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유월절 밤의 심판과 새로운 출애굽, 이사야는 들포도를 맺은 포도원처럼 선민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겠지만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는 만민을 구원하는 새 시대를 여실 것이라고 예언하다”(사4:1-5: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6. 14. 12:52

제목; “유월절 밤의 심판과 새로운 출애굽, 이사야는 들포도를 맺은 포도원처럼 선민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겠지만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는 만민을 구원하는 새 시대를 여실 것이라고 예언하다”(4:1-5:17)

설교일; 주후 2026 51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614일 토요일 작성)

 

시편에 수록되어 있는 전체 150편의 깨달음의 시가를 살펴보면 그 가운데 가장 긴 노래는 제119편으로서 176절이고, 가장 짧은 노래는 제117편으로서 단지 2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 차이점을 잠시 살펴봅니다;

(1)  첫째, 시편 제119편은 여호와의 말씀을 ①여호와의 율법(1), ②여호와의 증거(2), ③주의 도(3), ④주의 법도(4, 15, 27), ⑤주의 율례(5, 8, 12, 16, 23, 26), ⑥주의 계명(6, 10, 19, 21), ⑦주의 말씀(9, 11, 17, 25, 28), ⑧주의 규례(13, 20, 30), ⑨주의 증거의 도(14), ⑩주의 율법(18), ⑪주의 교훈(22), ⑫주의 증거(24), ⑬주의 법(29)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면서 176절에 이르는 긴 노래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2)  둘째, 그와 달리 시편 제117편은 단지 다음과 같은 단 2절의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어느 익명의 저자의 깊은 깨달음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너희 모든 나라들 여호와를 찬양하며(모든 나라들은 거국적으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나라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너희 모든 백성들그를 찬송할지어다!(모든 백성들은 구원주로 오신 그리스도를 찬송하여야 한다. 그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고 40일만에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심으로 말미암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길이 모든 백성에게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조는 다윗의 시편 제110편임)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독생자를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보내어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주시니 그, 1:14-18)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은혜와 부활의 은혜 그리고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허락하시고 영생으로 구원하여 주시니 그, 14:16-20, 24:44-53, 12:31)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24:49), 할렐루야!”(117:1-2).

그렇지만 그 깨달음의 비중으로 따지자면 시편 제117편의 짧은 노래가 결코 시편 제119편의 긴 노래에 뒤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그 깨달음의 깊이가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똑같은 이야기를 오늘의 본문으로 선택하고 있는 이사야 제4장과 제5장에 대해서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이사야 제4장이 단 6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매우 심오하기 때문입니다;

1)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여호와의 말씀으로 선지자 이사야가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장정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나면 그 땅에는 노약자들만이 남아서 농업과 목축업을 경영하고 신바벨론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겨우 생존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고토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부디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의 백성들을 다시 고토로 돌려보내어 주셔서 선민의 사회가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시내산에서 맺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서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간구가 제1절의 깊은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19:31절에 기록되어 있는 남은 자의 소원이 그러합니다(6:13).

3)   고토에 남겨진 자들의 회개와 기도소리가 여호와에 의하여 응답이 되고 있습니다. 주전 538년경 신바벨론제국이 바사의 고레스 왕에 의하여 무너지고 그 땅에 페르시아제국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고레스 황제는 자신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선지서 이사야 제44-45장의 예언이 역사적으로 성취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유대인들을 포로에서 해방하고 원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고토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조치하게 됩니다(1:1-4). 유대인사회가 다시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4)   그 유대인사회에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정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여호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복음의 싹입니다(2). 구체적으로, 독생자가 성육신하여 유대인사회에서 성장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됨으로써 그것을 믿고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여호와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그와 같이 회개하는 성도의 죄를 씻어주는 구원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4절의 소멸하는 영’);

5)   또한 진리의 보혜사 성령께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시대가 되면 그 성전에 31체 하나님이 임재하여 이 세상을 심판하며 성도를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4절의 심판하는 영’). 그리고 성도들이 전도와 선교에 나서서 복음 사역하는 현장에 있어서는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길에서 보호한 것과 같은 여호와의 놀라운 돌보심이 함께하게 됩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어 주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와 보호인 것입니다(5-6, 13:20-22, 9:1-6, 10:1-20).

