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창세기 제35장에서 야곱이 만나는 엘벧엘의 하나님과 축복의 언약의 회복(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13. 11:18

제목; “창세기 제35장에서 야곱이 만나는 엘벧엘의 하나님과 축복의 언약의 회복”(35:1-29)

설교일; 주후 202421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13일 화요일 작성)

 

창세기 제34장에는 참혹한 세겜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건의 근본원인은 여호와의 역사로 2번이나 목숨의 구원을 받은 야곱이 그 은혜를 완전히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간략하게 다시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야곱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결코 우호적이지 아니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부자가 되자 장인 라반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처자식을 거느리고 모든 가축을 이끌고 은밀하게 하란을 탈출합니다. 그렇지만 열흘만에 멀리 길르앗 산까지 자신을 맹추격해온 라반 일행에게 그만 꼬리를 잡히고 맙니다. 그날 밤 여호와께서는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해치는 경우에는 저주와 진노를 내리실 것이라고 하는 의미에서(12:3, 20:7, 28:13-15, 야곱은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임,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시대 그랄 평야의 주인 아비멜렉에 대한 여호와의 경고를 참조할 필요가 있음) 결코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고 야곱일행을 평안히 떠나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31:24). 그로 말미암아 야곱일행은 라반 일행과 길르앗 산에서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고서 그들과 무사히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31:55).

(2)  둘째로, 이제는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벧엘에 들러 여호와와 맹세한 서약을 지켜야 합니다(28:18-22);

그리고 가나안 남부에 살고 있는 부모님의 집으로 처자식을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켜야만 합니다(28:1-5). 그런데 야곱은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20년전 부모님의 집을 떠나올 때에 장자의 축복의 기도를 억울하게 동생 야곱에게 빼앗긴 쌍둥이 형 에서가 반드시 야곱을 죽이겠다고 결심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27:41).

1)   그 사실을 기억한 야곱이 사전에 형 에서의 행방을 수소문합니다. 그 결과 그가 고향을 떠나 처가동네 세일 산 에돔 들에서 호위대장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야곱은 사자를 파견하여 쌍둥이 형 에서에게 동생 야곱이 부자가 되었기에 이제는 세일 산으로 찾아와서 형에게 문안할 것이라고 말합니다(32:3-5). 그런데 급히 되돌아온 종들이 보고하고 있습니다. 숙적 에서가 부하 400명을 이끌고 군마로 북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32:6). 야곱은 그것이 바로 자신을 해치고자 급히 달려오고 있는 형 에서의 진격임을 알아채고 있습니다(32:7). 죽음의 위기가 다시 찾아오고 있습니다.

2)   야곱은 자신의 목숨과 처자식의 목숨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해보지만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완벽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밤새 고민에 빠진 야곱이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의 사자를 붙들고 부디 여호와의 은혜로 다시 한번 구원의 축복을 달라고 애원합니다(32:24-26).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앞으로는 세상적인 꾀로 살아가는 야곱이 아니라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주고 있습니다(32:27-30).

3)   그 결과 다음날 야곱일행에게 다가온 숙적 에서는 여호와의 역사로 그 마음이 180도로 변하여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극적인 화해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얼른 동생 야곱을 포옹합니다(33:4a). 그리고 97세의 노인이 된 에서는 눈물로 과거의 원한을 잊고 이제는 형제가 서로 상봉하는 감격의 순간을 동생 야곱과 맛보게 됩니다(33:4b). 그와 같이 야곱은 얍복 시냇가에서 여호와께 호소하여 목숨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무사히 숙적 에서와 화해하고 그에게 많은 가축 떼를 선물로 주고서 에서 일행을 세일 산으로 떠나 보내게 됩니다;

(3)  셋째로, 그와 같이 2번이나 목숨을 살려주었으면 그후 야곱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실한 종 이스라엘로 살아가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다음 2가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하나는, 벧엘로 가서 여호와께 맹세한 자신의 서원을 이행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가나안 남부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의 집을 찾아가서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신의 아내와 처자식을 부모님께 인사를 시켜야 합니다(28:1-5). 그 점을 조금 더 살펴봅니다;

1)   야곱이 믿음의 여인을 아내로 얻기 위하여 부모님의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북쪽 19km지점인 벧엘에서 비박하던 중에 여호와를 꿈속에서 만나 축복의 언약을 얻게 된 것입니다(28:10-15). 잠에서 깬 야곱이 언약의 상대방으로서 여호와께 서원의 맹세를 그곳에서 하고 있습니다(28:16-22).

