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21(손진길 소설)
춘삼월 좋은 날에 산동성에서 대당의 수도인 장안을 향하여 한대의 튼튼한 마차가 출발하고 있다. 마부는 신라소에서 영사업무를 맡고 있는 길사 유성이다. 마차 안에는 신라 진평왕의 특사인 원광법사와 비서인 길사 윤책이 타고 있다;
산동성 청두에서 오늘날 섬서성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장안까지 가는 길이 상당히 멀다. 그러므로 유성이 마차를 손수 몰고는 있지만 하루 종일 고삐를 쥐고 있으니 엄청 고역이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말한다; “유성 공, 혼자서 마차를 모는 것이 무리입니다. 그러니 내가 교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유성이 마차 안으로 힐끗 고개를 돌려보고서 말한다; “윤책 공은 길을 모르는데 어떻게 마차를 몰 수가 있겠어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우리 마차가 쌍두마차이고 마부석에 조수석까지 설치가 되어 있는데 무엇이 어렵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마차를 몰고 길 안내는 옆에서 유성 공이 해주면 될 것이 아니요? 하하하… “.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그래서 유성이 슬그머니 동의를 한다. 윤책이 얼른 마부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능숙하게 마차를 몰고 있다. 그 옆에서 유성이 친절하게 길안내를 한다. 그렇게 달려가니 마차를 모는 것이 별로 어렵지가 않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젊은이는 심심하지가 않은데 마차 안에 타고 있는 노스님 원광은 혼자서 심심하다. 따라서 그는 아예 호흡을 가다듬어 명상의 세계에 들어가고 만다;
덜겅거리는 마차 안에서 좌선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젊은이 두 사람이 크게 감탄한다; “역시 신라에서 명성이 높은 고승 원광법사야!... “.
마부석에 나란히 앉아 있게 되자 유성이 심심한지 윤책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시작한다; “윤책 공은 금년에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나는 금년에 33살입니다. 진평왕 15년인 서기 593년에 태어났지요… “.
그 말을 듣자 유성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나도 33살인데 우리가 이제 보니 동갑이군요. 이거 반갑습니다”. 마치 악수라도 할 것처럼 밝게 말한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유성 공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혹시 서라벌 북쪽 기계입니까?... “.
그 말을 듣자 유성이 깜짝 놀라면서 되묻는다; “내 고향 기계를 어떻게 아십니까?... “. 윤책이 마차를 몰면서 담담하게 말한다; “나도 부모님이 기계에 살고 계시는데 그곳에 유씨가 많이 살고 있지요. 그래서 한번 추측을 해본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일가 가운데 유강 장군을 알고 계십니까?... ”.
그 말을 듣자 유성이 더 크게 놀라면서 말한다; “아니 내 형님을 아시다니?... 윤책 공은 어디서 내 형님을 만나신 것이요?... “. 이번에는 윤책이 놀란다. 그래서 얼른 대답한다; “작년 말에 대야성에서 유강 장군을 만났고 그 다음에 봉잠성에서 함께 전투를 치루었지요. 우연히 같은 고향임을 알고서 서로 깊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거 여기서 동생분을 만나다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윤책 공, 나는 서라벌 보문과 황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설씨 부족의 고야향도에 낭두로 들어가서 수년간 수련한 후에 616년 아잠성 전투에 참여했어요. 그때 소감의 벼슬을 얻어 형님의 부대에 소속되어 그 전투를 치루었지요. 그런데 운이 좋아서 백제의 장수를 한 사람 쓰러뜨리는 전공을 세우게 되어 대감으로 진급했어요. 그런데… “.
그 다음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유성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차분하게 말한다; “형님이 저를 대당 산동성 임지로 떠나는 김용술 도독에게 맡겨 영사로 근무하게 조치를 했어요. 형제가 함께 전투를 치르다가 모두 불상사를 당하게 되면 부모님께 큰 불효라고 하면서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열심히 중국말을 현지에서 배우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어요. 그 동안에 한 계급 올라가서 벼슬이 길사입니다”;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말한다; “유성 공은 무관이지만 이제는 영사업무를 보고 있으니 문관이 되신 것이군요. 그 아까운 무예가 녹이 쓸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 그러자 유성이 역시 웃으면서 대답한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신라의 무신 가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영사업무를 보고 있다고 해도 무예수련만은 결코 게을리하지 않고 있답니다. 그런데 원광법사의 제자인 윤책 공이 무관이라고 하니 그것이 좀 이상합니다… “.
윤책이 알기 쉽게 요약하여 말한다; “나는 스승이신 원광법사로부터 15년간 여러가지 학문을 배운 다음에 23살이나 되어서 뒤늦게 사량향도에 들어가서 10년간 무예를 닦았어요. 그 다음 작년에 소감 벼슬을 얻어 앵잠성과 봉잠성 전투에 차례로 참여했어요. 운이 좋아서 두차례나 전공을 세우자 곧바로 대감이 되고 그 다음에 길사가 되었어요. 참으로 행운이지요. 이제는 사부를 잘 둔 덕분에 대국 당나라까지 방문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유성 공까지 만나게 되었고요. 하하하… “;
며칠간 마차를 교대로 몰면서 서로 깊은 신상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동갑내기 윤책과 유성이 좋은 친구사이가 된다. 그들은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근방에서 성읍을 찾아 들어간다.
