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성경공부에 이끌리어 결국 목사가 되다(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5. 8. 19:20


“성경공부에 이끌리어 결국 목사가 되다”(토담 손진길 작성)

 

Open Bible Study 교재 제7권의 제목을 예언과 성취’라고 결정을 하고 나서 선지서 에스겔과 요한복음에 관한 성경공부 교재를 저술한 것이 벌써 5년쯤 전의 일입니다그때는 제가 시드니에 장기 체류하면서 일단 목회자가 될 수 있는 소정의 신학공부를 2009년도에 모두 끝내고 SCD가 인정하는 공동학위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점입니다무려 1년 가까운 오랜 기다림이 있은 후에드디어 시드니신학대학(Sydney College of Divinity)에서 인정하는 공동학위 Bachelor of Theology’를 2010년도에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가족이 2001년도에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옮겨가지 아니하였더라면 2002년쯤에 저는 벌써 그 학위를 오클랜드대학교(신학과)’에서 받았을 것입니다당시 총 18과목만 이수하면 ‘뉴질랜드 내 신학교 학점 공동관리제도’인 일종의 Consortium’에 의하여 BTh’학위를 수여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당시 2000년말에 저는 벌써 전공과목 7과목과 교양과목 4과목을 이수를 해놓은 상태에서 그만 호주로 재 이민의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그 이면에는 목회자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저의 마음가짐이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그 때문에 뒤늦게 호주 시드니에서 신학사 과정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호주에서는 학제가 달라서 무려 2년반을 더 공부하여 전공과목만 24과목을 모두 채우고 나서야 비로서 졸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참으로 매를 먼저 맞았으면 덜 아플 뻔 했습니다.  

더 먼 옛날을 회고해보아도 저의 경험은 비슷합니다제가 서울공대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1974년 말에도 분명 그러했습니다시골 소도시 출신인 저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여 고때에 6년제 의과대학으로 진학하려는 생각도 애초에 접었던 사람입니다. 1970년대는 한국정부가 경제개발과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므로 공대를 일찍 졸업하고 현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 꽤 대우가 좋았습니다당시에는 취업이 되느냐 아니 되느냐를 고민하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어느 정도의 좋은 대우를 받으며 채용 스카우트에 응하는가를 생각했던 좋은 시절입니다그러므로 저와 함께 서울대학교 기독학생회에서 활동을 했던 당시 총단의 임원들이나 단과대학의 기독학생회장들이 줄줄이 신학대학원으로 진학을 할 때에도 공대출신인 저는 좋은 직장을 얻어서 현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래도 목회자의 길을 아예 외면하는 것이 기독학생회 임원으로서 다소 신앙양심에 찔렸던지 저는 당시 지도목사님이셨던 오대원(David E. ROSS) 선교사님을 찾아가서 저의 고민을 상담했습니다그 어른의 답변이 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던 사람입니다그래서 별다른 미련이 없이 가난한 한국 땅에 1960년대초에 선교사로 올 수가 있었습니다그렇지만 별로 누려본 것이 없는 가난한 한국의 시골출신 대학생에게 신학대학원으로 직행을 하라고 하는 것은 쉽게 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군요한번 나름대로 자신이 전공한대로 살아보시고 그리고 누려보십시오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그 도중에 반드시 부르심이 있을 것입니다그때 사명을 감당하시면 됩니다.

제가 목회자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0년부터입니다. 1975년초 대학졸업과 동시에 신학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더라면 1980년을 전후하여 이미 목회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그렇지만 저의 인생은 그러하지를 못했습니다대학졸업을 앞두고 오대원 선교사님과 상담을 하던 그때로부터 따지면 무려 35년의 세월이 지나간 후입니다그 동안에 직장을 두 군데나 다녔습니다한국전력 원자력부와 국회사무처입니다전공도 세 가지였습니다핵공학과 행정학 그리고 정치학입니다그리고 몇 가지 고시공부를 한다고 사회과학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은 것도 꽤 되는 것 같습니다특히 1981년 국회사무처에 사무관으로 들어가서 1994년에 그만둘 때까지 14년 동안의 세월은 저에게 국가정책을 검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와 정치학과 안보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제공해주었습니다그렇게 많은 공부를 하는 동안에 저는 하나님께 묻곤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공부를 시키셔서 도대체 어디에다가 모두 사용하시려고 하십니까?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제가 지금 생각을 해도 도무지 무엇에 이끌렸는지 확실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 채이상한 선택을 하고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난 1995년도입니다.