2)   하란에서 여호와께서는 벧엘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여 야곱을 보호하시고 그에게 처자식과 많은 재산을 주셨습니다(31:7-13). 그러므로 야곱은 무엇보다 먼저 벧엘로 찾아가서 여호와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언약의 상대방으로서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한마디로, 세상적인 야망과 꾀로 살아가는 종전의 야곱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이제는 거듭난 성도의 삶을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3)   그 다음에는, 야곱이 하란에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있는 아내를 얻었기에 처자식과 함께 가나안 남부에 살고 있는 부모님의 집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로 말미암아 2차례나 목숨구원을 얻은 야곱은 그 두가지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참으로 여호와의 은혜를 세상적인 이익과 향락을 얻기 위하여 제멋대로 배신하고 마는 야곱입니다.

(4)  넷째로, 야곱은 얍복 시냇가의 물 좋고 목초가 풍성한 들판 숙곳에서 수년간 목축하여 형 에서에게 준 가축 떼를 보충하고도 남는 큰 부자가 되었기에 이제는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있습니다(33:17-18). 그때 그는 어이가 없게도 마치 그 옛날 처럼 가장 번성한 도시 세겜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도시의 사치와 향락을 맛보며 여한없이 살아가고자 결심하고 있습니다(13:10-13, 33:18).

1)   그러나 세겜은 그 옛날 소돔과 비슷한 죄악의 도시입니다. 세겜 성에서는 원주민 히위족속들이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남의 재산을 가로채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34:2, 23, 6:2-5, 19:4-9). 따라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의 화려한 여인들의 모습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그만 젊은 추장 세겜에 의하여 감금이 되고 성폭행을 당하고 맙니다(34:1-2).

2)   세겜 추장은 뻔뻔하게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부친 하몰을 야곱의 집으로 보내서 감언이설로 디나를 자신의 아내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34:8-12). 그것을 보고서 야곱의 아들들이 흉계를 꾸며서 세겜성의 히위족속 남자들을 쳐죽이고 그 성의 재물을 모조리 약탈하면서 여인들과 아이들을 전부 포로로 잡아오고 맙니다(34:25-29).

3)   세겜사건은 거룩한 여호와의 할례제도를 적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으로 사용한 나쁜 선례이며(17:10-14, 34:15-17, 24-26), 더구나 잘못을 범한 적에게 무자비하게 천 배 만 배로 보복하는 인간의 악한 심성의 발로입니다(4:24, 34:25-29);

그리고 세겜 성내의 재물을 약탈하고 여인들과 어린 자녀들을 모조리 포로로 끌고 오는 것은 악랄한 강도행위 그 자체입니다.

4)   세겜성 주변에는 원주민 가나안 족속브리스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히위족속의 복수를 하겠다고 연합하여 쳐들어오면 야곱의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34:30). 야곱은 절망에 빠져서 벧엘에서 언약을 맺은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구원을 호소합니다. 그 결과 그가 얻고 있는 구원의 길은 남행하여 속히 벧엘로 가서 그곳에 약속대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35:1).