(2)  둘째, 5장의 전반부를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선택한 거룩한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자손들이며 선지자 이사야는 그들을 이름하여 여호와의 포도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5:1, 7a). 시내 산에서 여호와는 선민들에게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온세상에 나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고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만들고자 하십니다(19:4-6).

1)   구체적으로 선민사회에서는 정의를 실현하고 온세상에 나아가서는 만민을 구원하는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역사적으로 그만 정의구현도 소홀히 하고 여호와의 공의인 아가페 사랑을 버려버리고 맙니다(5:2-4).

2)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서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손쉽게 이루고자 그만 우상문화를 도입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7b).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5:5-6, 8-15) 훗날 다시 형성되는 유대인사회에서 만민구원의 여호와의 뜻이 선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5:16-1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땅에 남겨진 노약자들이 선민사회의 재건을 위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동포들이 빨리 고토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호와께 간구하는 기도를 비유하고 있음, 44:28, 45:1-8, 왕하25:11-12, 1:1-4),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여호와의 거룩한 백성)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유대인포로들이 귀환하여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임, 11:12,  25:11-12, 19:31). 2. 그 날에 (재건된 유대인사회에서) 여호와의 싹이(11:1)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새 언약의 시대가 다가올 것임, 11:10, 31:33),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선민사회에서 먼저 교회가 발생할 것이며, 2:40-42),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선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 2:25, 36, 22:11-13, 23:50-51),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경건한 순례자들, 2:5)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절기를 따라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여 랍비들의 경전토론을 듣는 자들, 2:45-47)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예정함을 입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게 될 것임, 24:49, 14:16-20, 1:8, 2:1-4), 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진리의 보혜사 성령님, 16:8-11, 12:31) 소멸하는 영(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어린양 그리스도, 1:29, 3:13-17)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이기적이고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는 선민의 유대교를 청산하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시대를 열어갈 것임).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그리스도가 복음사역을 하는)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여호와의 능력과 돌보심이 함께할 것임, 10:19-20, 9:16-17),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원수들의 비방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여 줄 것임, 8:29, 28:18-20)“(4:1-6); 남은 자들의 소원과 여호와의 싹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그 땅에 남겨진 노약자들이 선민사회의 재건을 위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동포들이 빨리 고토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여호와께 간구하는 기도를 비유하고 있음, 44:28, 45:1-8, 왕하25:11-12, 1:1-4),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여호와의 거룩한 백성)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유대인포로들이 귀환하여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임, 11:12,  25:11-12, 19:31). 2. 그 날에 (재건된 유대인사회에서) 여호와의 싹이(11:1)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새 언약의 시대가 다가올 것임, 11:10, 31:33),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선민사회에서 먼저 교회가 발생할 것이며, 2:40-42), 3. 시온에 남아 있는 자(선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 2:25, 36, 22:11-13, 23:50-51),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경건한 순례자들, 2:5)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절기를 따라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여 랍비들의 경전토론을 듣는 자들, 2:45-47)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예정함을 입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게 될 것임, 24:49, 14:16-20, 1:8, 2:1-4)“(4:1-3);

1)    창세기 제19장의 내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목은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두 천사가 소돔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소돔성의 영적 및 성적인 타락의 실태를 현장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즉시 보고하는 것입니다(18:20-22). 그러한 계획을 여호와로부터 개인적으로 미리 듣게 된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살고 있는 장조카 롯의 식구의 안위가 걱정됩니다(18:17, 19:29). 그래서 그는 아예 소돔과 고모라 등 불심판의 가능성이 커진 성읍에 대하여 여호와께 두가지 사항을 부디 고려하여 달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2)    하나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처벌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18:23). 또 하나는, 최종적으로 한 성읍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불심판을 면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18:32). 가나안 지역에 대한 여호와신앙의 선지자이며 동시에 제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특히 중보 기도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의 최종적인 간구 곧 의인 10명만 있어도 하나의 성읍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은 의미가 큽니다. 왜냐하면, 그 큰 성읍에 최소한 10명의 진실한 여호와신앙인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3)    그의 간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자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안심합니다. 그러나 다음날에 멀리 소돔 성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마치 원자폭탄을 맞은 것처럼 검은 연기가 그곳의 하늘을 가리고 있으며 뜨거운 불기운이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헤브론 지역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19:27-28). 그 때문에 가나안 남부지역에 가뭄이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쩔 수가 없어서 양떼를 몰고 풀이 무성한 블레셋의 영역 그랄 지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20:1).