1992년말부터 일반이민이 뉴질랜드에서 실시가 되었는데 특히 1995년도에는 그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제가 잠시 다니고 있었던 오클랜드 남부의 어느 조그만 한인교회에서는 그렇게 많이 들어오는 성도들을 수용하여 제대로 성경공부를 시킬 수 있는 준비가 부족했습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출신이었던 저는 이민을 가면서 옥한흠 담임목사님의 성경공부교재를 모두 가지고 함께 이민을 갔습니다그 교재를 지니고 이민을 왔기 때문인지 저는 그만 성경공부반 인도자로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저는 서울에서 그 동안 10년간이나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매주 구역의 다락방모임에서 옥 목사님이 저술했던 그 교재로 성경공부를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오클랜드의 교민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몇 개월이 지나지 아니하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뉴질랜드 이민을 와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긴 성도님들이 그만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옥 목사님의 평신도 성경공부교재가 좋기는 한데 두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첫째교재의 내용이 목사중심교회중심의 강론이라는 것입니다둘째왜 질문만 많이 하고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설명이 거의 없느냐는 것입니다그러한 점을 보강하여 성경공부를 계속하자는 것입니다어쩔 수 없이 저는 교안을 나름대로 만들어가면서 성경공부를 계속 인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성경공부를 하고 또 Open Bible Study교재를 만들면서 OBS성경공부반을 운영하는 등 그렇게 지내오고 있습니다교회 내에서 성경공부반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 자신 신학교를 졸업하다가 보니까 저도 모르게 이미 제가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저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은 과연 무엇일까요그 예언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요어릴 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어린아이였을 때에 경주시내에서 한 사람의 도인이 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다짜고짜 저의 부모님에게 꼬마인 저를 자신에게 맡길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그 이유는 이 아이가 장차 ‘금석지문’(金石之文)을 해석할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저의 유년시절 아주 오래된 기억입니다저는 한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금석지문을 해석할 수는 여전히 없습니다다만 제가 공부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이치에 비추어서 신구약 성경의 내용을 음미하고 묵상하고 있을 뿐입니다그리고 그 깨달음을 가지고 현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자신과 이웃의 삶을 그 깨달음이 어떻게 변화시켜나가고 있는지도 함께 살피고 있습니다.

그와 동일한 입장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그가 유배와 있는 바벨론의 땅에서 동족들의 미래와 이방제국의 미래를 조명하고 있습니다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예언은 특이합니다; 에스겔 제37장에서 ‘마른 뼈들의 부활사건’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에스겔 제40장에서 제47장까지에서는 ‘새로운 예루살렘과 성전’의 엄청난 규모와 그 역할에 대하여 상세하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대목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일부 실현이 되고 있지만 아직 종말론적인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예언들입니다그러므로 에스겔이 말하고 있는 부활’과 새 예루살렘 성’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님의 강림으로 어느 정도 성취가 되고 있는 지를 따져보는 작업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참고로성경말씀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요한계시록 끝부분을 보게 되면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진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완성이 되고 있습니다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천국이 이 땅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21:1). 구체적으로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21:2). 마치 예수님의 신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강림을 하고 있습니다그때는 이미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와서 천년왕국도 건설하고 사탄과 악한 영들 그리고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모두 평정하고 난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새 예루살렘 성에는 몇 가지 없는 것이 있습니다첫째주위환경을 둘러보게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창조가 되어 있는데 바다가 사라지고 없습니다(21:1). 둘째애통함과 눈물이 사라지고 없습니다(21:4). 셋째해와 달이 비추고 있는 세상이 사라지고 없습니다(21:23, 22:5). 그 대신에 해와 달을 만드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큰 빛으로 24시간 비추고 있습니다넷째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그 성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오로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 있습니다(21:27).

끝으로놀랍게도 예루살렘 성전이 사라지고 없습니다성전의 자리에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을 뿐입니다(21:22). 그러므로 옛 땅에 대한 기억들 곧 에덴동산과 성막과 성전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그와 더불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였던 동쪽 문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3:24, 27:13-17, 43:1-5).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예루살렘 성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각 세 개씩의 출입문이 존재하고 있습니다모두 열두 대문입니다.

그리고 각 대문 가까이에는 기초석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열두 대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21:12). 열두 기초석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21:14). 책이 아니라 돌에 새겨져 있는 열두 사도의 이름은 더 큰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일찍이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주셨을 때에 가장 중요한 말씀의 취지를 십계명으로 적어서 돌판에 새겨주신 하나님이십니다(34:28). 그 돌판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열두 기초석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어쨌든 전체적으로 천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묵상해본다면몇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유대교의 선민사상과 유대인들의 민족우월주의 그리고 하나님 독점주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단지 열두 대문에 열두 지파의 이름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그들이 꿈꾸어오던 성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습니다그리고 그들이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나사렛 예수가 부활하여 하나님의 보좌 오른 쪽에 어린 양으로서 자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둘째로그들만이 들어가기를 원했던 성전의 동쪽 문이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들어가기 쉽도록 사방에 열두 대문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물론 그 옛날에도 성전의 동쪽 문으로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성전 안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그 이유는 이방인을 위한 뜰에 머물러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방인들은 성전의 뜰에서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만 할 수가 있습니다(왕상8:41-43).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 제도를 없애버리시고 있습니다요컨대예수님의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첫째성전의 뜰을 기도하는 공간으로 깨끗하게 만들고 있습니다(2:14-17). 둘째이방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2:19-22). 실제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역사는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셋째구체적으로 예언을 하시고 계십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8:11), 넷째자신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 성을 만들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로 접근할 수 있는 대문을 열두 개나 만들고 있습니다(21:13). 이방인 성도들이 물밀듯이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21:26).

결론적으로그와 같은 사실을 전하고 그 성취를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른 바 예수님의 기쁜 소식 곧 복음이라고 하겠습니다저는 새로운 창조를 말하고 있는 그 복음의 의미가 좋아서 그것에 심취를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복음이 살아서 숨쉬며 그 예언이 성취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라는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을 하다가 보니까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있습니다한 마디로제 생각과 고집대로 성취가 된 것은 별로 없는데 주님의 생각과 뜻대로 제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그래서 제 인생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그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없는 가장 큰 성취가 그 가운데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지금 이국 땅에서 환갑과 진갑을 지난 나이에 나그네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주후 2014 9월 뉴질랜드 로토루아에서,

토담 손진길 목사가 다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