5)   따라서 야곱일행은 과거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세겜을 떠나오면서 모든 우상과 귀고리를 상수리나무 아래에 파묻고 벧엘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탈출합니다(35:2-4).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족속브리스 족속에게 두려움을 심어서 결코 야곱일행을 추격할 수 없도록 만드십니다(35: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세기 제35장 본문의 말씀은 벧엘에서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저버리고 제멋대로 세상의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자 죄악이 심한 세겜성을 향하여 북상한 배은망덕한 인간 야곱과 그의 처자식을 여호와께서는 남쪽에 있는 언약의 장소 벧엘로 다시 불러서 어떻게 신실한 여호와의 청지기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만드시는가? 하는 그러한 주제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그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차제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하나님이 (32:9-12, 26-30, 다시 자신과 처자식의 목숨을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영광의 길이므로 그것은 올라가는 것임)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28:18-22, 네가 서원의 맹세를 한 그대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세탁하여 깨끗한 의복으로) 바꾸어 입으라(19:10-11).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난 날(27:41, 숙적 에서를 피하여 집에서 도망하던 야곱임) 내게 응답하시며(28:13-15),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31:7-13)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28:20-22, 신실하신 하나님께 내가 서원한 그대로 그곳에)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31:19, 라반의 드라빔을 포함하여) 모든 이방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21:6, 세상 종의 표시인)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사면(四面, 각 방면을 말함) (34:30, 원주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살고 있는)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12:8, 13:3, 14-17, 28:19) 루스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33:10, 27:41, 얍복 시냇가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해치려고 하는 악한 형 에서의 마음을 선하게 변화시켰을 때 그 얼굴을 보고서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음). 8. 리브가의 유모(24:59)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이름을 알론바굿(곡함의 상수리)이라 불렀더라(27:43-45, 49:31,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떠나 보낸 후 생전에는 다시 보지 못한 것으로 보임. 야곱은 드보라를 통하여 그 소식을 듣고서 더욱 슬퍼한 것으로 풀이가 됨).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그 옛날 야곱이 서원한대로 벧엘에 도착하자 비로소 하란에서 돌아온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 그것은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온 것과 같음, 15:17-24)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한 것을 말하고 있음, 18:1-5)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25:26, 상대방의 발꿈치를 잡아 넘어뜨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름임)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32:28,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곧 하나님의 축복으로 타고난 운명이 변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임, 그 의미는 거듭난 성도의 삶과 닮아 있음, 3:3-7)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17:1, 엘 샤다이) 생육하며(많이 낳고) 번성하라(많이 살아남으라). 백성(하나의 민족)백성들의 총회(나라)가 네게서 나오고(야곱의 자손들이 하나의 나라와 민족을 이루게 됨),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17:6, 외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왕들이 되어 그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임).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28:13),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18:1-5, 조부 아브라함 시대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하시고, 17:22, 18:33, 말씀을 마치신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 때와 같이 야곱을 떠나 올라가신 것임)”(35:1-1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하나님이 (32:9-12, 26-30, 다시 자신과 처자식의 목숨을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영광의 길이므로 그것은 올라가는 것임)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28:18-22, 네가 서원의 맹세를 한 그대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세탁하여 깨끗한 의복으로) 바꾸어 입으라(19:10-11).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난 날(27:41, 숙적 에서를 피하여 집에서 도망하던 야곱임) 내게 응답하시며(28:13-15),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31:7-13)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28:20-22, 신실하신 하나님께 내가 서원한 그대로 그곳에)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31:19, 라반의 드라빔을 포함하여) 모든 이방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21:6, 세상 종의 표시인)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사면(四面, 각 방면을 말함) (34:30, 원주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살고 있는)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35:1-5);

1)    참혹한 세겜사건을 경험한 야곱은 정신이 아찔합니다. 철이 없는 야곱의 아들들은 ①누이 디나를 욕보인 세겜성의 지배족 히위족속의 장정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②차제에 세상적인 탐욕에 눈이 멀어 그만 성안의 모든 재물을 약탈하고, ③여인들과 자녀들을 종으로 삼고자 포로로 끌어오고 맙니다. 그것을 보고서 야곱은 무력이 약한 자신들이 이웃 원주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연합하여 보복에 나선다고 하면 멸문지화를 당할 위기임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 위험에서 벗어날 세상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2)    따라서 다시 자신과 처자식을 부디 살려달라고 야곱이 벧엘의 여호와께 언약의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로써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세겜에서 방황하지 말고 빨리 서원의 장소 벧엘로 찾아가서 회개하는 심정으로 여호와를 만나서 살길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1). 야곱은 처자식에게 우상과 귀걸이를 전부 상수리나무 아래에 파묻고 정결한 마음과 깨끗한 의복을 갖추고서 거룩한 여호와를 벧엘로 가서 만나 속히 살길을 도모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2-3). 그대로 실천하면서 남쪽의 벧엘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야곱일행에게(4) 이웃의 원주민들이 기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5b). 그 이유는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그들을 두렵게 하여 막아 주셨기 때문입니다(5a).

(2)  6.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12:8, 13:3, 14-17, 28:19) 루스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33:10, 27:41, 얍복 시냇가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해치려고 하는 악한 형 에서의 마음을 선하게 변화시켰을 때 그 얼굴을 보고서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음). 8. 리브가의 유모(24:59)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이름을 알론바굿(곡함의 상수리)이라 불렀더라(27:43-45, 49:31,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떠나 보낸 후 생전에는 다시 보지 못한 것으로 보임. 야곱은 드보라를 통하여 그 소식을 듣고서 더욱 슬퍼한 것으로 풀이가 됨)”(35:6-8);

1)    그 옛날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여호와께 제단을 쌓은 곳이 바로 벧엘과 아이 사이입니다(12:8). 그래서 그런지 그 손자 야곱이 77세에 집을 떠나서 하란으로 갈 때에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꿈속에서 만나고 축복의 언약을 얻은 장소가 역시 벧엘입니다(28:13-19). 그곳에 도착한 야곱이 그가 일찍이 서원한대로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6-7). 자신을 지금까지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야곱이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야곱의 소원을 담고 있는 벧엘 제단의 이름이 엘벧엘인 것입니다(7). 그에 따라 그곳에서 야곱은 여호와의 현신을 만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9-10).