그러면 시가지에서 크게 어렵지 않게 객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참으로 당나라는 교통이 편리하고 객점이 많아서 여행하기에 좋다. 그러하지 못한 신라와 비교하니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오늘날의 하남성에 있는 낙양을 지나고 감숙성에 있는 장안을 향하여 열심히 마차를 몰고 있을 때에 한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도로의 옆 산지에서 갑자기 여인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들리고 있는 것이다. 윤책이 조금 지나서 마차를 멈춘다. 마차안에서 참선 중이던 원광법사도 바깥을 내다보면서 말한다; “무슨 일이지? 한번 확인을 해보도록 하려무나”.
유성이 마치 유성과 같이 빠른 신법으로 현장을 찾아서 산지로 들어선다. 그 뒤를 윤책이 따르고 있다. 크게 멀지 아니한 지점에 중년여성과 젊은이가 봇짐을 이고 지고 있는데 그 앞과 뒤를 괴한 4명이 포위하고 있다. 갑자기 괴한을 만난 중년부인이 비명을 지른 모양이다.
약간 떨어진 지점에서 유성이 진행상황을 지켜본다. 그러자 윤책과 유성의 귀에 괴한의 위협소리가 들려온다. 유성이 친절하게도 윤책이 전혀 중국말을 못하는 줄 지레 짐작하고서 통역을 해준다; “보따리를 내놓고 순순히 물러가라고 하는 군요. 강도들인 모양입니다”.
그러자 젊은이가 지팡이에서 칼을 꺼낸다. 중년부인과 재물을 지키겠다고 하는 강력한 의사표시이다. 4명의 괴한은 더 기다리지 아니하고 흐물흐물 냉소를 흘리면서 젊은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젊은이의 무예가 상당한 수준이지만 강도들의 무예도 보통이 아니다.
겨우 한사람의 강도를 물리쳤는데 이번에는 3명이 동시에 창과 칼을 휘두르면서 달려든다. 젊은이가 전부 막아내지를 못하고 팔에 상처를 입고 만다. 그 다음이 문제이다. 괴한들이 아예 젊은이를 죽여버리려고 필살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 순간 비호와 같이 유성이 달려든다. 윤책도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그 뒤를 따른다;
윤책과 유성이 검을 꺼내자 순식간에 대등한 대결이 이루어진다. 한사람이 괴한 하나씩 상대하니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나고 있다. 왜냐하면, 3명의 괴한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쓰러져 있는 동료를 들쳐 업고서 36계 줄행랑을 치고 말기 때문이다.
진땀을 흘리고 있던 중년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이고 있던 짐꾸러미를 챙기면서 말한다; “고맙습니다. 도와 주셔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책이 젊은이의 상처를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경상이다. 그래서 지니고 있던 지혈제 가루를 상처에 뿌리고 잘 발라준다.
젊은이가 윤책과 유성을 보고서 말한다; “감사합니다. 저는 사천성 휴주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계시는 부친을 만나려고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섰다가 이렇게 봉변을 당했습니다. 두 분의 도움이 없었다고 하면 오늘 재물과 목숨을 모두 강도들에게 빼앗길 뻔 했습니다. 이 구명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
유성이 유창한 중국말로 젊은이에게 말한다; “벌건 대낮에 강도를 만났으니 누구나 나서서 도와야지요. 그것이 큰길을 가는 사람들의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 먼 길을 모친과 함께 어떻게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서 가려 하십니까?... “.
그 말에 젊은이가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저의 아버님은 작년까지만 해도 태자 이건성의 신임을 받고 있던 태자중윤 왕규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함을 받아서 그만 유배에 처해지고 말았지요. 그러니 저희 집안이 망하고 이제는 타고갈 말도 없습니다. 어쩔 수가 없지요… “.
설명을 듣고 보니 딱하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윤책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은화를 여러 개 꺼내서 그 청년에게 주면서 중국어로 말한다; “일단 저희 마차를 함께 타고 이동을 하다가 성읍을 만나면 이 돈으로 말을 한 필 사서 모친과 함께 휴주로 가세요. 걸어가는 것보다는 덜 위험할 겁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유성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은화를 조금 꺼내어 보태 준다. 그 청년이 돈을 받으면서 말한다; “저는 왕규 대감의 아들인 왕호입니다. 사정이 여의치 아니하여 염치 불구하고 이 돈을 받아서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보은할 기회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4사람이 마차에 도착하니 원광법사가 바깥에 서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두말 하지 아니하고 윤책의 의견대로 하라고 말한다. 그날 그들은 그렇게 만나고 헤어진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겠는가? 먼 훗날 당나라의 장군 왕호가 윤책과 유성을 크게 도와줄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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