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들

김유신의 누이들(출처; 조이풀)

손진길 2021. 12. 3. 04:26
문희(文姬)와 보희(寶姬)의 소생/김유신(金庾信)과 누이들/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 (출처; 조이풀)━━ 지성을 위한 ━━/역사와인물

 

 
문희(文姬)와 보희(寶姬)의 소생  
 
 
보희(寶姬)와 문희(文姬) 자매는 김유신(金庾信)의 동생인데 어느날 언니 보희가
오줌이 장안을 뒤덮는 꿈을 얘기하자 동생 문희가 그 꿈을 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래서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는 김유신의 자매 중 처음에 동생 문희와 결혼해
문무왕(文武王)과 인문(仁問)을 낳았는데 나중에 왕이 된 후에는
언니 보희와도 결혼했으니 그 딸이 바로 요석공주(瑤石公主)이다.
공주는 원효와 만나기 전 김흠운(歆運)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655년 백제와 전투에서 전사하여
일찍 과부가 되었으며 소생으로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2년 후 원효(元曉617-686)와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문장가요
이두(吏讀)의 창안자인 설총(薛聰658-?)이다.
 
 

 

김유신(金庾信)과 누이들   
 
 
무열왕(武烈王) 2년인 655 10월 왕은 딸 지소(智炤) 60세의 김유신(金庾信 595-673)에게 시집보낸다.
지소는 왕과 문희(文姬) 왕비의 딸이니 김유신의 조카였지만
당시 신라사회는 근친혼이 흔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김유신은 그 전에 진평왕(眞平王) 34 17세 때 하종공(夏宗公)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했다.
하종은 세종(世宗) 전군(殿君)과 미실(美室) 사이의 아들이니 김유신은
미실의 손녀를 맞아 1 4녀를 얻은 후 조카딸을 아내로 들인 것이다.
언니의 꿈을 사 왕후가 되어 5 1녀를 낳은 문희가 딸을 바쳐 보답한 것이다.
문희의 언니 보희(寶姬)는 꿈을 판 것을 후회해 시집도 안 가고 있다가
무열왕이 후궁으로 취해 4 1녀를 낳았다.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   
 
 
660 6 21일 당()군과 신라(新羅)군은 지금의 인천인
덕물도(德物島)에서 작전계획을 짜는데 사비성(泗沘城)을 치는 날을 7 10일로 잡았다.
당군은 배를 타고 오지만 신라군은 육지로 이동하기에 훨씬 불리했다.
더구나 신라군은 황산벌(黃山伐)에서 계백(階伯) 장군과의 혈투 때문에 약속한 다음 날에 도착했다.
이에 소정방(蘇定方592-667)이 신라 장군 김문영(金文)의 목을 치려 하자
대장군 김유신(金庾信595-673)이 도끼를 뽑아 들고 먼저 당군을 치고 백제로 진격하겠다고 하니
소정방의 우장 동보량(董寶亮)이 발을 구르면서 만류하고 소정방은 기가 죽어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결국 연합군은 7 12일 사비성으로 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