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제2장 주석(요약자; 인내로 결실하는 자)
====2:1
여호와의 사자가 갈길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
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 여기 이른바 "여호와의 사자"(*
)는 실상 여호와 자신이시다. 그것은, 그가 친히 "내가 너희를...내
가...내가"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가 그 자신이심을 밝
히신 말씀이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자신으로서 구약 시대에 제시(提示)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 3:1에는"언약의 사자"(*
)라고 하였으며, 히 3:1에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하였다.
"길갈"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가나안의 산악지방을 정복할 동
안 머물렀던 근거지이다. 그리고 "보김"은 "벧엘"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70인역(LXX)
은 "보김"이란 땅 이름에 "벧엘"(* )이란 말을 첨부하였다. "보김"은 "벧
엘"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
렸"기 때문이다(5 절). 전에는 법궤가 길갈에 있었지만(수 5:9), 이 때에는 벧엘로 옮
겨진 것이 사실이다(20:26-27).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
는 것일까? 이는 "길갈"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割禮)로 언약을 확고히 하신 그
가(수 5:9, 13-15) 이제 "보김"에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가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
신 대로(창 13:14-15) 그들을 인도하여 그 땅을 주신 것은, (1) 그의 진실성을 증명하
며, (2) 그의 구원의 능력을 실증하며, (3) 그의 사랑을 보여준다(사 43:1-4). 그러므
로 그는 절대로 믿을 만한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만큼 그가 친히 그들의 하나님
이라고 하시는 내용(창 17:8)의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니, 죄인들
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자비는 무궁하시다. 애 3:22참조.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
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 하나님께서 일찌기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에게 가나안 민족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여 주셨다(출 23:32-33, 34:12, 16;
신 7:2; 수 23:12-13).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족속과 교
류하며, 그들의 우상 숭배를 용납하는 의미에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 제단을 파괴해야 된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나안 족속의 제단을 파괴하려면 전쟁의 강한 정신이
요구된다.
오늘날 기독자들이 이 세상의 그 무엇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그에게 우상이다. 그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것도 전쟁하는 심리로만 할 수 있
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해야 된다고 가르친다(히 12:4).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하여는 희생, 용기, 결단, 수고, 또는 죽음까지라도 각오하는
심각한 전투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세우는 경우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 민족들을 이
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어 주시지 않겠다고 이미 경고하신 바 있었다(수 23:12-13). 여
기 이른 바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란 말은 그들이 죄를 용납한 결과로 당하게 될
화(禍)를 의미한다. 기독교인들도 죄와 싸우지 않는 때에 그 죄가 가시처럼 그들을 괴
롭히며 덫처럼 그들을 잡아 거꾸러지게 만든다.
=====2:4,5
하나님("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지적하시고(2절), 그들이 그
불순종한 죄값으로 가나안에서 화를 당하게 되리라고 선포하실 때에 그들은 저희의 죄
를 뉘우치고 큰 소리로 울었다.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위로 임하신 영(靈)이시니 만
큼 그들의 심령에 압도적으로 큰 충격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들도 통회하
지 않을 수 없었고, 그곳 이름을
"보김"(* ), 곧 우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으니,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속죄제(贖罪祭)였을 거
싱다. 그들이 통회(痛悔)한 것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한 저
희의 죄악을 원통히 여기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은 죄악 문제에 대한 해결책, 곧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속죄의 제도에 순종
한 신앙인 것이다. 기독 신자들도 그들의 죄악 문제에 대하여 원통한 느낌을 가지는
것만으로 해결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로 만
족한 회개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회개하고 믿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믿음을 오
래 동안 지속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씨 뿌리는 비유에 있어서 돌밭에 뿌리운 씨의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곧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쉽게 말라버림과 같은 것이다(마
13:20-21). 또한 가시떨기에 뿌리운 씨와 같다고도 할 수 있으니, 곧 말씀을 듣고 반
응을 보이다가 세상 염려 때문에 결실하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마 13:22). 참된 경건
은 좋은 밭에 뿌리운 씨와 같아서 인내로 결실하는 것이다(눅 8:15).