4)    롯의 가족은 그들 부부와 2딸 등 4인 가족입니다. 현지인인 예비사위들이 있지만 그들은 소돔성에 여호와의 불심판이 임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생각하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19:14). 그런데 두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탈출하는 도중에 소돔성에 있는 자신의 재물이 불타는 광경을 되돌아본 롯의 처가 그만 소금기둥으로 변하고 맙니다(19:17, 26). 그 결과 롯은 과년한 두 딸과 함께 외떨어진 산지에서 지내게 됩니다(19:30). 사방을 둘러보아도 인적이 사라진 지역입니다.

5)    그때 두 딸이 이상한 합의를 하게 됩니다;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19:31b-32). 그것은 이 세상에서 여호와신앙을 가진 의인이 사라지고 말았기에 이제는 유일한 남성 생존자인 부친 롯의 씨를 받아 의인의 가계를 유지하도록 하자는 합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편의 씨를 받아야 하는 그녀들이 부친의 씨를 받는다고 하는 패륜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는 참으로 이상한 대목입니다. 그렇게 하여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들의 자칭 선민사상과 의인사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6)    그와 동일한 사건이 선민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훗날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하고 나면 가나안 땅에서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전란 후 가나안 땅에 남겨진 여인 7명이 합의하여 유일하게 생존한 한사람의 남자에게 부디 우리와 합방하여 자손을 낳아 선민의 뒤를 잇게 해달라고 간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4:1). 그 비참한 이야기의 의미를 확대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가나안 땅에 남겨진 유민들이 여호와께 한마음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부디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이 속히 귀환하여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고 다시 선민 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러한 자신들만 이 세상에서 유일한 선민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교만한 유대인들의 간구는 긍정적으로 창조주 여호와에 의하여 받아 들여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만이 의롭다고 하는 집단 이기적이고 민족 우월적인 사고방식이 내포되어 있는 그러한 선민사상은 역사적으로 그 사상으로 자국민이 단결하여 주변의 다른 민족을 해치고 아예 인종 청소하고자 하는 매우 위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실상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독점하고 이웃 주변 이방인에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끝까지 여호와의 뜻을 모르고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다가 주변의 이방인들이 모조리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극히 현세적인 이기심의 발로인 것입니다.

8)    그에 따라 민족 우월적이고 폐쇄적인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철폐하고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신위적으로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사상을 전파하게 합니다. 그것이 천국 복음인데 그 요지는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누구나 여호와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만민구원사상과 영생구원사상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천국복음으로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호와말씀의 본래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이 성령으로 강림하여 개인적으로 성도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남은 인생을 함께 살아가면서 진리가 승리하도록 내주 역사하겠다는 것입니다.

9)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이사야는 본문에서 여호와의 싹’(2)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내용은 이사야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새 언약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31:33). 그와 같은 여호와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발생하게 되는 장소를 선지자 이사야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3a).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되는 자는 여호와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이며 그들은 자칭 의인이 아니라 여호와로부터 거룩한 자 성도라고 불리게 된다는 것입니다(3b). 그 점은 훗날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글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6:37-40, 10:20, 1:4-7, 예정론임).