2)    그런데 야곱이 벧엘에 도착하여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있는 동안에 멀리 가나안 남부에서부터 한 노파가 그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모친 리브가의 유모였던 드보라입니다. 모친 리브가가 생전에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다시 만나기 위하여 학수고대를 하다가 그만 별세한 사실을 드보라가 야곱에게 알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운이 진하여 유모마저 그곳에서 별세하고 맙니다(8a). 그러자 야곱은 드보라를 벧엘 상수리나무 아래에 매장하면서 대성통곡합니다(8b). 그 이유는 생전에 야곱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준 모친 리브가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3)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그 옛날 야곱이 서원한대로 벧엘에 도착하자 비로소 하란에서 돌아온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 그것은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온 것과 같음, 15:17-24)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한 것을 말하고 있음, 18:1-5)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25:26, 상대방의 발꿈치를 잡아 넘어뜨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이름임)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32:28,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곧 하나님의 축복으로 타고난 운명이 변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임, 그 의미는 거듭난 성도의 삶과 닮아 있음, 3:3-7)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17:1, 엘 샤다이) 생육하며(많이 낳고) 번성하라(많이 살아남으라). 백성(하나의 민족)백성들의 총회(나라)가 네게서 나오고(야곱의 자손들이 하나의 나라와 민족을 이루게 됨),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17:6, 외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왕들이 되어 그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임).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28:13),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18:1-5, 조부 아브라함 시대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하시고, 17:22, 18:33, 말씀을 마치신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 때와 같이 야곱을 떠나 올라가신 것임)”(35:9-13);

1)    여호와께서는 언약을 중시하십니다. 따라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준 축복의 언약을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이행하십니다. 이제는 벧엘에서 서원한 야곱이 그 맹세를 신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에게 위기를 몰고온 라반과 에서를 여호와께서 물리쳐 주시면 그만 언약의 축복이라는 단물만 빨아먹고 서원의 이행이라고 하는 자신의 의무를 외면하고 맙니다. 야곱이 남쪽 벧엘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치와 향락의 도시 세겜으로 북상하고 만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2)    드디어 비극적인 세겜사건을 경험하고서 야곱이 처자식을 이끌고 비로소 벧엘로 찾아와서 그 옛날의 서원의 맹세를 지키고자 합니다(6-7).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비로소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라고 말씀하십니다(9a). 그리고 축복의 언약을 회복하여 주십니다(9b). 그 의미는 야곱이 북부 시리아 곧 밧단아람의 하란을 떠나 벌써 가나안 세겜에 와서 오래 살았지만 그 세월은 야곱이 언약의 상대방인 여호와를 찾거나 만나고자 한 행동이 결코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엘벧엘의 하나님이 회개한 야곱에게 주고 있는 축복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이름 야곱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승리하는 여호와의 선지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 20:7);

둘째, 이스라엘의 자손이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 여호와를 섬기는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역사를 섭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11a). 그 나라는 외세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왕이 되어 스스로 다스리는 국가입니다(11b). 셋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다는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2). 이상 3가지 축복의 말씀을 주신 후에 여호와께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13).

둘째로,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28:18),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28:19, 12-13, 그러나 그 옛날과는 한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음. 그것은 옛날에는 꿈속에서 나타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말씀하신 것임).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의 옛 지명으로 봄, 19)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30:24, 라헬이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이루지만 그 대신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 사랑하는 남편을 이별하는 라헬 자신의 슬픔을 부디 잊지 말라는 이름임)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야곱)는 그를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그를 애지중지하며 잘 양육하겠다는 의미임)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난산 끝에 객사를 하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2:18, 31:15, 라헬이 객사한 곳은 라마이며 야곱은 그 시신을 남쪽으로 운구하여 베들레헴 북쪽 입구에 안장한 것으로 보임),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지극히 사랑한 애처 라헬이기에 야곱이 그녀의 묘비까지 세운 것임)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2:8, 베들레헴 남부의 들판에서 주로 양떼를 치는데 그곳 언덕에는 양치기들이 양떼를 감시하는 망대가 있음)지나 장막을 쳤더라(떠돌이 호족인 야곱은 현지인들이 양을 치고 있는 그곳 에델 망대의 들판을 지나 그 남쪽 들판에서 잠시 가축을 치고자 한 것임).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혈기왕성한 장남)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30:3-4, 빌하는 자신의 뒷배가 되는 제2부인 라헬이 객사하고 말았기에 차기 족장인 르우벤과 결탁하고 몸을 섞은 것으로 보임)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하나님의 족장 이스라엘이기에 그 정보를 생전에 발설하지 아니하는 대신에 장남 르우벤을 결코 후계자로 삼지 아니함, 야곱에게는 아들이 12명이므로 지차 가운데서 차기 족장을 세우면 되는 것임, 49:2-4)”(35:14-22);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28:18),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28:19, 12-13, 그러나 그 옛날과는 한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음. 그것은 옛날에는 꿈속에서 나타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말씀하신 것임).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베들레헴의 옛 지명으로 봄, 19)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30:24, 라헬이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이루지만 그 대신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슬픔의 아들, 사랑하는 남편을 이별하는 라헬 자신의 슬픔을 부디 잊지 말라는 이름임)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야곱)는 그를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그를 애지중지하며 잘 양육하겠다는 의미임)이라 불렀더라”(35:14-18);

