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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니와 벳바게(출처; 성경진리사역원)

손진길 2024. 10. 3. 04:04

베다니와 벳바게(출처; 성경진리사역원)

 

벳바게(Bethphage) 베다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주님의 사역의 마지막 기간에 그분은 얼굴을 부싯돌과 같이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향하셨는지는 없지만, 회복역 각주를 보시면 주님께서 유월절 정해진 시간에 죽으시기 위해 시간표를 따라 움직이셨음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로마 정부를 뒤엎으시기 위하여 오신걸로 생각하여 환영했겠지만사실상 주님은 죽음과 부활의 길을 가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기록된 유월절 그날에 주님께서는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실제적인 의도는 죽음을 통하여 부활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의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1 1-11

 

마가복음 11 1절부터 11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둘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맞은편 마을로 가십시오. 거기에 들어가는 즉시 아직 아무도 적이 없는 어린 나귀가 매어져 있는 것을 것이니, 풀어어 끌고 오십시오. 누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는 거요?라고 하거든,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리고 즉시 이리로 돌려보내시겠답니다. 라고 하십시오. 그들이 가서 보니, 길가 앞에 어린 나귀가 매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풀자, 거기 있던 사람들 가운데 사람이 어린 나귀를 풀어 무엇을 하려는 거요? 라고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대답하자,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나두었다. 제자들이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으니, 예수님께서 올라타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고,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연한 잎이 무성한 가지를 베어다가 겹겹이 깔았다. 그리고 앞에서 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찬송하십시오! 장차 우리 조상 다윗의 왕국은 찬송하십시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시어,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나니, 이미 때가 저물어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다

 

7 각주 1번과 2

 

7 각주의 1번과 2번을 읽겠습니다어린 나귀는 겸허와 온유를 의미한다. 겉옷은 사람들의 행위와 사람들의 행위에서 표현된 미덕들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타실 있도록 어린 나귀 위에 그들의 겉옷을 걸쳐 놓았고, 많은 사람은 그분께서 지나가실 있도록 그들의 겉옷을 길에 깔아 놓았다. 이것은 한편으로 그들이 그분을 존경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 미덕의 표현인 그들의 행위가 그분께서 안식하실 있는 자리이며, 그분께서 지나가실 있는 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행동과 행위는 주님을 위한 길을 닦는 것이어야 하며, 그분께서 안식하실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호산나의 의미는 기도하니 구하옵소서라는 뜻이다.

벳바게((Bethphage)

 

지금 보이는 곳이벳바게(Bethphage)’입니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이곳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벳바게입니다. 모든 능선 부분이 올리브 옆에 있는벳바게입니다. 이곳에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만든 예수 승천 교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방향으로 해서 성전으로 가셨다면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서 성전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벳바게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시작된 지점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입성을 환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벳바게와 베다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올리브산 기슭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1 1-2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벳바게에 먼저 들어가셨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비교해 벳바게의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합니다하지만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베다니를 거쳐 올리브 산에 있는 현재 벳바게로 알려진 곳을 반드시 지나가야 합니다. 현재 지금 있는 곳이 예수님께서 가셨던 합당한 루트라고 있는 곳입니다.

 

이제 우리가 채플교회로 가게 것인데 채플교회는 종려주일에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벳바게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는 행진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호산나 외치고 찬송했던 것을 재현하여 부활절 주일이 되면 예루살렘 성으로 행진하면서 종려나무로 축복하고 나뭇가지를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채플 교회

 

교회는 1883년도에 건축된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파괴된 교회 잔해 위에 다시 세워졌는데 주춧돌이 그리스도께서 밟으셨다고 추측되는 돌입니다. 주변에 많은 저수지( 저장창고) 무덤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잔해들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8세기까지의 잔해물로 밝혀졌는데 이런 것들이 당시 벳바게와 관련된 유물들입니다. 교회가 가톨릭 교회라는 것을 위에 있는 십자가 표시를 봄으로써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박힌 다섯 개의 상처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신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길을 14개의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여, 십자가에 표시를 남겨 두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섯 시간동안 십자가에 매달리셨는데 시간은 땅의 사람들로 인하여 그리고 시간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제물로서 고통 받으셨습니다.

사역의 메시지에서

 

사역의 메시지에서 호산나와 관련된 부분과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것에 관하여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1 9절과 10절은 이렇게 말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 안에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왕국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사람들이 외친 말은 시편 118 26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메시야의 오심에 관한 예언이었다. 이같은 선포는 주님이 번째 오실 반복될 것이다. 때에 시편 118편은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분이 번째 오실 그분은 나귀가 아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여리고가 아닌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다. 때에 개심한 유대인들은 이렇게 선포할 것이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님의 이름 안에서 오시는 이여! 11 9절과 10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날에 주님이 받게 환영의 미리 맛봄이며 예시이다. 그러나 가지 경우 모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그들의 메시야를 깨닫고 인식하는 있어서 원칙은 동일하다. (마가복음 라이프스타디 메시지 34)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안에 있음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유대로 가셨을 그분의 의도는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분을 가까이 따르는 자들을 그분과 함께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으로 이끌려는 것이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을 친근히 따르는 모든 자들을 대표했다. 아주 초기부터 이들 사람은 주님을 가까이 따랐다. 마가복음을 읽을 우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를 단계적으로 따랐다는 것을 본다. 결국 주님은 그들을 그분의 모든 것을 포함한 죽음 안으로 이끄셨다. 물론 그들이 주님과 함께 실지로 고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분의 죽음의 과정을 통과했다. 그들은 주님이 죽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준비하셨는가를 보았다. 그들은 또한 어떻게 그분이 자신의 죽음을 위해 환경을 준비했으며, 심지어는 어떻게 그분을 죽음에 넘길 그분의 반대자들을 준비했는가를 보았다. 더욱이 그들은 어떻게 주님이 체포되고,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심판받고, 이방인의 법에 따라 로마 정부에 의해 심판 받았는지를 보았다. 그들은 어떻게 그분이 모욕당하고, 핍박받고, 도살장으로 끌려간 양같이 끌려갔는지를 보았다. 그들은 어떻게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어떻게 그분이 여섯 시간 동안 그곳에 달려 있었는지를 보았다.

 

주님은 죽음을 통과하셨으며, 제자들도 그분과 함께 죽음을 통과했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은 실지의 고통을 받지 않은 것뿐이었다. 주님 자신은 몸소 죽음의 고통을 받으셨다. 반면에 제자들은 죽음의 과정을 통과했다. 물론 그들은 무덤에 묻히거나 음부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날들이 제자들에게 「무덤」이었다고 말할 있다. 우리는 또한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음부를 통과했다고도 말할 있다. 그리고 주님이 부활한 아침에 어떤 제자들은 무덤을 발견했으며 십자가에 박힌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했다는 것을 알았다. (마가복음 라이프스타디 메시지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