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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설교(52) 빌라도(마27:1-26) (작성자; 예레미야 박)

손진길 2024. 9. 9. 01:09

성경인물설교(52)  빌라도(27:1-26) (작성자; 예레미야 박)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이방인으로서 빌라도보다 유명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단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에 잠시 등장했을 뿐인데, 어찌 이토록 유명한 인물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마 기독교인들이 수시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에 ‘빌라도’라는 이름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책임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의아해 하는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무죄를 선고했고, 번이나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노력하는 , 예수님에 대해 어느 정도 동정심도 가지고 있었고, 호의를 베풀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비쳐지는데, 어떻게 해서 많은 적대자들 가운데 ‘빌라도’라는 이름만이 사도신경에 선명히 남아 있어,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에 의해 저주스러운 이름이 끊임없이 불려지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시간 우리는 이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총독 빌라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헤롯 대왕이 죽은 , 유대땅은 그의 유언대로 명의 아들들에게 분할 통치되었다. 로마제국은 이들에게 일부지역을 관할하는 분봉왕의 지위를 주었다. 가운데 헤롯 대왕이 직접 통치하였던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하게 분봉왕은 아켈라오였다. 그는 부친 헤롯대왕의 성품을 빼닮아 잔인했다. 아켈라오는 자신의 왕권 계승을 반대하는 유대인 3천명을 학살하는 무자비한 통치를 감행하다, 결국 AD6 아구스도 황제의 재판을 받고 고울지방으로 추방됨으로써 그의 통치는 짧게 끝나고 말았다. 아켈라오가 추방된 ,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은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를 위해 로마는 총독을 파견했는데,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파견된 총독이 바로 빌라도이며, 그는 유대에 파견된 5 총독이었다. 로마는 넓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황제 밑에 13명의 총독을 두고 식민지를 통치하고 있었다.

 

본디오 빌라도라는 그의 이름에서 우리가 발견할 있는 것은, 본디오 가문은 로마제국의 지방호족이었고, 빌라도라는 이름은 ‘창으로 무장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통해 , 로마제국 초기의 기사 가문 출신으로 어떤 군사적 업적을 인정받아 로마제국에서 이같은 지위를 누리게 것으로 있다하여튼 그는 A.D.26년부터 36년까지 10년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렸으며, 로마 총독으로서는 유일하게 예수를 직접 대면한 인물이다.

 

총독들은 평상시에는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로마의 직영 도시인 가이사랴에 머물러 있다가, 유월절과 같은 명절이나 폭력 사태가 발생될 것이라 우려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집결하는 예루살렘에 임시 총독 관저를 정하고 일정 기간 동안 머물곤 했다로마 총독은 대개 법률과 치안, 그리고 세금 징수 문제만 관장했으며 나머지는 대개 산헤드린 공의회를 통한 유대인의 자치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총독들은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많은 세리들을 고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A.D.6-7년에는 납세를 위한 대규모 인구조사를 실시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결과 시기에 갈릴리지방의 유다와 같은 사람들의 지휘 하에 많은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5:37 참조)

 

또한 총독들은 유대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유대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있는 권한도 갖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총독 빌라도는 그의 소유물 중에 대제사장의 의복도 포함되었는데, 빌라도가 절기에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 그는 의복을 가지고 가서 유대인들에게 빌려 주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심문했던 대제사장 가야바도 로마 총독에 의해 임명되어 18년동안 대제사장으로 재직하다 AD36 공직에서 물러났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과 직접 연관된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미움을 받은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았던, 무단통치를 일삼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하여 잠시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마가복음의 경우, 로마제국의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되다보니, 빌라도에 대해 다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빌라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그는 기사 가문 출신답게 무력을 앞세워 횡포를 일삼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총독 휘하의 군대 사령부를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그의 군대는 황제의 상과 함께 그들의 군기들을 거룩한 신의 도성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유대 백성들은 격앙하여 떼를 지어 가이사랴로 몰려가 그에게 유대인의 종교에 대한 이러한 횡포를 중지해 달라고 탄원했다. 닷새동안 고집을 부리다가, 그리고 폭동을 진압하려는 부분적 시도도 해본 마침내 빌라도는 굴복한 적도 있다. 전임 총독들은 이러한 문제가 가져오는 심각한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일은 되도록 피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자신이 계획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했으며 일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궁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 로마 신들의 이름과 형상이 새겨져 있는 금도금한 방패를 걸어 놓았으며, 유대인들의 극심한 상소에 따라 디베료 황제로부터 철수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그것을 치우기를 거부했다그는 상수도 건설을 위하여 성전의 금고로부터 돈을 빼앗았다. 이것은 차례의 폭동을 낳았고, 폭동은 폭도들뿐만 아니라 곁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학살하는 잔혹한 방법으로 진압되었다.

 

그리고 13:1 잠시 언급되어 있듯이, 빌라도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던 갈릴리 사람을 죽이도록 명령하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땅의 북쪽 갈릴리 지방 사람들은 남쪽의 전통적인 유대사람들에 비해 성품이 강렬했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의 점령에 가장 끈덕지게 저항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빌라도는 갈릴리인들의 지하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그들을 무참히 죽였고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다. 기록된 바에 의하면 로마 경비병은 관복을 입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갈릴리 사람을 곤봉으로 쳐죽였다고 한다.

