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文姬)와 보희(寶姬)의 소생/김유신(金庾信)과 누이들/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 (출처; 조이풀)| ━━ 지성을 위한 ━━/역사와인물 |
문희(文姬)와 보희(寶姬)의 소생 보희(寶姬)와 문희(文姬) 자매는 김유신(金庾信)의 동생인데 어느날 언니 보희가 오줌이 장안을 뒤덮는 꿈을 얘기하자 동생 문희가 그 꿈을 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래서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는 김유신의 자매 중 처음에 동생 문희와 결혼해 문무왕(文武王)과 인문(仁問)을 낳았는데 나중에 왕이 된 후에는 언니 보희와도 결혼했으니 그 딸이 바로 요석공주(瑤石公主)이다. 공주는 원효와 만나기 전 김흠운(歆運)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655년 백제와 전투에서 전사하여 일찍 과부가 되었으며 소생으로 두 딸이 있었다고 한다. 2년 후 원효(元曉617-686)와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문장가요 이두(吏讀)의 창안자인 설총(薛聰658-?)이다. |
김유신(金庾信)과 누이들 무열왕(武烈王) 2년인 655년 10월 왕은 딸 지소(智炤)를 60세의 김유신(金庾信 595-673)에게 시집보낸다. 지소는 왕과 문희(文姬) 왕비의 딸이니 김유신의 조카였지만 당시 신라사회는 근친혼이 흔했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김유신은 그 전에 진평왕(眞平王) 34년 17세 때 하종공(夏宗公)의 딸 영모(令毛)를 아내로 맞이했다. 하종은 세종(世宗) 전군(殿君)과 미실(美室) 사이의 아들이니 김유신은 미실의 손녀를 맞아 1남 4녀를 얻은 후 조카딸을 아내로 들인 것이다. 언니의 꿈을 사 왕후가 되어 5남 1녀를 낳은 문희가 딸을 바쳐 보답한 것이다. 문희의 언니 보희(寶姬)는 꿈을 판 것을 후회해 시집도 안 가고 있다가 무열왕이 후궁으로 취해 4남 1녀를 낳았다. |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 660년 6월 21일 당(唐)군과 신라(新羅)군은 지금의 인천인 덕물도(德物島)에서 작전계획을 짜는데 사비성(泗沘城)을 치는 날을 7월 10일로 잡았다. 당군은 배를 타고 오지만 신라군은 육지로 이동하기에 훨씬 불리했다. 더구나 신라군은 황산벌(黃山伐)에서 계백(階伯) 장군과의 혈투 때문에 약속한 다음 날에 도착했다. 이에 소정방(蘇定方592-667)이 신라 장군 김문영(金文颕)의 목을 치려 하자 대장군 김유신(金庾信595-673)이 도끼를 뽑아 들고 먼저 당군을 치고 백제로 진격하겠다고 하니 소정방의 우장 동보량(董寶亮)이 발을 구르면서 만류하고 소정방은 기가 죽어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결국 연합군은 7월 12일 사비성으로 진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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