=====2:6-10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또 하나님의 기적적 구원을 목도한 지도자들("장로
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호와를 잘 섬겨왔다. 이 사실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
는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교회에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이
란 것은 인간적인 어떤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적 운동은 하나님
의 영력의 간섭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적 능력도 인간의 역사
를 통하여서 실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롬 10:17 에는 말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
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
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세우신 기관은 역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도하시며 다스리심에 있어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이유
가 무엇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고 천사들을 통하여 각 개인을
지도하신다면 더욱 더 효과적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별히 세워서 자
기 백성을 위해 영적으로 더욱 유력하게 일하시는 방면이 있다. (1) 그것은, 지도자를
모본으로 세워주셔서 그들의 신앙 생활이 구체화되도록 함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연약한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영력을 받아 구원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용기를 얻는다. 성경은 확실히 이 방면을 제시하여 준다. 곧, 성경이 우
리에게 기도의 용기를 주기 위하여 말씀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
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
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하였다(약 5:17-18). (2)하
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또 한가지 이유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한 체휼(體恤)
때문이다. 지도자의 눈물이 피지도자들의 눈물을 발생시키고, 지도자의 사랑의 수고가
지도를 받는 자들의 마음 속 깊이에 아름다둔 덕행의 동기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오직
인간인 지도자를 통로(通路)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사들은 고난 당하는 일도
없고 눈물도 없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 (10 절 상반) 곧,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뜻이다. 정통 학자들 중에서 이 문구를 내세(來世)과 관
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그세대 사람
들이 죽어서 그 영혼으로 앞서 간 성도들이 가 있는 복된 세계로 들어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 (10절 중간) 이것을보면 인생
은 올바른 영적 교육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 신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라고 하여 그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거나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
다. 그 뿐 아니라 국가적, 또는 사회적 교육 기관이 참된 종교 교육을 보장하는 일도
매우 드물다. 어떤 시대에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잘 공경하도록 권장하는 일이 있게 되
면 그 때에 부모된 자들이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착실히 실시해야 된다. 그렇게 못
하면, 그 부모들이 별세한 뒤에 그들의 사회는 불신앙과 세속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
다.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실시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신 6:6-7; 시 78;5-8).
이 일에 대해서도 원천적으로 지도할 자는 교회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 시대
만 책임진 것이 아니고 장래 세대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일해야 된다. 딤후 2:2에 말하
기를,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2:11-13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하여 말한다. (1) 그들이 참된 신, 곧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살아 계신 여호와를 버렸음.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는,
선을 악이라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는 강퍅한 행동이다. 이렇게 행한 자는 하나님
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사 5:20). (2) 그들이 다른민족들의 신(神)들을 따름. 곧, 그
들이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 - 을 섬겼으니,
"바알과 아스다롯" - 이었다. "바알"(* )은 소유주(owner)란 뜻인데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예컨대 베니게 족속들과 아람 족속들이 섬기는) 신이었
다. 그리고 "아스다롯"(* )은 역시 그들이 섬기는 여신(母性神)이었다. 그
들이 이 두 가지 우상을 농신(農神-풍년 들게 하는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그렇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이런 미
신(迷信)으로 타락했던가? 이것은 우리로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우
리가 다음 몇가지 원인을 알 때에 이 의문이 풀린다. (1)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에 대
하여 효과적인 증거와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10절). 인간은 특별히
종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제시(提示)를 보수(保守)하지 않는 한(限), 어두운 미신
에 빠지지 않을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영혼이 조상 때부터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
나(하나님을 떠난 것이 곧 죽음임) 어두워졌기 때문이다(엡 2:1). (2) 음란의 미혹에
빠진 원인도 있었다(민 25:1-3). 겔 16:17, 20:30, 23:3참조. 이 참조 귀절들에 지적
된 말씀은 영적 음행, 곧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따름에 대한 비유적 언사이다. 그
때의 우상당(偶像堂)에는 창녀(娼女)가 배속되어 있어서 그 우상 숭배 행위의 한 순서
로 음행도 들어 있었다.
