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마태복음 제7장 제21-23절 말씀 곧 행위에 의한 구원과 로마서 제10장 제9-10절 말씀 곧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켰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은 서로 그 의미가 상반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질의에 대한 답변”
작성자; 손진길 목사(주후 2026년 2월 26일 목요일 작성)

먼저 좋은 질문 주심에 감사합니다. 흔히 성도들의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구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속으로 믿는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갈등을 속으로 지니고 있는데 그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달라는 요청으로 보이기 때문에 참으로 좋은 질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문제를 쉽게 풀이하기 위하여 구약시대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의 선지서에 기록하고 있는 새 언약에 대한 구절을 잠시 인용하고자 합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간략하게 풀이하자면 새 언약 곧 신약인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핵심내용을 지닐 것이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입니다;
(1) 주전 15세기 후반에 여호와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과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 앞에서 맺은 두차례의 언약은(출19:4-6, 24:7, 34:1, 27-28, 32) 그들이 역사적으로 여호와신앙을 떠나 우상을 더불어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행하며 살아왔기에 그만 깨어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32절). 그로 말미암아 선민의 나라 북조 이스라엘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의 변방으로 끌려가며 그 대신에 변방의 여러 족속들이 가나안 북편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서 살게 됩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 10지파는 잡족들과 혼혈이 이루어져서 민족적인 순수성이 사라지고 그들 잡족들의 신상과 우상을 더불어 섬기게 됨으로써 그만 종교적인 순수성도 없어지고 맙니다. 한마디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멸망과 함께 이스라엘 10지파의 순수성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스4:1-3, 눅9:52-56, 요4:9).
(2) 136년이 지나자 주전 586년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마저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하고 맙니다. 그 백성들은 대부분 전쟁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로 살게 됩니다. 그와 같은 마지막 선민의 나라의 멸망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을 예루살렘에서 전파한 선지자가 예레미야이며 그는 동족들이 회개하지 아니하자 실제로 그 일이 역사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왕궁의 뜰에 있는 감옥에서 바라보게 됩니다(렘38:28). 그러나 여호와의 긍휼의 역사섭리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그리고 레위인들의 일부가 주전 536년경 고토 유대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을 건설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한 시대가 장차 도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선지서 제25장에서 여호와의 예언으로 동족들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렘25:11-14, 스1:1-4).
(3) 그런데 문제는 제2성전시대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의 여호와신앙에 있어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다음 세가지 문제입니다; ①하나님의 눈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참조 창17:1). ②사람들이 인정하고 유대교지도자들이 인정하면 그것으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는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의 인위적인 의인사상입니다(눅7:30, 18:9-14, 롬1:32). ③출애굽의 역사를 단지 여호와 하나님이 선민 유대인에게는 해방과 구원을 베푸시고 반대로 애굽인에게는 저주와 재앙을 베푸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선민 구원, 이방인 멸망이라는 인위적인 이분법 이데올로기를 유대교가 교육하고 있습니다.
(4) 그와 같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새 언약을 세우실 것임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렘31:31-34). 그가 예언하고 있는 새 언약 곧 그리스도의 복음의 특징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그 앞에서 신앙생활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창17:1, 39:9, 히4:13). 또 하나는,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제8장 앞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성도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드디어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새 언약의 시대 곧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렘31:33-34, 롬8: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마디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만 구원을 받고 이방인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성경말씀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독생자가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사람의 아들인 인자(人子)로서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체험하면서 3년 6개월간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살아가십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유대교지도자들의 사상과 충돌하여 마침내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이단으로 정죄가 되고 로마총독의 사형집행권을 빌린 유대교지도자들과 그들이 동원한 유대인들의 외침 가운데 그만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맙니다.
(3)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이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라는 사실이 그가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함으로써 만천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와서 40일동안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재차 설명한 내용이 간략하게 의사 누가가 작성한 복음서 마지막 장 곧 제24장 제44-4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4)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한평생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게 해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주 역사하심은 두가지로 나타나게 된다고 요한복음 제14장과 제16장에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님의 말씀은 동일하며 그것이 바로 진리의 특징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님이 성도의 심령속에서 만드시는 그 성전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으로 임재하여 함께 내주 역사하십니다. 그와 같이 3위1체 하나님이 성도들과 함께 영적인 삶을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사도 바울의 증언 그대로 이 세상에서 성도들에게 영적인 삶이 이루어지며 악한 세상이 성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롬8:1-4, 31-39).
이제 결론을 맺어보고자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복음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있습니다(행1:8). 그리고 3위1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믿음의 성숙과 성화의 과정이 전개됩니다(행9:3-19, 16:6-7, 고전6:19-20, 엡4:6, 빌3:10-16).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세상사람들의 눈치 또는 종교지도자들의 인정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눈 앞에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창17:1).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은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고 또한 그 말씀을 스스로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 피조물 사랑 곧 이웃사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주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게 되는 것입니다(막3:4, 12:30-31, 눅10:33-37).
그와 같은 삶의 변화는 성도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 믿음과 성도의 행동이 진리로 하나가 되게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한 창조주의 능력을 의지하고 믿지 아니하게 되면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는 그 둘이 하나가 되지 못하여 그만 갈등이 증폭되고 신앙생활에서 실족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귀한 질의에 거듭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신앙생활에 그리고 믿음의 성숙에 도움이 되기를 주님안에서 간구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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