1)    여호와신앙을 회복한 야곱의 가정은 이제 거룩한 여호와의 선지자  이스라엘의 집안으로 살아가게 됩니다(9-15). 그렇지만 그 다음의 여정이 결코 세상적으로 만사형통인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 애처 라헬이 둘째 아들을 해산하다가 그만 객사하고 말기 때문입니다(16-18).

2)    벧엘에서 엘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의 예언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10-11). 그는 77세 때 벧엘에서 맹세한 자신의 서원을(28:21-22) 28년의 세월이 지난 그의 나이 105세에 비로소 실천하고 있습니다(14-15). 그런데 두가지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그 옛날에는 자신이 벧엘에서 비박하면서 베고 자던 작은 돌 베개를 제단으로 삼았지만 지금 여호와께 전제를 드리기 위하여 세우고 있는 돌은 꽤 큰 것입니다.

3)    또 하나는, 옛날에는 혼자서 먼 길을 가기 위하여 지니고 있는 길 양식 가운데 겨우 기름을 꺼내어 그 돌에 부어 전제를 드렸지만(28:18) 이번에는 부자이므로 그 큰 돌 제단에 기름도 많이 붓고 기타 전제물인 포도주도 흠뻑 붓고 있는 것입니다(14).

4)    그 일이 끝나자 야곱은 처자식과 함께 모든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남부에 살고 있는 부친 이삭을 만나기 위하여 남행길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벧엘에서 출발한 야곱 일행이 훗날 베들레헴으로 불리게 되는 에브랏에 이르기 훨씬 전 라마에서 라헬의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16-18). 그 이유는 둘째 아들을 생산하다가 라헬이 난산 끝에 졸지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5)    라헬은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 야곱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너무나 억울하고 슬픕니다. 따라서 야곱에게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여 달라고 아기의 이름을 슬픔의 아들 베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8a). 하지만 야곱은 그녀가 숨을 거두자마자 아기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고쳐 부르면서 자신의 오른팔로 삼을 것이니 부디 평안히 눈을 감으라고 위로하며 애처 라헬과 이별하고 있습니다(18b).

(2)  19. 라헬이 죽으매(난산 끝에 객사를 하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2:18, 31:15, 라헬이 객사한 곳은 라마이며 야곱은 그 시신을 남쪽으로 운구하여 베들레헴 북쪽 입구에 안장한 것으로 보임),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지극히 사랑한 애처 라헬이기에 야곱이 그녀의 묘비까지 세운 것임)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2:8, 베들레헴 남부의 들판에서 주로 양떼를 치는데 그곳 언덕에는 양치기들이 양떼를 감시하는 망대가 있음)지나 장막을 쳤더라(떠돌이 호족인 야곱은 현지인들이 양을 치고 있는 그곳 에델 망대의 들판을 지나 그 남쪽 들판에서 잠시 가축을 치고자 한 것임).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혈기왕성한 장남)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30:3-4, 빌하는 자신의 뒷배가 되는 제2부인 라헬이 객사하고 말았기에 차기 족장인 르우벤과 결탁하고 몸을 섞은 것으로 보임)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하나님의 족장 이스라엘이기에 그 정보를 생전에 발설하지 아니하는 대신에 장남 르우벤을 결코 후계자로 삼지 아니함, 야곱에게는 아들이 12명이므로 지차 가운데서 차기 족장을 세우면 되는 것임, 49:2-4)”(35:19-22);

1)    라헬이 베냐민을 해산하고 난산 끝에 죽음을 당한 장소가 라마입니다. 그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와 사도 마태가 그들의 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31:15, 2:18). 라마는 예루살렘 북방 20리 지점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녀의 시신을 운구하여 남행합니다. 그리고 3일째가 되자 40리나 남행하여 에브랏으로 불리고 있는 베들레헴 북쪽 지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애처 라헬의 장례식을 행하고(19) 그녀의 무덤에는 특별히 묘비까지 세우고 있습니다(20).