(2)  4.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진리의 보혜사 성령님, 16:8-11, 12:31) 소멸하는 영(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어린양 그리스도, 1:29, 3:13-17)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이기적이고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는 선민의 유대교를 청산하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시대를 열어갈 것임).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그리스도가 복음사역을 하는)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여호와의 능력과 돌보심이 함께할 것임, 10:19-20, 9:16-17),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원수들의 비방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여 줄 것임, 8:29, 28:18-20)“(4:4-6);

1)    선지자 이사야는 새 언약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은 인위적인 선민사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위적인 여호와의 영적인 두가지 조치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심판하는 영을 보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소멸하는 영입니다. 그 특징은 한마디로, 영이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피조물인 사람의 심령속에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4:24, 고전6:19-20);

2)    그 옛날 모세시대의 선례를 살펴보면, 70인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그들이 한때 예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11:25).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인 모세는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훗날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기를 자신은 소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29). 그와 같은 역사가 훗날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소개하는 사명자로 이 세상에 와서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는 세례 요한에게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3)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부르짖으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하여 먼저 회개의 물세례를 받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3:1-2, 6, 11). 특히 나사렛 예수가 겸손하게 세례 요한을 방문하여 그로부터 물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님이 강림하여 예수에게 임하는 놀라운 광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3:16). 그때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이 영적으로 들려오고 있습니다(3:17a).

4)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죄를 지고가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될 것이며 그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는 보혜사 성령이 임재하여 진리를 깨닫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3:17b, 1:29, 4:24, 14:16-20, 8:1-6). 그러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들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그리스도는 소멸의 영입니다.

5)    그리고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은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영적으로 거듭난 인생 가운데 성도들이 육신적인 탐심을 이길 수 있도록 내주 역사하여 마침내 성도들이 여호와의 심판대에 설 때에 영벌이 아니라 영생을 얻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8:1-4). 그러므로 심판의 영이라고 선지자 이사야가 여기서 부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선민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인생 가운데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에 대한 메시지를 받는 그때가 영원한 생명이냐? 아니면 영원한 처벌이냐?를 결정하게 되는 영적으로 중차대한 순간입니다.

6)    자신의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성도로 제대로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영원히 선택의 기회를 상실하고 맙니다(30:19-20). 그 사실을 훗날 예수님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16:19-31). 그에 따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라고 밝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전도와 선교의 사역현장에 있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이 특별합니다.

7)    그 점을 본문 제5-6절에서 이사야가 실감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 당시 광야를 떠도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돌보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은혜를 상기해주고 있습니다(13:20-22).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초막 3을 짓고 변화산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한 대목을 생각나게 합니다(9:33). 왜냐하면, 영적으로 31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벌써 그러한 초막을 자신의 심령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14:1-3, 16-20, 고전6:19-20).

