동지역에서는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만이 고대선진문명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변의 사막과 광야지역에서는 목축과 약탈을 병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유목민족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들은 호시탐탐 비옥한 나일 강 유역을 차지하고자 애굽의 약점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양식을 팔아야만 할 입장입니다. 그냥 흉년으로 망하게 된다면 그 전에 죽기 살기로 애굽으로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양식을 팔면서도 국가안보에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왜 이복 형들을 신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14살 정도가 되었을 때에 이복 형들이 저질렀던 세겜 사건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세겜 성의 지배족속인 히위족속의 남자들에게 모두 할례를 받도록 만들고 그들이 삼 일째에 큰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에 야간기습을 하여 모두 도륙한 것입니다(34:25-26). 그리고 부녀자와 재물을 몽땅 끌고 왔습니다(34:28-29). 그것은 약탈민족이 하는 일 그대로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요셉 자신을 죽이려다가 그래도 양심이 찔렸는지 돈을 받고서 노예로 만들어 아예 먼 외국으로 보내버린 사람들입니다(37:20, 26-28). 그러므로 그들을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통해서 친동생 베냐민을 데려오게 만들고 싶습니다(42:15).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5년 흉년을 견딜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만 합니다(42:19).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로 세 차례의 과정을 통하여 그 해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열명의 이복 형들 가운데 한 사람만 양식을 가지고 가나안 아버지 야곱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42:16). 그러면 9명의 형제를 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다시 올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가나안으로 보낼 것인지 그들이 합의를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요셉은 그들에게 삼 일간의 말미를 주고 있습니다. 누구를 살려서 가나안으로 보낼 것인지 감옥에 들어가서 상의를 하라는 것으로 보입니다(42:17). 어째서 요셉은 사흘간 그들을 모두 옥에 가두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 요셉이 어릴 때 세겜에서의 사건을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옛날 삼 일째 되는 날 형들은 히위 족속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므로 똑 같이 삼 일간 갇히어 있으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이 옳습니다. 둘째, 당면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를 전령으로 보내야 하는지를 그들이 옥중에서 삼일 정도 논의를 한다면 충분히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요셉이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러나 요셉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누구를 가나안으로 보낼지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 혼자만 먼저 살아서 나가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옛날 22년 전의 이복 형들 같으면 벌써 먼저 자기 혼자서 살고 이익을 챙기겠다고 손을 들고서 난리를 피웠을 그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자기가 먼저 살겠다고 손을 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선처를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만 대표로 옥에 가두고 나머지 9명의 형들을 풀어주고자 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양식을 많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42:18-20).

 

애굽 총리의 의외의 발언,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라.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42:18).

 

요셉의 이복 형 열명은 삼 일간 감옥생활을 하다가 방금 석방이 되었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인 사브낫바네아 요셉이 자신들에게 엄청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애초 9명을 옥에 가두고 1명만 양식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보내주겠다고 말했습니다(42:16).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오면 모두 풀어줄 것이며 다시 양식을 살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한 명만 옥에 가두고 나머지 9명은 모두 풀어주겠다는 것입니다(42:19). 9명이 많은 양식을 가나안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기아를 면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오면 역시 다시 양식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42:20)”.

마치 꿈과 같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그만 첫 머리에 요셉이 슬쩍 고백하고 있었던 중요한 말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Do this and you will live, for I fear God, NIV, 42:18)”. 애굽 제국의 수석총리인 사브낫바네아가 신기하게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자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방 강대국인 애굽 땅의 한복판에서 황제 바로에 버금가는 권세를 지니고 있는 권력자의 말입니다. 만약 요셉의 이복 형들이 3일간 감옥살이 끝에 넋이 빠져 있지 아니했더라면 그 말의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애굽 총리의 용모를 보고서 그 옛날 아우 요셉과 닮은 점을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이라 그럴 정신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9명을 석방하고 양식도 주겠다는 말에 감지덕지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얼른 애굽 총리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4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