2)    베들레헴을 떠난 야곱이 부친 이삭을 만나기 위하여 남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27). 그리고 비옥한 들판을 가진 베들레헴 남부 에델 망대를 지나자 그 남쪽에서 한동안 먼 길에 지친 양떼를 치고 있습니다(21). 그런데 야곱의 애처 라헬이 죽고 나자 그 집안에서는 새로운 정치적인 권력의 이합집산이 발생하게 됩니다. 라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제1부인 레아의 소생인 장남 르우벤이 차기 족장이 될 확률이 농후합니다.

3)    따라서 라헬이라고 하는 든든한 뒷배가 사라진 야곱의 제1첩인 빌하가 에델 망대 남쪽 들판에서 아주 위험한 정치적인 모험을 감행하고 있습니다(22a). 차기 족장이 르우벤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그와 결탁하면서 아예 몸까지 섞어버립니다(22b). 그 둘은 이제 일심동체가 되어서 족장 야곱 이후에는 집안의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자 획책한 것입니다.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진 남녀 간의 제휴이지만 그 정보는 족장인 야곱의 귀에 그대로 들어오고 있습니다(22c);

4)    그만큼 부자이며 족장인 야곱의 권력과 정보수집능력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야곱에게 은밀하게 보고하고 있는 충직한 수하들의 정보수집활동에서 그 두사람이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한 불륜과 패역의 첩보를 듣고서 야곱은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보통 족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인 족장 이스라엘입니다. 따라서 그는 수하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생전에 그 일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패륜으로 부친의 침상을 더럽힌 장남 르우벤을 결코 차기 족장으로 세우지 아니합니다. 그 대신에 지차들 가운데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차기 족장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22d). 훗날 야곱 집안에 엄청난 불행이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37:3-4, 28-35).

셋째로,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한) 르우벤과 그 다음 (세겜사건에서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 시므온과 레위(4남인)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야곱이 끔찍하게 사랑한 애처)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간통사건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눈 밖에 나게 된) 빌하의 아들들은 (훗날 가나안 땅 기업분배에서 위험지역 곧 블레셋의 북쪽국경에 배치가 되며, 49:16-17, 그들이 멀리 북방으로 이주하여 국경도시 단에 살게 되지만 그곳에 금송아지 우상이 세워지게 되는 것임, 왕상12:28-30) (갈릴리 호수연안과 그 북방에 살게 되며 그곳에서 먼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름다운 소리로 이방지역에 널리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임, 49:21) 납달리,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49:19, 훗날 용맹하여 요단강 동편 좋은 목초지를 일찍 분배 받게 되는) (49:20, 지중해 연안의 좋은 땅을 분배 받게 되는)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다만, 베냐민의 경우에는 하란이 아니라 가나안 중부지역 라마에서 태어난 것임, 16-19).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마므레 에브론에 막벨라 굴이 있고 그 주변의 밭이 아브라함 소유임, 23:16-20, 25:1-7, 그러므로 그곳에 그 옛날 부친 아브라함에 이어 다시 이삭이 집을 지은 것으로 보임)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야곱은 77세에 부모의 집이 있는 브엘세바를 떠난 것임. 이제 야곱이 105세가 되어 가나안에서 부친 이삭을 만난 곳은 헤브론임. 그러므로 그 사이에 이삭이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주한 것임. 그 이유는 일편단심으로 사랑한 아내 리브가가 죽자 그녀를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그때부터 그곳 헤브론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임, 49:30-31). 28. 이삭의 나이가 180(야곱은 그의 나이 105세에 헤브론에서 165세인 부친 이삭을 만났음. 이삭은 차남 야곱가족과 15년을 함께 지내다가 180세에 향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임).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여긴 때는 이삭 나이가 137세 였음, 27:1, 그때 야곱이 77세였기 때문임)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차남 야곱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호와께서는 이삭을 오래 살게 하신 것임. 다만 남편을 속이는데 앞장을 선 리브가에 대해서는 생전에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처벌이 있은 것으로 보임, 35:8), 자기 (믿음의 조상인)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삭)(믿음의 열조들이 훗날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잠들어 있는 막벨라 굴에, 49:29-31, 5:26-29, 11:16) 장사하였더라”(35:23-29);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한) 르우벤과 그 다음 (세겜사건에서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 시므온과 레위 (4남인)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야곱이 끔찍하게 사랑한 애처)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간통사건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눈 밖에 나게 된) 빌하의 아들들은 (훗날 가나안 땅 기업분배에서 위험지역 곧 블레셋의 북쪽국경에 배치가 되며, 49:16-17, 그들이 멀리 북방으로 이주하여 국경도시 단에 살게 되지만 그곳에 금송아지 우상이 세워지게 되는 것임, 왕상12:28-30) (갈릴리 호수연안과 그 북방에 살게 되며 그곳에서 먼 훗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름다운 소리로 이방지역에 널리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임, 49:21) 납달리,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49:19, 훗날 용맹하여 요단강 동편 좋은 목초지를 일찍 분배 받게 되는) (49:20, 지중해 연안의 좋은 땅을 분배 받게 되는)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다만, 베냐민의 경우에는 하란이 아니라 가나안 중부지역 라마에서 태어난 것임, 16-19)”(35:23-26); 야곱은 22첩에게서 12아들을 얻고 있습니다. 훗날 그들이 각각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이 됩니다. 그와 같은 미래를 예지하고서 죽기 전에 이스라엘이 12아들에게 축복의 예언을 행합니다(49:1-28). 그 내용을 참조하여 12아들에 대하여 잠시 살펴봅니다;