둘째로,1. (선지자 이사야) 내가 사랑하는 자(동족인 선민 유대인)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3:8, 17, 13:14-15, 15:16)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도다, 12:7-8, 13:4-7),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기름진 산(특히 홍수 후 노아의 시대처럼 포도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구릉지가 있음, 9:20)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포도원을 만들고자 한 것임. 그와 같이 선택된 민족이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임, 19:4-6).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좋은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노리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임), 또 그 안에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고자) 술틀을 팠도다. (포도원 주인이신 여호와께서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15:8, 선민 이스라엘이 그만 이기심과 세속적인 탐심에 사로잡혀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들포도를 맺었도다!(15:6)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여호와)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선민 유대인들이여 너희들이 여호와의 눈을 속이고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그 이치를 한번 따져보아라). 4. (여호와)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여호와 하나님이 선민을 사랑하여 진심으로 돌보아주었다) 들포도(이방인들이 맺고 있는 이기주의와 현세적인 기복신앙의 열매를 말함. 사도 바울이 예로 들고 있는 돌감람나무의 열매와 같은 것임, 11:17)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그러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기대를 저버리고 배신하였다) 5. 이제 (여호와)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20:15-18).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외적의 침입을 막아주지 아니할 것이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적들의 침입으로 선민의 성읍들이 황무지가 될 것이며),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다시는 포도원으로 사용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오랜 가뭄으로 불모지가 되고 말 것임),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마지막 남은 다윗왕조의)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동족사랑인)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만민구원의) 공의 바라셨더니 도리어 (억눌린 자의) 부르짖음이었도다!(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요청한 동족사랑인 정의와 만민사랑인 공의가 선민사회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자 학대 받는 자의 부르짖음만이 그 땅에서 울려 나오고 있음.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남은 자들이 이제는 여호와께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달라고 간구할 따름이라는 것임)“(5:1-7); 포도원주인의 기대와 포도나무들이 맺은 잘못된 열매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선지자 이사야) 내가 사랑하는 자(동족인 선민 유대인)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3:8, 17, 13:14-15, 15:16)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도다, 12:7-8, 13:4-7), (젖과 꿀이 흐르는) 심히 기름진 산(특히 홍수 후 노아의 시대처럼 포도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구릉지가 있음, 9:20)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포도원을 만들고자 한 것임. 그와 같이 선택된 민족이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임, 19:4-6).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좋은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노리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임), 또 그 안에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고자) 술틀을 팠도다. (포도원 주인이신 여호와께서는)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15:8, 선민 이스라엘이 그만 이기심과 세속적인 탐심에 사로잡혀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들포도를 맺었도다!(15:6)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여호와)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선민 유대인들이여 너희들이 여호와의 눈을 속이고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그 이치를 한번 따져보아라). 4. (여호와)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여호와 하나님이 선민을 사랑하여 진심으로 돌보아주었다) 들포도(이방인들이 맺고 있는 이기주의와 현세적인 기복신앙의 열매를 말함. 사도 바울이 예로 들고 있는 돌감람나무의 열매와 같은 것임, 11:17)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그러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기대를 저버리고 배신하였다)“(5:1-4);

1)    히브리경전인 오경의 저자 모세는 창세기 제12장에서 아브람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12:1-5). 셈족 가운데 특히 메소포타미아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아르박삿 가문이 여호와신앙을 잘 파수하고 있습니다(10:24, 11:10-26). 여호와는 아르박삿의 후손인 데라 족장에게 서쪽 변경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그곳의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고 선진문명을 가르쳐주라고 명령하십니다(11:31a). 그러나 데라 족장은 장남과 장손 부부를 데리고 서진을 하다가 유프라테스 강 상류 하란 지역에서 행진을 멈추고 맙니다(11:31b-32).

2)    그 이유는 재산불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데라가 그곳에서 좋은 지역을 발견하고 그 땅을 사들여서 도시 개발하여 큰 이익을 얻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여호와는 데라 족장의 장남인 아브람 부부를 설득합니다. 만약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되면 자손의 번성과 더불어 큰 축복을 더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12:1-3). 무자식인 아브람 부부는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부자인 부친 데라의 재산상속권을 포기하고 남하하고 있습니다(12:4-5). 그리고 장조카인 롯의 부부도 백부인 아브람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3)    그후 가나안 땅에서 부자가 된 롯이 재산을 나누어 준 백부 아브람을 떠나 염해지역의 대도시 소돔성으로 떠나버립니다(13:11). 자식 없이 가나안 땅에 외롭게 남게 된 아브람 부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13:14-18). 그 결과 훗날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부를 정도로(4:16) 그의 일대기는 선지자와 제사장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세는 출애굽기를 기록하면서 제19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고 있습니다(19:4-6).

4)    그 의미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그 옛날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에게 나아가서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이고 회개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면 된다는 것입니다(20:7, 17-18, 42:10). 그것이 한마디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실천하기를 원하고 있는 선민의 책무입니다. 그러한 선민들이 되라고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의 나라를 지켜 주시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십니다(28:1-14). 마치 포도원주인이 좋은 포도를 맺도록 포도나무를 잘 관리하는 것과 같습니다(5:2). 그와 같은 사실을 여호와의 선지자 이사야가 제1절과 제2절 앞부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5)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아브라함과 같이 행동한 사례가 없습니다. 그들은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지도 아니합니다(12:39). 도리어 그 반대로 행동합니다(2b). 선민의 땅을 침입하는 그들을 미워하여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모른 채 제멋대로 살아가다가 창조주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멸망을 당해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5:43). 그것은 최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으나(2a) 그 열매는 포도주를 만들 수조차 없는 들포도를 열매 맺고 만 것입니다(2c).