=====2:14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셨으므로 그들이 즉시 이방 세력에게 삼키웠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현상
은 신약 교회의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 신약 교회도 하나님을 떠나면 속화(俗化)되는
법이다.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
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
더라 - "어디를 가든지"란 문구에 있어서 "가든지"란 말(* )은 전쟁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왕하 18:7 ; 신 28:25 참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패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일찌기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바이다. 신 28:15, 25 참조. 본서의 저자는 이렇
게 하나님의 계약신(契約神) 성격을 역설(力說)하여 하나님의 진실성을 지적한다. 택
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는 언제든지 먼저 예언하신 것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것
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절대적 신앙의 대사응로 계시(啓示)되어 계신다. 누구
든지 그를 믿지 않는 것은 발뒤꿈치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2:16,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지도자로
"사사"(士師)를 세워 주셨으나 그들이 극히 타락했을 때에는 사사의 지도도 순종
하지 않았다. "사사"란 말의 히브리어(* )는 재판하는 자를 가리키지만(D.K
. Budde, der Grundbegriff dafurist Recht schaffen), 이는 일반 국가 행정에 속하
는 재판장을 말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나타내어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
여 세우신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말을 "사사"라고 번역함보다는 구원자란 뜻
을 내포하는 "심판자"라고 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쫓아" - (17절 상반)란 문구의 히브리어(*
)는 "다른 신들을 쫓아 음란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음란하여"란 말(* )은 그
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니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자를 가리켜서 음란한자라고 하시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다.
(1)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니 만큼, 신자가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은 여호
와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만 섬겨
야 된다(신 6:5). (2)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신자를 사랑하시되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
랑함 같이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것(엡 5:25). 그러므로 그는 신자도 그렇게 전심 전
력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신다. 신자가 하나님을 그렇게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때에 그는 질투하신다고 하였다(출 20:5). 이것은 신자에게 대한 그의 사랑이 불
붙듯하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속히 치우쳐 - (17절 하반). 여기 "속히"(* )란 말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얼
마 전까지 하나님 여호와를 공경하던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속히 타락했을까 함이다.
그러나 이 난제는 쉽게 해결된다. 인류가 아담의 타락 후 이미 종교적으로는 타락되어
있으니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는 그의 부패성이 발동하게 된
다. "치우쳐"란 말(* )은 배반함(turned aside)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 여호
와를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쫓는 배신 행위를 가리킨다.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 (17절 끝). 곧, 사사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즐이 그
들의 신실했던 선조들처럼 행치 아니하였다는 뜻이다.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였으니 - 곧, 사사의 구원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지적한다.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사사기의 이 말
씀은, 그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가 지
도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도자 없이도 하나님께 기
도함으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보통으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사회에도) 지도자들을 세워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시하시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
다.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
이키셨음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신 동기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가 사사
를 세우신 동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 때문에 일어난 그의 긍휼이었다. "슬피 부르
짖으므로." 곧, 그들이 애달프게 기도했다는 것이다. 큰 죄인이라도 그 지은 죄를 진
실히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인애
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호 6:6).
======2:19-21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지도자가 별세한 뒤에는 또 다시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기
를 그치지 않았다. 특별히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 (19절 끝)란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
씀에서 떠나 강퍅해진 사실을 지적한다. 사람의 일반적 범죄는 성령을 근심케 하고(엡
4:30), 그의 강퍅성은 벌을 초래한다.(창 6:5-7).
====2:22,23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의 거민, 곧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
던 그 족속들을 더 이상 쫓아내 주시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시는 목적을 밝혀준다. 그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 (22절 하반)고
하였다. 여기 "시험"이란 말(* )은 시련(試鍊)을 의미한다. "시험하려 함이라"고
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할 때에 그 땅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으로 인
하여 연단을 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잘 믿는 신자들의 주위에도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하
는 시험거리들을 남겨두신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역시 그들을 시련하시려는
데 있다. 신자들은 시련을 통하여 성화(聖化)되어 간다. 벧전1:6-7; 욥 23: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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