1)    첫째, 야곱의 아들 12명 가운데 절반이 제1부인 레아의 소생입니다. 그 가운데 장자인 르우벤은 비록 출중하지만 패륜을 행하였기에 일찌감치 차기 족장으로서는 불합격자입니다(22, 49:34).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는 비극적인 세겜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들이기에 진작에 족장 야곱의 눈 밖에 나 있습니다(34:25-26, 49:5-7). 4남 유다와 그 아우인 잇사갈 및 스불론 가운데 족장 야곱이 눈 여겨보고 있는 아들은 유다입니다.

2)    그 이유는 유다의 여호와신앙과 합리적인 판단력 및 설득력이 차기 지도자로서 돋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38:1, 26, 43:8-14, 49:8-12). 그래서 그런지 17세의 요셉이 상단에 노예로 팔려서 애굽에 끌려간 후 22년이 지나 애굽에서 이복형들을 만나게 되는 그때까지 다른 형제들이 가나안에서 지낸 행적에 대해서는 모세가 오로지 창세기 제38장에서 유다의 가정이야기만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호와신앙의 본이 되는 아들이 바로 가나안에서는 유다인 것입니다.

3)    둘째, 야곱이 일편단심으로 사랑한 애처가 라헬이며 그 소생이 요셉과 베냐민입니다(24).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던 그 편애를 가지고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게 된 10명의 이복형들이 두사람을 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야곱의 편애를 받고서 우쭐대고 있는 인물이 17세의 청소년 요셉입니다. 야곱이 차기 족장에게 어울리는 채색 옷을 유일하게 11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37:3).

4)    그 때문에 이복형들의 배신으로 요셉이 상단에 노예로 팔려서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37:28). 부친 야곱은 다른 아들들의 거짓보고를 듣고서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고서 통곡합니다(37:33-34). 그렇지만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애굽에서 만나게 된 이스라엘은 그를 크게 의지합니다. 그리고 임종을 맞이하여 요셉에게 영적인 지도자 곧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는 축복의 예언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49:22-26).

5)    셋째, 야곱의 제1첩인 빌하의 소생이 단과 납달리입니다(25). 빌하가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하여 장남 르우벤과 통간한 사실을 야곱이 결코 잊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소생인 단과 납달리의 자손들도 훗날 험악한 지역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단은 가나안 땅에서 용맹한 블레셋 족속의 북쪽국경에서 살다가 가나안 북쪽 국경으로 내쫓기고 맙니다. 그렇지만 국경도시 단에 훗날 이스라엘왕국의 우상 금송아지 제단이 생기고 마는 것입니다(왕상12:28-30).

6)    납달리의 자손들은 갈릴리와 그 북단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지역이므로 지리적으로 괄시를 받는 곳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곳에서 북방 이방인들에게 전파가 됩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이 납달리 후손들에게 주고 있는 미래의 예언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는 훗날 복음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49:21, 9:1-2).