6)    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민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자 결심하십니다(5-6). 그리고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서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 이스라엘 자손을 세상제국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해방하여 출애굽의 은혜를 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차지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신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목적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진심으로 섬기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19:4-6).

7)    그런데 역사적으로 그와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위하여 편리하게 이방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제멋대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4). 그들 선민들이 하나같이 여호와께 바라고 있는 것은 다윗제국과 같은 지역패권국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다시 만들어 주고 주변 이방나라로부터 조공을 많이 받도록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는 것입니다.

8)    과연 그러한 소원이 이루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통하여 선민이 아닌 성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3:13-17). 그 일은 사람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영적인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상의 창조입니다(11:20). 그에 따라 하나님의 영이 이 세상에 진리와 능력의 보혜사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31:33, 2:28, 24:49, 1:8, 2:1-4, 고전6:19-20).

(2)  5. 이제 (여호와)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20:15-18).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외적의 침입을 막아주지 아니할 것이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적들의 침입으로 선민의 성읍들이 황무지가 될 것이며),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다시는 포도원으로 사용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오랜 가뭄으로 불모지가 되고 말 것임),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마지막 남은 다윗왕조의)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동족사랑인)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만민구원의) 공의 바라셨더니 도리어 (억눌린 자의) 부르짖음이었도다!(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요청한 동족사랑인 정의와 만민사랑인 공의가 선민사회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자 학대 받는 자의 부르짖음만이 그 땅에서 울려 나오고 있음.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남은 자들이 이제는 여호와께 대속의 그리스도를 보내어 달라고 간구할 따름이라는 것임)“(5:5-7);

1)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나라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주후 70년에 가나안 땅의 선민 유대인사회가 로마군대의 대대적인 침입으로 완전히 붕괴되고 맙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주후 30년을 전후하여 3 6개월간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복음사역을 하다가 예루살렘의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미묘한 훗날의 역사를 생각하면 선지자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자신의 조국인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주전 586년에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종말을 고하는 그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5-6).

2)    그가 예지하고 있는 그대로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나면 바벨론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는 새로운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25:11-13. 60:10-11).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먼 훗날 로마의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후 1세기의 유대인사회에서도 동일합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이단으로 정죄가 되고 그들의 획책으로 로마의 반역자로 낙인이 찍혀서 십자가처형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처형한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의 정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평소에 뼈아프게 질책하였기 때문입니다(7).

3)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이기 때문에 그 진리는 사라지지 아니하고 무덤속에서 3일만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되살아나게 됩니다.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그리스도는 40일만에 승천하지만 그 대신에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여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고 내주 역사하십니다(2:1-4). 그때부터 하나님의 복음은 성령님의 권능으로 온세상에 성도들의 발길을 통하여 전파됩니다(1:8). 그 결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의 기록을 마감하기 전에 제65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창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65:17-18). 그리고 그 계시는 성경말씀의 강을 흐르고 흘러서 요한계시록 제21장과 제22장에서 대단원을 맞이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1:1-2, 22:1-5).  