 

이같은 일들로 야기된 긴장은 빌라도의 위치를 약화시켰으며, 유대인의 불만은 로마에 계속 전달되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켰던 유대왕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칼리굴라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빌라도는 ‘고지식하고 무자비하고 완고한 자’로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부패, 폭력, 강도, 학대, 억압, 불법적인 처형, 그리고 끊임없는 가장 가혹한 잔인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빌라도는 A.D.36 사마리아인들의 대학살 사건으로 인해 로마로 소환 조치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있는 것은, 먼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은, 평소 빌라도의 이같은 무자비한 성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거부하며, 자칭 왕이라 하고, 민중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한다는 죄목으로 고발하면, 쉽게 사형언도를 내릴 것으로 판단하고 빌라도에게로 몰려갔을 것이다.

 

한편,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 분명히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당시에 빌라도의 입지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민란이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이자,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무죄한 사람을 유죄판결하는 정치적 판결을 내리고 것으로 있다.

 

하지만, 빌라도는 무식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정치적인 역량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로마인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했고, 남의 말에 쉽게 부하뇌동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기간이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 기간이었다. 따라서 빌라도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예루살렘의 치안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다가, 유대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신 그에게 끌려오게 예수님을 대면하게 것이다.

 

유대인들이 발라도에게 예수님을 고소한 죄목은 모두 가지였다. 1)예수는 민중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 2)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했다. 3)자칭 왕이라고 했다.

 

사실 빌라도는 처음부터 예수의 사건을 다룰 마음이 없어, 때마침 예루살렘에 와있던 갈릴리 지방의 영주 헤롯 안디바에게 예수를 보내 그에게 일을 떠맡기려 했다빌라도는 번씩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처형을 요구하자, 때려서 놓으리라는 타협안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듯이, 아내의 말대로 예수의 판결에 대해 상관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압력에 무기력하게 무릎 꿇었다. 빌라도는 양심과 의협심에 순종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인 유익을 위하여 편의 위주로 처리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 순간 치명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빌라도는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예수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되었다.

 

지혜가 있으면 무엇하는가? 현명하면 무엇하나? 로마의 최고학문을 배우면 무엇하나? 권력과 재물과 기술이 있으면 무엇하나?

진실되게, 바르게, 공명정대하게 사용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무용지물이다. 바르게 쓰여지지 않는 지혜는 간사가 된다. 바르게 쓰여지지 않는 권력은 자신을 패가망신케 하고,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게 된다어찌 빌라도만 나무랄 있겠는가? 오늘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온갖 부정부패, 비리, 권력남용, 권모술수와 책임회피, 공갈협박, 무력, 테러...

 

우리는 빌라도를 통해 자신이 져야 책임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빌라도는 책임을 제사장들에게 그리고 헤롯에게 전가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면한 문제는 ‘내가 예수를 어떻게 하랴? 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무리 앞에서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어떤 물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히게 넘겨준 죄의 책임성을 씻어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처한 여러 어려운 현실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선택을 스스로 ,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찾지는 않았습니까? 사람 아담 이래로 인간은 자신의 죄를 남에게 전가하는 습성을 지녔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후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 어떤 핑계가 우리의 죄를 씻어낼 있을 같습니까?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빌라도의 우유부단함, 그의 소극성, 사특한 지혜, 권력 유지를 위한 권모술수는 예수를 죽였다. 백성의 고함 소리에 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3 밖에 잡아두지 못했다. 빌라도에게 고난 받은 것은 3일에 불과했다.

 

빌라도는 영원한 죄인이 되어 역사에서 물러갔으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사흘의 고난이 우리에게도 있을 있다. 어둠의 세력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믿음의 생활은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한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아야 한다. 그럴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축복이 넘칠 것이다. 믿음을 가졌기에 당하는 작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3일의 고난뿐이다. 짧은 고난이다. 8:18 이렇게 말한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

 

예수님께서 심판받기 위해 총독 빌라도 앞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시간 여러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옆에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심판하는 빌라도와 고함지르는 군중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멀찌감치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수님의 자리에서 한번 둘러보십시오. 어쩌면 예수님을 심판하는 순간, 진정으로 심문받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빌라도였을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 앞에서 재판받고 있는 것은 고함지르던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빌라도는 자신이 어떤 소리를 따라 가는 사람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양이 도살장으로 가는 것처럼 끌려오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이 깎는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듯이 주님도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심판자이시며 중재자이십니다.

 

오늘 여러분은 자신의 억울함, 고달픔, 배신감, 수고로움을 누구에게 호소하고 있습니까? 누가 심판해 주기를 바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까? 진정한 재판관, 최후의 심판자는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여러분의 문제를 내려놓으십시오. 주님께 호소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 앞에 모든 것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 주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면서도 민란을 두려워하여 십자가에 박히게 내어 나약하고 비겁한 인물. 예수를 사형토록 허락하고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손을 씻은 것으로 보아 약삭빠르고 직무에 무책임했던 사람. 아내의 지혜로운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아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물. 폭동을 일으킨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것으로 보아 잔학하고 반유대적 성향을 지닌 로마 총독.

 

빌라도의 말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단지 빌라도와 관련된 몇몇 전설들과 창작된 이야기만이 전해올 따름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자살로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