7)    넷째, 야곱의 제2첩인 실바의 소생이 갓과 아셀입니다. 복과 기쁨이라는 그들의 이름의 뜻에 걸맞게 훗날 두 지파가 얻게 되는 땅이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갓 지파는 전쟁에 능하여 훗날 요단강 동편에서 좋은 목초지를 얻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49:19, 32:34-35). 그리고 아셀의 자손은 훗날 지중해 연안의 땅을 얻어서 어업생산과 농업생산이 다같이 풍성합니다(49:20);

(2)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마므레 에브론에 막벨라 굴이 있고 그 주변의 밭이 아브라함 소유임, 23:16-20, 25:1-7, 그러므로 그곳에 그 옛날 부친 아브라함에 이어 다시 이삭이 집을 지은 것으로 보임)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야곱은 77세에 부모의 집이 있는 브엘세바를 떠난 것임. 이제 야곱이 105세가 되어 가나안에서 부친 이삭을 만난 곳은 헤브론임. 그러므로 그 사이에 이삭이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주한 것임. 그 이유는 일편단심으로 사랑한 아내 리브가가 죽자 그녀를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하고 그때부터 그곳 헤브론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임, 49:30-31). 28. 이삭의 나이가 180(야곱은 그의 나이 105세에 헤브론에서 165세인 부친 이삭을 만났음. 이삭은 차남 야곱가족과 15년을 함께 지내다가 180세에 향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임).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여긴 때는 이삭 나이가 137세 였음, 27:1, 그때 야곱이 77세였기 때문임)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차남 야곱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호와께서는 이삭을 오래 살게 하신 것임. 다만 남편을 속이는데 앞장을 선 리브가에 대해서는 생전에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처벌이 있은 것으로 보임, 35:8), 자기 (믿음의 조상인)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삭)(믿음의 열조들이 훗날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잠들어 있는 막벨라 굴에, 49:29-31, 5:26-29, 11:16) 장사하였더라”(35:27-29);

1)    남행한 야곱이 예루살렘 남방 30km에 위치하고 있는 헤브론으로 가서 부친 이삭을 만나게 됩니다(27a). 참고로, 당시의 헤브론은 달리 기럇아르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복민족인 헷족속의 거인 아르바와 그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는 성읍이기 때문입니다(27b). 그때 야곱의 나이가 105세이며 부친 이삭의 나이는 165세입니다. 이삭의 향년이 180세이므로 15년간 야곱은 부친 이삭을 모시고 헤브론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28-29).

2)    당시에 쌍둥이 형 에서는 세일 산 에돔 들에서 장인 아나 족장의 큰 재산을 지키는 호위대장으로 일하고 있으므로 헤브론 부친의 집에는 거의 들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32:3-6, 36:24-25). 하지만 부친 이삭의 재산은 장남 에서가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친 이삭이 별세하자(29) 에서는 빈집만 동생 야곱에게 주고 기타 모든 재물을 가지고 아예 세일산으로 완전히 이주하고 마는 것입니다(36:6-8).

결론적으로, 야곱은 엘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는 더 이상 세상적인 꾀와 지혜로 남을 이기고자 하는 야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여호와를 진실하게 섬기는 이스라엘로 살아가고자 벧엘에서 결심합니다;

그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어떠한 이스라엘의 영광이 야곱에게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훗날 야곱이 애굽에서 총리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족보에 편입하면서 아들 요셉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22. 내가 네게(요셉의 자손들에게) 네 형제(나머지 11지파)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48:22).

본문에서는 세겜에서 겨우 도망친 야곱일행이 벧엘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축복의  언약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훗날 헤브론에 살면서 그곳의 들판은 물론 가나안 중부 세겜과 그 이북 도단까지의 초지를 전부 지배하고 있습니다(37:12-17).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손수 이방인들에게 보여주고 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야곱과 그의 처자식에게 이 세상에서도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임을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훗날 애굽에서 생활하게 되는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여호와신앙인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자신의 유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굽 총리의 부친으로 살다가 세상나라 애굽의 명당에 묻히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와 달리 믿음의 열조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부활하여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고자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막벨라 굴에 자신을 안장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여호와신앙의 모습이 애굽의 총리인 요셉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말씀의 서론이라고 볼 수 있는 창세기의 결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20. 당신들은 나를(요셉을)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하나님의 뜻은 만민구원이다) 하셨나니”(50:20),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110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50:25-26).

요컨대, 이 세상에서 만민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신앙을 끝까지 전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만민구원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영생구원의 소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생구원의 복음을 스스로 실천하고 소망하는 일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소망과 믿음이 풍성한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