셋째로, “8. (선민의 이기적인 현세주의 탐욕을 지적하자면)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집과 토지에 대한 소유욕이 대단하여 그 땅에 투기가 만연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홀로 대저택을 짓고 살면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으니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와 같다는 것임, 16:19-24)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외적의 침입으로 반드시 선민의 나라가 황폐하게 변하고 말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바트가 나겠고(포도원에서 소출이 거의 사라지며),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농사를 지어도 흉년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굶주리게 될 것임) 하시도다(여호와의 두려운 예언의 말씀임).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그와 같은 처참한 미래가 여호와의 심판으로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연회만 즐기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이사야의 말임)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육신의 향락과 쾌락만 추구하며 선민의 의무를 전혀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것이 선민국가의 멸망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임, 16:19, 23).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여호와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으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적의 포로가 되고 적국에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이기적인 현세주의 복락만을 탐했기에 남은 인생이 비참해지고 영생의 구원도 얻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임, 5:29). 15.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세상적인 영광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 비천해진다는 것임),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창조주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의 정신만이 살아 숨쉬는 영생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며) ,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그때에는 성도들에게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말씀이 풍성하고, 11:9, 세상에서 학대 받은 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임, 14:29, 5:44-48, 25:40-46)“(5:8-17); 선민들이 실패한 그 땅에서 신위적으로 여호와의 새로운 역사가 발생하게 된다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선민들이 실패한 경우를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자가 되어 혼자 부귀영화를 실컷 누리겠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둘째는, 농토를 늘려서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셋째는, 연회만 즐기는 좌식 계급입니다. 그들의 미래에 대한 예언과 더불어 선지자 이사야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8. (선민의 이기적인 현세주의 탐욕을 지적하자면)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집과 토지에 대한 소유욕이 대단하여 그 땅에 투기가 만연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홀로 대저택을 짓고 살면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으니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와 같다는 것임, 16:19-24)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외적의 침입으로 반드시 선민의 나라가 황폐하게 변하고 말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바트가 나겠고(포도원에서 소출이 거의 사라지며),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농사를 지어도 흉년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굶주리게 될 것임) 하시도다(여호와의 두려운 예언의 말씀임).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그와 같은 처참한 미래가 여호와의 심판으로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연회만 즐기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이사야의 말임)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육신의 향락과 쾌락만 추구하며 선민의 의무를 전혀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것이 선민국가의 멸망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임, 16:19, 23)“(5:8-12);

1)    주후 20세기에 화려한 문명을 꽃피운 유럽의 대륙국가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시를 방문해보면 교외지역에 광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구경할 수가 있습니다. 궁전건물의 크기도 대단하지만 그 앞에 조성하고 있는 정원의 크기가 실로 놀랍습니다. 일설로는 파리의 시민이 한꺼번에 들어와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합니다. 그와 같은 거대한 궁전이 건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륙국가인 프랑스에 황제들이 지배한 시대가 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다윗왕조는 주전 10세기에 다윗과 솔로몬의 제국시대를 거쳤기에 그 수도인 예루살렘에 호화로운 황궁과 권력자와 부자들의 대궐 같은 저택들이 즐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배경사를 이해하게 되면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고 있는 본문 제8절과 제10절의 내용은 나름대로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그 숨은 뜻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권문세가들이 큰 땅을 소유하고서 자신의 땅을 밟지 아니하고는 예루살렘 도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8).

3)    또 하나는, 유대 땅의 좋은 토지는 대지주들의 것이며 수많은 백성들이 소작인이 되고 있습니다(10). 그 드넓은 땅에서 매년 대지주들이 얻고 있는 소출이 대단합니다. 그것은 평생 호화사치를 누린다고 하더라도 다 쓸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에 따라 매일 같이 연회를 즐기고 술에 취하여 살아가는 예루살렘과 큰 성읍의 귀족들이라고 하겠습니다(11). 그런데 그와 같은 호시절이 마감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외적의 침입으로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 남은 선민의 나라의 멸망원인에 대하여 이사야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별로 넓지 아니한 예루살렘 땅을 왕과 귀족들 그리고 부자들이 그토록 많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백성들과 순례객들이 거주할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8). 그것은 이웃을 사랑한다거나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수도인 예루살렘 성읍이 완전히 붕괴되어 황폐화되고 말 것입니다(9).

5)    둘째, 유대지역의 농토에 있어서도 지주의 착취가 심합니다. 소작인들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호구지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칼의 심판을 당하기 전에 흉년으로 인한 기근이 먼저 찾아오고 있습니다(10, 24:10).

6)    셋째, 이사야의 예언인 제11-12절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에 담겨 있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부자가 죽어서 곧바로 지옥 불 가운데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매일같이 연회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저택 대문 곁에 언제나 방치되어 있는 전신 장애자이며 거지인 나사로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16:19-24). 여호와사랑은 하나님이 창조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그것 이웃사랑이라고 하는 사실을(19:18, 14:29, 10:27-37)  전혀 깨닫지 못하고 실천할 의지가 없었던 부자이기에 죽은 다음에는 영벌로 직행하고 있습니다(25:46);

 

(2)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여호와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으므로 선민 유대인들이 적의 포로가 되고 적국에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이기적인 현세주의 복락만을 탐했기에 남은 인생이 비참해지고 영생의 구원도 얻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임, 5:29). 15.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세상적인 영광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 비천해진다는 것임),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창조주 여호와의 정의와 공의의 정신만이 살아 숨쉬는 영생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며) ,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그때에는 성도들에게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말씀이 풍성하고, 11:9, 세상에서 학대 받은 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임, 14:29, 5:44-48, 25:40-46)“(5:13-17);

1)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과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하고 있는 선민사회인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의 멸망은 의미상 같은 맥락입니다. 왜냐하면,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동일하게 저버렸기 때문입니다(15). 다만 한가지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언약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후불제이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는 선불제라는 것입니다.

2)    만약 아브람이 부자인 부친 데라를 떠나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서쪽의 변방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파하면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자손의 번성과 이름의 창대함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미래지사에 대한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12:1-3). 그렇지만 세상제국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경우는 그와 반대입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바로 앞에서 여호와의 재앙을 내리도록 조치합니다.

3)    열 가지 재앙을 연이어 내리자 마침내 바로와 대신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하게 됩니다. 유월절 밤이 지나자 장정만 계산해도 60만명이나 되는 200만명 이상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출애굽 해방이 이루어집니다(12:37-42). 그들의 뒤를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를 여호와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홍해에 수장하고 마십니다(14:26-28). 그 결과 여호와께서 보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로 그들이 시나이 반도 남쪽 시내 산 앞에 도착하여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를 출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와 같이 이미 여호와께서 큰 일을 먼저 행하였다는 내용을 출애굽기 제19장에서 분명히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4-6);

5)    선민의 왕국이나 선민의 사회에 대한 여호와의 진노와 멸망에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아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백성들이 무지하여 권력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면 나라가 망할 때에 함께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 빈부귀천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조리 적국에서 비참한 노예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1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여 맹목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6)    ②둘째, 권력자들과 지도자들이 먼저 적군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14, 왕하25:7, 18-21). 기타 장정들은 노동력이 귀한 고대사회이므로 적국에 끌려가서 노예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왕하25:11). 그러므로 성도들의 공동체가 무너지지 아니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③셋째, 현세적인 영광을 추구하며 탐욕에 젖어 살게 되면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앞에 선 두려움으로 인간의 오만과 세상적인 존귀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15).

7)    ④넷째, 성도는 비록 무익한 여호와의 종에 불과하지만(17:10) 진리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거듭난 삶을 살아가면서 창조주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동족사랑의 정의를 구현하고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공의의 정신 곧 아가페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16). 그러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주님의 제자 답게 살아갈 수가 있으며 소자를 돌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영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17, 22:28-30).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세상적으로만 먹고 살던 사람들이 심판의 때에 수치를 면하기 위해서는 한 남자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4:1-2). 그런데 그 이름만 부른다고 하여 거룩한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해주고 있습니다(4:3).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야만 합니다(4:4).

그래야 세상적인 더러움과 잘못된 습관을 씻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만 합니다(4:6).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표적과 기적 그리고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서 존재하고 계시는 영광스러운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4:5) 영적인 믿음의 눈이 열려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 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행복감이 깊은 심령 속에서부터 생수같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4:14).  그와 같은 구원의 감격을 평생 맛보면서 승리하시는 성도의 삶이 모두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신앙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며 거룩한 성도로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극상품의 포도나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인생 동안 자신에게 부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들포도 열매 맺지 아니하고 최상의 포도열매를 맺는 방법입니다. 너나없이 이상 아버지 하나님을 실망시켜서는 아니 것입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